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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비어는 정말로 북한에서 고문을 받아 사망했을까?
평양의 법정에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언도받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교도관들에 의해 끌려나가고 있다. 2016.3.16
평양의 법정에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언도받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교도관들에 의해 끌려나가고 있다. 2016.3.16ⓒAP/뉴시스

편집자주/미국인 웜비어는 2015년 연말 북한에 입국해 체제 선전물을 절도했다는 혐의로 억류되어 2017년 6월까지 북한에 머물렀다. 그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미국으로 송환된 직후 사망했다. 웜비어의 사인인 북한에서 받은 잔혹한 고문이라는 건 그 이후 서방세계에 널린 퍼진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발행되는 매거진 GQ는 ‘미국인 인질 오토 웜비어의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이런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GQ의 해당 기사를 발췌 번역해 소개한다. 원문은 The Untold Story of Otto Warmbier, American Hostag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웜비어는 오랫동안 다른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쿠바 같은 나라를 용감하게 방문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유학을 위해 홍콩을 갈 것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그 전에) 세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나라, 북한을 한번 보기로 마음먹었다.

북한이 나라를 떠나려는 시민들을 투옥하고 때로는 처형하기는 하지만, 그 나라에는 매년 수천 명의 외국인들이 찾아와 매우 통제된 관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제재에 의해 불구가 된 경제가 현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다. 웜비어가 “북한 여행”이라는 검색어로 구글을 검색했다면, 맨 위의 링크에는 영 파이어니어 여행사가 검색되었을 것인데, 그 여행사는 “당신의 엄마가 당신이 멀리하기를 원할 목적지”에 대한 저렴한 여행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다.

그리하여 2015년 크리스마스 직후, 웜비어는 중국에서 다른 “젊은 개척자들”을 만나 평양으로 향하는 오래된 소련제 제트기에 올랐다.

며칠 동안 북한 관광을 한 후, 2015년의 마지막 날에, 그 “젊은 개척자들”은 근사한 술집으로 술을 마시러 갔다. 그러나 웜비어와 동행한 관광객 대니 그래톤에 따르면, 일부 보도와는 달리 크게 취하도록 술을 마신 사람은 없었다. 그래톤에 따르면 술집에서 나온 후, 그들은 수천 명의 북한 사람들과 함께 평양의 광장에서 한 해의 마지막의 몇 시간을 함께 경축했다. 그들은 그리고 나서 호텔로 돌아왔는데, 몇몇 사람들은 다시 호텔의 술집으로 갔다. 그래톤은 볼링을 하러 갔고 그 이후 그는 웜비어를 보지 못했다.

북한은 나중에 누군지 확인할 수 없는 인물이 호텔의 제한 구역의 벽에서 선전포스터 액자를 떼어내는 선명하지 않은 CCTV 카메라 영상을 배포하면서, 그것이 웜비어라고 주장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자백을 통해서 웜비어는, “몰래 잠입하기 좋은 조용한 부츠를” 신고 절도를 시도했는데, 그것은 “북한 사람들의 노동윤리와 의욕을 손상시키고” 고국으로 “전리품”을 가져가기 위해, 지역의 감리교회, 대학의 비밀결사, 그리고 미국 행정부가 사주하여 벌인 일이라고 손수 쓴 글을 읽었다. 웜비어의 고백은 그 세부적인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데, 하나의 예를 들자면, 웜비어는 감리교회와는 관련이 없는 유대교도였다.

평양에서 기자회견 중인 웜비어. 웜비어는 이 회견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물론 이 기자회견은 북한 당국에 의해 통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2016.2.29
평양에서 기자회견 중인 웜비어. 웜비어는 이 회견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물론 이 기자회견은 북한 당국에 의해 통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2016.2.29ⓒAP/뉴시스

다음 날 아침 공항에서 그래톤과 웜비어는 나란히 서서 여권을 보여주고 있었다. 불편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래톤은 공항 관리들이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나서 두명의 군인들이 들어왔고, 그 중 한명이 웜비어의 어깨를 툭 쳤다. 그래톤은 저들이 웜비어를 그저 한번 힘들게 하려나보다 하고 생각했고, “이번이 너를 보는 마지막이겠네,”라고 농담했다. 그리고 웜비어는 웃으며 그들에 이끌려 체크인 영역 옆의 나무문을 통해 들어갔다.

