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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첫 번째 시선] 노동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노동자 역할 연기의 중요성

안희정 전 도지사 사건의 무죄는 법률을 다루거나 분쟁을 업으로 하여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고 한다. 처음 안 전 지사 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나오는 기사들 그리고 소송과정에서의 내용을 보면서 필자도 지인들과 무죄가 나올 거 같다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안희정 씨의 무죄에 대하여 언론이 전하는 판결문의 내용은 ‘위계’를 가진 안 전 지사가 그 위계를 행사했는지 여부가 분명치 않고 나아가 그 위계에 피해자가 구속되어 항거 불가능한 성관계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 판결문의 요지이다. 결국 이 사건은 피해자다움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먼저 주제를 위계에 의한 성범죄 문제에서 시작한 이유가 있다. 바로 노동관계와 이와 관련된 사건이 유사한 부분이 많이 때문이다. 노동문제는 기본적 사용종속관계로 위계적 지위를 갖는 사용자가 있다. 즉 계약이라고 하는 상호 동등한 관계에서의 계약이 아닌 종속노동계약을 통하여 사용자에 구속되는 계약을 체결한다. 이 점이 위계라는 개념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필자는 노동위원회 심리과정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사용자에 대한 방어 기조를 세우기 위하여 항상 노동자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노동자다움’ 이라는 태도이다. 약간 굴욕적이긴 하지만 이 노동자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사건의 승패와 정말 관련이 많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다소 굴욕적이지만 우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자스러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승소하고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

한 업체의 노동자가 받은 노조탈퇴 종용 카카오톡 메시지(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
한 업체의 노동자가 받은 노조탈퇴 종용 카카오톡 메시지(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민중의소리 자료사진

노동위원회가 요구하는 노동자다움

▲ 첫째 온순함을 요한다. 즉 권리를 주장함에 있어서 파괴적 행위는 당연지사이고 거친 언행이나 다소 감정적인 거친 표현 역시 주의해야 한다. 실제 필자가 수행하는 사건의 경우 배치전환된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증오합니다’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양심을 가지세요’ 등의 장문의 표현을 써서 메일을 보낸 사례가 있었다. 구제 과정에서 이 때문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는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 “정말 죄송하지만.. 어렵습니다. 다시 한번 검토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나는 이렇게 착한 노동자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지속·반복적으로 흔적으로 남기는 것이 좋다. 가능한 이메일, 보고서, 문자 등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함을 인지 말자

▲ 둘째 분명한 의사표시가 필요하다. 첫 번째 온순함에 대하여 몸에 숙지하였다면 다음으로 아주 중요한 것은 분명한 의사 표현이다. 쉽게 이야기 드리자면 착한 노동자이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된 안 전 지사 사건 역시 이 피해자다운 적극적 거부 또는 그에 수반되는 행위가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사건 역시 같다. 억지로 무엇인가 수행하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사용자에게 온순하면서도 거부하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는 명령으로 인하여 하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사항이 아닙니다. 다시 검토해 주십시오.” 이러한 메시지를 지속적 반복적으로 보내야 한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적극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안 전 지사에서 피해자는 성폭행 범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그 시점 후에도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하였고 이것이 법원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였다고 한다. 이 역시 노동 사건에서 그대로 반영된다. 억지로 하는 일이면 그 흔적을 남겨야 한다. 나아가 소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라! 다시 말해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서 다시 사용자의 신뢰를 얻어 이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겠다’라는 생각은 제발 추호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용자가 강제하여 A를 지시했으면 소극적 A라는 업무를 수행하고 그마저도 형식적인 선에서 그쳐야 한다.

부조리하지만,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필자가 수행한 사건 중 하나를 말씀드리겠다. 좀 더 필자가 중요하다고 하는 부분의 이해가 쉬울 것이다. 회사에서 노동자 1명을 몰아내기 위해 지속적 퇴사압력을 가하다 직급과 어울리지 않는 업무를 배정한 사례가 있다. 그 노동자는 양적·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배치전환된 업무를 수행하기 싫어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잘 조율해서 다시 정상적 업무에 복귀하겠다. 그 노동자는 이러한 마음에서 이메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수차례 남겨 두었다. “변경된 업무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의 변경된 업무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 말이다. 이러한 의사표시 몇 개로 상황이 변해버렸다. 어느새 상황은 강제로 당한 인사이동이 아닌 해당 노동자의 동의 아래 실시된 정당한 인사명령으로 변해 있었다.

이처럼 아직 우리 사회는 노동자를 사용자와 대등한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강하다. 노동자다움,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부조리는 현실로 존재 하지만 이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기술을 익혀 두는 것도 나름 방법이 될 것이다.

김승현 노무사(노무법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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