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상철아!” “어머니…” 애 끓인 혈육의 만남, ‘오열’ 터진 이산가족 상봉 첫날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아들 리상철(71) 씨를 만나 기쁨에 울먹이고 있다.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아들 리상철(71) 씨를 만나 기쁨에 울먹이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자그마치 65년의 세월이었다. 옹알이하던 갓난아기의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렸고, 생기 넘치던 부모의 얼굴에는 그리움 만큼이나 깊은 주름들이 새겨졌다. 그것을 어루만지는 손길에는 반세기가 넘도록 애 끓인 혈육에 대한 정이 가득 묻어났다.

20일 오후 2시 50분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서는 북측 상봉단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일제히 입구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오후 3시가 되자 상기된 얼굴의 남측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침묵도 잠시. 연회장은 오열로 가득 채워졌다.

"상철아!"

남측의 이금섬(92) 씨는 상봉장에 들어서자마자 굽은 몸을 이끌고 아들 리상철(71) 씨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는 피난길에 생이별한 아들을 한 눈에 알아봤다. 곧바로 "상철아!" 소리를 외치며 리 씨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 씨는 늙은 아들의 온몸을 부여잡으며 하염없이 오열했다. 리 씨는 말없이 노모와 얼굴을 맞대고 눈물을 흘렸다.

아들은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 하며 통곡했다. 이 씨는 전쟁통에 피난길에 올랐다가 아들을 비롯해 남편과도 영영 만날 수 없었다. 그는 내내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애들은 몇이나 뒀니", "아들은 뒀니", "손(자식)이 어떻게 되니" 등 궁금한 점을 쏟아냈다. 노모는 아들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북측 황영숙(71) 씨는 자신이 세 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타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입구 쪽을 응시하던 그의 눈시울은 점차 붉어졌다. 마침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아버지 황우석(89) 씨는 "영숙이야? 살아줘서 고맙다"며 악수를 건넸다. 딸은 아버지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황우석 씨는 전쟁 발발 당시 황해도 38선 부근 지역에 살다가 1951년 1.4후퇴 때 가족과 헤어졌다. 이북에 남겨진 아내와 여동생 셋은 모두 현재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딸에게 "(사는) 동네 이름이 뭐냐", "출가 전에 누구랑 살았느냐",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느냐", "시집은 어디로 갔느냐" 등의 질문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연(87)씨가 북측 둘째 남동생 리근춘 부인 고정희와 상봉하고 있다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연(87)씨가 북측 둘째 남동생 리근춘 부인 고정희와 상봉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한신자(여.99) 할머니가 북측 딸들  김경실(여, 72, 딸), 김경영(여, 71, 딸)씨 를 만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한신자(여.99) 할머니가 북측 딸들 김경실(여, 72, 딸), 김경영(여, 71, 딸)씨 를 만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진짜 맞네, 맞아"

눈물의 남매 상봉도 이어졌다. 북측의 남동생 김은하(75) 씨와 재회한 김혜자(75) 씨는 5분 동안 옛날 얘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 가족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세월은 동기간의 모습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모질고 거셌다. "엄마랑 같이 살았니? 얼마나 살았니?", "우리 고향이 의성이야" 등의 대화가 오간 끝에야 혜자 씨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진짜 맞네" 하며 동생을 껴안았다.

누나 혜자 씨는 동생이 준비해온 모친의 사진을 보여주자 "엄마 맞다, 아이고 아부지!"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해방 직후 그의 부친은 일본군을 피해 혜자 씨를 둘러업고 남쪽으로 내려왔고, 모친은 남동생 은하 씨를 데리고 외가로 갔다가 영영 헤어지게 됐다. 그는 "73년 만이다. 해방 때 헤어졌으니. 아이고야, 정말 좋다. 혹시 난 오면서도 (동생이) 아닐까봐 걱정했는데 진짜네!" 하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남측의 안종호(100) 씨는 딸 안정순(70), 손자 안광모(36) 씨를 만났다. 정순 씨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붙들고 "저 정순이야요. 기억나세요?" 물었지만 답이 없다. "얘는 오빠네 큰아들이에요"라며 손자를 가리켰지만 또 답이 없다. 노쇠한 아버지 앞에서 딸은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는 동안 미동도 않던 종호 씨의 뺨에도 곧 눈물이 흘러내렸다.

