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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추억의 빽판과 빨간방, 전자오락까지 세운상가를 기억하시나요?
특별기획전 ‘메이드 인 청계천-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
특별기획전 ‘메이드 인 청계천-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청계천박물관

서울 종로에 있는 세운상가는 구하지 못하는 전자제품이 없는 마법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세운상가에 가면 미사일, 탱크,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소문의 상당부분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세운상가는 전자제품뿐 아니라 대중문화와 하위문화에 있어서도 메카와도 같은 곳이었다. 해외 음반이 수입되지 않던 1960년대 세운상가에 가면 라디오 DJ 이름으로 만들어진 앨범부터 정부가 방송을 금지했던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일본판 버전, 서구의 팝송까지 LP로 구할 수 있었다. 정식 수입된 음반이 아닌 불법 복제된 이른바 ‘빽판’이다. 플레이보이, 허슬러 등 서양 성인잡지와 복제된 빨간 비디오나 만화도 세운상가에 가면 은밀하게 거래되곤 했다. 일본 비디오게임과 오락실용 게임 카피판도 세운상가에선 원판의 1/4 값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선 음침하기까지 했던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대중적 문화와 현상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청계천박물관은 1960~80년대 청계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추억의 빽판, 빨간책, 전자오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기획전 ‘메이드 인 청계천-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를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11월11일(일)까지 무료로 공개한다. ‘메이드 인 청계천’은 청계천박물관이 청계천에서 만들어진 유·무형의 자산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기획한 시리즈 전시로,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는 첫 번째 전시다.

세운상가 걸설모습(1967)
세운상가 걸설모습(1967)ⓒ청계천박물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일본싱글앨범, 이미자 일본어 동백아가씨가 수록된빽판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일본싱글앨범, 이미자 일본어 동백아가씨가 수록된빽판ⓒ청계천박물관

‘빽판’으로 불리던 불법 복제품들은 LP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에서 불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Back’에서 기인했다는 설과 복제판을 흰색종이로 포장하여 하얀색 포장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미8군이나 중고음반(유통 업자) 등을 통해 입수한 원판을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선곡해 제작한 편집음반들이 해적판 시장의 최대 히트 상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 들어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라디오와 TV가 보급되며 한국대중음악의 번영기를 구가한다. 저렴한 가격과 심의 및 검열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적판이 성행했다. 해적판을 통해 서구의 음악을 향유한 청소년들이 음악인으로 성장해갔다. 1980년대는 카세트테이프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소규모로 제작된 해적판들이 전국적으로 범람한 시기다. 길거리의 해적판 판매원들이 가요를 선곡하여 판매하는 길보드가 탄생하고 해적판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법적 처벌이 강화되어 해적판 생산이 위축됐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곡이었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금지곡이 됐다. 이 노래는 1966년 일본에서 싱글로 발매됐다. 1965년 방송 금지곡이 됐다. 표면상으로는 왜색풍이 원인이었으나 그 배경에는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불거진 국민적 저항을 차단하고자 했던 정치적 원인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미자의 일본어 동백아가씨가 수록된 빽판 ‘리듬파레이드25집’을 선보인다. 재킷의 뒷면에는 ‘이미자 히바리고도마도리 유행가집’이라는 조악한 등사지의 가사집도 붙어있다.

전시에 등장하는 ‘빨간 방’은 당시 세운상가의 음란물 유통과 소비 과정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기획, 제작되었다.
전시에 등장하는 ‘빨간 방’은 당시 세운상가의 음란물 유통과 소비 과정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기획, 제작되었다.ⓒ청계천박물관

세운상가 주변은 플레이 보이, 허슬러, 각종 복제된 비디오와 빨간 만화들이 은밀하게 거래된 곳이기도 했다. 드라먀 ‘응답하라 1988’에도 나오는 것처럼 사춘기의 소년들이 호기심에 큰 맘 먹고 구입한 비디오에서 전국노래 자랑이 엉뚱하게 튀어나와 당황했던 그 시절로 돌아 가본다. 전시에 등장하는 ‘빨간 방’은 당시 세운상가의 음란물 유통과 소비 과정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기획, 제작되었다. 음란물을 주로 취급했던 가게들은 셔터를 완전히 닫지 않는 것으로 자신들의 ‘상품’을 은밀히 암시했고, 그 ‘사인’을 아는 사람들은 신세계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일본의 비디오게임이나 오락실용 기판을 카피해 수출하며, 국내 전자시장의한 한 축을 담당했었던 곳 역시 세운상가였다. 보통 게임을 카피하여 원판의 1/4도 안 되는 싼 값에 공급했다. 1990년대까지도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에 별다른 단속도 없었다. 오락실에서 이용했던 대부분의 아케이드 게임 기판은 세운상가에서 만든 복제 기판들이었다.일본 세이부사에서 제작, 1982년 시그마社에서 발매한 ‘너구리’의 원제는 ‘PONPOKO’로 너구리가 배를 두드리는 의성어의 일본어다. 특히 ‘너구리’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가 높았다. 전시장에 연출된 오락실에서 너구리, 갤러그 게임을 체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청계천박물관은 “한 때 세운상가 주변을 찾는 다는 것은 대중문화를 찾는 것이란 의미가 있었다”며 “전시회를 통해 대중문화의 언더그라운드 청계천이 서울에서 대중과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시민들이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고자 한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전시 관람 시간은 평일, 토·일·공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11월부터 토·일·공휴일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아케이드게임 너구리기판
아케이드게임 너구리기판ⓒ청계천박물관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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