막후 채널을 통한 협상

웜비어가 체포된 직후, 오하이오 주지사 존 카시치는 웜비어의 부모를 뉴멕시코의 전직 주지사이자 유엔 대사였던 빌 리처드슨과 연결시켜주었는데, 그는 눈에 띄지 않는 “비주류 외교”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를 이끌며 적대적인 정권이나 범죄 조직으로부터 포로를 석방시키려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리처드슨은 이전에 북한으로부터 몇 명의 미국인을 석방시키는데 일조했으며, 그 결과 맨해튼의 유엔본부의 북한 대표들로 구성된 뉴욕 채널과 강력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 채널은 종종 워싱턴과 평양당국 사이의 비공식적인 협상채널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 채널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진정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평양으로 가야했다. 그리하여 오바마 행정부의 동의를 얻어 리처드슨과 그의 수석고문 버그만이 웜비어의 석방과 연계하여 북한의 홍수피해에 대한 비공식적인 인도주의적 원조를 논의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북한 방문에 대한 협상을 타결했다. 리처드슨은 너무 주목을 끌 수 있으므로 버그만이 밀사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9월에 있은 버그만의 평양방문은 별 성과를 남기지 못했고, 버그만은 북한인들이 웜비어를 석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기는 하나, 우선 정점에 이르고 있는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기다리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고 평양을 떠났다.

트럼프가 승리했을 때, 버그만과 리처드슨은 로널드 레이건의 취임 초기에 이란의 미국인 포로가 석방된 것과 같이 웜비어를 석방시킬 황금 같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 두 명의 “비주류 외교관”들은 트럼프가 취임하기 전에, 그리고 관료들이 새로운 대통령을 막아 나서기 전에, 트럼프의 비행기에 웜비어를 태워 사진을 찍을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북한으로부터 거부하는 신호는 없었다.

이것은 그들의 과거 경험을 볼 때 종종 긍정적 관심의 표현이었다. 버그만은 “우리가 가진 문제는 트럼프에게 이 계획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길리아니, 펜스, 이방카를 통해 우리의 계획을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그들도 혼란의 와중에 있었다고 본다. 우리의 계획이 트럼프의 책상에 올라가지도 않은 것 같다. 트럼프가 우리의 계획을 들었다면 분명히 마음에 들어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웜비어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

선거 이후, 웜비어 사건은 새롭게 임명된 조셉 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책임으로 넘어갔다. 4월경에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어느 정도 풀리면서, 조셉 윤은 북한의 고위관리와 직접 대면하여 웜비어의 석방문제를 협상할 수 있는 허락 받았다. 그리하여 조셉 윤은 노르웨이로 가서 은퇴한 외교관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던 비밀 핵협상의 이면에서 몇몇 북한의 고위 관리들을 만났다. 조셉 윤과 북한의 관리들은 스웨덴 대사가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웜비어와 세 명의 다른 미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데 합의했다. 결과적으로, 스웨덴 대사는 단지 한 명의 억류자만을 만날 수 있었으며, 웜비어는 만나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첫번째 대북정책특별대표였던 조셉 윤. 윤은 웜비어의 석방에 관여한 미국의 외교관이다. 2017.4.25
트럼프 행정부의 첫번째 대북정책특별대표였던 조셉 윤. 윤은 웜비어의 석방에 관여한 미국의 외교관이다. 2017.4.25ⓒAP/뉴시스

조셉 윤은 웜비어를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그러던 6월 초의 어느 날, 뉴욕 채널에서 긴급하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맨해튼에서, 뉴욕 채널의 북한인들은 웜비어가 의식이 없다고 알려왔다. 윤은 “나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젊은이의 건강을 감안해, 평양측이 인도적 견지에서 그를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은 “나는 즉각 돌아와 틸러슨 장관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 그와 다른 죄수들을 가능한 빨리 데려와야 하며, 평양 측과 접촉하여 가능한 빨리 방문하고 싶다고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웜비어의 상태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윤에게 평양으로 당장 가서 웜비어를 데려오라고 강력하게 명령했다. 이에 따라 북한인들은 “미국 비행기가 곧 평양에 착륙할 것이며, 미국의 외교관들과 의사들이 내릴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그 당시 상황에 관여한 한 국무성의 관리는, “대통령은 웜비어를 데려오는 일에 매우 몰두했다,”고 말했다.

