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리뷰]북한 영화 얼마나 아세요?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스틸컷

1980년대 대학가에선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일어났다. 북이라고 하면 머리에 뿔 달린 괴물 취급을 하던 당시의 반공교육에 맞서 북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는 운동이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고, 우리의 형제임을 확인하는 시도였다. 더 이상 북을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이 나라로 이해하던 수준을 벗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북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단초들이 담겨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안나가 북의 영화로 다가가는 계기와 방식은 독특하다. 안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호주 시드니에서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탄층 가스 채굴이 시작되자,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선전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몇 해 전 평양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선물 받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973년 쓴 ‘영화연출론’ 때문이었다. 안나에게는 탄층 가스야말로 자본주의 최악의 사례였으며, 돈에 눈이 먼 다국적 기업들이야말로 북의 선전영화에 등장하는 완벽한 적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에 대항할 최고의 무기인 선전영화를 배우기 위해 직접 북으로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북을 찾아가서 선전영화 제작 기법과 북의 영화연출 기법 등을 배우고, 익혀 그들의 도움을 통해 ‘정원사’라는 제목의 선전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정식 허가를 받고 북한의 영화산업 현장을 취재하러 간 안나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바로 북한 최대의 국립영화제작소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다. 안나는 북한 영화계 원로인 박정주 감독의 안내를 받으며 촬영소 곳곳을 둘러보았고, 이후 여러 촬영 현장을 돌며 리관암 감독, 공훈배우인 윤수경(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북의 군인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 ‘월미도’에 19살 ‘영옥’역으로 출연하며 인기를 모은 배우)과 리경희(가수 리경숙의 주제가로도 잘 알려진 영화 ‘도시처녀 시집와요’의 주인공) 등 북 영화계의 주요 인물들을 만나 도움을 얻게 된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스틸컷

그리고 그들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영화연출론’에 등장하는 ‘연출가의 창작단의 사령관이다’, ‘창작에서는 크게 노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 ‘연출에서는 감정조직을 잘하여야 한다’, ‘배우연기는 연출가에서 달려 있다’, ‘촬영과 미술에 대한 요구성을 높여야 한다’, ‘음악과 음향을 살려써야 한다’ 등의 연출 원칙을 알게 되고 이 원칙은 ‘정원사’라는 선전영화를 통해 실현된다. 자신들과 다른 영화 제작환경과 현실은 낮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의 폭는 넓어지고 있었다. 안나는 “내가 만났던 북한 영화인들은 모두 솔직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다. 북한에 가기전의 두려움과는 달리 나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객들도 그러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아는 북 영화가 얼마 없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가로막고 있는 현실은 북 영화를 마음껏 보지 못하게 하고, 안나 브로이노스키 감독이 읽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화연출론’도 대중이 읽어선 안될 이적표현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최근 북한 영화가 조금씩 극장에서 상영되며 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이 영화에 소개된 북 영화 제작 현실과 영화제작 이론은 국가보안법의 장벽을 뚫고 북 영화를 이해하는 경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만나는 아직은 낯선 북의 영화들은 생경하게 느껴지면서도 과거 우리 영화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익숙한 정서와 영상을 담고 있는 등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Aim high in creation’이다. ‘창작을 위한 높은 목표’를 뜻하는 말로서 창작에 있어 목적의식을 강조한 표현이다. 김정일이 쓴 ‘영화연출론’에서도 창작에서는 ‘크게 노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One must aim high in creation)’고 강조하고 있다. 북의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는 제목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국내 상영 제목은 수차례 바뀐 바 있다. 지난 2014년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프로파간다가 영화를 덮쳤을 때’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덮쳤을 때’라는 부정적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프로파간다(선전)’이라는 목적의식이 영화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해석이 영화 제목에서부터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스틸컷

이듬해인 지난 2015년 열린 ‘DMZ 국제 다큐영화제’에선 제목이 ‘안나, 평양에서 주체영화를 배우다’로 바뀌었다. 선전영화에 대한 부정적 표현은 사라졌고, 북의 영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이 담겨있는 이 영화를 보다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다만 ‘주체’라는 수식어는 북의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표현일 수 있지만, 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의 사정을 감안해 볼 때 ‘주체’라는 표현은 거리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장벽이기도 했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흘러 극장 개봉을 하면서 ‘주체’라는 단어는 빠지게 됐다. 북에서 특이한 그 무엇이 아니라 영화라는 공통의 예술을 배운다는 가치중립적 의미가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점차 바뀌고 있는 이 영화의 제목은 북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남북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북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을까? 북을 바로 알기 위해선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북의 체제를 희화화하거나 북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무례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북을 극도로 악의적으로 다룬 다른 서구 영화들에 비하면 비교적 북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는 노력과 북의 시각으로 북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