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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특별기고①] 사법농단을 가능케 한 법원의 적폐 구조

들어가는 말

이 글은 87년헌법 체제의 한계를 뛰어 넘은 촛불집회 그리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사법농단의 사태에 대한 나름의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법체계의 현실과 그 개혁을 위한 경로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철수 기자

사법의 문제를 체제의 수준에서 다루게 되면 언제나처럼 대두되는 것이 사법의 독립성과 민주성의 요청이다. 특히 우리의 현대사처럼 권위주의 군사통치를 경험한 체제에서는 “민주사회에 있어 입헌주의의 생명선(the life blood of constitutionalism)”이라 불리는 사법의 독립은 가장 중차대한 개혁지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법농단 사태는 이 수준을 넘어선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사법부는 권위주의적 통치체제 혹은 신자유주의적 억압체제 속에서, 세계은행의 말처럼 “인적, 기술적, 자본적 자원들을 누적적으로 투여함으로써 부를 창출하는 것은, 재산권을 보장하며 시민적(civil)·상업적 활동을 규율하며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일련의 규범”을 집행하는 교두보 역할을 담당해 왔다. 87년헌법 체계 하에서의 사법부가 재산권 보장 체제를 완비하는 첨병으로, 그리고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보수적 이해의 방파제로, 그리고 탈규제화를 정상화하는 담론기구로 기능하면서 법의 형식성에만 초점을 맞춘 판결로 일관함은 이런 지점에서 설명가능하다. 그들에 의하면 법은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보조적 수단으로 전락하였고, 과거의 개발독재 방식의 국가통치술이 사회 전반에 확산된 개인적 자유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의 틀로 이행하는 또 하나의 지배기구로 기능해야 했었다.

여기에 더하여 아직까지도 제대로 청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전방위적 사찰 및 재판거래의 패악들은 이런 사법의 역사와 그것을 담보했던 우리의 정치·사회현실을 그대로 모사한다. 지난 정권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이 자행한 적폐와 국정농단은 소위 “점진적 쿠데타” 혹은 “신종쿠데타”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헌법파괴적 행태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양승태 체제에서 이루어졌던 사법농단들 역시 우리 헌법의 근간이 되는 법치주의의 핵심을 건드리며 그 올바른 실천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적인 탐욕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며, 법과 정의를 유린하던 모습은 양자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전자는 후자의 연장선상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법농단의 작태는 그동안 담론 수준으로나마 존재해 왔던 “절차적 민주주의”와 그 토대로서의 법치주의를 내세우는 우리의 헌정질서 그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불길하다. 요컨대, 이 사태는 과거사 수준의 사법권 농단사태에 해당한다. 그것은 남용의 수준을 넘어 사법권 그 자체의 부정이며 따라서 그 본질은 헌법기관인 법원의 기능을 방해하여 국헌을 문란케 한 내란행위의 수준에까지 이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법원과 자신의 사람으로 구성하여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법원행정처를 베이스캠프 삼아 사법권을 자기도취적인 권력욕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권력의 시녀였던 사법이 이제는 자본의 시녀가 되어 혹은 자본의 시녀들과 결탁하기 위하여 법과 정의를 농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헌법에 부여한 사법권이라는 공권력은 양승태와 그 일행의 사적인 권력으로 변질되거나, 혹은 그 연장선상에서 사법이라는 가상의 조직에 대한 안보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대법원장 체제의 어긋난 권력의식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그뿐 아니다. 여전히 사법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일부의 법관들에 의해 그나마 이 과거사의 청산을 위한 검찰의 노력조차도 좌절시키고 있다. 일반적인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이 1~2%에 불과한 상황에서 유독 사법농단에 관련된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대부분 기각되고 있다. 특히 그 주범격인 대법관 등의 고위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아예 전무한 실정이다. ‘조직의 보위’를 위해 법과 정의의 원칙 그 자체를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 사태는 독단에 빠진 법원에 의해서만 저질러진 단순한 구조의 비리는 결코 아니다. 그 배후에는 지난 정권들의 수구적·반동적인 행태들도 자리한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그동안의 민주화의 성과들을 일거에 되돌리기 위해 법원을 또 다른 행정부서인 양 오·남용하며, 정치사법, 계급사법을 양산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권력에 기생하여서만 그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길들여진, 권위주의 이래의 영혼 없는 법조관료체제가 버티고 있다. 요컨대, 우리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와 그것을 악용하는 정치환경, 그리고 여기에 편승하여 자신의 욕망을 극단화시킨 전직 대법원장의 탐욕이 결합된 것이 지금의 사법농단 사태인 것이다.

