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우주의 근원, 태초의 물질을 찾아 나선 여행자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던,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든 도전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민중의소리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개척한 ‘꾼’들을 찾아 그들의 밥벌이와 가치를 묻습니다. 동영상 강좌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전한다면, 페이퍼 특강에선 독자에게 정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전할 계획입니다. 직업의 세계에선 때론 구체적인 기술보다 좋은 관점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없음
우주 에너지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은 지구를 넘어 온전한 그 태초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과 같다
우주 에너지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은 지구를 넘어 온전한 그 태초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과 같다ⓒpixabay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인기 끌던 때였다. 맥주를 찔끔거리던 친구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우리 편견을 깬 거야. 잘 봐. 외계인이 무려 도민준이야. 에일리언의 괴물대가리가 아니야. 도민준은 지구에서만 400년 살았대. 400년 묵은 외계인이 천송이랑 같이 살아. 국경이 뭐야. 천송이를 보려고 은하계를 넘거든. 이 점에서 대단한 작품이지. 그러니까 이제 외계생명체는 사랑인거지”

만약 도민준이 ET나 ‘맨인블랙’의 바퀴벌레처럼 생겼어도 천송이가 좋아했겠냐는 이야기. 정말 외계인이 모두 도민준처럼 생겼다면, 그거야말로 남자들에겐 ‘지구침공’이라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드라마 제목을 짚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린 모두 별에서 왔어. 46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지구나 지구에서 탄생한 인류. 이 모든 것이 행성에서 왔거든. 우리 몸의 원소 하나하나는 모두 지금은 소멸한 어떤 별의 일부였거든. 그러니까 우린 모두 별에서 온 존재들이지.”

친구는 나더러 진즉에 시를 썼어야 한다고 했고, 난 녀석에게 애초 우주물리학의 길로 갔어야 했다고 했다. 명작 『코스모스』를 안 본 사람과는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없다는 녀석과의 술자리는 대개 이런 식이다.

우주의 근원을 찾아나선 여행자 이종필

많은 비밀이 풀렸다지만, 우린 아직 우주를 모른다. 우주를 모른다는 것은 세상의 근원을 모른다는 말과 같다. 우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무엇인지도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입자물리학은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단위를 추적한다. 즉 우주가 무엇으로 구성되었으며, 입자들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다. 세상의 모든 학문 중 가장 작은 것을 연구한다. 그런 점에서 입자물리학자와의 만남은 흥미로웠다.

입자물리학자 이종필 교수는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작년에 나온 『과학자가 나라를 걱정합니다』라는 책이었는데, 표지엔 ‘박근혜 탄핵 인용 선고’를 투박하게 박아놓았다. 과학자도 나라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걱정은 한철 일시적인 건 아니었다. 꽤 오랫동안 정치비평칼럼을 써왔다. 지금은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물리학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맛나게 읽어주는 작업도 꽤 오랫동안 해왔다. 이종필 교수는 이론 물리학자다. 참고로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천재라는 스티븐 호킹도 이론물리학자다. 이종필의 저서는 많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물리학 클래식』,『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물리의 정석』,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 이론』,『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등 과학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권쯤은 보았을 책들이다. 내가 보기엔 모두 재미있다.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 이론』은 무척 어렵다)

이종필에겐 과학이론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다.
이종필에겐 과학이론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다.ⓒ민중의소리

그가 일하는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에서 인터뷰했다. 예상했던 대로 며칠은 밤샌 것 같은 얼굴로 나타났다. 내가 만났던 젊은 교수들은 거의 수면부족이다.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많이 삭제하고 이종필 교수의 답변을 중심으로 편집했다.

운동권 과학자라고나 할까요? 먼저 과학자로서 사회적 발언을 이어나가는 것에 대해 학계의 시선은 어떻습니까?