북측의 김경실(72), 경영(71) 씨는 어머니 한신자(99) 씨가 테이블로 다가오자 허리를 90도 숙여 인사하며 눈물을 터뜨렸다. 노모는 두 딸과 볼을 비비대며 눈물을 흘렸다. 세 모녀는 손을 맞잡은 채 흐느낄 뿐이었다. 한 씨는 노환에 청력이 좋지 않아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내가 피난을 갔을 때…"라며 울먹인 뒤 말을 잇지 못했다. 피난 갈 때 미처 두 딸을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 같았다.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함성찬(93)씨와 북측동생 함동찬(79)씨가 만나 포옹을 하고 있다.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함성찬(93)씨와 북측동생 함동찬(79)씨가 만나 포옹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김영석(78)씨와 북측 4촌 김춘월(74), 김영일(72)씨가 상봉해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3년만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김영석(78)씨와 북측 4촌 김춘월(74), 김영일(72)씨가 상봉해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우리 정말 닮았죠?"

상봉장에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도 들렸다.

남측 김병오(88) 씨는 자신과 꼭 빼닮은 여동생 김순옥(81) 씨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순옥 씨는 "혈육은 어디 못 가. 오빠랑 나랑 정말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병오 씨도 취재진을 향해 "정말. 기자양반, 우리 정말 닮았죠?"라고 물으며 웃어 보였다. 동생은 "얼른 통일돼서 같이 살게 해줘요. 통일돼서 단 1분만이라도 같이 살다 죽자 오빠"라고 말했다. 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남측 방문단 최고령자인 백성규(101) 씨는 휠체어에 앉은자신을 붙잡고 오열하는 손녀 앞에서도 내내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북측 관계자는 백 씨의 가족을 위해 즉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서진호(87) 씨는 북측의 두 동생의 손을 붙잡고 내내 웃으며 기뻐했다. 그는 "우리 친형제가 이제야 만났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서 씨의 딸이 "작은아버님 절 받으세요"라며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렸다. 가족들은 부모님과 동창들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남측의 함성찬(93) 씨도 남동생 함동찬(79) 씨를 만나 "딱 첫 눈에 내 동생인 줄 알았어. 어머니를 얘가 쏙 배다 박았어"라며 계속 손을 잡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생도 형의 너스레에 크게 웃으며 "나도 형인 줄 바로 알았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단체상봉에서 남측 나종표(82)씨가 북측 조카 나순옥(58) 나순임(52)를 만나 남측 가족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단체상봉에서 남측 나종표(82)씨가 북측 조카 나순옥(58) 나순임(52)를 만나 남측 가족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단체상봉에서 남측 최동규(84)씨와 북측 조카 박춘화(58)씨가 가족 사진을 보고 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진행된 단체상봉에서 남측 최동규(84)씨와 북측 조카 박춘화(58)씨가 가족 사진을 보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 한목소리

남북 이산가족은 2시간 동안 단체상봉을 진행한 뒤 오후 7시 17분께 북측이 주최하는 환영만찬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용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만찬에서 환영사를 통해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날이 오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북과 남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이 오늘과 같은 감격과 기쁨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 민족의 평화번영과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놓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덕택"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족자주, 민족단합의 정신을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전쟁과 대결, 불신과 반목을 단호히 배격하며 화해와 단합, 평화를 위해 뜻과 힘을 하나로 합쳐나감으로써 인도적 문제 해결의 새로운 장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역시 답사에서 "오늘 상봉행사는 남북의 정상이 만나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에서 인도적 현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의한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성실히 이행하는 매우 의미 있는 만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살아있는 동안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 자유롭게 만나고 추억이 깃든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사랑"과 "평화"를 건배사로 제의했다. 만찬은 오후 9시 19분 끝이 났다.

한편, 이산가족 상봉 둘째 날인 21일에는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외금강호텔에서 개별상봉을 한 뒤 1시간 동안 객실에서 가족끼리 점심을 먹는다. 지난 2015년 이산가족 상봉 때까지만 해도 개별상봉 뒤에는 연회장에서 공동으로 오찬하는 방식을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식사 시간을 합쳐 3시간 동안 가족들끼리만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오후 3시부터 다시 2시간 동안 단체상봉을 진행한 뒤 저녁 식사는 남북이 따로 한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서 남측 대한적십자사 박경서 회장과 북측 박용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건배를 하고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서 남측 대한적십자사 박경서 회장과 북측 박용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건배를 하고있다.ⓒ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서 남측 백민준(93)씨와 북측 며느리 리복덕(63)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서 남측 백민준(93)씨와 북측 며느리 리복덕(63)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 남측 이용성(95)씨와 북측 조카 리순선(62)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첫날인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 남측 이용성(95)씨와 북측 조카 리순선(62)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공동취재단, 신종훈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