결국 사법이 정치화되고 정치가 사법화 되면서 어렵사리 이루어놓은 “입헌적 민주주의”의 실패가 발생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우리의 현실인 셈이다. 현재의 우리의 관심이 사법부의 제도적 개량 그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뉴시스

사법농단의 실체와 의미

①관료사법:사법농단의 출발점이자 귀착점
87년헌법 체제에서의 사법체계는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수행하였던 관행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물론 제2차와 제3차의 두 사법파동을 거치면서 정치권력으로부터 외형적인 독립성은 획득해 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대에 이미 법원이 양산한 '법률도그마' 속으로 편입되어버린 지배이데올로기를 과감히 떨쳐 버리지 못한 채 그것을 반복 재생산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정치권력의 보조자 내지는 담지자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이익을 수행하는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사법·계급사법의 폐습은 사법부를 구성하는 구조로부터 재생산되어 왔다. 우리 사법부는 사법대학원 제도의 도입을 통해 전문 관료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철저하게 법조관료체제의 외길을 고수해 왔다. 물론 이런 관료체제는 형식적 합리성에 바탕하기에 법원의 독립을 보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 독립성의 외관 하에 국민들의 의사에 의한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폐쇄집단을 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권력화 하여 국민위에 군림하는 폐해를 야기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한계를 가진다.

