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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작심하고 웃겨주는 생계형 코미디, 연극 ‘오백에 삼십’
연극 ‘오백에 삼십’
연극 ‘오백에 삼십’ⓒ대학로발전소

‘오백에 삼십’의 추억이라고 한다면 좀 웃긴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학 휴학을 하고 처음 만리동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 자취방은 무보증에 월세가 삼십이었다. 결혼 생활을 시작한 신혼집은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이었다. 이십여 년이 훌쩍 넘어 큰 아이 학교 앞 오피스텔은 보증금 오백에 삼십 칠만원이다. 오백에 삼십짜리의 보금자리는 이십여 년 전의 추억으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다. 요즘은 그런 집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짜리 집은 방 하나를 둘로 나누어 놓은 듯한 구조에 부엌은 덤으로 붙어 있다. 욕실이란 것은 당연히 없다. 화장실을 밖에 있고 빨래는 옥상에 실어 날라야 널 수 있다.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오백에 삼십은 원룸 정도에 나올 가격일 것이다. 세월은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건, 오백에 삼십이 여전히 삶이 고단한 사람들의 보금자리 값이라는 것이다.

추억이 아닌 현실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인 돼지빌라에는 오늘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 빌라에 사는 오덕 씨는 베트남 출신 아내와 길거리 떡볶이 가게를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지만 넉넉한 인심 탓에 떡볶이는 파는 것보다 나누어 주는 것이 더 많다. 오덕 씨의 아내 흐엉은 사는 것이 힘들지만 절대 기죽지 않는 밝은 성격의 베트남 댁이다. 같은 빌라에 사는 배변은 오덕 씨의 가게에 매일 살다시피 한다. 배변은 매번 시험마다 떨어지는 고시생이다. 오덕 씨가 꼭 시험에 합격하라고 배 변호사를 줄여 배변이라 부른다. 배변에게는 몰래 짝사랑하는 여자 미쓰 조가 있다. 미쓰 조는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이기도 하다. 오백에 삼십짜리 돼지빌라에는 이렇게 평범하다 못해 평균 이하의 삶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지만 소소한 행복을 꾸려나가던 이들에게 어느 날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진다.

연극 ‘오백에 삼십’은 주류 연극이 아니다. 그렇다고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는 문제작도 아니다. 작품을 분석하여 평가할 만한 무언가도 딱히 없다. 연극의 시대정신을 묻고자 한다면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다. 코믹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언어의 유희를 넘어선 대사들, 처음부터 끝까지 작심한 듯 만들어 놓은 인물들의 갈등은, 정말이지 웃겨도 너무 웃긴다. 대부분의 공연장은 입장부터 퇴장까지 관객들이 지켜야할 많은 규칙들을 강조한다. 관객들은 조용히 입장하고 자리에 앉으면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하며 작품을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연극 ‘오백에 삼십’은 관객이 입장하는데도 배우들은 무대에 나와 있다.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화장실을 알려주고 장사하기도 전에 떡볶이를 나눠 준다. 무대 위의 떡볶이 가게에는 셀프로 물도 마실 수 있다. 공연 전에 목이 마르면 누구나 나와서 물을 가져가면 된다. 사람들은 연극이 아니라 삶의 현장 한가운데 함께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이 연극은 그렇게 엄숙함 대신에 편안함을 선택했다.

엄숙함 대신에 편안함을 선택한 연극

삼십의 월세도 내기 힘든 돼지빌라의 주민들에게는 조물주보다 더 절대적인 건물주이자 주인 이 있다. 사람들은 경우와 예의라고는 쌈을 싸드신 듯한 주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때마침 등장한 정체불명의 남자는 형사로 오해를 받고 사람들은 모두가 집주인을 죽인 용의자가 될 위기 상황이 벌어진다. 따뜻하고 정이 넘쳤던 돼지 빌라 주민들은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까? 집주인을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아니 주인이 죽은 것은 맞을까? 이 연극은 심장 쫄깃한 추리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건도 추리극의 정교함과 관계가 없다.

이 연극의 목적은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데에 있다. 다른 목적은 없다. 철저하게 모든 상황과 캐릭터들을 계산하여 놓았다. 인물들의 대사는 애드립 같지만 애드립이라 하기에는 합이 너무 잘 맞다. 그렇게 정신없이 두 시간 가까이 웃고 나면 위기 속에서 우리가 기대고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연극 ‘오백에 삼십’은 배우들의 힘이 절대적이다. 짱끼에서 옥탑방까지 역을 오고가는 멀티맨의 활약은 누구보다 눈에 띈다. 오덕 씨와 베트남 댁, 미쓰 조와 배변, 주인과 폐지줍는 할머니까지 배우들은 선명한 색을 입혀 신나게 연기한다.

배우들의 열연, 관객의 환호, 그 외에 더 무엇이

관객들은 그저 무방비 상태로 열심히 웃으면 된다. 실컷 웃고 박수치다보면 고민도 걱정도 사라진다. 커튼 콜까지도 철저히 촬영이 금지되는 공연이 아니어서 배우들은 관객들을 위해 180도 회전하며 포즈를 취한다. 마구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려달라며 신신당부도 한다. 이런 공연 참 좋다. 까르보나라 파스타에 치즈 에그 토스트, 방금 내린 핸드드립 커피가 아니라, 청국장찌개와 밥 한 그릇에 구수한 숭늉 한 사발 내어 놓은 밥상 같아 좋다. 돌아가는 관객들의 입에서 “이거 완전 재밌어.” “너무 잘한다.”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모르긴 몰라도 그럼 된 거 아닐까?

연극 ‘오백에 삼십’

공연 장소/날짜:2015년 11월 21일-2018년 9월 3일(미마지 아트센터 풀빛극장)
2018년 9월 4일-오픈 런(대학로 아트 포레스트 1관)
공연시간:110분
관람연령:13세 이상
출연진:양승환, 이재영, 위신애, 김소연, 배혜수, 김영규, 김현준, 김인정, 오수빈, 이슬기, 박소현, 정성조, 김서윤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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