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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노래] 죽은 사람을 본 적 있으세요?

“죽은 사람을 본 적 있으세요?”

이 질문에 대해서 아마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특히 아직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병원에 입사하여 간호사가 되기 전까지 나의 대답도 그랬다.

내가 대학생이 되기 전에 이미 친가와 외가의 조부모님은 다 돌아가셨지만 나는 돌아가셨을 당시에도 옆에 없었고, 입관을 하는 모습을 어린 나에게 굳이 보여줄 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어떤 “상태”로 나에게 다가왔었다.

‘우리 할머니는 나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어.’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다 계시는데..’ 친구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 받을 때나 뉴스에서 어떤 유명인이 죽었다고 할 때...그럴 때나 접하던 것이 죽음이었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한 장면.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한 장면.ⓒSBS 캡쳐.

병원에서 마주한 죽음의 순간들

하지만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것도 중환자실로 처음 발령을 받으면서 나는 “진짜”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 일반인과 유명인, 여자와 남자...기저질환도,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도 제각각 다른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보았다.

출근하자마자 보호자들의 통곡소리를 통해 ‘아, 또 누군가 사망했구나...’하고 알게 되기도 하고, 의료진 모두가 애썼으나 결국 살리지 못한 내 환자의 죽음을 보기도 했다.

간호사는 환자의 사망 직후에 의사가 사망선언을 한 시간을 기준으로 심장이 완전히 멈췄음을 나타내는 심전도 그래프 종이를 출력하고, 사망진단서에 필요한 고인의 주민등록상 정확한 주소를 확인하고, 진단서가 몇 장이나 필요한지 등 각종 행정적인 업무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환자의 몸에 연결된 여러 인위적인 의료장치들을 제거하고 몸을 닦아주고 영안실로 보낼 준비를 한다.

‘사후처치’라고 불리는 이 과정은 무덤덤하게 그저 주어진 일을 순서대로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가끔씩 그런 일들을 처리하는 순간에 죽음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이 깨어날 때가 있다.

중환자실에서는 예측이 가능한 죽음이 있고, 의료진조차 예측이 불가능한 죽음이 있다. 내 기억에 남는 죽음 중 하나는 입원한지 만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사망한, 정말 갑작스러웠던 어떤 아저씨의 죽음이었다.

폐암이 발견되어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긴 했으나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시던 분이었고, 겉보기에도 정정한 아저씨였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기침을 하는데 피가 섞여 나와서 우리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기관지 내시경을 하게 됐다. 피가 나는 곳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담당 의사는 정말 긴 시간 동안 꼼꼼하게 내시경을 봤었다. 저절로 지혈이 된 건지 내시경상으로 피가 나는 곳이 보이지 않아서 검사는 종료되었다. 무사히 검사를 마친 환자는 마취약이 완전히 깨면 일반 병동으로 갈 예정이었다. 검사가 많이 괴롭고 힘들었을 텐데도 아저씨는 의료진에게 매우 협조적인 소위 말하는 젠틀한 환자였다.

면회시간에 가족들이 찾아와서 검사결과 설명을 듣고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딸이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오고 있는데 면회시간 내에 못 올 것 같다며 혹시 면회시간 지나서 도착해도 잠깐 면회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우리 병원 중환자실은 하루 2번 30분씩으로 면회시간에 제한을 두고 있다. 환자는 곧 병동에 올라갈 예정이니 원칙대로 병동에 가시면 면회하시라고 했어도 됐겠지만,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해드렸다. 면회시간이 지나서 도착한 딸에게 이왕 들어오는 김에 다른 보호자분도 같이 들어오시지 그랬냐고 하니까 엄청 미안한 표정으로 그냥 잠깐만 보고 가겠다고 하고 아저씨 손을 잡고 짧게 기도만 하고 가셨다.

나도, 아저씨도, 아저씨의 딸도,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1시간 후에 그 아저씨는 갑자기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하면서 의식을 잃었고 심장이 멈췄다. 의료진이 다 달라붙어서 수혈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내시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폐 깊숙한 곳의 출혈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환자의 침대뿐만 아니라 바닥까지 피범벅이 되었다. 피투성이에 너무 엉망인 모습이라 사망선언을 할 때 가족들이 옆에 둘러서서 임종을 지킬 수도 없었다.

중환자실(드라마의 한 장면)
중환자실(드라마의 한 장면)ⓒSBS 캡쳐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회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매우 큰 일이다. 꼭 유명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그의 가족에게는 정말 엄청난 사건이다. 그만큼 누군가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건 혹자의 말처럼 한 우주가 소멸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는 평소 하던 일을 똑같이 하는 것뿐인데 갑자기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만약 그 날 그 부탁을 거절했더라면, 그 특별면회를 못 하게 했더라면, 혹은 옆의 환자가 시술 중이어서 면회를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 딸은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큰 후회를 안고 살아가야 했을까.

중환자실의 환자들이 사선을 넘나들며 싸우고 있다는 말은 단순히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다. 예측 가능한 과정을 거쳐서 사망하든, 갑작스럽게 사망하든...누군가는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순간이 반드시 있는 곳이 중환자실이다.

그러나 가끔 병원은 이 사실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중환자실의 인력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통계수치를 들이밀면서 평균적으로 이만큼이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그 평균은 가장 바쁜 순간과 가장 한가한 순간을 수치화한 것에 불과하다. 가장 바쁜 순간에 얼마나 위험했는지, 어떤 끔찍한 상황이 펼쳐졌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부족한 인력과 부족한 설비 때문에 중환자에 대한 보호자의 면회가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6월에 지인을 통해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후지타 대학병원 견학을 간 적이 있다. 다른 근무조건이나 병원시설도 다 좋았지만,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중환자실에 보호자가 원할 때 언제든지 면회를 하거나 상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건 중환자실의 모든 침상이 1인실로 격리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옆의 환자 프라이버시 등이 문제가 되지 않고 각종 시술이나 수술이 행해져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고, 간호사 1인당 담당환자수가 적기 때문에 보호자가 상주해 있을 때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문제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 왔다. 그래서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 사회가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그 짧은 순간만이라도 그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사랑했던 사람들과 이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며 우리 사회가 이제는 그 정도 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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