문제는 이런 한계가 우리의 경우에는 정치권력의 필요에 의해 확대 재생산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군사정권에 의해 마련된 사법대학원 제도나 그리고 유신정권 직전에 도입된 사법연수원 제도가 군사주의적 관료체제에 의한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던 의도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단계로 구성되는 수직적 위계구조와 선민적 엘리트주의를 조성하는 순혈주의식 법관충원제도, 대법원장 및 이를 보좌하는 법원행정처 등에 집중된 인사권, 그리고 도제식의 법관 훈련체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가부장적 선후배문화 등은 그 대표적 사례가 된다. 우리의 정치문화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듯, 법원 내부에서 작동하는 이렇게 일그러진 구조가 최근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제왕적 대법원장제로까지 이어진다. 유무형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되듯 사법부에 관련된 모든 유무형의 권력들은 법원행정처를 매개로 하여 대법원장에 집중되고, 이런 피라미드식 권력구조는 다시 대법원장으로 하여금 정치권력이 사법부 내부에 통용될 수 있게 하는 도관의 역할을 수행하게끔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법원은 그 자체 하나의 법관동일체처럼 작동하게 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과 대법원장을 매개로 하여 임명되는 대법관, 그리고 이들이 장악하고 있는 인사권에 복종하면서 승진의 사다리를 타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도록 내면화되어 있는 법관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사법부가 국민위에 군림하는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 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최근 공개된 법원행정처의 문건에서 극명하게 그 본색을 드러낸다. 이 문건은 전국의 법관들을 승진경쟁에 뛰어든 법관과 “승진을 포기한 판사(승포판)”로 양분한다. 그리고 승포판은 마치 무능과 게으름과 반항의 상징처럼 오도한다. 승진에 목을 매지 않기에 인사권자의 지휘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할 이유가 없는 이들을 두고 ‘일탈자’의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들이 아니라 그 다른 집단에 있다. 실제 이 사법농단의 사태에서 ‘승진을 포기하지 아니한 판사’들의 일부는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차장의 명령이라면 거의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영혼 없는 법률기계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그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권력을 위하여 권력의 눈에 벗어난 법관들을 사찰하였을 뿐 아니라, 법관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도저히 쓸 수 없는 보고서까지도 서슴지 않고 작성·보고하였다. 양승태 대법원체제의 패악질에 대한 충실한 실무역으로서의 역할을 아무런 의심도, 저항도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승진이라는 개인적 탐욕을 위해 ‘사법과 국민을 포기한 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요컨대, 이번의 사법농단 사태는 양승태와 그 추종세력이라는 사법권 내의 일부의 구성원들에 의해 저질러진 개인적·집단적 비리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법체계 전체가 몇몇의 정치판사, 이권판사들에 의하여 얼마든지 이리저리 휘몰릴 수 있음을 증명한, 우리 사법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사건이다. 이미 사법권은 보수화되어 친보수, 친자본의 형태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권을 장악한 몇몇 권력자의 존재만으로 그 보수적 편향성이 극대화되어 법치를 유린하고 법리 자체를 왜곡할 수 있는, 준비된 한계법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태는 단순히 사법개혁의 차원이 아니라 전사회적인 수준에서의 민주화 조치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②제왕적 대법원장제?:법원동일체라는 구조의 문제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 법원의 구조적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직적 위계에 기초한 인사제도에서부터 가부장적 기수·서열문화, 선민적 엘리트주의 및 그로부터 파생되는 무결주의, 판결문 하나 제대로 공개하지 못 하는 자폐적인 구조 등은 법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OECD국가 중 최하위급 수준인 이유를 적실히 설명한다. 그리고 이번의 사법농단 사태는 이러한 비판 지점들이 모두 사실이거나 거의 전적으로 타당한 것임을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대법정.
대법정.ⓒ뉴시스

법원행정처는 이 모든 비리한 구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핵을 이룬다. 실제 사법조직이 철저하게 관료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법관의 인사에서부터 사법정책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사법적 병폐가 발생하는 중심지역이 바로 이 법원행정처다. 특히 이번의 사법농단 파동은 법원행정처가 법관의 재판을 보조하는 업무의 수준을 넘어 스스로가 법관에 대한 감시·감독의 기관으로 기능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전국의 법관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하면서 전국의 재판을 하나의 기준에 의하여 평균화·획일화하거나 혹은 그에 실효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법의 레비아단이 되어 버렸다.