윤에 따르면 북한인들은, “웜비어를 만나기 위해 대표단을 보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평양에서 웜비어를 송환하기 위한 일정한 조건에 대해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윤은 웜비어를 데려오기 위해 서둘러 외교관과 의료팀을 구성했다.

의료팀의 마이클 플루키거는 끔찍한 상황을 침착하게 해결하는데 익숙한 사람인데, 31년 간 외상센터의 의사로 근무하면서 총상을 입거나 교통사고를 당한 수많은 환자들을 구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위험한 해외의 상황에 대처하는데도 능숙했는데, 그는 최고의 항공 앰뷸런스 서비스인 피닉스 에어의 의료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국인들을 데려온 적도 있었다.

국무성으로부터 최종 승인이 나오자, 피닉스 에어는 세네갈에 있던 전용기를 애틀랜타 외곽의 본사로 보내 의료팀을 태우고, 다시 워싱턴으로 날아가 윤과 다른 국무성의 관리들을 태워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본에서 북한 입국이 허용된 윤과 다른 한명의 외교관, 그리고 플루키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내리고 다음날 비행기는 평양으로 향했다.

평양에서의 웜비어

평양에 도착한 후 이루어진 협상을 통해 윤은 마침내 웜비어를 볼 수 있게 됐다.

플루키거와 윤은 평양에 사는 외교관들을 종종 치료하는 시설인 친선병원으로 갔다. 2층의 분리된 집중치료실에서, 플루키거는 영양분을 주입하는 관을 코에 연결한 창백하고 움직이지 않는 남자를 마주치게 됐다. 플루키거는 “이 사람이 정말 웜비어인가?” 하고 의아해 했다. 그가 사진에서 본 모습과 지금의 이 모습이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두 명의 북한 의사들은 웜비어가 이런 모습으로 병원에 온지 일 년 이상이 됐다고 설명하며, 손으로 쓴 두꺼운 차트와, 웜비어가 광범한 뇌손상을 입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4월로 날짜가 기록된 몇 개의 뇌스캔 사진을 보여주었다.

플루키거는 약 한 시간 동안 웜비어를 살펴봤다. 그러나 진실은 한 눈에 보아도 명백했다. 예전의 웜비어는 이미 없었다. 병원에 입원한 이후 그의 상태가 개선된 것은 명백했다. 그러나 그는 깨어는 있으나 반응하지 않는 상태였는데, 이는 그가 여전히 기본적인 반사 능력은 보유하고 있으나 의식의 징후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사람들은 플루키거에게 웜비어가 병원에서 좋은 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보고서에 서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플루키거는 “웜비어가 석방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런 보고서를 조작이라도 했을 것이다,”면서도 그러나 조사 결과 그 병원이 아주 기초적인 시설만 갖추고 있었음에도(심지어는 그 방의 싱크대도 고장이 난 상태였다), “그는 훌륭한 치료를 받았고, 나는 거짓말할 필요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웜비어는 영양상태도 좋았고, 욕창도 없었는데, 이는 서구의 병원들도 의식이 없는 환자들을 상대로 이루기 어려워하는 일이다.

그러나 밤늦게까지 협상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인들은 여전히 웜비어를 석방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결국 윤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나는 내 동료들에게 일본에서 비행기를 가지고 오라고 연락했다. 나는 북한 사람들에게 웜비어를 데리고 가든 그렇지 않든,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나는 질질 끄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라고 느꼈다. 나는 그들이 웜비어를 석방할 것이라고 90퍼센트 확신했다. 나는 나의 이 행동이 그들이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 북한의 관리가 그들이 웜비어를 석방하기로 결정했다고 윤에게 말했다.

웜비어는 왜 사망에 이르렀을까?

그가 돌아온지 48시간이 되지 않아, 웜비어는 체온이 섭씨 40도까지 올라갔다. 의사들이 웜비어의 부모에게 그들의 아들이 다시 의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인해 준 후, 웜비어의 부모들은 웜비어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관을 제거하도록 했다. 그들은 웜비어가 돌아오고 6일이 지나 그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침대 곁을 지켰다.