이명박, 박근혜 정권 10년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잖아요. 대학원 시절부터 여기저기 시사비평 글을 썼는데 사실 입자물리학 쪽에선 약간 뜨악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학부 시절 열심히 학생운동에 전념했던 제 이력을 익히 알고 있던 분들은 그냥 원래 그런 애로 봐줬습니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고나 할까요. 과학자로서 사회적 이슈에 적극 개입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분들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 이전에 시민이고, 사회를 고민하는 인간입니다. 내가 학생운동 시절 고민했던 진보적 가치에 대한 문제나 나라의 문제가 과학영역이라고 비껴가진 않거든요.

책은 많이 나갔습니까?

아니요. 생각했던 대로(!) 잘 안 나갔습니다. (웃음) 그래도 외치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학생운동 하다 다시 연구자의 길을 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1995년, 그러니까 IMF 직전에 대학원에 갔어요. 95년이면 학생운동이 정점을 찍을 때였고 우리 학교에선 고시 열풍이 불 때죠. 과 60명 정원에 10명이 사시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예전엔 노동현장에 투신하거나 전업 활동가가 되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만, 당시 학생운동 진영에서 다양한 사회진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나에겐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대학도 대학원 중심 대학 쪽으로 간다면서 대학원 정원을 늘렸는데, 나에겐 좋은 기회였습니다.

90년대 초반엔 인터넷을 통해 학계에서 예비논문 아카이브(공유·저장공간)가 구축되었을 때거든요. 전 세계 연구자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매일 쌓였어요. 논문의 날짜와 시간이 남기 때문에 아이디어 도용을 막는 효과도 있고요. 전 세계 연구자들의 성과를 누구나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습니다. 남들에 비해 어려운 점도 있었죠. 학부 시절에 기초과목 공부를 많이 못했으니까요.

노무현 정부 당시 <어느 물리학자가 본 이공계 위기의 현실>이라는 글을 청와대로 보냈고, 주요 언론에서 보도하면서 당시 꽤 화제였습니다.

(웃음) 지금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였습니다. 당시 2003년엔 이공계 위기론이 팽배했던 시점이었어요. 황우석 교수의 인기가 절정에 있었던 시점이었는데도요. 인문학의 경우 90년대 이미 망한 학문이었거든요. ‘이공계 위기론’의 핵심은 공대 나와 엔지니어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결국 노력해도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엔지니어들의 한국경제에 대한 기여를 생각하면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푸대접할 수 있냐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기초물리학자가 보기엔 이공계 위기론조차 배부른 소리였죠. 분야별 밥그릇 싸움 같은.

학문의 존재 이유가 경제발전은 아니지요. 과학자는 열심히 연구할 뿐이고 누군가는 그 결과를 이용해서 돈도 벌겠죠. 사실 이 문제는 대한민국 학문 전체의 위기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어떤 분야는 경제에 직접적이고 빠른 영향을 미치지만, 적어도 국가는 먼 미래를 위한 전략적 고민을 해야 합니다.

과학자로서의 희열

과학의 역할은 인간 인식의 경계를 확정 짓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종교나 철학이 이 역할을 해 왔다면 몇 백 년 전부터는 과학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영역이 훨씬 넓어졌고 발전 속도도 빨라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20세기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인류학자, 철학자, 종교인 에게 물었지만 현재는 뇌 과학자나 진화 심리학자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입자물리학의 경우 우주의 근본원리를 규명해 왔습니다. 이 역사는 사실 2천여 년 전의 탈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20세기 과학자들은 ‘표준모형’이라는 모범답안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의 일인데요. 표준모형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힉스 입자가 지난 2012년 유럽의 입자가속기인 LHC에서 마침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표준모형은 이제 실험적으로 완성된 셈인데요. 하지만 표준모형이 대단히 성공적임에도 불구하고 표준모형만으로는 이 우주를 설명하기에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당장 표준모형으로는 중력을 설명할 수 없고요. 우주에 널려 있는 암흑물질을 설명하지도 못해요. 물론 수십 년 전부터 표준모형의 대안모형들이 여럿 제시되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그 어떤 실험적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답답한 상황이지만, 한 편으론 새로운 이노베이션이 될 수 있는 중간단계이기도 하죠.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그런 단계로 폭풍 전의 적막 말입니다. 어쩌면 세기의 발견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교과서를 다시 써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세계 최대 강입자가속기 LHC .  둥근 형태의 빔파이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해 총 27km에 달한다.
세계 최대 강입자가속기 LHC . 둥근 형태의 빔파이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해 총 27km에 달한다.ⓒgoogle

저서,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말입니다. 정말 특별하더군요. 책 대부분이 난해한 수학 공식으로 가득하다는 것,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수학이나 물리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강의해서 결국 풀게 만든다는 시도였습니다. 결국 성공했습니까?

