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자연과 삶과 영원의 정서와 통찰을 담은 장필순의 아름다운 음반

아름다운 음악은 어떻게 아름다움에 이르는가. 좋은 음악은 어떻게 좋은 음악에 도달하는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재현하는 음악 중 좋은 음악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안다. 그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돌진한다. 가사, 리듬, 멜로디, 비트, 사운드, 음색, 화음 모두 똘똘 뭉쳐 곡의 이야기와 정서와 주제를 담보한다. 각자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서로 도와 서로를 완성한다.

그 결과 좋은 음악을 들으면 듣는 이들이 언젠가 경험했던 감정을 순식간에 복기하며 특정한 순간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런데 좋은 음악은 복기와 복귀를 체험하게 하는데서 끝나지만 아름다운 음악, 훌륭한 음악은 복기와 복귀의 경험 이상을 체험하게 한다. 아름다운 음악, 훌륭한 음악은 감정과 체험이 솟아나게 한 자신의 내면과 현실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의식과 무의식의 기저에 흐르는 자신의 실체를 기록한다. 그리고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이 스스로 발견하고 깨우친 통찰을 담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유의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덕분에 좋은 음악, 아름다운 음악은 자신이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삶과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더 깊어지게 한다. 훌륭한 음악은 노랫말과 소리로 인식과 변화를 만들어낸다.

8집 ‘soony eight:소길花’을 낸 싱어송라이터 장필순
8집 ‘soony eight:소길花’을 낸 싱어송라이터 장필순ⓒ페이지터너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이 8월 8일 발표한 8집 [soony eight:소길花]는 좋은 음악, 아름다운 음악의 응결체 같은 음반이다. 이미 5집과 6집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당대의 최고작을 상재한 장필순은 5년만에 내놓은 자신의 8집을 5, 6집 곁에 두어도 좋을 음반으로 완성했다. 12곡을 담은 8집에서 장필순은 박용준, 배영길, 이경, 이상순, 이적, 조동익, 조동희를 비롯 식구 같은 뮤지션들과 함께 음반을 만들었다. 이 음반에 담은 곡들은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감정을 토해내지 않는다.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감정을 토해내는 음악은 가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금세 휘발되어 버리는 찰나의 기록, 그 대척점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며 존재하는 음악이 있어야 비로소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장필순의 8집에 담긴 음악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느끼고 견디는 그리움, 막막함, 슬픔, 외로움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의 노래 속 누군가는 감정과 사건에 초연하고 해탈한 사람이 아니다. 장필순의 음악에 담겨 있는 사람은 똑같이 그리워하고 막막해하고 슬퍼하고 외로워한다. 그런데 그/그녀는 그 감정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그 감정을 오래 응시한다. 지금 자신에게 그 감정이 가득 차 있음을 알고 응시한다. 피하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감정과 사건의 존재를 인지하고 인정하며 견딘다. 그 응시의 시간이 담긴 노래들은 우리가 흔히 느끼는 감정을 충분히 재현하면서 공감을 얻는데, 장필순의 노래는 그 감정이 스러지고 남은 흐릿한 그림자가 또렷해질 때까지 응시를 멈추지 않는다. 그 결과 장필순의 노래는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들의 타고 남은 밑둥을 찾아내고, 그 밑둥을 더듬고 있던 자신을 찾아내고, 사라진 시간과 감정이 도착했을 머나먼 그 곳으로 나아간다. 음반에 담은 대부분의 노래들이 그렇고, 어떤날의 명곡을 다시 부른 ‘그런 날에는’ 역시 마찬가지이다.

장필순은 이 모든 응시와 사유를 대부분 자연 속에서 해낸다. 이번 음반에는 자연을 경배하고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해온 포크 음악의 전통과 지금 장필순이 살고 있는 제주의 삶이 겹쳐지는 노래들이 다수이다. 첫 곡 ‘아침을 맞으러’는 “저 들판 위 어둠 속”, “바람 잦은 언덕”, “이른 봄날 햇살” 같은 자연의 풍경과 애틋한 그리움을 연결했다. 타이틀 곡인 ‘그림’ 역시 “비바람”, “무지개 호수”, “흰 은하수” 같은 자연과 상상의 풍경을 빌어 다시 애틋한 그리움과 필멸의 사라짐 이후의 영원을 향해 나아간다.

