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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밴드 ‘모노디즘’이 이어 쓰는 한국 포스트록의 역사
밴드 ‘모노디즘’
밴드 ‘모노디즘’ⓒ모노디즘

대중음악계는 몇몇 스타들로 채워지지 않는다. 대중들은 대개 온라인 음악 서비스 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TV와 소셜 미디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타들의 이름만 기억하지만, 100년이 더 된 한국대중음악계는 예상보다 울창해 한 눈에 조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뮤지션의 이름조차 다 외우지 못한다. 어떤 장르이든 오래 활동하며 알려진 뮤지션들이 있고, 장르 마니아들이 아끼는 뮤지션들이 있다. 그리고 아직 많은 이들에게 닿지 못했지만 옹골찬 음악을 쏘아 올리는 이들이 있다. 아직 단단해지지 못한 음악을 내리치고 담금질하는 이들도 있다. 당연히 그 음악을 들으며 훗날 이렇게 멋진 음악을 하겠다고 꿈꾸는 이들도 있다. 대중음악의 생태계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함께 만든다.

그래서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없는 음악이 거의 없다. 블루스, 록, 소울, 알앤비, 일렉트로닉, 재즈, 크로스오버, 팝, 포크, 힙합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르가 다 존재한다. 유행이 지나간다고 장르가 사라지고 뮤지션이 음악 장르를 바꾸지는 않는다. 소수일지언정 계속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를 지키며 노래하고 연주한다. 좋은 작품은 그 자체로 울타리가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 곳에 머물게 한다. 모든 이들이 항상 가장 새롭고 가장 인기 있는 음악만 좇지는 않는다. 건강한 생태계는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생태계가 아니다. 다양한 취향과 관심이 다 채워질 수 있을 만큼 두루 풍성하고 오래도록 튼실한 시장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그런 음악을 하느냐고, 아직도 그런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물을 게 아니다. 아직도 그 음악을 하고 있고, 아직도 그 음악을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한다.

밴드 ‘모노디즘’
밴드 ‘모노디즘’ⓒ모노디즘

꿋꿋이 포스트록의 계보를 연결한 밴드 ‘모노디즘’

한국의 록 음악 가운데 1990년대부터 이어진 포스트록, 슈게이징 음악 역시 마찬가지이다. 록 음악 마니아라면 옐로우 키친 이후 아폴로18, 로로스, 불싸조, 프렌지, 할로우잰을 비롯한 밴드 몇몇을 거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이름들 중에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이들이 적지 않다. 이제는 록 음악의 시대가 아니라거나, 한국에서 록 음악이 시대의 중심으로 진입했던 시간은 아주 짧았다는 말을 시말서처럼 덧붙이는 일도 씁쓸하다.

그러나 음악에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어서 한국의 포스트록 음악 역시 종지부를 찍지 않았다. 기존 포스트록 밴드들이 주춤한 사이 새로운 밴드가 묵묵히 역사를 잇는다. 2018년 7월 4일 첫 정규 음반 ‘Inner.’를 발표한 밴드 모노디즘은 2018년 한국대중음악계 한 켠에서 꿋꿋이 포스트록의 계보를 연결하고 새 이름을 더한다. 김책일, 박선교, 신수환의 3인조 밴드 모노디즘은 밴드 결성 10개월만에 정규음반을 발표했다. 모노디즘의 음반 속 7곡의 음악은 아는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포스트록의 어법과 구조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둘러 음악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장르의 고유한 어법이 항상 새롭고 트렌디하게 바뀌어야 한다면 세상에 만들 수 있는 음악은 너무 적어진다. 록이 더 이상 젊음을 대변하지 못한다 해서 서둘러 폐기해야 할 필요도 없다. 세상의 많은 음악은 멜로디와 리듬을 반복하고 변화시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표출한다. 포스트록 역시 동일하다. 문제는 어떤 멜로디인가, 어떤 리듬인가이다. 어떻게 전개하고 어떻게 분출하며 어떻게 마무리하는가이다. 이미 알고 있는 방식으로 얼마나 강력한 동력을 만들어 내는가이며, 얼마나 새롭거나 개성적인가이다.

밴드 ‘모노디즘’의 음반 ‘Inner.’
밴드 ‘모노디즘’의 음반 ‘Inner.’ⓒ모노디즘

듣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는 ‘Inner.’

모노디즘의 음반 ‘Inner.’ 수록곡들은 무엇보다 패기 만만하고 직설적이다. 모노디즘은 긴 곡의 길이를 바탕으로 장엄한 서사를 구축하고 폭발시키는 전통적인 포스트록 어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노디즘은 대개 곡의 도입부부터 이글이글 타오르며 맹렬함을 드러낸다. 음반의 첫 곡 ‘Gloom’에서부터 긁어대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금세 비트를 재촉하며 내달린다. 그러나 같은 비트를 반복하며 느긋해지지 않는 밴드는 계속 비트와 일렉트릭 기타 연주의 변주를 이어가며 우울의 내면을 헤치고 들어간다. 계속 한 가지 감정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은 마음은 요동치고, 그 감정 안에서 파도는 높고 낮고 빠르고 잠잠한데 모노디즘은 그 변화무쌍을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쉴 새 없이 달라지는 연주로 옮긴다. 좋은 포스트록 음악들이 그러했듯 멜로디는 아찔하고 섬세하며 사운드는 강력하고 폭발적인데, 모노디즘은 자신들의 언어를 때로 즉흥적이라 느껴질만큼 풀어두면서 예측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마음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재현하는 음악으로 충실하게 순도 높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과 똑같다고 말할 수 없더라도 나 역시 그랬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잠시라도 존재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막막한 고통마저 아름다움과 함께 표출함으로써 고통을 감상하고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음악은 순간순간 멜로디와 비트, 사운드의 강도와 높낮이와 속도를 즐기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탐닉할 수 있게 한다. 포스트록 스타일의 패턴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면 만들 수 없는 음악이다.

특히 두 번째 곡 ‘Blue Math’에서 사용한 일렉트릭 기타의 노이지한 사운드와 시작부터 밀어붙이는 빠른 전개는 모노디즘의 패기를 대표하기 충분하다. 하드록에 가까운 질감을 수용한 ‘Jerusalem’도 흥미롭다. 이렇게 수곡곡들마다 조금이라도 다른 어법으로 개성과 고민의 역량을 드러내는 밴드는 장르의 언어를 새롭게 하면서, 수용과 변화로 이어진 대중음악사의 불문율을 수행한다.

음반의 수록곡들은 ‘Psychopath’, ‘666’, ‘Jerusalem’을 비롯해 다수의 곡들이 제목만으로도 묵직하다. 모든 수록곡이 노래가 없는 연주곡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표현하려는 메시지를 완벽하게 감지하기는 불가능하지만 한결같이 빠르고 역동적인 곡의 흐름과 순간순간 명료한 멜로디는 곡의 길이와 관계없이 모든 곡에서 많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도록 한다. 이야기의 양과 드라마틱한 연출, 인상적인 멜로디의 결합 덕분에 음반을 듣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오래 전부터 들어왔고 잘 알고 있는 장르라고 뻔하다거나 지루할 거라고 예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노디즘은 그저 음악으로 웅변한다. 세상에는 옛날 음악과 새로운 음악만 있는 게 아니라 좋은 음악과 안 좋은 음악이 있다. 그러므로 이 음반의 성취에 대해 언급하고 싶고, 이 성취를 만들어낸 밴드의 노력을 존중하고 싶다. 내가 모르는 음악이라고 해서 외면당할 일이 아니다. 이제는 이런 음악을 모른 채 살아가는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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