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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기업들의 주가 폭락, 이래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 없다고?

새로 도입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재벌들과 보수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예상대로 연금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이용해 “이 제도는 빨갱이 제도”라는 험담이 여기저기서 난무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어원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 분명한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은 친히 SNS에 “정말로 사회주의로 가는 것인가?”라며 비장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대부분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다 도입한 제도다. 2010년 영국이 가장 먼저 도입했고, 미국도 당연히 이 제도를 받아들였다. 정우택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미국과 영국도 사회주의 국가다.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덴마크, 캐나다, 호주, 일본, 대만 등도 정 의원에 의해 졸지에 빨갱이 국가로 몰린 국가들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사회주의 제도이기는커녕 가장 자본주의적인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그야말로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은 이 제도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보인다. 이유가 무엇일까? 재벌 시스템이라는 것이 정통 주주자본주의와 매우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주주는 운명공동체여야 정상이다

원래 주식 자본주의 제도에서는 모든 주주들이 운명공동체여야 정상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배당을 많이 주면 모든 주주들이 다 기뻐한다. 회사의 주가가 올라도 모든 주주들이 다 행복하다. 그래서 주가 상승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은 모든 주주들에게 환영받아야 정상이다.

재벌 총수들도 주주이므로 국민연금의 개입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주가가 오르고 배당이 늘어나면 주요 주주인 총수들의 재산도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은 이게 싫다고 바닥바닥 우긴다.

실제로 한국 재벌들은 오랫동안 배당에 매우 소홀했다. 자기들도 현금을 챙기는 일인데 왜 싫어했을까? 재벌들은 다른 주주들과 운명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주식을 10% 보유하면 자신이 10%만큼만 주인이라는 주주자본주의의 기본 상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보유 주식은 10%지만 회사는 100% 자기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배당을 싫어한다. 배당을 하면 자기 몫은 배당금의 10%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 모습.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 모습.ⓒ제공 : 뉴시스

대신 그 돈을 그냥 회사에 재워둔 뒤 그 돈을 모조리 자기 몫으로 챙길 궁리를 한다. 대부분 재벌들이 횡령 전과를 한 두 개씩 갖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당이 아니라 횡령이 자신의 재산을 더 불려주는 길이라 이들은 굳게 믿는다.

예를 들어 롯데그룹 총수 신격호는 멀쩡한 주식회사에 셋째 부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를 임원으로 등재한 뒤 월급으로 150억 원을 넘게 쥐어줬다. 롯데와 신격호의 발상이 바로 ‘회사가 내 것인데 왜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나?’라는 식이다. 실제 롯데는 한국 재벌 중 배당에 가장 인색한 기업이기도 하다.

기업 갑질을 바로 잡는 것은 주주의 당연한 임무

이번에 발표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방안에 대해 재벌들이 가장 길길이 뛰는 대목이 바로 국민연금의 직접 경영 참여다. 국민연금은 기업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됐을 경우에 한해 아주 예외적으로 임원의 해임 및 선임 과정 등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과정이 매우 까다로워서 보수언론조차 ‘예외적인 경우에만 경영에 참여한다’고 풀이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의 재벌들은 이 예외적인 참여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예외적 참여가 필요한가, 불필요한가? 한국거래소의 자료를 보면 이 제도는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돼야 한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지주회사가 모두 32개다. 지주회사는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주식을 보유한 그룹의 핵심 회사다. 그런데 이 주축 회사들의 최근 1년 주가 수익률이 -16%였다. 시장 평균(-6.4%)에도 크게 못 미치는 최악의 수익률이었다.

이들 중 특히 주가가 많이 떨어진 기업이 대부분 갑질 의혹에 시달린 전과(!)가 있다. 조가 네 일가의 엽기적 갑질로 최근 갑질 분야의 지존에 오른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은 1년 동안 주가가 30.3%나 빠졌다.

“나는 한진칼에 투자한 적이 없으므로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이건 우리의 노후가 걸린 문제다. 나는 직접 한진칼에 투자하지 않았어도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투자한 지분이 10%가 넘는다. 국민연금은 이 회사에서 1년 만에 300억 원 넘는 손실을 봤다. 그 돈, 전부 우리 국민들의 재산이다.

김승연 회장의 아들 김동선 씨가 동네방네 술 취해 사람 패고 다닌 한화도 1년 만에 주가가 33.5%나 하락했다. 그런데 이 회사에도 국민연금 지분이 9%가 넘는다. 국민연금의 1년 손실액이 한화에서만 800억 원이었다.

형제의 난 등으로 시끌벅적했던 효성그룹은 지난해 회계부정으로 수 십 억 원의 과징금을 냈다. 이 회사는 주가가 1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이 회사에 투자한 국민연금의 투자손실액은 600억 원에 이른다.

하청업체에게 상습적으로 갑질을 해 1년 동안 무려 네 번이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은 한진중공업홀딩스는 1년 동안 주가 하락률이 -35.8%였다. 그런데 이 회사에도 국민연금이 5%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증권가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환영 일색이다. 이런 회사에 국민연금이 개입해 모든 것이 정상화되면 주가가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가가 꼽는 대표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수혜주는 한진칼, 한화, 효성, 한진중공업홀딩스 등 갑질로 유명한 기업들이다.

이런 회사에 국민연금이 개입해서 경영을 정상화하는 것이 사회주의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것은 모든 주주(재벌 너희만 빼고)를 행복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정상화다. 자본주의 좀 정상화겠다는데 자유한국당과 재벌들은 그게 그렇게 싫은가?

물론 스튜어드십 코드는 그 자체로 완성품이 아니다. 철저히 주주자본주의 사상에 입각한 제도인 만큼 노동 이사제 등 다양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시스템이 지극히 비정상적인 재벌 자본주의임을 감안하면 이 제도는 재벌들의 갑질로 약화되는 주주들의 권익을 되찾아오는 좋은 제도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금보다 더 강화돼야 할 제도이지, 빨갱이 타령하며 공격하고 무력화해야 할 제도가 결코 아니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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