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순순히 나갔으니 해고 아니라 사직이라고?

햇수로 지방노동위원회 위원을 4년째 하면서 ‘부당해고 판정’을 피해보려고 별의 별 주장을 하는 사용자를 많이 봐 왔지만 최근 들어 하나의 새로운 흐름이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사건 자체가 ‘해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일까.

이번 사건은 누가 봐도 회사가 노동자를 해고한 사건이었다.

K씨는 입사한지 5개월 만에 ‘해고예고 통보서’를 받았다. 인사위원회도 없었고 구체적인 이유도 알 수 없는 갑작스런 해고 통보였다. K씨는 일단 “알았다”고 말하고 해고가 예정된 며칠 전 동료들에게 본인의 명함을 나눠주고,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 후 노무사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부당하게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냈다.

“신청인(노동자)은 통보를 받고 한 번도 부당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짐을 쌌고, 동료들과 웃으며 인사까지 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니 ‘해고’가 아니고 ‘자발적 퇴사’입니다”

얼마 전 “그렇게 억울하면 1인 시위라도 했어야지”, “제 발로 걸어 나간 신청인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얘기하던 어느 사용자위원이 떠올랐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건가?

재미있는 것은 그리 말한 그 위원이 10년 전 반월공단에서 노조가 만들어질 때 구사대를 동원하고 노동자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공격적 직장폐쇄를 해서 3명의 해고자가 아직도 복직하고 있지 못한 사업장의 대표이사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해고에 저항하지 못하면 그것도 노동자의 잘못이고, 저항하면 무자비한 탄압과 가정의 파탄을 겪어내라는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사직 아니라 해고인 것이 어디 있을까 싶어 실소가 나왔다.

출근하는 직장인들.
출근하는 직장인들.ⓒ김철수 기자

그런데도 사용자측은 끈질기게 노동자의 태도를 이유로 ‘해고가 아님’을 주장했다. 한 공익위원이 이 주장을 거들었고, “왜 단 한 번도 해고 이후 출근을 시도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개인이 ‘출근투쟁’을? 노조도 없는 곳에서 사용자가 “나가라”는데 면전에서 저항할 수 있는 노동자가 대한민국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해고통보를 받아 해고지시에 따른 노동자만 이상한 사람이 될 판이었다.

다행히 이 사건은 부당한 해고로 인정이 되었지만, 최근 사용자의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져 ‘해고가 존재하지 않았음’, 그러므로 ‘각하’(1) 판정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고 이후 당황하여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잘 모르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악용하여 코치하는 악질 노무사들의 컨설팅이 그 배후에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이름만 노동위원회이지 사용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위원회의 구성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을 생각한다는 정부라고 한다. 저소득, 취약계층을 생각하는 정부라고 한다. 그렇다면 벼랑 끝에 내몰려 도움을 요청 할 곳이라곤 노동부, 노동위원회 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구제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정비해야 한다. 그러한 기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적 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독립기관이라 손이 안 닿는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지 않은가.

*주(1)노동위원회의 판정은 법원의 판결과는 다르게 인용(인정), 기각 외에 ‘각하’가 존재한다. ‘각하’는 ‘판정에 구제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이렇게 결정하는 데 ‘각하’ 판정의 효력은 복직을 명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기각’ 판정과 사실상 다름이 없다.

엄미야 금속노조 조합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