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찰나와 영원을 함께 담은 한국 뮤지션들의 첫 번째 ECM 음반
니어 이스트 쿼텟
니어 이스트 쿼텟ⓒ니어 이스트 쿼텟

비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 있다. 좋기 때문에, 아니 좋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음악을 틀어두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두거나 곁에 두고 수시로 듣고 싶은 음악. 내 마음을 닮아 마음의 그늘에 금세 스미는 음악. 음악의 빛과 색과 향기로 내가 드러나고 내가 보이는 음악. 음악으로 깊어 계속 거닐게 되고, 계속 퍼 올리게 되는 음악.

사실 삶은 남루한데 음악만 풍성해진다. 말은 가난한데 귀만 부유해진다. 귀의 풍요로 행복을 대체할 수 없는데 귀의 쾌감만 커져도 되는 것일까. 세상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아 날마다 한숨 쉬게 하는데, 음악을 듣는 기쁨은 여전해도 괜찮은 것일까. 반문하고 반문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이 무슨 죄가 있을까.

요즘 내 귀는 니어 이스트 쿼텟(Near East Quartet)의 세 번째 새 음반에서 좀처럼 걸음을 옮기려 하지 않는다. 음반을 듣지 않아도 음반의 질감과 사운드가 계속 맴돈다.

니어 이스트 쿼텟의 첫번째 음반
니어 이스트 쿼텟의 첫번째 음반ⓒECM

듣지 않아도 음반의 질감과 사운드가 계속 맴도는 음반

지난 8월 31일 발표한 새 음반은 음악 마니아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새 정규음반이 화제가 된 이유는 음반을 내놓은 회사가 ECM이기 때문이다. 재즈를 안다면, 음악 마니아라면 모를 수 없는 ECM은 독일의 재즈 레이블이다. 팻 메스니와 키스 자렛을 비롯한 재즈 스타들의 명반을 숱하게 내놓았고, 매력적인 사운드와 인상적인 음반 디자인으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만들어낸 회사에서 니어 이스트 쿼텟의 새 음반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한국 출신의 뮤지션들이 ECM에서 음반을 발표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온전히 한국 뮤지션들만의 음악으로 ECM에서 음반을 낸 경우는 처음이다. 갈수록 음반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해서 하찮게 여길 일이 아니다. 케이팝과 케이록을 비롯한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 진출 한 켠에 니어 이스트 쿼텟의 이름이 더해지면서 장르의 균형을 맞추었고, 한국 대중음악의 고른 성장을 증거했기 때문이다.

여섯 곡을 담은 이 음반에는 테너 색소폰과 베이스 클라리넷 연주자인 손성제, 기타리스트 정수욱, 드러머 서수진, 소리꾼 김율희, 타악 연주자 최소리가 참여했다. 2010년에 결성한 니어 이스트 쿼텟은 그동안 한국의 전통음악과 재즈를 바탕으로 다른 지역의 음악을 연결했다. 1970년대 이후 세계의 대중음악은 국경을 넘나들어 특별해지고, 국경을 허물면서 특별해진다. 유행은 특정 지역과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세계적인 유행음악이 만들어지고, 지역에서만 향유하던 음악은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 사랑받는다.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하던 음악을 다른 지역에서도 거뜬히 생산하고 향유한다. 지역성은 음악에 특별함을 불어넣지만 인기를 얻은 음악의 지역성은 금세 보편화되어버린다. 음악 역시 세계적 자본주의화에서 자유롭지 못해 서구 중심의 대중음악과 섞이며 서로 닮고 친근해진다. 특정 지역의 전통과 지역성만 내세운 음악은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지역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니어 이스트 쿼텟은 사물놀이, 산조, 창 중심의 한국 전통음악이나 서구 대중음악 양식과 연결하는 전통음악과 달리 동서양의 민속음악들을 자유롭고 폭넓게 연결하면서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어나갔다. 그 중에서도 쓸쓸하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에 몰입하면서 국경을 뛰어넘은 음악의 보편성을 담아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음악, 그러나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는 음악의 복합적인 면모를 구현했다. 한국적이며 보편적이고, 민속적이며 현대적인 음악으로 니어 이스트 쿼텟의 음악은 자리를 잡았다.

니어 이스트 쿼텟
니어 이스트 쿼텟ⓒ니어 이스트 쿼텟

원곡에 머무르지 않고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니어 이스트 쿼텟’

이번 음반에서도 니어 이스트 쿼텟은 한국의 전통음악을 거름으로 삼아 출발하곤 한다. 첫 곡 ‘이화’에서 손성제가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고 정수욱이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면서 강렬하고 몽롱한 사운드를 만들어낼 때 선명한 두 악기의 호흡과 멜로디는 유려하고 구슬퍼 한국 전통음악의 정한에 닿는다. ‘못’은 상주모심기노래 성주함창을 바탕으로 했고, ‘갈까부다’도 그렇다. ‘못’을 비롯한 여러 곡에서 김율희가 노래를 하면서 이 음악의 출발이 한국 전통음악임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니어 이스트 쿼텟은 원곡의 예스러움과 질박함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들은 원곡에 담겨 있는 슬픔을 몽롱한 연주의 아우라로 뒤덮어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오래 전의 슬픔은 금세 오늘의 슬픔이 되지만 그 슬픔은 오늘을 넘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슬픔으로 나아가 곡 전체를 감싸버린다. 이 초월의 세계가 니어 이스트 쿼텟 음악의 차이이며 개성이고 핵심이다. 판소리 춘향가를 인용한 ‘바람’이나 ‘갈까부다’, 뱃노래를 모티브로 하는 ‘파도’에서도 니어 이스트 쿼텟은 한국 전통음악의 곡진한 정서의 밀도와 깊이를 훼손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하면서 여기에 서정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더해 한국 전통음악을 무한의 현대음악으로 확장한다. 한국 전통음악을 인용하면서 보존하고 변주해서 주요한 어법과 정서를 훼손하지 않은 채 재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음악은 한국 전통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만큼 특화하고자 하는 정서와 사운드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창조성과 연주력을 함께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 일렉트릭 기타와 색소폰, 클라리넷, 드럼 등의 악기는 원곡의 기저에 쌓인 감정과 이야기의 세계로 깊이 내려가 그 감정과 이야기를 죄다 끌고 올라와서 밑도 끝도 없이 펼쳐놓는다. 서수진의 드럼을 비롯한 모든 악기들이 녹아내리며 장르와 어법을 확장하고, 흘러가며 넘나든다. 통렬하지 않고 애달프지 않은 대신 더 애잔하고 아득한 소리의 파장. 끝나지도 멈추지도 않을 것 같은 마음의 영원. 찰나와 영원이 이 한 장의 음악에 다 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