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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학입시 의사결정의 오류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의 교육정책 결정방식은 비민주적인 탁상행정으로써 시민과의 불통이 특징이었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 결정방식은 탁상행정의 정반대 편에서 여론의 목소리에 치중한 나머지 전문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대중성’을 과도하게 신뢰한 결과 ‘전문성’을 비켜가고 있다는 것이다. 추정컨대 이는 이른바 ‘촛불정부‘답게 민주주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발로인 듯하다. 실시간으로 민심을 읽다가 아예 결정권마저 줘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쯤에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정리한 정치체제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조:Plato, Republic[국가론] ; Great Dialogues of Plato, A Mentor Book, U.S.A., 1984, p.343.)

정치체제 유형
정치체제 유형ⓒ신남호 교육평론가

플라톤이 가장 중시한 체제는 철인왕(Philosopher King)이었다. 철학적 식견이 뛰어나고 나이 50대가 될 때까지 사회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후에 통치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위의 귀족제는 철인왕(哲人王)을 대치할 수 있는 것으로써 당연히 철학적 식견과 전문성을 겸비할 것을 조건으로 한다.

민주제는 시민들의 참여와 평등한 주인의식을 충족시켜주고 있으나 탁월한 지성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분열과 타락의 길로 접어든다. 따라서 현대 대의제(代議制)는 귀족제와 민주제의 절묘한 조합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번 대입시 공론화 관련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첫째, 대중의 여론에 의지하려는 취지는 좋았으나 대중의 여론이 자체로 전문성을 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래서 전문가 그룹으로서 선발된 진보성향의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배제되었다. 여론은 수렴의 대상이지 거의 최종심급의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짐을 지우는 것은 대의제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정책적 방향설정과 기본 골격은 정부의 몫이다. 그리고 정부는 전문가 그룹의 정책자문(태스크포스)을 구하는 것이 맞다.

의사결정의 전문성 결핍

이번 대입제도특위에서 위임받은 공론화위원회 주관 시민토론회에서 얻은 결과가 1안인 정시 45%이상 확대 및 수능 상대평가와, 2안인 대학자율의 정시·수시 모집 및 수능 절대평가의 차이가 근소하다는 사실 하나다. 16억여 원의 예산과 490명의 시민참여단이 들인 노력 치고는 결과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미뤄둔 입시관련 사안들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즉 수시와 정시 통합전형 여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공정성 제고 방안, 수능 절대평가를 실시할 경우 원점수 제공여부 (원점수 제공하면 절대평가 의미는 사라짐), 수능-EBS 연계율, 고교 학점제 등이다.

평가가 지향하는 인재상에 대한 철학적 논의 결핍

두번째, 입시제도를 논하면서 평가가 목표로 하는 인재상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대입제도 공론화에 있어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교육이 무슨 능력을 길러줘야 하는지, 대입은 무슨 능력을 평가해야 하는지, 이런 미래 프레임의 질문이 하나라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미래 비전 논의가 원래 공론화위가 준비한 의제에 있었는데, 상대평가를 주장하는 팀들이 ‘미래 비전을 논하면 절대평가 팀에 유리하므로 공정하지 못하다’며 반대했고, 결국 공론화위는 이를 받아들여 미래 비전을 논의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통탄할 일이다.”(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2018/8/2일자 매일경제)

이와 같은 맥락의 견해 하나를 더 추가하면, “대학 입학시험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맹렬한 지식추구를 촉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간생략)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참으로 깊은 사고의 능력과 인간성의 함양 그리고 사고의 과정에 관련된 여러 사항들과 그 전체적인 의의를 고려하는 것이 되기를 희망해본다.”(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2018/7/28일자 중앙선데이).

