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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대서양 양안관계, 유럽은 미국없이 살 수 있을까
G7정상회의에서 만난 트럼프 미국대통령(오른쪽)과 EU정상들. 왼쪽에서부터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대통령, 테레사 메이 영국총리, 장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등을 보이는 사람)이다. 2017.5.26
G7정상회의에서 만난 트럼프 미국대통령(오른쪽)과 EU정상들. 왼쪽에서부터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대통령, 테레사 메이 영국총리, 장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등을 보이는 사람)이다. 2017.5.26ⓒAP/뉴시스

1776년엔 신세계가 구세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오늘날 독립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구세계다.

가장 최근에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으로부터 전략적 독립을 선언한 유럽 지도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그는 “유럽이 자신의 안보문제를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며 “스스로 책임을 지고 안보를 보장해서 유럽의 주권을 수립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손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생각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유럽은 점점 불안정해지는 미국에 의존하는 것에 지쳤지만,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 잔인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예측가능성이 점점 떨어지는 초강대국에게 계속 의존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를 증가시킬 뿐이다.

마크롱의 말이 익숙하다면 그 이유는 실제가 그렇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취임하기 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르켈은 트럼프가 2017년 5월 NATO 정상회담에서 NATO의 제5조항(공동방위공약)을 일부러 낮잡아보자, 이런 생각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2017년 말, 범유럽 군대의 초석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는 PESCO(영구적 구조적 협력 협정)라는 공동 군사투자 프로그램이 출범했다. 그리고 지난주엔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이 “유럽이 미국의 제재로부터 유럽 기업들을 보호함으로써 미국이 이란 핵협정을 저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금융결제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라크 전쟁을 놓고 벌어졌던 유럽과 미국 간의 격론을 암시하며 “미국이 선을 넘을 때 유럽이 균형을 잡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조지 부시, 오바마, 그리고 트럼프

마스가 말한 것, 즉 미국으로부터 전략적으로 독립한, 혹은 미국에 맞서 움직이는 유럽은 지금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

1940년대 말부터 미국과 유럽 사이에는 수많은 긴장과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전략적 관계는 지속됐다. 미국이 NATO를 통해 유럽의 안보를 보장하고 미국 정책에 NATO 동맹국의 요구를 반영하면, NATO 동맹국들은 미국의 전략적 우위를 인정하는 관계 말이다. 그 결과 유럽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을 외교적으로 지지하고 미국이 연루된 거의 모든 전쟁에 파병했다.

하지만 너무 일방적이고 공격적이었던 조지 W. 부시 정권과 너무 소극적이었던 버락 오바마 정권을 거치면서 미국의 정책에 대한 유럽의 의구심은 커져갔다.

이런 염려는 트럼프 정권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동맹국과의 약속들에 대한 트럼프의 애매한 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배려,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그의 언사로 인해 유럽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불안하게 보는 유럽인들이 늘어났다.

(트럼프 정권이 유럽방위기금에 대한 지원금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과 언사가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유럽이 상당한 공을 들인 파리기후협약과 이란 핵 협정에서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탈퇴하자 미국이 이제 유럽의 중요 이해관계에 무관심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또 트럼프가 반유럽연합적인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유럽연합을 전략적 파트너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지자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유럽에 적대적인 세력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유럽의 주요 지도자들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자고 주장하는 것이 놀랍지는 않다.

실제로 유럽의 최근 외교정책에 이런 정서가 반영되고 있다.

유럽연합이 지난달에 일본과의 무역협정에 합의한 것은 미국의 민족주의적, 보호주의적 행보에 맞서 새로운 무역 파트너와 전략적 관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앞서 말했지만 PESCO 또한 유럽의 자율적인 방위 능력을 고양하기 위한 움직임이라 인식하는 지지자들도 있다.

게다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과 인권에 대한 강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과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미국의 공격에 맞서 보조금이나 기술 정책 등에 대한 WTO의 규정을 현대화하기 위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크롱의 최근 발언들이 나온 배경이다.

