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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특별기고②] 국민이 주도하는 법원개혁, 이렇게 하면 된다

들어가는 말

이 글은 87년헌법 체제의 한계를 뛰어 넘은 촛불집회 그리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사법농단의 사태에 대한 나름의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법체계의 현실과 그 개혁을 위한 경로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전편 보기

법원구조 개혁은 어떻게 진행돼야 하나

①사법개혁의 과제와 사법위원회
실제 사법개혁의 문제를 법원의 문제로 한정할 때 그 방안들은 그리 크게 확장되지는 않는다. 법원의 계층화 문제나 법관 순혈주의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법관 인사제도의 극단적 개편(해편이라는 말이 적합할 것이다)은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다. 특히 법관의 인사를 전국단위로 순환 근무하는 체제에서 지역(특히 고법) 단위로 고정 배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향판제도 등)이라든지, 실질적인 합의부를 구성하기 위하여 대등한 법조경력을 가진 법관들로 하나의 부를 구성하게 하는 것, 나아가 동료(peer)평가나 상향평가 등을 포함하는 법관 근무평정 제도의 개선 등은 여전히 우리 법원의 개혁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방안들이다. 물론 문제는 이러한 것이 완전하게 이행되지 않았음에 있는 것이지 그 대안들을 아예 시도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 순간 우리가 법원의 개혁을 요구하려면 이미 채택되어 있는 여러 방안들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가시적으로 집행할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 외에도 판결문의 완전한 공개라든가, 법관(특히 대법관)자격의 개방, 사법의 개방(참·배심제의 실현), 사법의 전문성 확보(전문법원제도의 확대 강화), 사법과거사 청산의 과제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간담회.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간담회.ⓒ임화영 기자

여기서 사법위원회(Council for Judiciary) 제도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개혁 대안으로 의미를 가진다. 사법위원회 제도는 유럽을 중심으로 사법의 독립성과 민주성·책무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나름 의미 있는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사법부의 의사결정 및 사법행정과 관련하여서는 비교법제적으로, 사법관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강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사법위원회 제도, 그리고 법관의 관료제가 강하게 보장되면서 그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삽입하고자 하였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볼 수 있는 의회통제형, 그리고 명망가 중심으로 사법체계가 이루어지면서 별다른 정치적 통제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는 영미형의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사법위원회의 시스템은 사법부와 의회 또는 정부의 사이에 위치한 독립기구를 설치하여 후자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담보하는 한편, 사법부 자체의 효율성과 책무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법행정을 담당하게끔 한다. 다만 그 권한과 관련하여서는 크게 두 가지의 모델(북구형과 남구형)로 나뉜다. 남구형의 경우는 인사와 규율 등에 대한 자문권한을 가지는 방식이다. 이 남구형의 경우는 법관의 승진이나 정년보장, 면직 등의 업무에 관여하며 법관의 봉급 또한 그 권한 영역 내에 들어가기는 하나 대체로 법무장관이 통할하는 예산의 구속을 받는다. 실제 이 유형의 사법위원회는 애초에는 사법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등장하였다가, 독립성을 확보한 사법관들이 사법 적극주의의 경향을 보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자 사법에 대한 정치적 통제의 필요성이라는 새로운 요청에 직면하면서 1990년 이래 상당한 변화를 겪기도 한다.

사법부의 인사의 과정에 개입하여 사법의 독립을 강화하는 장치로 활용되었던 남구형의 사법위원회와는 달리, 북구형의 사법위원회는 문자 그대로의 사법행정 그 자체를 지향한다. 이 경우에는 사법에 관한 예산과 재정, 이행(logistics), 통제, 감독, 임명, 규율, 충원 등에 대하여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 전형이 되었던 스웨덴의 사법위원회의 경우 인사와 시설을 담당하는 반면, 법관들은 자신들의 업무에 대한 관리의 업무를 처리한다. 특히 법원장은 재정지출에 관한 한정된 권한만을 가질 뿐이다. 그리고 법무장관은 이 양자의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를 가진다.

