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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극한 현장과 ‘덕심’의 무게
설명:12일 오전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서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여사 및 문익환 목사-박용길 장로 부부 묘소를 참배한 남북통일노동자축구대회 북측 대표단과 통선대가 기념촬영하고 있다.
설명:12일 오전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서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여사 및 문익환 목사-박용길 장로 부부 묘소를 참배한 남북통일노동자축구대회 북측 대표단과 통선대가 기념촬영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가장 힘든 취재 현장을 고르라면 단언컨데 ‘공항’이다. 신장이 160cm를 겨우 넘을락 말락 한 소녀팬이 자기 키보다 큰 4단짜리 사다리를 들고 공항을 질주하는 아주 흔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조금 더 묘사를 해볼까. 줄잡아 5백 여 명이 자신들만의 포토라인을 깔고 아이돌을 기다린다. 나름의 질서도 있다. 1열은 바닥, 2열은 의자, 3,4열은 사다리. 4열 사다리는 여기서 끝판왕이다. 맨 뒤에 서야 하지만 시야가 가리지 않는다. 대신 무거워 기동성이 떨어진다. 이건 게이트 현관의 이야기다.

아이돌이 현관을 지나 공항 안으로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포토라인은 해체되고, 기자들과 팬덤이 한 데 뒤섞여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팬들은 대부분 건장한 10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몸싸움에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불끈 쥔 휴대전화를 든 팬들 사이를 비집고 카메라를 들이대는건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나면 겨우 한 두컷 인터뷰가 남는다.

그리고 아주 가벼운 허리디스크로 2~3주 한의원 신세를 진다.

얼마전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열렸다. 어떠한 연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회에 참가했던 북측 대표단이 전태일 열사 묘역이 있는 마석 모란 공원을 찾았다. 북측이 전태일 열사를 참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이라는 뜻은... 그림이 된다는 말이다. 즉, 현장을 가야 한다는 의미다. 늘 그렇듯 익숙하게, 연장을 챙기고 삼각대를 맨다. 삼각대는 쓸 일이 없을것 같긴 하지만 일종의 보험이다. 무겁지만 일단 챙긴다.

북측 대표단의 도착 예정시간은 오전 9시. 남측 노동자들이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일찌감치 버스를 나눠타고 속속 모여들었다. 애초 전태일 열사 묘역과 이소선 여사 묘역, 그리고 문익환 목사님 묘역을 참배하기로 이야기가 되어있는 듯 했으나, 관계자 마다 말이 달랐다. 심지어 색안경을 착용한 모 기관에서 나오신 분들도 동선을 모르는 듯 했다. 동선을 모르면 나타나는 일, 달려야 한다. 공항 상황과 매우 유사해진다. 앞을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뒤통수만 찍게 될 테니까.

전태일 열사 묘역과 그의 모친인 이소선 여사 묘역은 매우 가깝다. 하지만 문익환 목사님 묘역과는 꽤 거리가 있다. 심지어 경사도가 10%가 넘는 비탈을 올라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애초 알려준 동선과 다르다. 북한과 관련된 일정은 경호문제로 현장에서 수시로 동선을 바꾸는 일이 많다. 투덜거릴 틈도 없이 뛴다. 가방과 삼각대를 메고 카메라를 들고 정신없이 비탈을 오른다. 그 와중에 공항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수 많은 카메라와 휴대전화. 길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서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다. 다른점이 있다면... 몸싸움이 없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심지어 비켜달라면 비켜주기도 한다. 이런 소심한 덕질이란.

함께 뛰는 소위 ‘찍덕’들도 있다. 공항처럼 거칠진 않지만 꽤 열심히 찍는다. ‘오빠~!’ 대신 ‘반갑습니다~!’라며 손인사를 건네는게 차이점일까. ‘찍덕’들의 취재 열기도 무척 뜨거웠다.

색안경을 쓴 기관원의 눈치를 보느라 박수만 치던 이들이 한 두 명씩 악수를 건네기 시작했다. 기관의 별 제재가 없자 모두가 길게 늘어서서 북측 노동자들과 손을 맞잡으며 환송 인사를 건넸다. 심지어 사인을 받는 인사도 있었다.

공항의 아수라장과 다르게 차분하고 침착한 모란공원의 환송. 최선을 다해 뛰어다니는 두 현장의 ‘찍덕’들. 다른점이 있다면 공항은 ‘유명인’들이 주인공이고, 모란공원은 북측의 ‘노동자’가 아이돌급 환대를 받았다는것 정도였을까. ‘덕심’의 무게는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가벼운 허리디스크로 보호대를 차고 있다.

‘덕심’이 존재하는 현장은 어디든 힘들다.

현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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