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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재판’ 일제 전범기업 민원 “빨리 처리하라” 압박한 박근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의 담판 협상이 열릴 당시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 후문 앞에서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회원들이 일본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의 담판 협상이 열릴 당시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 후문 앞에서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회원들이 일본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있다.ⓒ김철수 기자

양승태 사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재판을 지연시키는 과정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제 전범기업 등 일본 측 민원을 빨리 처리하도록 외교부와 법원행정처에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2016년 중반 청와대 참모진을 통해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한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도록 외교부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지시하기 직전 참모진에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전범기업들이 손해배상을 하라고 한) 판결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외교부 의견서 제출 시점을 2016년 8월 이후에 본격화하라는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는 2015년 12월 한일 외교부 장관이 발표한 ‘위안부’ 합의에 따라 ‘화해치유재단’ 설립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요청은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자금으로 재단이 설립되면 그 시기에 맞춰 강제징용 사건 재판도 정리하자는 취지였다. 양국 수뇌부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합의 내용을 의식한 것이었다. 이는 물론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입장이나 여론과는 무관했다. 이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16년 8월 31일 재단 출연금 10억엔을 전달했다.

당시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 이후 사회적 논란을 우려해 의견서 제출 시점을 늦추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그 해 9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견서 제출을 재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그 해 11월 대법원에 “법리적으로 한국이 이기기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외교부 통한 의견서 제출은 애초 일제 전범기업이 직접 요청한 것
청와대가 판 깔고 양승태 대법원이 규칙 바꿔 의견서 제출 규정까지 마련해줘

외교부를 통한 의견서 제출 작업은 일본 전범기업과 일본 대사관의 민원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와 외교부 관계자들이 2013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상고심 처리 방향을 놓고 여러 차례 접촉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범기업들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들과 청와대 관계자의 협의도 있었다는 점을 파악했다.

외교부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2013년 “일본 대사관 공사가 외교부에 방문해 이 판결이 확정되지 않도록 강력히 요구했다”는 외교부의 비공식 입장을 여러 차례 확인하기도 했다.

검찰 조사에서는 2013년 12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이 재판 처리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2014년 하반기에는 김 전 실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관계 부처 장관들이 비서실장 공관에서 만나 일본 측 요구를 들어줄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을 거쳐 법원행정처는 외교부가 일본 측 의견을 접수할 수 있는 공식 ‘통로’를 마련해줬다. 2015년 1월 대법원이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한 것이었다. 이 개정안에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공익 관련 사항에 관하여 대법원에 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대법원은 이들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개정안에 근거해 일본 측을 변호한 김앤장은 2016년 10월 외교부에 의견서를 내도록 요청했고, 외교부는 그 해 11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이 의견서를 근거로 외교부와 법원행정처는 강제징용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기존 판결을 뒤집는 방안을 협의했다.

검찰은 지난달 중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법원행정처에 사법지원실 국제심의관실을 포함해 관계 자료에 대한 임의제출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지난달 초에는 국제심의관실 및 전·현직 심의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강경훈 기자

법원과 검찰 및 권력형 비리 사건 기사를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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