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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증거인멸’ 사태에 검찰 “사법 시스템 무력화된 사상 초유의 일”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임화영 기자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 전관 변호사가 합작한 사법농단 사건 관련 증거인멸 사태에 검찰이 “철저히 조사해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양승태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1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유해용 변호사가 유출한 자료가 파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속히 영장 심사를 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음에도 영장심사가 아무 이유 없이 3일간 미뤄지는 동안 대량의 대법원 재판 자료가 고의로 폐기된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법 시스템이 마치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무력화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의 특허소송 관련 대법원 기밀 문건을 무단 유출하고,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자료를 법원행정처로부터 전달받은 의혹 및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처리를 지연시키는 데 관여한 의혹 등을 받는 유해용 변호사(당시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자 영장을 세 차례나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수사를 용이하게 하고자 기밀 유출 피해자 격인 대법원에 고발을 의뢰했으나,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세 번째 압수수색 영장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유 변호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무단 유출한 기밀 문건들을 모두 파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 번째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14년 유 변호사와 함께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서 근무했던 인물이다. 이를 두고도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판사는 10일 “유해용이 대법 재판 자료를 반출, 소지한 것은 대법원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며 유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도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검찰 관계자는 “어제 영장심사를 담당했던 박 판사는 그 시기 유 변호사와 함께 근무한 후배 재판연구관 중 한 명이었다”며 “이런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영장심사를 회피했어야 한다는 게 법조 일반의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한 근무를 넘어 사건과 연관성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며 “특히 (박 판사가 해당 영장심사를 처음 배당받은) 지난주 토요일 (근무하지 않았다면) 다른 영장판사들이 심사하는 것이 통상 절차인데, 특별한 이유 없이 월요일로 미뤄져 박 판사가 그대로 심사해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유 변호사와 관련한 세 번째 압수수색 영장을 지난 7일 청구했다. 박 판사에게 영장심사가 배당된 건 지난 8일이었으나, 당시 박 판사는 주말이 지나 결론을 내겠다고 검찰에 통보했다. 주말 동안 박 판사 외에도 영장전담 판사 두명이 정상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 경우 통상 근무를 하는 영장판사가 영장을 심리한다.

유 변호사는 이날 법원의 제한적 영장 발부에 따른 검찰 압수수색이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원에서 이미 해당 자료가 공공기록물도 아니고, 자료 반출이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제가 관련 자료를 계속 가지고 있는 한 검찰이 끊임없이 압박할 것이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해서 폐기하게 됐다”고 증거인멸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그 기록물들이 개인으로 쓴 것인가. 수석연구원 자격으로 쓴 것 아니냐”며 “어떻게 그런 이유로 공공기록물이 아니라는 것인지 모르겠고, 영장 청구 대상인 사실을 명백히 알고 있음에도 고의로 (증거들을) 파기한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각종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12일 오전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장 기획조정실장과 김현석 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 고법 부장판사급 고위 법관들을 잇따라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강경훈 기자

법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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