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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인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트럼프’다
매케인에 대한 추모 열기는 상당하다. 그가 사망한 다음날 볼티모어에서 열린 야구경기에 앞서 존 매케인을 위한 추모의 묵념이 이루어졌다. 2018.8.26
매케인에 대한 추모 열기는 상당하다. 그가 사망한 다음날 볼티모어에서 열린 야구경기에 앞서 존 매케인을 위한 추모의 묵념이 이루어졌다. 2018.8.26ⓒAP/뉴시스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의 사망 이후 그를 상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매케인이 보수의 품위를 지켰고, 미국의 애국자이며, ‘초당파적’인 거물이라는 평가다. 매케인이 트럼프를 강하게 비난해왔고, ‘고문’과 같은 이슈에서 원칙을 지켰거나 민주당 인사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일 테다(이건 아마 그의 개인적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매케인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그가 그렇게 비난하는 트럼프 그 자체다.

매케인은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2008년, 부통령 후보로 사라 페일린을 지목했다. 페일린은 이제 한물간 정치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트럼프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리고 트럼프는 낙선한 부통령 후보가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며, 공화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정치인이 되었다.

매케인이 남긴 유산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한 VOX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은 John McCain, Sarah Palin, and the rise of reality TV politics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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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정당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존 매케인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가 사라 페일린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을 때 탄생했다.

그것은 매케인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선동가에게 권력을 쥐어줄 용의가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당선된 후부터 수많은 동료들이 그의 뒤를 이어 매케인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매케인은 당시 “그녀가 이쪽 출신도, 워싱턴 출신도 아니지만, 그녀를 알게 되면 나만큼 강한 인상을 받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녀는 오늘날의 워싱턴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투지, 진실성, 분별력과 공공선에 대한 불굴의 헌신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말이다.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선 매케인(왼쪽). 매케인은 전당대회에서 알래스카 주지사 출신인 사라 페일린(오른쪽)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2008.8.29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선 매케인(왼쪽). 매케인은 전당대회에서 알래스카 주지사 출신인 사라 페일린(오른쪽)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2008.8.29ⓒAP/뉴시스

페일린이 드디어 전국의 유권자를 만나게 된 것은 공화당이 대선 후보를 추대하는 당대회에서였다. 그녀는 질문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하키맘과 불독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그리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건 립스틱”이라고. (편집자주/억척스런 엄마로 살아온 자신이야말로 워싱턴의 기성정치를 강하게 물어뜯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서다.)

당시 대선에서 가장 기대되는 순간은 첫 부통령 후보 토론이었다(대통령 후보 토론이 아니었다). 토론은 이렇게 시작됐다. 페일린 공화당 후보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서로 악수를 했고, 페일린은 바이든에게 물었다.

“저기요, 조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때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페일린은 기본적인 정책 질문에 더듬거리거나 동문서답을 했고 기회만 되면 “이단자(maverick)”나 “이단자들의 팀(a team of mavericks)”을 운운했다. (편집자주/매케인은 워싱턴의 주류 정치에서 비교적 독자적인 목소리를 유지했고 그 때문에 이단자 또는 독불장군이라고 불렸다. 페일린은 자신과 매케인이 워싱턴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계속 강조했다)

이 토론은 부통령 후보 토론 역사상 가장 많은 7천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보수적 월간지인 내셔널 리뷰의 리치 로우리 편집국장은 그녀가 “너무 반짝거려 거의 넋을 잃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와 전국의 거실에서 춤췄다”며 그녀를 극찬했다.

페일린의 부통령 지명으로 공화당에는 아무 말이나 하는 후보를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 문화가 생겨났다. CBS 저녁 뉴스 앵커인 케이티 구릭이 그녀에게 어떤 신문과 잡지를 읽는지 재차 물어봤을 때 페일린은 단 하나의 이름도 대지 못하고 “음, 전부 다요. 지난 기나긴 세월 동안 동안 제 앞에 있던 것들이요”라고만 대답했다.

매케인과 페일린이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에게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페일린에게 영감을 받아 그녀를 따라하는 정치인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여기에, 공화당의 극우 티파티 운동에 불을 붙인 정치적인 스타일과 가치체계 역시 확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81세의 나이로 사망한 매케인은 매버릭(maverick)으로, 그러니까 당파성에 얽매이지 않고 민주당 정치인들과도 관계를 맺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매케인은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저버렸고, 트럼프로 이어지는 길로 공화당을 안내했다.