그 외에도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경우에는 사법위원회와 같은 조직이 없는, 비분리형의 모델로 분류되나 네덜란드는 최근 남구형에 터 잡은 절충적 형태로 변화하고 있으며, 체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법위원회는 두 가지의 제도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 첫째는 사법의 독립성이 사법의 폐쇄성을 강화하고 그로 인한 사법관의 지배현상을 야기하게 될 우려에 대하여 민간인인 위원들로 하여금 사법과정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법의 민주성 내지는 책무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한다. 반면, 사법의 민주성의 요청은 자칫 정치권력의 지나친 사법개입의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는 만큼 이 사법위원회로 하여금 정치권력이 곧장 사법행정이나 인사에 개입하지 않고 그의 대리인을 통해 개입하는 간접적인 통로를 마련하게 함으로써 사법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또 다른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진다. 우리의 사법체계에서 사법위원회가 논의되는 수준도 이와 직결된다.

현재의 우리 사법부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개혁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는 사법의 독립에 대한 요청으로, 그것은 지금까지의 외부로부터의 독립 즉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독립과 내부로부터의 독립, 즉 “제왕적” 대법원장 혹은 강력한 법원행정처의 압박으로부터 개별 법관 혹은 재판의 독립을 담보해 낼 수 있는 장치에 대한 요구다. 둘째는, 사법이 관료화로부터 국민들의 법 감정과 정의감에 입각한 법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국민들이 사법관에 대한 나름의 견제와 통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법의 책무성 강화의 요청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사법위원회 제도는 그 설계만 제대로 된다면 사법의 민주성과 독립성의 두 요청을 가장 적절한 수준에서 조화시키며 균형점을 확보하는 좋은 장치가 될 수 있다.

②법원개혁의 경로
◆지휘탑의 부재:대법원장의 직무유기와 사법발전위원회의 한계
사실 이러한 개혁방안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논의들을 통하여 법원개혁의 방향성으로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사법위원회의 경우에는 그 제도적 낯섦으로 인하여 약간의 홍보와 인식의 확장이 필요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법원개혁의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그 모든 작업과 지향들을 주도하고 지휘하여야 할 그 어떤 사령탑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 대법
원장은 이미 취임한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저 사법농단의 적폐를 청산하는데 조차도 미온적인 태도로 법관들의 수사방해를 방치하고 있기만 할 뿐 아무런 법원개혁의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무언가 활동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법발전위원회(위원장:이홍훈) 또한 개혁의 방향성에서부터 내용, 절차 심지어 국민과의 소통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효과적인 업무처리를 하지 못함으로써 그존재 자체가 희석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법발전위원회는 위원장 및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에 각 12명, 13명으로 구성되는 두 개의 전문위원의 회의체를 부속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7차에 걸쳐 회의를 개최하고 12건의 회의결과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는 이미 불가역적인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김철수 기자

