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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판사들은 딱 대한민국 평균 아저씨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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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엘리트들이 ‘대한민국 평균 아저씨 아줌마’인 영역은 과연 뭘까? 판사들, 우리나라 평균 40~50대 중년들. 언급된 모두를 도발하는 김재왕 변호사(40‧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재왕 변호사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처음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에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의사는 더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당시는 2003년. 서울대 생물학과를 전공한 그는 같은 과 대학원에 막 입학한 상태였다. 그는 식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일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고심 끝에 생물학과와 일찌감치 이별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김재왕 변호사(40‧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40‧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민중의소리

이후 6년간 시력이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여러 일을 거친 뒤 그는 2009년 로스쿨에 입학해 2012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이 인터뷰는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변호사가 된 김재왕의 성공스토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발 ‘극복’이라는 단어 좀 쓰지 말라”고 재차 당부했다.

“저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어요. 평생을 어렵게 적응해나가고 있어요. 또 한 번 어떤 성과가 있었다고 해서 장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극복했다’ ‘장애를 딛고 성공했다’ 그런 표현들이 오히려 장애인들을 힘들게 해요. 장애를 개인의 문제처럼 치부하는 표현이죠.”

이어 로스쿨 합격 역시 ‘제도적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로스쿨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교재 음성지원이나 시험에서의 배려 등 여러 제도적 도움을 받았다.

처음 시력을 잃어가던 때에 대해 묻자 그는 “막막했다”고 답했다. 그 어려웠던 시기를 어떻게 버텨내고 변호사가 될 수 있었을까. 그 과정에는 특별한 서사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그 때 되는대로…. 음, 일단은 집에서 놀았어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어두컴컴한 방. 하염없이 한숨을 쉬며 앞날을 걱정하는 그가 상상돼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정말이었다. 김재왕 변호사는 앞날을 걱정하며 24시간을 보내기에는 지극히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주로 디아블로2를 하면서 놀았어요.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그 게임을 해봤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 게임은 정말 명작이죠.”

“이벤트 응모하는 취미가 있어요. 온갖 이벤트에 응모하는 거예요. 사연을 보내기도 하고 이름 짓기나, 뭐 그냥 단순 추첨도 있고. 대부분은 퀴즈 이벤트죠. 가장 크게 받은 상품은 100만원이었어요. 또 PDA, MP3, 선글라스….”

환하게 웃는 그 앞에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고민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밤에도 그에 압도되지 않았다. 그 밤들은 괴롭거나 두렵다기보다는 다가오는 앞날을 차근차근 살아가기 위한 시간이었다.

“아예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죠. 밤에는 많은 생각을 했어요. 주로 ‘앞으로 난 뭐할까’,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기는 어려웠죠. (시력이)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단발적으로 이것저것 다 해봤죠. 약대에 들어갈까 공무원시험을 준비해볼까 공부도 해보고. 보습학원 강사도 했었어요. 생물, 화학 가르치는 것.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상담원으로 일하기도 했고요. 상담일은 꽤 오래했어요. 사실상 첫 직장이라 재밌었죠.”

한편으로 김 변호사는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기초재활교육을 받았다. 보행, 점자 등 시각장애인으로서 사는 법을 배우며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날을 준비했다.

그는 인권위 상담원으로 일하던 시기에, ‘로스쿨에 가보라’는 주변의 권유로 법 공부를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건네주는 일을 하면서 인권과 관련해 더 큰 일을 하고 싶었던 차였던 터라 흔쾌히 이 길에 도전했다고 한다.

이 무렵 시각을 모두 잃었기 때문에 책은 볼 수 없었다. 그는 교재를 음성파일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책 내용을 들으며 공부하는 방식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김재왕 변호사(40‧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40‧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민중의소리

소수자들의 어벤져스, ‘희망법’ 변호사들.

“일반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잘 할 자신도 없었고, 일반 사건보다는 장애인 차별 금지법 위반과 관련한 사건을 맡는 게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인 인권 보호를 위한 소송을 전문으로 맡는 김 변호사는 소송으로써 차별과 싸우고자하는 장애인들의 영웅이다. 그러나 혼자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내 유일의 시각장애인 변호사인 그는 재판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글자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지만, 자료가 손글씨 혹은 그림일 때는 도무지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법정에서 검찰 측이 증거자료로 영상을 재생할 때도 있다. 또 판사들은 가끔 “어떻게 하실건가요?” 호칭을 생략하고 눈빛만으로 질문을 보내기도 한다.

