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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관계의 내면 : 트럼프는 왜 아베의 면전에서 ‘진주만’을 거론했나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2018.6.7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2018.6.7ⓒAP/뉴시스

긴장감이 흐르던 6월의 정상회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말 한마디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놀라게 했다.

“나는 진주만을 기억하고 있다.”

미국을 2차 세계 대전으로 몰아넣은 일본의 기습 공격을 트럼프가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는 곧 바로 일본의 경제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과의 무역 적자에 대해 분개하며 아베에게 미국의 쇠고기와 자동차 수출업자들에게 더 유리한 무역협정을 요구했다.

아베를 무척 짜증나게 했던 이 회의는 트럼프와 그와 가장 가까운 외국 지도자와의 역설적(paradoxical)인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금으로 도금한 골프채까지 선물한 아베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트럼프는 아베와 (다른 어떤 국가 정상보다 많은) 8번 만났고 26번이나 전화 통화를 했다. 백악관의 보좌관들에 따르면 그들은 골프에 대해 곧잘 농담을 한다. 트럼프는 아베의 민첩한 움직임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아베가 모래 벙커에 떨어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언급하며 그를 놀리기도 했다.

트럼프는 아베 총리를 노련한 협상가이자 상대할만한 사람이라 보고 있다. 그는 아베를 "좋은 친구"라고 부른다.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트럼프가 아베를 욕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대접을 받는 국가원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몇 개월 동안 트럼프와 아베는 이견을 보이며 교착상태에 빠졌다.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비정통적인 접근방식과 일본의 무역관행에 대한 극히 부정적인 시각이 일본의 좌절감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의 관계가 이렇게 틀어진 것은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한 아베에겐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아베는 공개적으로 트럼프의 “탁월”하고 “놀라운 리더십”을 칭찬했고, 그에게 3,800 달러짜리 금으로 도금한 골프채를 선물하기도 했다.

일본은 미국이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인상할 때도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다른 미국 동맹국들이 미국의 버번 위스키와 옥수수, 오토바이에 대한 보복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동안 기울였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그 대가로 얻은 게 거의 없다.

미국 주요 동맹국 중 일본만 유일하게 금속 분야 관세 인상에서 일시적 면제를 받지 못했고, 이제는 일본산 자동차의 관세도 인상될 판이다. 일본의 자부심인 자동차업계를 건드렸으니 트럼프가 거의 경제적 전쟁 선포를 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와의 개인적인 관계가 강력한 미일관계로 이어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일관계는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오히려 크게 후퇴했다”고 워싱턴의 싱크 탱크인 윌슨 센터의 일본 전문가 시호코 고토는 말했다.

트럼프 정권에게도 미일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활력있는 경제를 자랑하는 지역에서 지속적 견고함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11개국 간 무역협정이었던 TPP에서 미국이 탈퇴한 이후, 미국으로서는 줄어든 영향력을 만회하기 위해 일본과 강력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관리들은 트럼프가 정상회담에서 잘못된 경제 통계를 언급하고 북한에 대한 일본의 조언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기념비적인 성과가 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싱가폴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베는 전화 통화와 만남을 통해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한국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지 말고 종전선언에 관한 합의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아베 총리는 완전히 무시 당했다”고 아베의 한 측근은 설명했다.

그는 미 국방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그리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언급하며 “아베의 실무 참모진은 존 매티스나 존 켈리가 트럼프를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존 볼튼은 더 영향력이 적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트럼프가 최고 참모진의 의견을 묵살하고 오키나와나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북한과의 핵협상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삐걱거렸던 트럼프와의 6월 정상회담 이후, 일본 당국자들은 트럼프의 의중을 알아내기 위해 트럼프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미국 관리들은 미군 재배치 계획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무역을 둘러싸고 했던 공격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도쿄 인근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치는 아베 일본총리(왼쪽)과 트럼프 미국대통령(오른쪽). 골프는 이들 두 지도자간의 성공적인 관계를 상징한다고 알려져왔다. 2017.11.5
도쿄 인근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치는 아베 일본총리(왼쪽)과 트럼프 미국대통령(오른쪽). 골프는 이들 두 지도자간의 성공적인 관계를 상징한다고 알려져왔다. 2017.11.5ⓒAP/뉴시스

사적인 관계와 정책적 충돌은 다르다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처음부터 솔직했다.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상호주의를 강화하고, 전 세계 동맹국들이 국제체제를 유지하는 부담을 나누어 가지도록 하는 조치들을 시작할 것이다. 현재의 국제체제를 유지하려면 동맹국들 중 가장 큰 국가인 미국에게 그 체제가 불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일본 당국자들은 두 정상 간에 열띤 대화가 이뤄질 경우, 아베는 트럼프가 자기 요점을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기회를 잡아 그것에 반박한다고 했다. 한 일본 외교관은 “아베는 트럼프가 하는 말을 통째로 반박할 경우, 트럼프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외교관은 트럼프의 진주만 발언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트럼프가 역사를 인용하기를 좋아한다며 그가 일본의 “사무라이 과거”를 자주 언급한다고 했다.