첫째, 대법원장에 대한 자문기관 내지는 건의기관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너무도 편협한 개혁 과제만을 다루고 있어 그 제호가 되는 사법의 발전은커녕 현재의 사법농단의 해소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준의 의제만, 그것도 대법원장이 부의한 안건만을 다룬다. 이 위원회의 규칙(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규칙) 제2조는 이 위원회의 의제로 ▲적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위한 재판 제도 개선,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 ▲좋은 재판을 위한 법관인사제도 개편, ▲전관예우 우려 근절 및 법관 윤리와 책임성 강화를 통한 사법신뢰 회복방안 마련 등을 들고 있다. 그뿐이다. 물론 연관성의 영역을 넓게 잡는다면 대부분의 법원개혁의제들을 담아낼 수는 있겠으나, 사법의 민주화라든가 사법에 대한 국민적 통제방안의 모색, 사법의 분권화 등과 같은 주요 정책 의제들은 이들과는 자못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러한 의제들조차도 구체적인 지향성이나 이념성이 제시되어 있지 않아 저 의제들을 다룰 수 있는 기본지침을 알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예컨대, 재판제도 개선의 방향은 “적정하고 충실한 심리”이고 사법행정은 “재판 중심”이며, 법관 인사제도는 “좋은 재판”을 위한 것이다. 전관예우에 대한 근절대상은 전관예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려”일 따름이고 국민의 사법불신 해소 방안은 “법관 윤리와 책임성 강화”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있으나 마나할 정도로 추상적이거나 혹은 타겟 설정이 잘못된 표제를 선택한 것은 위원회의 조직 및 업무의 목표나 비전 자체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셋째, 그 구성이나 설치 또한 적지 않은 문제지점을 내포한다. 대법원 내부에 설치됨으로써 어떠한 결론이 나오더라도 그것은 법률개정이나 국가정책방향의 변화를 야기하지 못한 채 기껏해야 대법원 규칙 정도의 개정으로 그치게 된다. 그래서 소정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한계를 지닌다. 그뿐 아니다. 이 위원회의 사무를 처리하는 곳은 여전히 사법농단의 주역이자 아직도 그 조사·수사를 회피하고 있는 법원행정처이다. 실제 전문위원의 경우에는 두 조직 모두 각각 3명의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관여하고 있는 등 대다수가 법원행정처와 전현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혹은 대부분의 전문위원들이 법관들이어서 내부적인 토론이나 의결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법농단을 비롯하여 법원에 누적되어 온 적폐들의 토대가 되는 잘못된 편견이나 인식들이 여전히 이 회의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유효한 ‘위력’으로써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위원회의 존재 이유이다. 법원개혁을 위한 전문가 위원회인지 아니면 작금의 사법농단과 관련한 국민의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곳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표제는 “국민과 함께 하는” 회의체임을 말하면서도 그 구성이나 운영 모두가 국민과는 전혀 동떨어진 곳에서 매우 편협하고 폐쇄적인 양태를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위원회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논의되고 있는지 그 “국민”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물론 이를 위해 이 위원회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회의록이나 회의 결과를 공개하고 있으나, 그 또한 실명 공개는 차지하고서라도 그 내용조차도 “국민”들은 알지 못해 겉돌고 있는 수준이다.

다섯째, 그나마 회의 결과로서 제안되어 있는 개혁 방안 또한 문제적이다. 전관예우 실태조사에서부터 판결문 전면공개 등에 관한 여러 가지의 방안들이 제시되기는 하였으나, 그 구체적인 세목이나 실천·집행의 방안들이 거의 제시되어 있지 않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설치·운영
사실 사법발전위원회의 논의 내용이나 그 과정은 필요한 작업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로지 법원 내부에 한정된, 일종의 예비탐색에 그쳐야 한다. 사법개혁의 의제가 그 네 가지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그 방향이 “좋은 재판”, “적정하고 충실한 심리”에 그치지 않으며, 하등의 구속력도 갖지 못하면서도 추상적이고 모호한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건의만으로는 아무 것도 실천·집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법원개혁은 법원이나 법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넘어 우리 시민 모두의 삶에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무런 사전 정비작업 없이 구성되고 아무런 의사소통 없이 운영되는 사법발전위원회 수준의 논의로써 이 사법농단의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을 위한 국민의 사법체계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이 새로운 사법개혁의 추진기구(사법개혁추진위원회 또는 사법개혁추진단)의 설치·운영이다. 문자 그대로 “국민과 함께 하는”, 그래서 국민에게 사법 과정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법으로 나아가는 개혁의 논의가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 지금인 셈이다.

우선,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사법발전위원회의 운영 및 논의의 결과를 정리하고 그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여 집행에 옮기는 역할을 수행하는 별도의 기구는 절실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사법발전위원회의 건의안은 전혀 내용이 특정되어 있지 않아 그 규범적인 구속력은 차치하더라도 그것을 권한 있는 기관이 당장 실천에 옮기고자 하여도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추진기구의 우선적인 임무는 여기에 있다. 사법발전위원회의 건의에 이어 그것을 현실적으로 집행해 내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더불어 그 집행에 필요한 입법안(법률제·개정안 및 대법원규칙의 제· 개정안)의 마련도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된다.

