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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인간계의 절대반지’ 핵을 통해 본 공포의 역사
책 ‘ 핵과 인간- 아인슈타인에서 김정은 트럼프 문재인까지’
책 ‘ 핵과 인간- 아인슈타인에서 김정은 트럼프 문재인까지’ⓒ서해문집

“핵은 절대무기다.”

“미국의 클라우제비츠”라고 불리는 군사전략가 버나드 브로디(Bernard Brodie)는 1946년, 원자폭탄을 가리켜 “절대무기(absolute weapon)”라고 불렀다. 한 해 전이던 1945년 8월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조 폭탄을 하나씩 투여하면서 ‘절대무기’의 위력을 세상에 보여줬다. 순식간에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핵무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파괴력의 극치다. 정웅식은 버나드 브로디의 표현을 약간 고쳐 핵을 “인간계의 절대반지”라 부른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에 비유한 것이다. 절대적인 위력을 가진 이 무기는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지만, 그 위력 때문에 누구나 가지기를 꿈꾸는 무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핵의 두 얼굴은 ‘과학과 윤리’ ‘전쟁과 평화’라는 인류 사회의 오랜 양면성을 대표한다. 그 양면성은 국제정치에서도, 한 사람의 마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국제체제인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 확산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자기보호본능과 핵클럽의 문을 빨리 닫아 핵 독점을 유지하려는 강대국들의 기만책이라는 ‘두 얼굴’을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핵이 가진 두 얼굴은 원자폭탄이 개발된 이후 인류가 거쳐온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북핵 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와 갈등의 현장을 관통하는 주제가 되고 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온 정욱식 대표는 핵이 한반도의 현대사에 어떤 작용을 해왔으며, 국제관계를 어떻게 바꾸어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1939년 아인슈타인의 편지에서부터 2018년 김정은과 트럼프의 ‘세기의 담판’에 이르기까지 핵과 인간의 약 80년 동안의 상호작용을 면밀히 훑으며 ‘핵과 인간’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 전반부는 2012년에 출간했던 ‘핵의 세계사’에 수록한 내용을 대폭 보완했고, 후반부는 이른바 ‘북핵문제’에 초점을 맞춰 그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쓴 것이다. 저자는 “북한의 기만에 당했다”는 25년의 미신을 벗겨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다행히 미국의 비밀해제 문서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문서, 외국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통해 이러한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할 수 있었다.

원폭 투하 이후 한 일본군인이 잔해만 남은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이 건물은 히로시마에서의 원폭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남아있다.
원폭 투하 이후 한 일본군인이 잔해만 남은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이 건물은 히로시마에서의 원폭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남아있다.ⓒU.S. National Archives

‘핵과 인간’은 핵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동서 냉전, 데탕트 등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 역사적 사건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핵을 통해 패권을 유지하거나 그에 맞서려는 세력?국가의 이해관계에 의해 흘러온 것임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핵과 관련된 세계사의 주요 장면을 아우르면서도 한반도 핵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한반도 핵문제를 4개의 시대로 나누어 접근했다. 한반도에서 ‘제1의 핵 시대’는 미국의 핵 독점 시기다. 1945년 한반도의 해방과 분단에서부터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철수한 1991년까지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핵 시대 1.5’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1992년부터 6자회담이 결렬된 2008년까지를 이 시기로 삼을 수 있다. 미국의 핵 독점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핵개발에 나섰지만 외교적으로 해결을 도모했던 시기였다. 세 번째 시기는 협상은 사라지고 북한의 핵보유가 명확해진 시기다. 시기적으로는 2009년부터 북한이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2017년까지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이를 ‘한반도 제2의 핵 시대’로 규정한다. 끝으로는 2018년부터 시작된 ‘협상다운 협상의 시대’다. ‘협상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간명하다.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시진핑 등 각국 정상이 직접 나섰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핵문제의 몸통에 접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핵무기로 인한 인류 절멸의 가능성만큼이나, 핵발전소가 인류를 재앙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크다. 일찍이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원자력을 가리켜 “세계 번영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 불렀고, 이는 ‘절대무기’라는 핵무기만큼이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핵과 인간’은 한때 세계 문명의 신기원을 열 것이라 믿어진 핵발전의 위험성, 그리고 사고로 인한 재앙적 피해와 이를 덮어버리고 외면하려는 이들의 행위를 알리는 데에도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서명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서명하고 있다.ⓒ뉴시스

아울러 이 책은 북핵과 관련해서 그동안의 미국 중심적 시각을 교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미국과 굳건한 동맹을 맺고 있고, 전시작전권이 주한미군에게 있는 우리의 시각은 미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북한의 행위와 발언 모두를 ‘보여주기’ ‘시간 끌기’로 단정하며, 북미관계/남북관계 파탄의 모든 책임을 북한에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고, 이를 통해 확보된 군사력으로 세계 패권을 갖고있는 미국이 모든 관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일이다.

1993년 북한이 NPT를 탈퇴하면서 시작된 1차 북핵 위기는 특별사찰을 둘러싼 북한과 미국 및 IAEA와의 갈등, 한미 양국의 팀스피릿 훈련 재개, 미국의 북미 고위급회담 불응이라는 원인이 있었다. 반면 북한이 NPT 탈퇴를 유보할 수 있었던 것은 북미 고위급회담을 열어 대화로 문제를 풀기로 약속한 것에서 비롯됐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체결되면서 이후 8년간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켰지만, 북한에 지어주기로 한 경수로는 공사가 중단되었고, 미국은 약속한 소극적 안전보장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이 1990년대 본토에서 북한을 상정한 모의 핵공격 훈련을 실시했다는 것이 비밀해제 문서로 밝혀졌다. 북한은 중유 수백만 톤만 얻었을 뿐,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 약속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올 때마다 어김없이 북핵문제가 불거진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1차 핵위기의 원인인 ‘플루토늄 불일치’가 미국 강경파에 농간일 가능성이 높으며, 2차 핵위기의 발단이 된 ‘우라늄 불일치’에도 석연치 않은 대목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불일치를 꺼내들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좌초시킨 인물들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저자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북미관계를 단순히 북한의 도발 -> 대화 -> 보상으로 이어지는 패턴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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