평가가 지향할 목표는 마땅히 인성, 창의성, 상상력과 같은 가치들이다. 수능비중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어 수능의 모델이 된 나라, 미국의 입시를 살펴보기로 한다. 아래 내용은 윤만식 전직교사(미국에 체류한 후에 귀국. 미 영주권 소지)가 정리한 내용이다. 미국의 입시제도가 얼마나 학생들의 상상력과 잠재력을 독려하는지, 그리고 대학입시가 과열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직업차별을 극복해내는지 살펴본다. (괄호 속의 글은 필자가 추가한 것입니다.)

첫째,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고교 졸업시험이 있다. 학교마다 실시하고 과목별로 과락이 있다. 물론 이들에게도 구제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는다. (한국은 유급제가 오래전에 사라졌고, 모두 졸업이 보장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실력을 갖추었을 때 졸업시키는 것이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시험의 예는 아래와 같다.

[CA highschool EXIT exam]
https://collegereadiness.collegeboard.org/sat-subject-tests/subjects/science/biology-em

둘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SAT 혹은 ACT와 같이 모든 학생들이 보는 시험이 있다. 말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할 기본능력을 보는 것이다. 단위학교에서 교사들이 감독해서 본다. 3학년때 2번, 1~2학년때 각각 1번 등 모두 3번 정도 응시한다. SAT는 1년에 총 7번 시험이 있으나 학생들이 응시를 선택할 수 있다. 학교에서 보는 시험은 값도 싸다. 물론 토플(TOEFL)이나 토익(TOEIC)과 유사하게 외부기관에서 보기도 하고,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다. (한국의 수능은 국가주도 단 1회 뿐이다. 시험 당일 교통사고나 질병에 걸리면 인생 길이 달라질 만큼 긴박하고 비장하다.)

SAT는 대체로 평이하고 어렵지 않게 출제된다. 여기서 일단 한번 걸러내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어떤 대학은 주제별 테스트(subject test)를 요구하기도 한다. 과목별로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걸 요구하는 대학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subject test 생물과목 예]
https://collegereadiness.collegeboard.org/sat-subject-tests/subjects/science/biology-em

셋째, 학생들은 고교 재학때 능력이 우수한 영역에서는 AP과목을 따로 듣는다. 물론 캐나다도 그러하다. 학생의 이전 학기의 점수를 고려하여 그것의 허용여부를 결정한다. 아무나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학점제이기 때문에 능력별 수업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대학과목을 고등학교에서 미리 수강하는 제도로써 도중에 점수가 안나오면 학교상담사가 탈락을 유도하거나 급이 낮은 다른 학급으로 조정한다. (한국에서 대선공약에 있던 고교학점제가 이에 해당되나 절대평가 등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 AP시험은 학교에서 모의시험을 보고, 공정성 때문에 다른 기관에 가서 원하는 시간대에 시험을 본다. 5점 만점에 3점 이상이면 통과되며, 대학에서는 그 수업을 대체해 준다. 물론 절대평가이며 교과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지고 시험문제를 낸다. (한국의 수능처럼 지엽적인 데에서 출제하지 않는다.)

대학에서는 이걸 가지고 학과별로 선발의 기준을 삼는다. 즉, 인문계에서는 AP 역사과목과 그 성적을, 자연계에서는 AP 미적분(calculus)과 그 성적을 확인한다.

[AP calculus의 시험 예]
https://secure-media.collegeboard.org/digitalServices/pdf/ap/ap16_calculus_ab_q1.pdf