둘째, 나아가 사법발전위원회가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사법농단의 적폐들을 청산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여야 한다. 주로 법관인사·평정제도 및 법원 조직 구성, 국민의 재판참여방안 등의 제도 개선 작업이다. 여기에는 사법과정의 민주성과 투명성, 그리고 대국민 책무성을 강화하는 것을 주된 비전으로 삼아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의 해소, 법원행정처의 “해편” 및 재판과 사법행정의 분리, 사법행정의 민주화 및 책무성 강화, 사법정책연구원과 사법연수원 등의 업무조정 및 탈법관화 문제 등 새로운 의제들을 적극 수용하여 장·단기별 이행계획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이 추진기구는 기존의 기구가 아닌, 새로운 기구로 구성되어야 한다. 현재 사법발전위원회는 기본적으로 법원행정처의 권역 안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간간히 흘러나오는 소식에 의하면 사법발전위원회의 제안을 집행하기 위한 단위 역시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구성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 전면에 나서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다. 즉, 사법농단의 주역으로 비판의 십자포화를 받고 있는 법원행정처가 후속 추진 작업을 주도하게 되면 그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아예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사법관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원내부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개혁의 내용 또한 미봉에 그칠 가능성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혹은 말로는 개혁을 앞세우면서도 현실적인 문제 혹은 예산이나 법령상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등
의 이유를 들어 후속 추진작업을 한없이 연기하고 지체할 가능성도 결코 적지 않다. 이에 새로운 추진기구는 법원행정처와는 별도로 구성되어야 한다.

넷째, 이 추진기구의 설치는 대법원 소속 혹은 대통령(국무총리) 소속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헌법상의 대원칙에 비추어볼 때 일견 이 추진기구를 대법원 소속으로 하여 사법권 내부에서 개혁 작업을 추진하는 듯한 외관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는 본질적인 오류를 가진다. 법원개혁의 작업은 원칙적으로 사법권의 독립 바깥의 사안이다. 우리 헌법은 법원의 조직과 법관의 자격, 그리고 재판의 절차는 법관들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와의 협력 하에 국회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 법관과 재판은 그 어떤 정치나 행정으로부터 독립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법률의 지배 하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특히 법원행정의 측면은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재판의 영역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행정의 영역이다. 따라서 이 법원행정을 어떻게 구성하고 조직하는가의 문제는 법관의 고유영역이 아니라 행정의 고유영역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법원행정을 법무부에 일임하고 있거나 행정부가 깊숙이 개입하는 사법위원회에 맡기고 있음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 지금 진행되어야 하는 법원개혁의 문제는 단순히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기관(예컨대 사법위원회)의 설치 및 그에 상응하는 예산 조치 등의 ‘집행’ 작업들이 필요하다. 여기에 법무부나 기획재정부 등과 같은 다양한 행정부처들의 협업이 절실한 것이다.

이 점은 지난 사법개혁의 논의 과정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우리의 역사에서 사법개혁의 논의가 전사회적인 단위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 최초였다. 그런데 이때의 사법개혁을 주도하였던 곳은 법원도 검찰도 아닌, 대통령 소속의 세계화추진위원회와 새교육공동체위원회였다. 옷로비 사건과 대전조폐공사사건에서 촉발되었던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역시 대통령 소속의 기관이었고 여기에는 위원장 외 법원(2인), 검찰(2인), 변호사(3인), 학계(2인), 언론계(2인), 시민단체(2인), 여성계(1인), 경영인(1인), 행정관료(2인) 등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위원으로 위촉되어 그 개혁의 방안들을 모색하였고 그 주무를 법무부가 감당하였다. 그 뿐 아니다.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대통령자문기구로서 본위원회(18명이내), 실무위원회(19인이내), 기획추진단 등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면서 국무위원과 국무조정실장 등 다양한 행정부 인사들이 참여하여 그 구체적인 집행의 기능까지도 담당하였다. 법원개혁이라고 해서 반드시 법원 안에서 법원과 법관만에 의하여 추진될 필요도 이유도 그리고 선례도 없는 것이다. 물론 대법원 안에 설치한다 하더라도 그 구성을 제대로 함으로써 법률안과 예산안 제출권을 가지는 행정부와 협의할 수도 있을 것이나, 현재와 같은 사법농단의 사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그 업무 추진의 효율성을 고려한다면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 소속의 기구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다섯째, 그 조직 및 구성의 문제는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모델을 조금 축소하는 방식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대체로 1999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경우에는 사법개혁의 의제들을 발굴하고 그 기본적인 방향성을 특정하는 데 주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 구성은 다양한 사회분야를 대표하는 인사들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법원개혁 문제는 이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우선 사법발전위원회에서 건의된 의제들이 적어도 그 추상적인 형태로는 확정되어 있어 집행방안만 강구하면 되는 상황인데다, 그동안의 사법개혁 논의들을 통해 법원개혁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제들은 거의 대부분 정리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새로이 만들어지는 조직은 의제발굴형 보다는 집행형의 틀을 갖출 필요가 있다.

