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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교 역사교육의 방향 탐색

재벌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적지 터와 건물을 매입하여 기업을 확장해가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자본이 역사를 잠식해가는 형국에서, 이런 재벌기업에 대해 부(富)를 사회로 환원하면서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경교장, 삼성이 잠식하고 있다

사진 1
사진 1ⓒ경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요, 백범 김구의 마지막 집무실 경교장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문화재를 사랑하는지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사진 1’은 1952년의 모습이다. 국가적인 문화 사적지답게 주변에 녹지가 조성되어 있다.(사진출처:경교장).

사진 2
사진 2ⓒ경교장

‘사진 2’를 보면 삼성병원이 경교장을 ㄷ자로 외워싸며 확장되는 모습이다.(사진출처:경교장). 이는 2012년 사진이며 2018년 현재까지의 모습 그대로다. 병원건물이 경교장 왼쪽 벽과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띤다.

재벌이 사적지를 외워싸는 모습이 마치 문어가 포획한 먹이를 발로 외워싸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김인수 대표의 증언에 의하면, 과거 정부때 인근 땅이 매각되는 과정에서 경교장 부지가 덧붙여져 삼성에 매각되었다고 한다. 정당한 절차였는지 의혹이 가는 대목이다.

그동안 이 단체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이재용 삼성의 부회장이면서 삼성생명 공익이사장에게 경교장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 터와 건물을 국가에 헌납하던가 아니면 국가에 매도할 것을 여러 차례 당부 혹은 요청했으나 허사였다. 현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4차례나 경교장 부지를 국가가 매입할 것을 요청했으나 역시 무응답이라고 한다.

(관련기사)
① “삼성의 욕심, 임시정부의 발자취 경교장을 죽이다”
② “삼성은 경교장 복원 약속을 이행하라!”

원구단, 조선호텔이 잠식하다

원구단은 고종 34년(1897)에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독자적인 제천의식이 필요하다고 하여 재건된 것이다. 이 사적지는, 비록 대한제국이 국제적인 안목의 부족과 열강의 간섭에 의해 제국다운 위상을 보여주진 못했으나 제국을 선포한 상징적 의의를 지닌 곳이다. 지금은 황천상제(皇天上帝), 태조(太祖)의 신위를 보관하던 팔각당(八角堂)만 남아있다.

이후에 원구단은 일제의 의해 철거되고 조선호텔(현재 이름: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이 들어섰다.

(참고)
1897년 원구단의 옛 모습
원구단의 현재의 모습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역사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가?

이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위와 같이 재벌의 세력 확장이 사적지를 왜소하게 만들 만큼 만용(蠻勇)을 허락한 것이 당시 행정부 즉 정치권의 과오라면 이제라도 그것을 바로잡을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단체와 정부의 몫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역사적인 과오로서의 사회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면서 학생들의 사회, 정치, 역사적 판단능력을 키워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들의 몫이다.

그런데 역사과목 담당교사들 나아가 윤리 및 철학담당 교사들이 현대사를 체계적으로 다루지 못함으로써 현재 성장하는 세대에 대해 인성, 창의성, 시민의식과 더불어 역사의식을 충분히 고취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이 물리적 및 사건으로서의 역사현장으로 안내되는 길이 막힌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는 제도적 모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교사들의 의식을 점하게 된 편견으로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다.

우리의 헌법 31조 제 4항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 때문에 양식있는 교사들이 숱하게 많이 탄압을 받았고 지금도 그 악영향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도 교사들이 투표권 외에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역사적으로 논란이 있는 주제와 인물을 수업에서 다루는 것 조차 꺼려하게 되었다.

‘교육 및 교사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위 법 조항은 결국 정치를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며, 이는 자신들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태들 마저도 가르치지도 말고 언급조차 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이는 정치인들만의 아성(牙城)을 공고히 하겠다는 불순한 의도 그 이상이 아니었다. 이제는 거꾸로 정치가 교육을 간섭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잃어버린 교육의 자주성, 독립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2017년 2월 국회 교육희망포럼(대표:안민석, 도종환 의원)에서 바로 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주제로 하여 토론이 있었다. 독일에서 온 폴 케르스탄 교수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독일의 경우 공무원들에게 어떤 정치적 제한도 가하지 않는다. 교사들 역시 정당활동 및 정치권 진출에 제약이 없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방법은, 모든 학생들의 입장을 공평하게 인정하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그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곧 수업시간에 다루는 주제에 제한이 없음을 전제로 한다. 스위스에서도 현직교사가 수업하다가 진도를 대체교사에게 넘기고 서류가방을 들고 국회로 등원하곤 한다.

독일의 교사들이 보다 자유롭게 학생들에게 정치역량, 시민의식, 역사의식을 배양하도록 하는 장치는 바로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 consensus)’이다. 이 협약의 주요항목으로 첫째, 교사가 학생들을 교화 등을 통해 압도하지 말고 그들의 독립적 사고를 방해하지 말 것! (Prohibition against Overwhelming the Pupil), 둘째, 사회에서 논쟁적인 주제는 교실에서도 논쟁에 맡겨라! (Treating Controversial Subjects as Controversial), 마지막으로, 학생들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정치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을 존중하며 일치된 합의를 종용하지 말 것!( Giving Weight to the Personal Interests of Pupils)을 골자로 한다.(출처:위키백과 영문판. 검색어:Beutelsbach consensus)

한마디로 이 합의는, 교사들이 자신들의 판단을 장막 뒤로 숨기고, 과거 및 현대의 주요 사회정치적 사건과 인물들을 제약없이 다루면서 학생들의 판단역량이 진실과 정의로 향하도록 독려하자는 약속이다. 한국의 학생들도 교육감 모의선거를 통해서 이런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을 더 신뢰하면서 수업장면에서 정치 및 역사적 쟁점이 되는 주제들을 폭넓게 다뤄 줄 필요가 있다.