그 어떠한 의미에서든 이러한 거대조직으로서의 법원행정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현재 법원사무기구에 관한 규칙에 의하면 법원행정처에는 기획조정실, 사법지원실, 사법정책실, 행정관리실, 사법등기국, 전산정보관리국, 재판사무국을 두는(제2조 제1항) 외에, 법원행정처 차장 밑에 윤리감사관, 인사총괄심의관, 인사운영심의관, 공보관, 안전관리관을 두며(제4항) 그외 기록보존소(제9항)와 재외국민 가족관계등록사무소(제10항) 등을 둘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서 특히 인사총괄심의관이나 인사운영심의관, 기획조정실과 같은 시스템은 전국의 법관들에 대한 인사나 그 재판관련 정책들을 통할하는 중추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사법정책실은 단순한 연구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써 전국의 법관들이 준수하여야 할 각종의 행위준칙이나 정책규범들을 형성하는, 집행기능의 전단계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여기에 이 기구는 일반사무에 상당한 업무조차도 일반 법원공무원이 아니라 법관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만든다. 인사의 효율성이라는 점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경제성은 법원의 관료화라는 점에서는 최적의 효율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일부의 (엘리트) 법관을 선발하여 법원행정이라는 업무를 경유시키면서, 그들이 전체 사법체계를 통할할 수 있는 능력을 쌓게 하고 이를 통해 중앙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구조화의 수단이 된다. 실제 이번의 사법농단사태에서 일부 법관에 대한 전방위적 감시와 사찰이 가능했던 것은 그 주체가 법원공무원이 아니라 감시대상이 되는 법관과 동료의 지위에 있는 또 다른 법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법원공무원이 감히 물어보거나 들여다 볼 수 없는 법관의 일상 혹은 그 업무를 (동료) 법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일거수일투족까지 사찰해 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법원행정처의 구성은 전국의 법관을 통제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최고의 효율성을 가지게 된다. 법원공무원이 수행할 수도 있는 인사나 기획, 정책연구 등의 업무를 중견법관에게 전담시키고 이를 통해 그 행정과정의 결과들이 모든 법관에게 정당한 것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른 법관을 통제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여기에 재판연구관 제도가 겹쳐진다. 법원의 정원에 관한 대법원규칙은 현재 대법원에 고법 부장급 2명을 포함하여 총 101명의 재판연구관을 두게 한다. 문제는 법관이 지배하는 법원행정처에 다시 그들의 통할 하에 대법관의 재판업무를 보좌할 법관들을 100명 이상이나 배치하는 데에 있다. 이들은 대법원장-법원행정처의 지휘 하에 법관 내부에서 발생하는 승진사다리를 둘러싼 경쟁의 또 다른 트랙을 만들어 낸다. 즉, 최상층의 법원간부직을 향한 일종의 로얄 로드(Royal Road)가 형성되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재판연구관제도는 법관의 통제장치로서는 아주 유효한 기제를 마련한다. 그것은 일종의 ‘발탁인사’로 이루어지는 고등법원부장판사의 직으로의 승진을 향한 교두보로서 작용해 왔다.

그러기 때문에 이 제도는 각급의 엘리트 법관들(주로 부장판사 승진 전의 판사, 중견급 부장판사, 그리고 고법부장 등)을 법원행정조직에 편입시키고 사법부 내부의 이너 써클(inner circle)을 구성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순치하는 최선의 구조를 마련한다. 그것은 고법부장으로의 발탁인사가 이루어지기 전의 단계에 재직하고 있는 하급법관들로 하여금 재판연구관이 되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도록 만들어 체제 내로 편입시키는 비공식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법관들을 관료화시킨다. 현재 공식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법부장으로의 발탁인사제도가 미쳐 수행하지 못하는 하급법관에 대한 규율과 통제의 필요성을 이 재판연구관제도가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와 같은 법원행정처 조직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법원행정이라는 비사법적 업무까지도 중견법관이 장악하여 통할하는 시스템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사법부 내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법관의 지배(juristo-cracy)라는 틀을 따라 전사회적인 영향력의 수준으로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은 바로 이러한 매머드급의 거대행정조직의 존재로 인하여 가능해진다. 현직법관 혹은 그 모임에 대한 사찰파동과 같은 사법농단의 사건들은 모두가 이 거대조직 법원행정처의 존재로부터 가능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체제에서만 폐악의 원천으로 기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 기구가 현재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한, 그리고 그 주변의 재판연구관 제도가 또 다른 통제장치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한, 비“승포판”들의 사법농단 행태들은 여전히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장과 그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들이 대법원을 지배하고, 대법원장과 대법원장이 임명한 법원행정처장, 그리고 차기 대법관이 되기 위한 영순위의 자리를 확보한 법원행정차장이 저 강대한 권한의 법원행정처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한 오늘의 사법농단은 그 외관만 바꿔 언제라도 재출현할 수 있다.