웜비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이 그의 장례행렬을 연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2017.6.22
웜비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이 그의 장례행렬을 연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2017.6.22ⓒAP/뉴시스

장례기간이 끝나고 웜비어의 부모들은 2017년 9월에 ‘Fox & Friends’에 출연하여, 다시 한 번 대통령의 주목을 끌려고 했으며, 북한 사람들을 자기 아들에게 “의도적으로 상해를 입힌”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웜비어의 아버지는 고문의 결과라고 하면서 웜비어의 치아와 발에 있는 상처를 상세히 묘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그 독재국가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잠시 후 대통령은 “대단한 인터뷰”라고 트위터에 글을 게시하고, 웜비어는 “북한에 의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문을 당했다”고 언급함으로써 동의를 표시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 웜비어의 아버지는 특검의 러시아 관련 수사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대리하던 변호사를 고용했다. 11월에 의회는 웜비어의 이름을 붙인 대북 은행거래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달 말에 트럼프는, “우리가 오늘 이런 조치를 취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오토 웜비어를 향해있다,”고 언급하며, 북한을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국가로 명시했는데, 그것은 더 가혹한 미래의 제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웜비어가 사망하던 시기 쯤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감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 시기는 “화염과 분노,”라는 발언이 있던, 그리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누가 “더 크고 더 강한” 핵단추를 가지고 있는지 비교하던 시기였다. 워싱턴 정치의 이면에서는, 조셉 윤과 같은 비둘기파의 외교관이 이라크 전쟁을 기획한 존 볼턴 같은 매파에 의해 교체됐다. 충돌의 가능성이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되어가는 바람에, 어떤 미국의 외교관은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재산을 남한에서 빼내라고 비밀리에 경고하기조차 했었다.

그러나, 트럼프와 그의 행정부가 아무리 웜비어가 신체적인 고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해도, 그에 대한 증거는 분명하지 않았다.

웜비어의 부모가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여, 웜비어가 “체계적인 고문과 의도적인 상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바로 다음 날, 웜비어의 검시관, 라크시미 코드 사마르코가 예정에 없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웜비어의 부모들을 배려하여 이전에는 기자회견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들, 그리고 웜비어를 치료하던 의사들이 발견한 것들은 웜비어 부부의 주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웜비어의 아버지는 웜비어의 치아가 플라이어로 “엉망이 됐다”고 말했지만, 사마르코는 사후 검시 결과 “치아는 자연스러웠고 잘 치료된 상태였다” 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는 어떤 특별한 상처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웜비어의 발에 있는 상처도 결코 고문의 증거가 아니라고 밝혔다.

신체적 고통의 다른 징표들도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웜비어의 좌뇌와 우뇌 둘 다 동시에 문제가 생겼는데, 이는 웜비어의 뇌에 산소가 고갈되었음을 의미한다. (머리를 맞았다면 양쪽 뇌 전부가 아니라, 비대칭적인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웜비어의 부모가 부검을 거부했지만, 신체를 손상하지 않는 스캔 결과, 어떤 미세한 두개골 골절도, 혹은 이전의 외상의 다른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마르코는 “그의 몸은 완벽한 상태였다. 그의 피부상태로 볼 때 그는 틀림없이 24시간 내내 관리를 받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웜비어 부모의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사마로는, “그들은 슬퍼하고 있는 부모다. 나는 그들이 말한 것이나, 그들의 인식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 이 사무실에서, 우리는 과학에 의해 우리의 결론을 내린다,”라고 답했다. 웜비어가 돌아오고 나서 웜비어와 가까이 접촉했던 다른 세 명의 인사도 마찬가지로 고문의 어떤 흔적도 목격하지 못했다.

신디 웜비어(오토 웜비어의 어머니, 가장 왼쪽)와 프레드 웜비어(웜비어의 아버지, 왼쪽에서 두번째)가 UN 회의에서 북한이 납치된 억류자들을 즉시 풀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8.5.3
신디 웜비어(오토 웜비어의 어머니, 가장 왼쪽)와 프레드 웜비어(웜비어의 아버지, 왼쪽에서 두번째)가 UN 회의에서 북한이 납치된 억류자들을 즉시 풀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8.5.3ⓒAP/뉴시스

재판이 끝난 다음 날 웜비어에게 일어난 일

북한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발견하는 일은 미국의 정보기관조차 힘겨워하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웜비어가 체포된 후 그가 겪었던 일은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정보원들, 정부 관리, 고위 탈북자들, 그리고 1996년 이래 북한에 투옥되었던 15명의 다른 미국인들의 경험을 활용하면, 웜비어의 그곳에서의 하루하루의 생활상을 그려보는 것이 가능하다.