(웃음) 우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분들이 기본적으로는 과학과 수학에 열정이 있는 동호회 분들이었어요. 세상에는 수학으로 우주를 해석하고 수식으로 그것을 표현할 때 무한대의 희열을 느끼는 부류가 있거든요. 텍스트로 된 과학책은 많이 읽었지만, 자신이 직접 수학적으로 풀어가며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고등학교 과정까지는 잘 따라오셨어요. 이후 수준이 높아지면 디테일한 부분에선 모두 이해를 하진 못하지만 큰 줄기는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때의 벅차오름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학문적 호기심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겠죠. 강좌가 끝나고도 스터디를 꾸준히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과학을 대중의 것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책을 써왔지만, 그 프로젝트는 저한테도 도전이었고, 꽤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수학적 기초가 어느 정도 있어 아인쉬타인의 장 방정식에 도전하고 싶다면 이 책을 들어도 좋다. 하지만 어떤 이에겐 이 책이 또 하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
수학적 기초가 어느 정도 있어 아인쉬타인의 장 방정식에 도전하고 싶다면 이 책을 들어도 좋다. 하지만 어떤 이에겐 이 책이 또 하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민중의소리

연구자의 길, 후회는 안했습니까?

이 길을 선택한 것,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직장이 안정적이지 못한 게 가장 고통스럽죠. 보통 계약이 2년이니, 2년마다 대학이나 연구소를 옮기면 결국 연구를 지속하기 힘듭니다. 연구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성과를 보기 어렵죠. 그렇다고 교수 자리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요즘은 교수들도 무한경쟁에 내몰려서 업적심사를 충족하는 논문 맞추느라 정작 필요한 연구는 못하는 실정이에요. 한국은 모두가 각자도생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일본은 노벨상, 한국은 지금 어느 수준입니까?

변방입니다.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면서 최근엔 일본과 비교를 많이 하더군요. 기초과학은 물론이고, 물리학 분야의 격차는 너무 크게 벌어져 있습니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바야시 마코토와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나고야 대학 박사 출신으로 일본에서만 연구해서 세계적인 성과를 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마스카와 교수는 당시 여권도 없었고 영어도 매우 서툴렀죠. 난 일본 과학의 힘을 자생력과 자기 완결성이라고 봅니다. 일본은 16세기부터 서구를 번역해 온 나라입니다.

번역의 본질은 서구나 다른 나라에서 탄생한 개념을 다시 ‘자기화’하는 작업이거든요. 그걸 텍스트로 바꿔 자기 말처럼 사용해도 개념상 문제 되지 않는 수준이 되면 지식과 정보의 영역에서 대등해질 수 있습니다. 과학은 물론이고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죠. 우린 지금 고대 그리스 저작들 번역도 만만치 않거든요. 일본의 번역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유럽에서 나온 책은 다음 주에 일본 서점 가판에 나올 수 있어요. 소위 말하는 그 ‘덕질’에 대한 예우가 우리와 일본은 아주 달라요. 번역을 굉장한 인문학적, 과학적 기초로 보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일본 과학자들은 일본어로 된 책만 보고 연구해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우리는 번역작업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죠. 최근 국내에서 번역청을 신설하자는 움직임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본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 니시나 요시오

니시나는 20세기 초, 양자물리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유럽에서 양자역학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그 유명한 코펜하겐 연구소에도 있었고요. 니시나는 물리학의 첨단을 접하고 돌아와 교토 제국대학에 자유롭고 창의적인 유럽풍의 연구기풍을 그대로 이식했습니다. 도쿄대학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죠. 그의 제자였던 유카와 히데키와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각각 1949년과 196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일본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수상이었어요.