③법원개혁의 방향성:민주적 사법 및 사법의 책무성이라는 또 다른 요청
촛불이 제시한 무수한 의제들(특히 적폐의 청산과 민주적 시스템의 구축)을 어떻게 구체적인 제도로 이끌어내고 나아가 광장의 정치를 지속가능한 실천의 정치로, 혹은 제도의 정치로 승화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현재의 우리들에게 닥친 주된 과제다. 문제는 이러한 촛불집회의 지향을 어떻게 사법개혁의 의제로 포섭할 것인가이다.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일관된 지향은 “나는 내가 대표한다” 즉, 시민의 직접적 정치참여의 의지였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 특히 현실의 사법은 그러한 의지를 수용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사법의 독립성의 요청은 이런 촛불의 한계를 더욱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사법의 민주화 내지는 민주적 사법의 구축은 분명 이 촛불 이후의 개혁과제로서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다만, 실제 여기서 사법의 민주화라는 말의 의미는 일반적인 정치영역에서의 민주화가 가지는 의미와는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법의 민주화는 언제나 사법의 독립(특히 사법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또 다른 헌법적 요청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술하였듯이 사법의 독립성과 사법의 민주성은 대체적인 경우에 서로 충돌한다.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여야 할 법관이 자신을 둘러싼 시민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것은 상호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즉, 전자를 강조할 경우 후자의 요청은 희생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사법관의 지배라는 반민주적, 반정치적 폐해가 발생할 우려가 나타난다. 반면 후자를 강조할 경우 시민들의 의사가 직간접적으로 재판과 판결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재판의 독립 내지는 법관의 독립이라는 것이 훼손될 가능성이 야기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사법에 관한 한 민주성의 요청이라는 언술보다는 책무성(accountability)라는 말을 선호하게 된다. 이 개념은 대체로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자는 그 결정을 다른 사람(상급자, 소비자, 또는 인민 등)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며 그들의 판단에 자신의 권한과 지위를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에서 사용된다. 시민들과의 원활한 소통과 효과적인 정보교환을 바탕으로 정책결정에 임하되 그 결정의 과정과 또 결정 이후에 그 결정에 이르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시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 혹은 그러한 과정의 결과로써 그 결정의 책임을 스스로 부담하는 체계 등이 복합된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법원의 경우에는 그 책무성의 보장 체제로서 카펠레티(M. Cappelleti)가 제시하듯 정치적·사회적 책무성과 법적 책무성의 결합 형태인 응답형·소비자지향형이 요구된다. 이는 다면적 책무성 보장체제로서 조직 내부적 통제와 집단 내부적 통제,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통제가 복합된다. 즉, 법원과 법관의 재판이나 결정에 대하여 동료법관들은 물론 다른 법률가 혹은 법(률가)공동체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회적 책무성과, 의회, 행정부, 언론 등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의미하는 정치적 책무성, 그리고 법률소비자로서의 당사자나 증인 등 관계인들과 일반적인 시민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하여 개방성과 응답성을 확보할 것을 요구하는 법적·민주적 책무성으로 구성된다.

이와 같은 카펠리티의 제안은 이런 길항관계에서 사법의 개혁을 향한 좋은 지침을 부여한다. 실제 사법적 판단에 대한 총체적인 책무성의 요청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되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사법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상호공존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유럽에서 널리 시행중인 법원행정체계인 사법위원회(council for judiciary)의 방식은 그 좋은 모델이 된다. 사법부와 정치기구(의회 또는 유럽의 경우 대부분 의회의 산물로서의 정부)의 중간에 위치하여 양자의 독립성과 책무성의 요청을 중재하고 양쪽의 압박을 여과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의 사례를 모델로 하는 이 사법위원회 또한 수많은 제도설계 방식을 가진다. 초기단계의 모형에 입각한 프랑스-이탈리아 모델의 경우에는 사법권의 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정치권력의 영향력으로부터 사법을 보호하기 위한 방파제로서의 기능이 부여되어 있는 반면, 업적주의에 입각한 사법 관료체제를 취하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독립적인 사법부에 대하여 정치적 통제를 통한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반면 법관 승진시스템이 없이 명망가 사법체제를 취하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에는 정치와 사법을 중재하는 매개기관으로서의 의미가 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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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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