굳게 닫힌 대법원 대회의실 문.
굳게 닫힌 대법원 대회의실 문.ⓒ임화영 기자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경우 국무총리와 민간인을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교육인적자원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노동부, 기획예산처, 국무조정실, 법제처, 민정수석, 법원행정처 등의 장과 전현직 대한변협회장(2명), 법학교수(3명), 그리고 사회 각계 대표들(5명) 등으로 구성된 본위원회 아래에 국무조정실장인 위원장과 차관급 위원들 및 시민사회 대표들로 구성되는 실무위원회를 따로 두었다. 아울러 실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기획추진단을 두어 단장을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이후 사법개혁비서관)으로 하고 법원측 5명(판사4명, 법원공무원 1명), 교육인적자원부 3명, 법무부 8명(검사 7명 검찰공무원 1명), 국방부 1명, 행정차지부 4명, 문광부·중앙인사위·법제처·경찰청 각 1명, 그리고 전문계약직 15명(주로 전문위원급이었음), 기타 사무직 9명 등으로 구성하였다.

법원개혁의 추진기구는 이런 구성사례를 참작하면 될 것이다. 물론 실무형의 집행기능이 강조되는 만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본위원회와 같은 구성은 굳이 두지 않아도 될 것이다. 즉 법원개혁추진위원회를 차관 상당의 지위와 권한을 가지는 위원들로 구성하여 법원과 행정부, 시민사회단체가 분점하는 형태로 구성하고 그 아래 실무추진단을 두는 방식이 적당해 보인다. 법원개혁추진위원회는 법원개혁에 관한 사안들을 심의·의결하고 법원행정처나 법무부 등에 (사실상) 구속력 있는 지휘를 하는 기구로 하되, 그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대통령령(혹은 대법원에 설치할 경우 대법원규칙)으로 규율한다. 물론 이 기구의 기능은 법원과 행정부 양자를 아우르는 것이 되는 만큼 당연히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의 긴밀한 협의와 합의로써 정해져야 할 것이다.

이 위원회는 정책결정기관인 본위원회와 그를 보좌하며 필요한 사무를 수행하는 실무추진단으로 구성한다. 본위원회의 경우, 위원장(대법원장과 민간인을 공동위원장으로 함)과 법관대표회의에서 심급별로 정한 위원 3인, 법원공무원 노조 대표 1인, 법무부·국무조정실의 차관급 대표 각 1인, 청와대비서실 1인, 대한변협 및 변호사단체 대표 2인, 시민사회대표 4~6인 정도(언론인 1인 포함) 등 12~14인 정도의 위원으로 구성하면 될 것이다. 또한 실무추진단은 추진위원회의 민간인위원장을 단장(상근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함)으로 하고, 3개 팀(법관인사, 법원행정, 기타)으로 조직하되, 각 팀에 팀장을 포함하여 10~15명 정도의 팀원과 3~4명의 사무직요원을 배치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물론 이때 팀원들은 법관, 법원공무원, 변호사·법학자, 시민사회 대표 등이 균형 있게 배치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팀원 중 적어도 3분의 1 내지는 절반 이상을 상근직으로 하여 현재의 법원행정처 심의관 수준의 대우를 함으로써 그 업무의 비중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조직을 바꾸어 실무추진단이 주축을 이루고 위원회조직은 실무추진단장에 대한 자문기구 혹은 중요 업무에 대한 심의기구로서의 성격을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섯째, 이러한 추진기구는 가능한 한 조속히 설치되어 그 업무에 착수하여야 한다. 사법농단사태가 법원의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조속히 개편하는 것이 국민적 요구라고 한다면, 현재의 사법체계는 보기 나름으로는 극도의 불안정상태에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추진기구는 이러한 불안정을 조속히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현재의 사법발전위원회는 원래 존속기간이 올해 말까지로 되어 있으나, 어느 정도의 정책기능을 가지는 추진기구가 등장하게 되는 만큼 지금까지의 작업 수준에서 그 성과들을 정리하고 조속히 해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의 존재 이유 자체가 미약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의 법원개혁 논의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전문성보다는 민주성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에 개방되어 있지 않은 현재의 조직양태로써는 그 논의의 결과가 어떠하든, 법원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해소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사법발전위원회의 후속 추진조치를 법원행정처를 비롯한 법원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하겠다는 발상 또한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 계획이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 관계없이 그 자체 폐기되어 마땅하다.