슬픔에 젖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장필순의 목소리는 그러나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육탈한 듯 마른 장필순의 목소리는 감정을 껴안고 실은 채 그 감정을 담담하게 응시하면서 시작과 끝을 아우르고 감정의 주체인 인간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 상태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나아가는 목소리는 인간적이며 동시에 영적이고 때로 종교적이다. 그 어떤 시공간과 가치도 버리지 않는 목소리는 그래서 애틋한 위로가 되면서 끝끝내 평화롭다. “서둘러 사라져버린 너의 그림자”를 “채우고 또 채우려 했었던 아쉬움”을 어리석다 하지 않고, “비우고 또 비우려 했었던 그 기나긴 슬픔의 시간”을 과장하지 않는 노래는 아프지만 ‘저녁 바다’처럼 아무 말 없이 품어주고 들어주며 그 자리를 지킨다.

장필순 8집 ‘soony eight:소길花’ 커버
장필순 8집 ‘soony eight:소길花’ 커버ⓒ페이지터너

“사랑, 아무것도 아닌 얘기/제법 멋지게 오르던 추락”이라고 씁쓸하게 털어놓는 노래 ‘사랑, 아무것도 아닌 얘기’도 “내가 아픈 사이에” “연둣빛 나무에” 핀 “하얀꽃”을 놓치지 않고, “또 처음의 나로 돌아오”게 한다. 고 조동진과 김남희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음반에서 특히 직접적으로 그리움을 노래하는 ‘낡은 앞치마’에서도 장필순의 보컬과 곡은 추억과 그리움만 재현하지 않는다. 나지막한 노래와 섬세한 편곡은 추억과 그리움으로 사무쳤을 시간을 지나 도달했을 깊은 평화와 안식의 정서를 소리로 재현해 유한한 인간의 삶을 뛰어넘는 영원을 교감하게 한다.

외로움을 토로하는 노래 ‘외로워’ 역시 자기 파괴나 분출로 나아가지 않고 “내게 필요한 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으로 향한다. “풀빛 이슬 냄새”, “새벽 별들”, “바람의 노래”같은 풍경으로 장필순 자신의 고백 같은 노래 ‘집’에서 “이제는 잃을 것이 없”고, “내 마음에 수많은 돌 던져대도 쓴웃음 하나 그리고 말”라고, “우리 어렸기에 무지개빛만을 쫓았지만/이제 곁에 있는 그대의 웃음에 하루가 가네”라고 담담하게 노래하는 목소리의 성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기는 어렵다. “당신을 보내고 난 뒤” “이렇게 훌쩍 자랐”던 고사리로 그리움을 노래하는 ‘고사리 장마’ 역시 그리움 안팎의 시간을 포착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달빛 가득한 환한 골목”과 “비밀스러운 밤의 향기”를 재현하는 노래 ‘그림자 춤’에서도 장필순의 목소리는 은근할 뿐 들뜨지 않는다. “노을 젖은 언덕”과 “빛과 바람과 시간”, “어두운 밤”과 “달빛” 속에서 삶과 사랑에 대한 통찰을 기록하는 노래 ‘아름다운 이름’도 깊다.

그런데 포크 뮤지션 장필순이 이 음반에서 박용준, 조동익과 함께 만든 소리는 어쿠스틱 기타에 기초한 소리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비중이 높아 보이는 사운드임에도 음반이 표현하려 하는 자연과 삶과 영원의 정서와 통찰을 표출하는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탁월하다고 할 정도로 적절하다. 가령 음반의 첫 곡 ‘아침을 맞으러’에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이글거리는 사운드는 밝아오는 아침 햇살의 환하고 뜨거운 에너지를 탁월하게 재현한다.

이 음반에는 이렇게 노랫말과 장필순의 목소리, 그리고 박용준과 조동익이 주도한 소리들이 어긋남 없이 맞물리고 스스로를 낮추면서 오래 전부터 만들어진 음악의 세계에 깃든 가치를 증명했다. 장필순의 역작이자, 그녀의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뿌리가 된 이가 함께 만들었다고 말해야 할 아름다운 음반.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