웜비어가 다시 자기의 눈을 떴을 때, 그는 아마도 어떤 게스트하우스에 있었을 것인데, 그곳은 미 국무성이 그가 아마도 감금됐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장소다.

적어도 다섯 명의 이전의 미국인 억류자들이 국가보위부가 관리하는 평양시내의 한 식당 뒷길에 있는 녹색 타일 지붕이 있는 이층짜리 건물에 수감됐다. 몇몇은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수감됐고, 적어도 세 명은 호텔에 머물렀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게스트하우스는 북한의 기준에서 볼 때 호화로운 곳인데, 억류자들이 새벽까지 가라오케 기계를 사용하는 경비원들을 목격할 정도였다. 웜비어는 아마도 평범한 호텔의 객실과 비슷한 두 개의 방이 딸린 객실에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가 있던 곳이 괜찮았다 하더라도, 그곳은 감옥이었다. 그는 가끔씩 호위를 받으며 산보하러 나가는 정도만을 허락 받았을 것이다.

그가 강요된 자백을 하기 전까지의 다음 두 달 동안, 웜비어는 아마도 끊임없이 심문을 받았을 것이다. 미국 선교사 케네스 배는 하루에 15시간까지 심문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전의 어떤 미국의 억류자도 북한이 자백을 얻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했다고 고발한 사람은 없다.

만약 웜비어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면, 그는 그에 앞서 2년 간 억류됐던 제프리 파울과 마찬가지로, “협조하는 것이 좋을거야,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나빠질거야,”라는 경고를 받았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미국의 매체들은 선교사 로버트 박이 신체적인 고문을 받았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했지만, 로버트 박 자신이 그 주장을 반박하면서, 자신이 여성 경비원에게 발가벗겨져서 곤봉으로 성기를 맞았다는 주장은 언론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문을 가하기는커녕, 북한 사람들은 필요한 경우 (웜비어도 입원해 있던) 친선병원에 미국인들을 입원시키면서, 그들이 수감한 미국인들의 건강을 섬세하게 돌봐줬다.

85세의 억류자 메릴 뉴만은 하루에 네 번, 의사와 간호사의 방문을 받았다고 전해졌다. 지금은 남한의 정보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고위직 탈북자는 “북한은 외국인 죄수들을 매우 잘 대접한다. 그들은 언젠가 그들을 보내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이 억류된 미국인들을 심리적으로 고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북한은 그들을 정신적으로 굴복시키려고 꾸준히 시도해왔다. 북한에 억류돼 있던 사람들은 미국 정부가 그들을 “잊었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었고, 희망적인 얘기를 거의 듣지 못하고, 석방되기 한 시간 전에야 자기가 석방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케네스 배를 서울에서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수감된다는 것은 외롭고, 고립적이고,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미국을 대신해서 재판을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임박한 처벌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했다.

이전의 몇몇 억류자들은 고국으로부터 편지를 받을 수 있었으나, 북한은 웜비어의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완전히 단절시킨 것 같다. 심문으로부터 벗어난 유일한 휴식은 아마도 북한의 선전 영화를 보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져다 준 심리적 트라우마는 이전의 억류자들을 절망적인 우울상태로 몰고 갔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하기조차 했다.

웜비어가 자백하는 기자회견의 영상을 보면 그는 신체적으로 건강해 보인다. 그러나 흐느끼며 석방을 간청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명백히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주 후인 3월 중순, 15년 중노동형을 선고받은 후 촬영된 웜비어의 모습을 보면, 그의 몸은 여전히 건강해 보이지만, 마치 생명이 그에게서 빠져나간 듯이 그의 표정은 멍했고, 법정 바깥으로 이끌려 나갈 때 두 명의 경비원이 그를 부축해야 했다.