윌슨 센터의 일본 전문가 고토는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트럼프의 입장은 대선 운동 당시 일본을 비판한 것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대한 트럼프의 시각은 현재보다는 1980년대나 1990년대의 상황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를 바라보는 트럼프의 시각, 특히 아시아를 바라보는 트럼프의 시각이 오늘날이 아니라 2차 세계 대전에 기반한 것이라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양국의 당국자들은 미일관계의 기초가 여전히 튼튼하며 아베가 (전임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보다 트럼프와 편하게 더 자주 대화를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핵심 경제 및 안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인내심은 점점 한계에 이르고 있다.

올 여름, 일본은 북한과 회담을 가졌는데 이를 미국 고위 관리들에게 숨겼다. 보도가 된 적이 없는 이 비밀 회담은 베트남에서 7월에 이뤄졌다. 일본에서는 고위 정보 당국자인 키타무라 시게루가, 북한에서는 통일 담당 고위 관리인 김성혜가 나왔다고 한다.

미국 고위 관리들은 미국이 북한과의 거의 모든 접촉을 일본에게 바로바로 알려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이 이 회담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짜증을 냈다.

한 일본 관리는 정보 당국자 간의 회담에 대해서는 언급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당국자들은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서 미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음을 인정했다.

일본은 무역에서도 예전보다 더 쉽게 미국과 다른 입장을 취한다. 6월 정상회담에서 아베는 양자 무역협정을 협상하자는 트럼프의 제안을 직접 거절했다. 한 달 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더 강력하게 이를 거부했다. “일본은 일본의 국익을 해치는 나라와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말이다.

그리고 지난 23일, 일본 무역장관은 트럼프가 일본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정말 부과할 경우, 일본이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그렇다고 아베가 트럼프와의 사적인 관계에 많은 투자를 한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라고 일본 관리들은 전했다. 개인적인 교감이 없었다면 양국 간의 긴장감이 훨씬 높았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일본의 고위 관리들은 방위 협력 강화에 기여했다면서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을 늘 칭찬한다. “동북아에 미군이 없다면 우리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며 “좋은 싫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처럼 트럼프와의 사적인 관계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한 다른 국가 원수들도 대체로 후회는 없다는 입장이다. 트럼프와 다양한 정책에서 부딪히면서도 말이다.

미국 관리들은 트럼프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지만, 거꾸로 그것이 급격히 개선될 수도 있음을 강조했다. 이를테면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의 관계다. 트럼프는 수개월 동안 유럽연합의 무역 관행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런데 지난 달 융커와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상징적인 합의에 이른 후, 트럼프는 입장을 180도 바꿔 세계 최대 무역 블록과 큰 진전이 있었다고 극찬했다.

워싱턴 대학의 앤드류 오로스 일본 전문가는 “둘 간의 관계가 예전만은 못하지만, 아베는 쉽게 트럼프와의 전화통화를 요청하며 그것이 빈번하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아베에겐 트럼프에게 줄 것이 없다

여러 전문가들은 미일관계가 최근에 나빠진 것은 아주 단순한 현실, 그러니까 예전에는 트럼프가 아베를 더 필요로 했는데 현재는 아베가 트럼프를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베는 최근 미국에 수많은 요청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납북일본인 문제나 관세 면제 문제, 이란과의 핵협상에서 미국이 탈퇴한 이후의 원유 수입 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3선을 노리고 있는 아베는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 일본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인 미국 농산물 수입 개방 말이다.

“집권 초기 아베를 멘토로 두면서 얻었던 것들이 이제는 트럼프에게 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트럼프는 이제 아베를 자기가 원하는 것은 주지 않으면서, 요청하는 것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한 일본 전문가의 평가다.

기사출처:‘I remember Pearl Harbor’:Inside Trump’s hot and cold relationship with Japan’s prime minister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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