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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6월항쟁 세대의 눈으로 금기였던 ‘주체사상’을 사색·관찰하다
책 ‘87, 6월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책 ‘87, 6월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사람과사상

2014년 우리 사회엔 종북몰이 광풍이 몰아쳤다. 그 광풍의 중심에 통합진보당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포장한 것에 불과하고, 통합진보당의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실제로는 연방제 통일을 통한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추구한다고 주장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여 통합진보당을 해산했다.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진보진영에서조차 외면하는 이들이 많았다. 바로 결정문에 등장하는 ‘주체사상’ 등 무시무시한 단어들 때문이었다. 해산심판 과정에선 ‘주체사상’이 무엇인지, 통합진보당 강령과 무엇이 닮았다는 것인지 아무런 논증은 없었지만 ‘주체사상’은 낙인이 됐다. 30년 전 대학시절에 주체사상 관련 서적을 가지고 있다 처벌받았다는 사실조차 증거라며 제시됐다.

‘주체사상’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필수적인 ‘사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주체사상’은 ‘사상’ 아닌 ‘낙인’이 되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문에서 보듯 30년 전 가방 속에 들어있던 ‘주체사상’ 관련 서적이 지금까지도 낙인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주체사상’은 학문의 영역에서 제대로 토론되지도, 제대로 연구되지도 못한 채 절대 봐서는 안될 책으로 대접받고 있다. “대동강맥주 맛이 좋다”,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하다”는 식의 말조차도 고무 찬양이라며 통일콘서트를 종북콘서트로 몰아 신은미 씨를 이 땅에서 추방해버린 과거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에서 주체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논의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할 수밖에 없다. 험한 길이지만 북과 제대로 소통하고, 앞으로의 통일시대를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걸어야 할 그 길을 여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바로 ‘87, 6월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이다.

“성경을 본다고
모두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불경을 읽는다고
모두 불교신자가 되는 게 아니듯
주체사상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모두 주체주의자가 되지는 않을 것”

이 책은 오랜 기간 금기시됐던 주체사상에 대해 1987년 6월 항쟁 세대의 사상 철학 경험 속에서 사색 관찰한 소감을 담고 있다. 저자 이정훈은 청년시절 고려대학교 삼민투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대표로 구속된 경험이 있다. 전형적인 민주화세대의 일원인 그는 국가보안법 사건(일심회)에 연루돼 구속됐다 간첩혐의와 관련해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저자는 주체사상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검사들에게,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사상의 자유와 이른바 이적표현물에 대한 그들의 기준과 판단을 반박하기 위해 작성한 항소이유서와 기타 자료 글을 3년여의 감옥생활 동안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이를 다시 책으로 정리해 이번에 출간하게 됐다.

이 책의 강점은 주체사상을 아주 쉽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맑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상과 사람중심의 주체사상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로 매우 딱딱할 수 있는 주체사상의 철학, 주체사관, 주체 정치경제학, 주체의 문예이론과 방법론 등 방대한 내용을 다이제스트 식으로 핵심 내용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서술했다.

저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상탄압 정책으로 우리 사회에서 주체사상의 실내용에 대해 학계와 언론은 물론, 진보진영조차 충분히 이해하고 토론할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수구언론의 악의적인 보도와는 다르게 실제 맑스주의나 주체사상 등의 사상문제를 깊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진보진영에조차 그리 많지 않다고 꼬집는다. 주체사상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안보와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고, 실제 지금도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로 처벌당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을 본 모두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불경을 읽는다고 모두 불교신자가 되는 게 아니듯 주체사상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모두 주체주의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좋고 나쁨은 직접경험해야 알게 되는 것이고, 알게 되면 위험하다고 겁주는 식으로 어떤 사상을 막는 건 상식 이하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주체사상을 무어라 평가할까? “주체사상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있다’는 사람중심의 현대유물론 사상입니다. 사실 유물론에 방점을 찍은 ‘현대유물론’이란 표현보다는 사람중심의 ‘주체사상’이라 칭하는 게 합당합니다.”

아울러 저자는 주체사상이 역설적이게도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응용할 분야가 많은 인문사회학의 가치도 가진 연구대상이라며 어떤 사상이든 그 장점을 활용할 줄 아는 게 진짜 실용·실질주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병창 동아대 인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 사이에 평화의 길이 열렸다. 이제 우리도 북맹을 벗어나 북쪽 사회와 북쪽 사람들의 사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간 국가보안법의 철벽 때문에 북쪽의 사상은 신비화되거나 고립되었다. 이 책은 그런 신비화와 고립을 깨기 위해 북쪽의 사상을 마르크스의 사상과 비교하면서 토론과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다. 또한 간략하며 쉽고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으니, 앞으로 남북의 협력을 모색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필수적인 저서가 아닐까 기대된다”고 밝혔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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