이기기 위해 자기 신념을 저버린 매케인

2008년 8월 말, 매케인의 선거운동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많은 언론의 말대로 그에게 “구세주”가 필요했다.

처음에 매케인은 민주당의 조 리버만 상원의원을 생각하는 듯 했다. 2000년 민주당 앨 고어의 부통령 후보였던 리버만은 온건파지만 외교정책에서는 강경 매파였다. 게다가 리버만은 같은 당의 오바마 대신 공화당의 매케인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리버만이 부통령 후보가 되면 좋아할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었다.

반면 페일린은 카리스마가 넘쳤다. 또 매케인의 선거운동본부장인 스티브 슈미트는 그녀가 여성과 전통적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알래스카 주지사가 되기 전 페일린은 고향인 와실라라는 작은 도시의 시장이었는데 주 의회에서 부패 척결을 주장해 “매버릭”이라 불렸으니 매케인과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페일린의 단점은 금방 드러났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기본적인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일례로 페일린이 중시하는 낙태 문제와 관련해 낙태를 허용한 대법원 판례가 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조차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매케인의 선택을 바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매케인은 도대체 어쩌다가 페일린이 부통령감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을까?

2008년, 페일린이 지명된 다음날, 나는 알래스카 와실라로 갔다. 그리고 페일린이 시장이었을 당시의 회의록들을 얻기 위해 시청으로 향했다. 매케인 선거운동본부는 이미 그 회의록을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그들은 그곳을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케인은 페일린의 업무 수행 능력을 검토하지 않고 그녀를 “대통령직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힐 의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미국의 보수파는 오랫동안 정치에서 인종 문제를 활용해 왔다.

2000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매케인이 남부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패배했던 이유도 경선 상대방이 “매케인에겐 흑인 딸이 있는데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설문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매케인의 두 딸 중 하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입양됐다) 매케인이 유세장에서 버락 오바마의 배경을 비하하는 여성의 말을 끊은 것은 그러니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페일린은 바로 그 유세장을 누비며 오바마가 “테러리스트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주장했다.

페일린은 오바마가 미국 시민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음모론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페일린은 오바마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 중 하나, 즉 애국적인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는 사람 중 하나라고 몰아붙이는데 목소리를 보탰다.

매케인의 사망을 애도하는 의미로 백악관에 게양된 조기. 트럼프 대통령은 매케인의 장례식까지 조기를 게양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매케인으로부터 자주 비난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애도 성명을 내자는 참모들의 제안을 거부했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2018.8.27
매케인의 사망을 애도하는 의미로 백악관에 게양된 조기. 트럼프 대통령은 매케인의 장례식까지 조기를 게양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매케인으로부터 자주 비난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애도 성명을 내자는 참모들의 제안을 거부했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2018.8.27ⓒAP/뉴시스

리얼리티 정치의 장을 연 페일린

매케인과 페일린은 졌지만, 대선 이후에도 한동안 페일린에 대한 관심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녀는 폭스 뉴스와 계약을 맺었고, 전국을 돌며 티파티 계열의 후보들을 독려했다.

페일린을 선택하도록 매케인을 강력하게 설득했던 슈미트 선거운동본부장은 2008년 대선을 그렸던 HBO 드라마 ‘게임 체인지’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선거운동이 아니라 엉망인 리얼리티 쇼였다”라고 말하면서. (페일린은 그후 실제로 자신의 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갖게 된다.)

몇 해가 지나면서 페일린은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후보 군단이 등장했다. 원망, 그리고 ‘우리’와 ‘다른 이들’을 구분하는 정체성이 점점 강조됐다. 그리고 공화당의 전통적인 백인 지지자가 결집해 2010년에 하원을 탈환했다.

매케인은 조 바이든부터 힐러리 클린턴까지 초당파적으로 정치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또 예의 바르고 친절한 태도 때문에 언론의 사랑도 오랫동안 받았다. 그는 스스로를 ‘직선적 인물(straight shooter)’이라 부르길 좋아했고 그의 선거운동버스는 “직설 급행(the Straight Talk Express)”으로 불렸다.

매케인은 자신의 좋은 평판을 페일린의 앞 날에 바쳤다. 그리고 그녀는 이를 이용해 전국적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기반을 다졌다.

암 판정 이후에도 맥케인은 여전히 페일린의 업적을 변호했다. 하지만 그는 조 리버만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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