사실 대안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유럽인들이 요즘 미국-유럽관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별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동맹을 형성하거나 독자적으로 행동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무역 부문에서는 유럽연합과 중국이 미국의 보호주의에 맞서 전술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보다 훨씬 더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중국이 유럽에게 더 나은 전략적 파트너라는 건 누가 들으면 웃을 얘기다.

장 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오른쪽)이 EU 본부를 찾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EU와 중국은 미국의 관세부과에 맞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데 힘을 합치기로 했다. 2018.6.1
장 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오른쪽)이 EU 본부를 찾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EU와 중국은 미국의 관세부과에 맞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데 힘을 합치기로 했다. 2018.6.1ⓒAP/뉴시스

이란 핵 협정과 관련해 유럽 관료들이 새로운 결제 방식을 마련하거나 유럽 기업들이 미국의 이란 제재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법을 입안하는 것도 그렇다. 이런 주장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포기하고 이란과 거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보에서는 유럽의 군사력이 너무 약하다. 유럽연합이나 혹은 (미국이 참가하지 않은) 어떤 동맹이 동유럽을 러시아로부터 방어할 수 있으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불안정한 인접 지역인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 군사력을 투입할 수 있으려면 물론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독일 정치인들이 전략적 자립과 재조정을 논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독일 군대엔 운항이 불가능한 잠수함과 날지 못하는 비행기, 움직이지 못하는 탱크가 가득하다. 그러니 그런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반테러리즘 같은 분야에서는 미국-유럽 협력이 너무 긴밀하고 효과적이라서 그 관계가 깨질 경우 유럽의 효과적인 대응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나아가 트럼프 정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유럽이 통일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비자유주의적인 우파 정권이 있는 폴란드는 서서히 미국과 가까워지고 있고, 영국 또한 브렉시트 이후 미국에 더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부상하면서 유럽연합 자체가 강해지기보다 약화되고 있고, 더 강력한 유럽연합을 원하는 국가들(특히 독일과 프랑스)도 누가 주도권을 가질 지에 대해 이견을 보인다.

메르켈을 포함해 유럽에서 보다 현실주의적인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미국과의 관계를 끊기보다는 안보나 다른 부문에서 미국과 계속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말이다.

그러나 유럽이 전략적 의존성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음을 깨달으면 많은 유럽인들이 느끼는 적대감은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이 예측불가능하거나 불친절한 모습을 자주 보여도 유럽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뚜렷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이 그것을 깨닫는다고 바로 미국에게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이 서서히 점점 멀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굉장히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이 의지할 수 없거나 적대적인 초강대국이라고 유럽인들이 결론을 내린다면, 유럽 통합을 위한 미래 조치들이 더 노골적으로 반미적인 색채를 띨 수도 있다.

중국과 같은 대안적인 파트너들의 흠은 덜 부각될 수도 있다. 최소한 현재로서는 유럽이 이 거대한 나라가 군사적인 위협이라고 느끼지 않으니 특히 그렇다.

냉전을 경험한 적이 없고 미국과 유럽 간의 갈등이 더 익숙한 새 세대가 유럽에서 자라날지도 모른다.

결국 변화는 찾아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유럽은 현재는 약하지만 여전히 국제 정세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힘과 군사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유럽이 거기에 필요한 의지와 단결을 이끌어낼 수 있으면 말이다.

유럽이 미국과 발걸음을 맞출지, 독립적으로 움직일지, 혹은 반미주의적으로 행동할지에 따라 21세기의 국제 정치와 전략적 경쟁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미국의 현 외교정책이 얼마나 지속되는 지에 달려있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하거나,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공화당이 올 가을의 중간선거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으면, 친미적인 유럽인들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모욕을 참는 것이 장기적인 미국-유럽 관계를 위해 감내할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시대’가 계속 유지되면, 유럽이 그것을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지속적인 전략적 단절이라고 판단하고 독립적인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이 더 이상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기사출처:As world changes, Europe rethinks strategic dependence on Trump’s U.S.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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