어떤 주제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하는가?

역사과목의 수업은 당연히 교실 밖으로 확대되어 박물관과 유적지를 탐방 등이 활발해야 한다. 이미 ‘교실 밖 국사여행’과 같은 책도 나오지 않았던가? 미국에서 링컨 기념관에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이는 입시위주의 풍토가 한국보다 심하지 않는 데에서도 기인한다. 한국도 8.15일 경교장에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많은 어린이들이 탐방을 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가 학교의 공식적인 수업일에 교사와 학생들이 탐방학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역사수업의 성격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연대와 사건의 단순 암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는 아직도 우리가 재현(representation, 再現)의 학습 즉 단편 지식의 기억훈련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이 또한 역사과목이 입시과목으로 전락한 데서 연유한다. 한국사가 수능 절대평가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여기에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 더 부여되어 현장학습을 다녀올 수 있는 여건도 갖춰야 한다. 그러면서 이제 역사교육도 생각하는 수업, 역사해석을 놓고 논쟁에 부쳐지는 토론수업 등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심지어 학생들의 역사적 사유(思惟)도 이른바 ‘사유의 무능(無能)’에 직면하는 과정도 거칠 수 있어야 한다.

사유의 무능은 ‘사유자체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붕괴, 사유 자체의 균열’(Deleuze, G./김상환, 차이와 반복, 2004, 327쪽)이다. 말해야 하지만 절규하기 위한 목소리가 없고, 기억해야 하지만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고, 사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유가 기댈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이런 근거의 와해로부터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새로움의 창조이자 차이의 발생이다. … 신체와 정신에 기존과는 다른 감각적 차이와 관념적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이 바로 (참다운) 사유이자 배움이다.(김재춘·배지현, 들뢰즈와 교육, 학이시습, 2016, 195~199쪽)

이같은 맥락이라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토론주제를 학생들에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를 공유하되 교과서는 따로 없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과서는 창의성을 위해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1. 한국의 고대사에서 신라의 통일이 자주적이었는가에 대해 평가하시오.
2. 고려 무신정권이 오래갈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조사, 해석하시오.
3. 임진왜란을 예방 혹은 극복하지 못한 선조의 군주다움에 대해 평가하시오.
4.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서 이겨놓고도 갑옷을 벗고 갑판에 나가 왜군의 조총을 맞았다. 그의 죽음이 불가피한 전사인가 아니면 거의 자살에 가까운 것인가? 자살로 규정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해석, 평가하시오.
5. 김구와 이승만은 흔히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으로 구분된다. 두 지도자에 대해 역사적인 평가를 내리시오.
6. 박정희가 경제개발의 주역이라는 견해가 있다. 경제개발을 위해서라면 독재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에 조별 토의를 거쳐 발표하시오.
7. 한국의 재벌기업의 횡포사례와 불매운동이 조직적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조별로 조사하여 발표하시오.
8. 일례로, 한국의 삼성이 역사 유적지인 백범의 마지막 집무실 ‘경교장’ 땅의 소유권을 갖고 있다. 이 부지를 국가에 헌납 혹은 매각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현재와 같이 삼성건물을 확장하면서 경교장의 위상을 왜소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것인지 평가하시오.
9. 한국의 역사주권이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의해 상실되고 있다고 한다. 동북공정의 진행상황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우리의 실천적 대응전략을 모색해 발표하시오.

우리는 근래에 한국사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세계사는 여전히 선택이며 암기할 내용이 많아 수능시험 볼 때 불리하다는 이유로 외면되고 있다. 제국주의적 침략을 자행했던 일본과 독일이 지금도 세계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을까? 결국 우리 학생들은 세계로 시야를 넓혀 역사의식을 읽힐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세계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함과 동시에, 역사교육을 감동이 있는 교육, 입이 열리는 교육, 깨닫는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피해야 할 것으로서 흑백구도에 갇힌 교육, 정치적 중립이라는 해묵은 논리에 갇혀 현대정치와 정치인들의 오류를 외면하는 교육, 권력(정치 및 재벌)과 정의(正義) 중에서 권력을 추종하는 교육, 변화보다는 안정에 집착하는 교육 등이다.

요컨대 역사학자 E. H. 카아(Carr)가 ‘모든 역사는 과거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대화’라고 언명했듯이, 학생들을 준 역사가로 대우하며 이들이 사실에 대해 풍부한 해석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줄 때 진정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될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금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강조한 ‘차이생성’에 근거한 역사적 ‘배움’을 의미한다.

즉 학습자가 사유하기 시작할 때도 문제-장은 예측할 수 없는 변인들을 끊임없이 포함시키면서 차이를 생성한다. (김재춘-배지현의 위 책, 200쪽) 즉 기존의 역사적 판단력을 가지고 있거나 없는 상태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건과 판단은 학생들로 하여금 당혹스러움 속에서 가치의 ‘차이’ 곧 ‘차이’나는 가치판단을 탐색하게 될 것이다.

위인전(偉人傳)만을 기억하는 학생들, 기성의 역사적 해석만을 전수받았던 학생들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때로 불가피하게 놀라움 속에서 역사적 해석의 가치갈등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진정한 역사수업은 (학생들의 의식을 점해왔던) 사유대상의 확실성 또는 사유 결과의 확실성’이라는 가정을 제거해야 한다(김재춘-배지현의 위 책, 201쪽). 이 때 비로소 창조적 역사수업이 가능할 것이다.

[이 글은 범민족화합통일운동본부(총재:박영록 신민당 전 국회의원) 이백철 사무총장과 논의한 후에 탈고했음을 밝혀 둡니다.]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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