웜비어에게 노동교화소에서의 노동과정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웜비어는 노동교화소에 가지 않은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플루키어 박사는 나에게 “친선병원의 직원들은 그들이 웜비어를 재판이 있던 다음 날 아침에 받았으며, 그가 들어왔을 때 이미 반응이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를 소생시켜야 했고, 산소를 주입하고 인공호흡장치를 부착해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웜비어를 석방하는데 일조했던 협상가 조셉 윤은 “북한의 의사들은 그가 재판이 있고 하루가 되기 전에 병원에 왔으며, 내가 그를 볼 때까지 그가 계속 똑같은 입원실에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웜비어가 구타당했을 가능성은 없다

웜비어가 친선병원에 입원한 시기와 관련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이러한 세부적인 정보에 의해, 웜비어에게 일어났음직한 일에 대한 지금까지의 추정은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 정보 보고들이 암시하는 대로, 만약 웜비어가 “반복적으로 구타당했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비디오 상으로 어떤 신체적 손상의 징조도 보이지 않았던 그의 판결 당시와, 북한 사람들의 뇌스캔 사진에 적시된 날짜, 즉 4월 사이의 2주에서 6주 간의 시기에 발생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웜비어는 분명히 판결 다음날에 무의식상태였고, 검시관은 웜비어의 몸에서 구타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웜비어가 구타당했다는 주장의 출발점이 뉴욕타임스에 그런 말을 한 단 한 명의 익명의 관리라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웜비어가 구타당했다는 주장은 근거를 잃기 시작한다. 실제로, 내가 만난 수십 명의 전문가들 중에서, 단 한 명만이 희박하게나마 웜비어가 구타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종종 비이성적인 국가라고 묘사되곤 하지만, 그렇게 작고 가난한 나라가 세계무대에서 상대적인 힘을 유지하려면 북한 정권은 “잔혹하고도 영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전에는 그렇게 사려 깊던 그들이, 이번에는 이 훌륭한 협상의 지렛대를 버릴 동기가 있었을까?

이 전문가들은 웜비어가 다른 모든 억류된 미국인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았으며, 예상치 못한 재앙이 닥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웜비어가 구타를 당했다는 그 정보 보고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정보보고를 검토한 한 미국의 고위 관리는 나에게, “의학적 검토가 증명하듯이 그 정보보고는 전반적으로 틀렸다. 그 정보보고는 심지어 웜비어가 어디에 있었는지, 혹은 그가 언제 구타당했는지에 대해서조차 명백히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마도 그 보고는 단순히 떠도는 말에 불과한 것 같다. 누군가가 웜비어가 아프다는 말을 세 바퀴, 혹은 네 바퀴를 거쳐 듣고서는, 그가 구타당했다고 결론내린 것 같다. 북한 사람들은 백인을 신체적으로 고문한 적이 없다. 결코 없다,” 라고 말했다.

그 관리는 트럼프 정부가 웜비어의 구타에 대한 다른 정보를 갖고 있다는데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서울을 방문해 국회에서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말까지 지속적으로 북한 정권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서울을 방문해 국회에서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말까지 지속적으로 북한 정권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국회사진취재단

정치가 진실을 억누르는 시대

웜비어가 의식을 잃은 시점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나와 이야기한 전문가들은 압도적으로 그 원인이 일종의 사고일 것이라고, 예를 들면, 어떤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의 뇌손상이 판결 직후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그가 아마도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굴락(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같은 곳에서 15년을 보내야 한다고 판결을 받았을 때, 웜비어의 감정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보라. 두 달 동안 끊임없이 미국 정부는 그를 도와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그는 아마도 그의 가족과, 그의 아름다운 여자 친구와, 그의 월스트리트에서의 미래가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웜비어를 구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한 정권이 그에게 가한 정신적 고통도 유엔의 정의에 따르면 일종의 고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웜비어의 구타에 대한 정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거의 확실해지고 한참이 지나도록 웜비어가 반복적으로 구타당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도록 했다. 구타당할만한 시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복적으로 구타당했다고 시사하는 보고를 신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구타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가 없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웜비어가 무의식상태에 빠진 정확한 시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 정보는 그 사건에 관여한 정부의 관리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웜비어의 석방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저돌적인 대담함이 트럼프식 사고방식의 최선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웜비어의 구타에 대한 보고들이 잘못되었음이 분명해진 이후 벌어진 일들은, 의구심이 드는 주장이 자기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진실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트럼프식 사고방식을 요약해 보여준다.

증거가 없는 가운데, 우리는 모두 웜비어의 비극에 대해 우리가 믿고 싶은 바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진실이 권력을 가진 자의 의제의 노예가 되는 이 정치의 시대에, 무슨 이야기를 믿고 왜 믿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우리 자신, 국가, 세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자녀들의 운명을 결국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Voice of the World / 편집 : 이정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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