일본은 1971년 일본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KEK)를 만들거든요. 초기에는 세계적인 수준과 격차도 있었고 자금도 부족했습니다만 그래도 30년을 내다보고 정부가 투자합니다. 외국에서 과학자를 영입하고 다시 일본의 인재를 키워냈죠. 그 성과가 2008년 노벨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봅니다. 일본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 절반이 입자물리학에서 나왔을 정도로 일본은 명실상부한 기초과학 강국입니다. 만약 경제논리로만 접근했다면 국가가 여기에 투자할 이유가 없었겠죠.

일본 현대물리학의 아버지 나시나 요시오
일본 현대물리학의 아버지 나시나 요시오ⓒWikiwand

각자도생의 한국 환경에서 연구자들이 삶아 남을 수 있을까

물론 일본 특유의 폐쇄적 풍토가 외국 과학자에겐 상당한 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거꾸로 생각해보면, 일본 과학자들은 그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고 성과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즉 이 시스템의 강점은 적어도 자기 나라 과학자, 제자들은 책임지고 키워낸다는 거죠.

10여 년 전에 동아시아 학회에 갔을 때 잊지 못할 경험을 했어요. 그때 일본 교수들이 하루 날을 잡아서 저녁 시간에 학술적인 주제가 아닌 박사후연구원의 현황에 대한 특별 세션을 마련했습니다. 학위를 받은 이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까지의 기간, 박사후연구원 인력에 대한 정밀한 데이터가 모두 있더군요. 박사후연구원이 교수직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까지 기간이 예전과 비교해 얼마나 길어졌는지를 보여주더군요. 일본 교수들은 마치 자신의 문제인 듯 이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제기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저는 충격 받았습니다. 우선 일본은 자기분야 박사 과정 인력이 몇 명이고, 1년에 몇 명이 배출되고 몇 번 박사후연구과정을 옮겨야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수치를 매년 추적하고 있었어요. 더 놀라운 건 제자들의 연구환경, 생계문제를 스승들이 앞장서서 걱정하고 해결하려 한다는 거죠.

이종필 건국대 교수
이종필 건국대 교수ⓒ이종필

한국 풍토와는 너무 달라서 자괴감이 들었어요. 우린 각자도생해야 하는 시스템이거든요. 완전한 방임이죠. 생계를 버틸 수 있는 자산이 없으면 젊은 시절 연구하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대학원생을 한 명 한 명 지도하는 모습에서도 차이는 커요. 그들 스승은 자신이 경험한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친절하게 모든 것을 쏟아 부어요. 한국에서 이런 풍토를 기대하긴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식 경쟁시스템은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 엄청나게 큰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시스템입니다.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죠. 그런데 한국은 지금 토대도 없고 시스템도 없습니다. 육성을 해도 부족할 판이거든요. 이런 환경에서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는 건 젊은 연구자에게 학문을 포기하라는 이야기 아니면, 돈 많은 사람만 연구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죠.

좋은 과학자, 그러니까 세계적 수준에 오르기 위해선 결국 해외유학을 해야 할까요? 한국에선 불가능합니까?

분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여전히 기초과학의 변방이라고 봐야죠. 우리에겐 아직 오리지낼러티, 즉 원초성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교수들은 양적평가에 시달리면서 질 높은 연구를 못하고 있어요. 후학들이 저에게 문의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해외유학을 권할 겁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양적인 팽창을 하고 있는 면도 있으니까, 미래엔 더 좋아지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실험물리학자와 이론물리학자