넷째, 학생의 학교 내신성적이다. 이 내신이라는 것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디테일이 중요한데 첫째, 교사의 개별 평가권이 주어지므로 교권을 살리고 있다. (한국처럼 한 과목을 교사 2~4명이 나눠 가르치고 공통의 시험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다.) 둘째, 대입시에서 점수별이 아닌 A,B,C,D,E,F로 매기는 절대평가를 취하기 때문에 절대 살인적 경쟁이 유발되지 않는다. 물론 과락은 기본이다. 셋째, 교과서가 자유발행제이므로 학교마다 교과서를 얼마든지 다른 것을 쓸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교과성적이 입시에 반영된다. “평점이 2.7 점이상인 학생에 한해서…”와 같은 조건이 대학 입학자격에 명시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학생 성적표를 하나 예시한다. (학생의 개인정보를 위해 이름, 학교명, 서명자, 전화번호 등을 삭제했으며, 2018년 3월에 졸업한 학생의 것이다. 학생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우수하며, 학급 석차가 매겨져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가르치는 학생들의 평균점, 최고점, 최저점과 함께 학생 본인의 점수가 모두 소수점으로 주어지며 성적표에 석차는 없다.).

미국 학생 성적표 예시
미국 학생 성적표 예시ⓒ신남호 교육평론가

다섯째, 학생의 자기소개서, 봉사활동 등을 참고자료로 활용한다. 이를 어떻게 점수화 하는지는 학교마다 다르고 해당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모여서 결정한다. 입시철이 되면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모두 바쁜 이유 중 하나다. (심지어는 한 학생의 성적 및 비교과 활동자료를 갖고 입학사정관들이 1시간 정도 논의하는 경우도 있다.)

여섯째, 이게 중요한데,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의 경우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가 있다. 한국으로 치면 전문대학 혹은 교양대학이다. 대학은 가고 싶은데 실력이 없어서 못 갈 수 있다. 해당연도에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컴뮤니티 칼리지는 바로 일반인들도 몇 년 후에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두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일반대학의 1,2학년에 배우는 교양을 가르치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 자동차 정비 자격증 등 실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술들을 망라한다. 이렇게 자격증을 따서 사회로 진출하기도 하고, 또한 일반대학으로 진학하고자 하면 여기서 열심히 공부해서, 일반대학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다.

실례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프레즈노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의 학생들이 UC버클리, UCLA등의 학교로 편입, 공부해서 훌륭하게 잘 살고 있다. 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그렇게 많이들 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커뮤니티 컬리지는 학비가 주정부 보조로 매우 싸고, 교수진들이 매우 훌륭하다. 그래서 일반대학에 들어간 학생들도 교양과목을 여기서 듣고, 그 학점을 인정받아서 일반대학에 제출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입시 열기를 식히는 완충장치역할을 하는 것이다.

[커뮤니티 칼리지 홈페이지]
http://www.fresnocitycollege.edu/

마지막으로,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학점 공유제다. 이것 역시 대학입시를 진정시키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다. 어느 대학에서 수업을 듣던 그것을 다른 대학의 학점으로 대체시켜주는 제도다. 우리나라도 이걸 적용해서 대학간 이동을 수월하게 한다면 대학입시가 과열되는 것을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것은 대학간 경쟁을 촉발시키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그만 경쟁을 시켰으면 한다.

(대학간의 학점 공유제는 한국에서 정진상 경상대 교수의 단행본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책세상 2004년), 김동훈 국민대 교수의 단행본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책세상, 2001년) 등을 통해 제기된 바가 있다.)

결국 입시제도는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를 통해 입시경쟁을 완화시켜 주면서 그 자리에 학생들의 독서와 토론이 끼어들 여지를 1차로 주고, 학생의 비교과 활동자료와 함께, 대학선발을 위해 전공영역 주제별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선발하면서 간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동시에 독일, 핀란드, 덴마크, 미국 등과 같이 고졸취업을 장려하면서도, 전문대학의 기능을 적어도 70%를 취업으로 하면서 4년제 편입기능을 30%정도로 할당해서 입시열기를 2차로 줄이는 것이 좋다. 이는 직업·학력차별을 줄여 근본적으로 교육개혁을 용이하게 만드는 효과를 낼 것이다.

입시제도의 기술적 차원에만 머물지 말고, 이와 동시에 고졸취업 및 전문대학의 기능을 살려 직업·학력차별을 줄여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입시정책에 있어서 의사결정의 방식과 내용상의 오류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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