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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장준하 선생의 유골은 말한다 “나는 이렇게 타살당했다”
‘장준하 타살 사건’ 실체 파헤친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장준하 타살 사건’ 실체 파헤친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배게

지난 2012년 8월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세상에 공개됐다.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지만 부검도 하지 못한 채 땅에 파묻혔던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37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 공개된 사진엔 망치로 맞은 것처럼 오른쪽 귀 뒤쪽 머리 부위가 지름 6㎝ 크기 원형으로 깊이 1㎝가량 함몰돼 있고, 주변에 금이 가 있었다.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에 대한 감식을 진행해왔던 법의학 전문가 이정빈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장 선생의 유골과 최초 검안을 진행했던 조철구 박사의 검안기록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함몰된 모양을 보면 양쪽이 주저앉으면서 이가 딱 맞는다”면서 “큰 돌이나 아령 등 면이 둥근 물체에 의해 가격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37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장준하 선생의 유골은 박정희 독재 세력에 의한 명백한 타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사건은 또다시 묻혀버리고 말았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 시절이었고, 그해 12월에 열린 대선에선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게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 가운데 올해로 장준하 선생은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 장준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장준하 타살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한다며 나선 이가 있다. 바로 2003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위’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이 사건을 담당해 조사했던 고상만이다. 이 사건의 전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담당 조사관 고상만은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재개정판을 출간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과 여전히 오해에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파헤쳐 이 사건의 재조사가 시급함을 역설했다

1918년에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1944년 1월 김희숙과 결혼식을 올린 지 불과 14일 만에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쉬저우의 부대로 전속되었으나 부대를 탈출하여 무려 6,000리를 걸어 광복군에 합류했다. 이후 OSS(미국 전략첩보대) 1기 훈련을 마치고 이범석 장군 휘하에서 국내 진입 훈련을 하던 중, 닷새 차이로 해방을 맞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5년 11월에 임정요인들과 귀국하여 김구 주석의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등을 역임했다.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012년 8월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장준하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장준하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 국민보고대회'에서 감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012년 8월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장준하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장준하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 국민보고대회'에서 감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1953년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사상계’를 창간하여 지식인과 대학생을 비롯한 많은 독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자유당 정권, 박정희 독재를 줄기차게 비판하면서 시대의 양심과 등불 역할을 자처했다. 이 과정에서 수차례 연행되고 구속되는 등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하나 이 공로로 1962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 언론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19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구속된 상태에서 제7대 총선에 신민당 후보로 옥중 출마하여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이후 제8대 총선에서 여당의 부정선거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엄혹한 유신독재 시절이었던 1973년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5년형이라는 어이없는 선고를 받았으나 이듬해 병보석으로 출감했다. 1975년 ‘제2차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준비하던 중 거사 발표 3일 전인 그해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당시 검·경은 장준하 선생의 사망 원인이 ‘실족 추락사’라고 밝혔으나 75도 경사진 곳에서 15미터나 굴러떨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깨끗한 시신의 상태,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의 엇갈리는 진술, 보온병과 안경이 전혀 깨지지 않은 점 등 숱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해 대표적인 의문사로 남아 있었다.

2013년 3월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겨레장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걸어가고 있다.
2013년 3월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겨레장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걸어가고 있다.ⓒ양지웅 기자

고상만이 작심하고 밝힌 사건의 전말과 세세한 조사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영화와도 같다. 특히 ‘없는 자료도 실제로 없음을 확인한다’는 원칙하에 1975년 문익환, 계훈제 등이 장준하 발인 전날 찾아온 김용환과 사고 경위에 대해 1시간 7분 동안 나눈 문답이 담긴 녹음테이프와 1988년 경찰 재조사 기록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과정을 보면 그가 이 사건을 얼마나 철저히 조사했는지 잘 드러난다. 더욱이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의 오락가락하는 진술, ‘월간조선’과 가진 사실과 다른 인터뷰 내용 등을 엮어서 읽다 보면 당시 중앙정보부와 기무사령부가 끝내 협조해주지 않은 존안 자료가 하루 빨리 공개되어야 이 사건이 완벽하게 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책에는 저자가 최초로 밝힌 여러 자료들이 들어 있다. 우선 문익환 목사의 혜안으로 남게 된 녹음테이프 내용을 비롯해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한 타살을 확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 9년 3개월간이나 박정희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정렴이 들려준 김재규와 긴급조치 10호의 비밀,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의 구국선교단 비리 관련 사실!, 법정스님으로부터 확인한 장준하 ‘거사’의 실체,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상세한 과정, ‘진상규명 인정’ 의견을 밝힌 한상범 · 홍춘의 · 이기욱 위원의 ‘소수 의견서’와 당시 위문사위 위원장이었던 한상범 교수의 ‘인정 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서’ 전문 등이다.

장준하가 OSS 대원이었던 1945년 8월. 오른쪽부터 장준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노능서. OSS 작전명은 이었다.  1기생의 훈련은 8월 4일 종료되었다.
장준하가 OSS 대원이었던 1945년 8월. 오른쪽부터 장준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노능서. OSS 작전명은 이었다. 1기생의 훈련은 8월 4일 종료되었다.ⓒ장준하기념사업회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가장 상세히, 또 정확히 알고 있는 저자가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통해 그동안 숱한 자료 협조 요청에 번번이 ‘존안 자료 없음’이라는 여섯 글자의 뻔뻔한 답을 되풀이해온 국가정보기관과 재조사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외면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후안무치와 술수가 낱낱이 드러난다.

저자는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을 최소한 열여덟 번 이상 만났다. 평범한 시골 아저씨 같은 김용환에게서 저자는 인간적인 연민을 여러 차례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저자를 가장 안타깝게 만든 것은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김용환의 진술이었다. 항간에 떠도는 김용환 관련 의혹들에 대해 저자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실, 조사 결과 진실로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해서만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일례로 김용환이 중정의 ‘사설 정보원’이었다는 ‘설’은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다. 이외에도 김용환은 정말 유일한 목격자가 맞는지, 중정의 ‘중요 상황 보고’ 문서에 사고 당일 유족에게 ‘괴전화’를 건 인물이 김용환으로 명기되어 있는데도 왜 그는 한사코 그 문서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등등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많다.

저자는 사건의 중심에 서서 오랫동안 시달려온 김용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은 하루 빨리 재조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한편 이 책을 김용환을 비난하는 근거로 삼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용환이 2017년 9월에 사망함으로써 그의 ‘진실’은 이제 추적하는 자와 시대의 몫이 됐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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