실험물리학자는 말 그대로 과학실험을 주로 하는 분들이죠. 실험 쪽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요. 굉장히 다재다능합니다. 어떤 경우는 물리학보다 실험에 필요한 일렉트로닉스를 더 많이 공부하기도 해요. 물리실험을 위한 기계특성을 다 알아야 하고, 코딩이나 데이터 분석, 프리젠테이션 같은 능력은 기본이죠. 다방면의 능력자라고나 할까요? 실험하는 사람은 현실감이 매우 높은 사람이에요. 그건 정말 매력적이라고 봐요. 이론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 간 콜라보 연구도 상당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예전 우리 세대만 해도 과학자가 꿈인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최근엔 중3만 넘어도 수학 포기하고, 아예 과학자의 꿈을 접는 아이들이 많아요.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공식을 암기해 푸는 셈법입니다. 수학과 혼동하고 있을 뿐이죠. 내가 생각하는 수학은 추상적인 구조물을 세우는 과정입니다. 해리포터 소설을 쓰는 것과 같아요. 즉, 논리와 상상력이 핵심인데, ‘기본적인 수학적 논리만 가지고 있다면 그 구조물을 쌓아 올릴 수 있다’ 이게 수학의 본질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학교에선 안 가르쳐요. 아이들이 아주 빨리 수학에 정떨어지게 만들죠. 그러니 ‘수포’는 이유가 있어요. 지금의 학교 교육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죠.
물론 개념과 원리를 안다고 수학이 쉬운 학문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수학과 과학은 어차피 우리 것이 아닌 남의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장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학과 외국어를 보는 관점은 많이 달라요. 처음 외국어 배울 때 문법 외운다고 외국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수학이나 과학도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가 있거든요. 외국어도 그 현지인의 어법이 입에 붙기까지는 어떤 절대적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처음에 영어 배울 때 실수한다고 큰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그냥 익숙해질 때까지 가르치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학을 어려워하면 ‘수학 머리’, ‘과학 머리’가 없는 것으로 규정해요. 바로 재능으로 판단해버립니다. 외국어에 당연히 장벽이 있고 치러야 할 대가가 있듯이 수학과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한 기다림과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 바로 수학과 과학이에요. 그래야 비로소 수학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거든요.

최근 수능에 기하나 벡터를 넣을지 논란이 되고 있죠. 교육부 취지는 그 영역을 빼겠다는 건데, 글쎄요. 영역을 줄이는 것이 대안인가? 어렵게 안 가르치고 꼭 알아야 할 개념만 가르치면 됩니다. 대학입시에서 시험범위를 아무리 줄이더라도 상위권 변별을 위해 어처구니없게 문제를 꼬아버리면 학습부담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 범위라도 입시를 위해 난해한 테크닉을 요구해요. 난 이건 교육이나 시험의 본질과 동떨어진, 일종의 괴롭힘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반교육적 행태죠. 이것이 현실이다 보니 학부모 아이들 모두 얽매이게 되죠.

논리와 상상력이 핵심인 수학, 진짜 수학은 수능 이후부터

어차피 현실의 룰은 존재하죠. 너무 복잡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당분간 이런 교육 관행은 계속될 겁니다. 그래서 전 아이들에게 약간의 여유를 가지라고 합니다. 지금 너희들이 요구받고 있는 ‘그 수학’은 ‘진짜 수학’이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 당장 고통스러워도, 그게 수학과 과학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만은 꼭 알아줬으면 합니다. 지금 공부하는 수학이 정말 수학의 본질이라면 수학이나 과학자, 물리학자를 포기하는 것이 가장 좋겠죠. 하지만 대학과 사회에 나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건 확실합니다. 훗날 정말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하면 그때 요구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논리력과 상상력입니다.

워낙 많은 책을 쓰잖아요?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십니까?

모 출판사에서 위대한 인물의 발자취를 추적해 그 인물을 소개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저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편을 맡아서 최근 이탈리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빠르면 내년 중에 갈릴레오 편이 나올 예정이고요. 그리고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레너드 서스킨드의 강연을 엮은 책인 <물리의 정석> 시리즈가 2권까지 제가 번역해서 나와 있는데 곧 3권 번역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끝)


과학자 이종필

현)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교수
네이버 케스트 ‘물리산책’ 연재/한국일보 칼럼 ‘이종필의 제5원소’ 연재 중

서울대학교 대학원 입자물리학 박사
고려대학교 전기전자전파공학부 BK21 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특별연구원
고려대학교 연구원, 연세대학교 연구원, 고등과학원 연구원

금영재 이산아카데미 본부장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