그럴 때 김 변호사의 옆에는 같은 단체 소속인 변호사들이 있다. 그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 소속이다. 희망법은 비영리 전업 공익인권변호사 단체로, 지난 2012년 2월 김 변호사를 포함한 6명의 변호사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김 변호사가 전문성을 갖는 분야인 ‘장애인권’을 비롯해, 또 다른 소속 변호사들이 각각 관심이 있는 분야인 ‘기업과 인권’,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인권’, ‘집회의 자유’ 등을 중점 영역으로 활동한다. 현재는 9명의 변호사와 2명의 상근활동가가 함께하고 있다. 마치 ‘어벤져스’ 같다는 말에 김 변호사는 “그렇네요”하며 웃었다.

김 변호사는 로스쿨 재학생 시절 민변에 가입했다가, 관심 있는 분야였던 소수자인권위원회의 MT에서 5명의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이 MT에서 김 변호사에게 소수자를 위한 변호사단체를 만들 것이라고 함께 하자고 설득했고 김 변호사는 응했다. 김 변호사가 나중에서야 알게 된 바에 따르면 바로 이 MT 자체가 그를 영입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으며 그 물밑작업도 치밀했다고 한다.

어느덧 6년 째 함께 한 이들은 그야말로 절친한 친구들이다. 희망법 사무실에는 항상 웃음과 대화가 오간다. 이들은 서로를 ‘변호사님’이 아닌 ‘재왕’, ‘왕변’ 등 이름이나 별명으로 부르며 함께 일한다.

“관심분야가 조금씩 달라서 재밌어요. 이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처음 변호사가 됐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확장된 부분이 많아요. 또 그런 생각들을 사건들, 다른 사람들에 부딪히며 나름 발전시켜온 것 같아요. 지금은 장애인 외에도 여성 인권이나 기업 인권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요. 결국 다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희망법’은 변호사 단체라지만 법률사무소처럼 멀끔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다소 허름한 사무실이었다. 김 변호사는 “소송을 하기 위해 법률사무소를 차리긴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시민단체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희망법’은 정부나 기업의 지원없이, 오로지 후원을 통해 마련된 자금으로 소송을 진행한다. (후원 페이지로 가기)

김재왕 변호사(40‧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40‧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민중의소리

“판사들은 딱 대한민국 평균 아저씨 아줌마예요.”

법은 소수자들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법관들은 인권감수성이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것이다. 시각장애인이면서 동시에 변호사인 그에게 차별적 대우에 있어서 ‘법정 안과 밖은 다르지 않느냐’고 묻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분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웃음기도 전혀 없었다. 그에게 시각장애인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받는 차별은 삶의 일부분이다. 집 앞 횡단보도에 서있을 때도 변호사로서 법정에 서있을 때도 그는 시각장애인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저한테는 상수(常數)에요. 늘 있는 일. 오히려 가끔 저 판사는 ‘그런 말’ 안하네? 놀라운 적도 있는 거지. 대부분은 ‘그래요.’ 만나는 재판장들은 대개 40대 중후반, 50대 초반인데 그 연령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 비슷해요. 평균적인 수준인 것 같아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딱 아저씨 아줌마.”

김 변호사는 최근 삼성물산과 민사소송 중이다. 에버랜드 놀이기구 T-EXPRESS에 타려던 시각장애인들이 탑승을 거부당한 데 대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김 변호사는 이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법 조항에 의하면 이 법을 위반할 경우 반드시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에버랜드 측은 시각장애인은 롤러코스터를 타기에 위험하기 때문에 ‘규정 상’ 태워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이 같은 규정이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에버랜드 측의 차별 여부가 쟁점인 해당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서도 ‘차별적 발언’이 존재한다.

지난 재판에서 삼성물산 측은 “(탑승 시 안내가 필요하다면) 장애인들은 돈을 더 비싸게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데 그러면 또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재판장은 “그래서, (놀이기구를 탈 때) 일반인과 똑같이 대우해달라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아까도 말했듯 판사들 인식도 사회적 인식과 수준이 같아요. 사법부에 바라는 것은 많지 않아요. 지금은 자꾸 부딪히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김 변호사에게 장애인 차별 문제에 있어서 사법부를 포함한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느냐고 물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어떻게 없어지겠어요. 실제로 다른데요. 하지만 지금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제도를 만들고, 장애인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그때서야 부가적인 수단으로 조치를 강구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장애인용’ 무엇이 생기는 데 비용이 발생하면 그걸 어떤 추가 비용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이 같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비장애인들도 언제나 장애를 얻을 가능성이 있어요. 어떤 법이나 제도를 만들 때 그 기준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추가비용이 아니라 기본비용으로서 마련해야 하는 것들이죠.”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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