지금까지 촛불집회라고 하는 우리 헌정사의 커다란 전기를 맞이하면서 최근의 사법농단 사태를 조망하고, 그 극복 방안 중의 하나로 세차게 제기되고 있는 법원개혁의 경로와 수단을 정리해 보았다. 사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87년 민주항쟁을 고비로 우리 사회에서 권위주의적인 권력 행태는 사라졌거나, 혹은 사라져가고 있다는 환상을 가졌었다. 촛불집회는 어쩌면 이러한 환상에 대한 또 다른 각성의 촉발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권위주의적 권력의 후퇴라는 조그마한 승리에 안주하는 동안 그 정치권력의 공백을 메꾸고 들어오는 것은 경제권력과 관료권력이었으며, 이들이 역으로 정치권력을 부추기며 새로운 권력을 구성해 내는 반동의 현실을 과감히 깨쳐 버린 것이 촛불집회의 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사법체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누차에 걸친 사법개혁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으로 조금씩 그 구태를 벗어났을 것이라고 모두가 방심하는 순간, 이 사법부는 제왕적 대법원장을 만들어내고 블랙리스트와 같은 것으로 그리고 인사권을 오남용하는 것으로 전체 법관과 전체 사법체계를 소수의 지배하에 옭아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사법권력을 대법원장과 그 예하의 사람들이 사유화하면서 재판으로써 정치권력과 흥정한 것으로 보이는 전대미문의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그동안 민주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써 이루어낸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현실이 곧장 사법권의 사유화와 그에 이은 내부적 지배-종속의 체계로 전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정치권력이 점진적 쿠데타를 진행하였듯이 사법부 역시 점진적인 과두지배의 체제로 이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글에서는 우선 법원개혁의 기본방향을 사법행정의 혁파에 두고, 그 사법행정을 법관과 국민들의 대표가 공동운영함으로써 사법의 독립성과 민주성(혹은 책무성)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사법위원회(혹은 사법행정위원회)의 틀을 그 대안으로 선정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 작업을 위하여 현재의 사법발전위원회와 같은 폐쇄회로식의 무성생식의 방법은 과감하게 털어버리고 시민사회의 참여와 견제 속에서 보다 민주적이고 효과적인 법원개혁 추진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틀을 나름으로 제시해 보았다. 거듭 말하지만 촛불집회 이후의 사법개혁의 논의는 무엇보다도 시민사회의 법적 수요를 어떻게 민주적이고 효과적으로 사법과정으로 수용하고 이를 통하여 시민사회의 법감정과 정의의식을 판결로써 제대로 반영하는 사법구조 및 법체계를 어떻게 생산해 낼 수 있는가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시민들이 유효하게 참여하고, 이를 통해 민주적 사법을 구성해 낼 수 있는 주체적 동력을 시민에게 부여하도록 고민하여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할 때 사법부는 시민들에게 사법주권을 되돌려줄 수 있게 될 것이다. 87년체제가 내세웠던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형식주의를 극복하고 국민의 사법, 시민의 사법을 만들어나가는, 그래서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적인 법공동체를 구성하는 야심찬 도전은 이럴 때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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