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전국의 건설노동자들이 하루 벌이를 포기하고 ‘총파업’에 나선 사연
폭염 속에서 일하던 건설노동자가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
폭염 속에서 일하던 건설노동자가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뉴시스

#1. 포괄임금을 적용하면 하루에 2만 원씩 임금이 줄어든다. 오전 7시부터 많게는 하루 12시간 근무하는데, 삼시 세끼 모두 밖에서 먹는 우리는, 임금에 식대가 포함되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10년 차 건설노동자 구상대(57) 씨-

#2. 화장실이 완벽한 현장이 한 곳도 없다. 올해 여름 너무 더웠는데, 쉴 곳도 없고 쉴 수 있는 터전도 없었다. -의정부서 일하는 40대 건설노동자 A 씨-

#3. 건설노동자는 가장 어렵고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법 적용이 취약하다. 그나마 법으로 보장된 것조차 업체가 마음대로 적용해 노동자의 임금이 착취당하고 있다. -20년 차 건설노동자 정용길(52) 씨-

#4. 폭염 탓에 45분 일하고 15분 쉬게 해줬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위에서 ‘빨리 일하라’ 고 눈치 주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대우도 많았다. 남자보다 급여를 덜 주고, 일거리가 없으면 집에 가라 했다. 불편한 간이 화장실을 포함해 개선돼야 할 것이 많다. -1년 차 건설노동자 하정선(40) 씨-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올해 여름, 열악한 작업환경을 버텨온 건설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온종일 폭염에서 일하고 제대로 된 휴식조차 보장받지 못했지만, 오직 생업을 위해 견뎌왔다. 하지만 오늘, 귀한 하루 치 임금을 포기하고 총력 투쟁에 나섰다.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포괄임금 지침 폐기를 위한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노동자들이 ‘포괄임금 지침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포괄임금 지침 폐기를 위한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노동자들이 ‘포괄임금 지침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은 12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셜빌딩 앞 차도에서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포괄임금지침 폐지하고 휴일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이날 결의대회는 전국 곳곳에서 진행됐다. 최대 집결지인 서울에만 7천 명(주최 측 추산)의 건설 노동자가 모였다. 세종시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앞, 부산시청 앞까지 포함하면 약 1만 3천 명의 건설노동자가 총파업 결의대회에 함께 했다.

건설노조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각종 수당이 기본급에 포함돼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2011년 ‘건설 일용근로자 포괄임금 업무처리 지침’을 마련해, 근로관계가 단절돼 계속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순수 일용근로자’에 대해 법정수당에 ‘연장·야간수당’이 포함되도록 했다. 일정 기간 이상 사용이 예정된 ‘일당제 일용근로자’는 법정수당에 ‘연장·야간수당’과 ‘휴일·주휴수당’이 포함되도록 했다.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고용노동부 포괄임금 지침 폐기를 위한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고용노동부 포괄임금 지침 폐기를 위한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뉴시스

건설노조는 포괄임금제 ‘합법 적용’이란 명목으로 현장에서 노동자의 임금 착취가 가능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노동부 지침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포괄임금을 엄격히 규제하겠다는 정부 정책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 대법원의 판결에도 위배되는 지침”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주심 김소영 대법관)은 지난 2016년 [포괄임금약정에 관한 사건]에서 건설노동자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포괄임금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건설노동자는 포괄임금 형식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포괄임금 약정에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며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용주를 임금체불로 고소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묵시적 합의로 포괄임금 약정이 성립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근로 형태의 특수성으로 인해 실제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이 곤란’하거나 ‘일정한 연장·야간·휴일근로가 예상’돼야 하는데 건설노동자의 경우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건설노동자의 업무가 감시·단속적이거나 교대·격일 등으로 근무하는 형태여서 실제 근로시간의 산출이 어렵지 않고, 연장·야간·휴일근로가 예상되는 경우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고용노동부 포괄임금 지침 폐기를 위한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고용노동부 포괄임금 지침 폐기를 위한 건설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뉴시스

건설노동자 10명 중 9.4명 “주휴수당 받아본 적 없다”

건설노조는 조합원 346명에게 지난달 7일부터 4일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합원들은 ‘일요일에 쉽니까’라는 질문에, 29%(92명)가 ‘일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15%(48명)는 ‘대체로 일하고 가끔 쉰다’고 답했다.

또 ‘일요일에 일하고 주휴수당을 받아본 적이 있냐’는 질문엔 94%(305명)가 ‘없다’고 답했다. 건설노조는 “일주일 만근을 하거나 초과를 해도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도 주휴수당을 받고 쉬고 싶다”고 호소했다.

건설노조는 지난 5일부터 ‘건설현장 포괄임금 지침 폐기’를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또한 ‘건설현장 포괄임금 지침 폐기촉구 10만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건설노조 이영철 토목건축 분과위원장은 “우리가 이렇게 투쟁한 결과 어제와 오늘 노동부와 청와대 면담을 진행했다. 정부는 연내에 건설현장 포괄임금 지침폐기를 약속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우리 건설노조를 찾아와 (포괄임금지침 폐기를) 약속한 지 1년 5개월이 되어 가지만 지켜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고 발언했다.

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홍순관 위원장 권한대행은 “우리는 임금을 받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포괄임금 지침이 우리의 행복할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며 “자본가들이 앞장서고, 정부가 선봉에 서서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고 규탄했다.

향후, 건설노조는 포괄임금제 폐지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 맞춰 2차 총파업도 불사하겠단 입장이다. 이날, 서울 도심에 모인 7천 명의 건설노동자는 청와대 앞 효자파출소까지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알렸다.

김도희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