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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0년 만에 돌아온 전설,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학전 제공

그날은 17년 만에 돌아온 HOT의 공연티켓이 오픈 즉시 매진됐다는 기사가 온라인을 장식했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수년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10년 만에 재공연되는 첫날이기도 했다. 팬들이 간절히 보고 싶었던 것은 HOT와 함께 했던 청춘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 1호선’ 재공연을 간절하게 기다렸던 누군가가 보고 싶었던 것도 뜨거운 가슴으로 살았던 청춘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1호선은 사연만큼이나 많은 냄새들이 배어 있었다

스무 살, 1호선은 학교와 집을 오가는 교통수단이었다. 막차 시간을 겨우 맞춰 지하철을 타는 일은 다반사였다. 첫차 역시 단골손님이었다. 막차는 술 취한 사람들이 절반이었다. 막차를 탄 사람들은 대부분 잠을 자거나 졸고 있게 마련이다. 첫차는 기차역을 가는 사람들이거나 일터로 가는 사람들, 먼거리 통학생까지 다양했다. 매번 타는 지하철이었지만 사실 1호선을 좋아하지 않았다. 1호선은 다양한 사연만큼이나 갖가지 냄새들이 배어 있었다. 사람들의 땀냄새, 다음날 아침까지 남아 있는 술냄새, 할머니들의 보따리 속 정체불명의 냄새, 허름한 작업복에 절어있는 쇳내까지 1호선은 냄새만으로도 그 사람들의 사연을 짐작하게 했다.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학전 제공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의 차림새와 짙게 새겨진 아주머니의 주름, 나무등걸같은 아저씨의 손등, 피곤해 몸도 가누지 못하고 옆 사람 어깨에 반쯤 걸쳐 졸고 있는 사람들의 굽은 어깨를 애써 외면하고 보지 않았다. 그 시절에 왜 1호선을 그토록 싫어했을까? 그건 부모님의 고단한 삶을 타인의 모습을 통해 보게 되는 버거움 때문이었다. 1호선 막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휘청거리는 뒷모습에서 흔들리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절대로 내 삶은 1호선 첫차에 오르는 고단함으로 얼룩지게 하지 않겠노라고.

‘지하철 1호선’ 존재의 힘

지하철 1호선은 서울역을 거쳐 청량리를 향해 간다. 연변처녀 ‘선녀’는 연변에서 헤어진 연인 ‘제비’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 선녀는 우연히 찾게 된 청량리 588에서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는 늙은 창녀 '걸레'를 만난다. 학생운동을 하다 청량리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청년 ‘안경’, 사생아로 자라나 588의 자칭 영업부장이 된 ‘철수’, 단속반원과 30년을 싸우고 있는 포장마차 곰보 할매, 지하철역의 밤의 주인 노숙자와 지하철 청소 아주머니, 그리고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내리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는 지하철 1호선의 존재의 힘을 보여준다.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학전 제공

나라가 부도가 나 버렸던 IMF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도 함께 부도나 버렸다. 이십여 년이 흘렀고 사람들은 지독한 시절을 살아남았다. 이제 서울거리의 포장마차는 종로 3가 근처를 가야 볼 수가 있다. 푸드트럭으로 세련미를 내뿜는 현대식 포장마차는 주말 서울거리 명소가 되었다. 지하철은 9호선까지 확장되어 서울과 인근 도시들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해 놓았다. 서울역도 예전만큼 노숙인들과 마주칠 기회가 없다. 청량리 588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그렇게 ‘지하철 1호선’이 실어날랐던 세상은 변해버렸다. 1호선도 리모델링 되었고 더 많이 복잡해졌다. 1호선 주변의 동네는 많은 곳이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변모했다. 시간은 흘렀고 세상이 변했으니 우리의 삶도 변했다에는 동의할 수는 없지만 다시 돌아온 '지하철 1호선'은 분명 10년 전과는 다르다.

다시 써내려가는 전설

10여 년의 기다림과 설레임을 안고 들어선 학전의 무대는 변해 있었다. 170분의 공연을 소화하기 위해 좌석을 개조했고 공간은 좀더 쾌적해졌다. 김윤석,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의 스타배우를 배출한 '지하철 1호선'은 10년만의 재공연에서 완전히 새로운 신예들을 선택했다. 설익은 배우들의 연기는 100회를 거쳐가며 무르익을 것이다. 11명의 배우가 97개의 배역을 나누어 연기하는 초유의 1인 다역은 ‘지하철 1호선’이어서 가능한 듯하다. 이 정도 다역연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이 배우들 중 상당수는 또 다른 무대에서 자신만의 빛을 발하지 않을까. 10주년 재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출연배우들이 특정 회차에 게스트처럼 깜짝 등장하는 이벤트도 펼쳐진다. 배우와 함께 제작진의 스케일도 눈에 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공연된 ‘하나의 봄’을 작곡, 연주한 정재일이 음악감독을 맡았고, ‘지킬 앤 하이드><스위니 토드’의 조문수 의상감독이 97명의 배역 의상을 맡았다.

1994년 초연된 락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우리나라 뮤지컬 최초로 5인조 라이브밴드를 도입한 작품이다. 지하철 1호선을 배경으로 IMF 당시 사회를 현실감 있게 풍자한 우리나라 뮤지컬의 걸작이다. 2008년 막을 내리기까지 15년간 4000회의 공연을 이어간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런 타이틀과 배경설명을 차치하고서라도 '지하철 1호선'은 대한민국 뮤지컬의 전설이라고 하는 것에 이견은 없지 싶다.

락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장소:대학로 학전 블루소극장
공연날짜:2018년 9월 8일~12월 30일
공연시간:170분(쉬는 시간 15분)
관람연령:14세 이상 관람가
원작:폴커 루드비히
음악:비거르 하이만
번안/연출:김민기
편곡/음악감독:정재일
출연진:이홍재, 손진영, 김태영, 윤겸, 장혜민, 정재혁, 최새봄, 손민아, 이승우, 제은빈, 박근식,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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