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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나이 서른, 대기업 그만두고 무작정 사전 MC로 뛰어들다 - MC 배, 배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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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배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MC배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양지웅 객원기자

딱 한 시간 짜리 분량의 방송 프로그램도 수없이 많은 이들의 노고로 지탱된다. 무대를 쌓고 제작하는 일부터 PD, 작가에 엔지니어까지. 이날 만난 MC 배도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다. KBS 1TV ‘열린음악회’와 tvN ‘어쩌다 어른’ 정기 녹화의 사전 진행자로 활약 중인 배영현 씨를 만났다.

사전 진행은 지난한 기다림과 기다림으로 엮여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녹화와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녹화 사이, 카메라 불이 꺼져 있는 시간동안 방청객들의 ‘텐션’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들인다. 거의 창조에 가깝다.

“녹화 현장에 오신 분들은 저를 보러 오시는 게 아니잖아요. 가능한 제 소개나 어필은 자제하죠.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선물로 분위기를 잡기도 하거든요. 만약에 그런 게 없으면 막막해요. 아무리 말을 잘 해도 처음 이목을 끌 ‘무엇’이 필요하거든요.”

“처음 ‘열린음악회’ 사전 진행 맡았을 때는 출연자 대기실을 돌며 제 큐카드 뒷면에 가수들의 친필 사인을 직접 받았어요. 이 무기로 관객들과 어색함을 푸는 거죠. 대본 하나 없어도 귀기울여주고 호응해주면 하나도 안 떨리고 술술 풀리거든요. 그러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기발한 애드리브가 나오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그런 열정이 모여 방송 프로그램의 질을 한 층 높여준다. ‘내꺼중에 최고’를 부르러 온 가수 이현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 잠시 마이크를 잡은 MC 배는 관객들에게 미리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즉석에서 이뤄진 연출에 제작진도 관객들도 만족했다고 한다. 해당 방송분은 9월 8일 촬영되어 방송을 앞두고 있다.

진행 중인 MC 배, 배영현
진행 중인 MC 배, 배영현ⓒ제공 = 배영현

“관객들이 저를 보러 온 게 아니잖아요. 가려운 부분을 긁어줘야죠”

대화 도중 영현 씨는 계속 ‘관객들은 나를 보러 온 게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돌이켜 떠올려보니 기자간담회 진행자로 자주 등장하는 그이지만, 특별히 튀는 행동을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제 이름 석 자 말할 시간에 그날 행사의 주인공에 대해 더 많이 말해요. 관객들이 저를 보러 온 게 아니잖아요.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죠. 가수를 보러 온 아이돌 팬들, 간담회에 온 기자들, 행사에 온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거죠.”

“걸그룹 에이프릴 팬미팅 진행을 맡았어요. 당일이 오기 전에 팬카페에 미리 가입을 했죠. 팬미팅 당첨된 아이디들 볼 수 있잖아요. 그거 보고 미리 외워뒀다가 출석 체크처럼 행사 직전에 불러 주는거에요. ‘안녕하세요. 뚱이님 오셨나요’, ‘저 카페 등업 1번 문제 맞췄는데... 여기 운영자분, 등업 좀 시켜주세요’ 이러면서 관객을 제 편으로 만들고 시작하는거죠.”

MC 배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그 자리에서도 그는 소개멘트 이후에는 자신을 어필하지 않는다.

“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프로그램 첫 방송 날짜 또 한 번 강조하고, 음원 나오는 시간 알려드리고, 엠바고(보도유예) 기한 다시 한 번 공지하고 그러죠.”

최근에는 더욱 일거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다음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여름 휴가도 가지 못해 이번 추석 연휴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가수 효민과 함께 진행 중인 MC 배, 배영현
가수 효민과 함께 진행 중인 MC 배, 배영현ⓒ제공 = 배영현

“카메라 불이 켜지면 내려오는 직업, 그래서 서글프기도 하죠”

회사 선배이자 인생 멘토 격인 MC 딩동이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전 진행자의 본분은 카메라 밖에서 방청객과 호흡하는 것이다. 녹화가 시작되면 카메라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그게 일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서글플 수 있다.

“카메라 불이 켜지면 내려오고 불이 꺼지면 올라가는 직업이잖아요. 제작진 요청에 대본도 없이 급히 무대 올라가서 분위기 띄우죠. 그러다가 문제 해결되면, 또는 시간이 되면 내려가야 해요. 조금 공허하죠.”

“‘열린음악회’ 녹화 끝나고도 마이크를 잡아요. 관객들이 빠져나갈 때 안전에 유의해 달라고, 사고 나면 안 된다고 멘트하는데 누구도 주목하고 듣진 않거든요. 귀로만 듣지. 그게 당연하죠. 그래도 뒷모습 보면서 말을 하는 거라 서글프기도 해요.”

“내가 주인공이 아니니까 내려간다고 생각하고, 이게 일이니까 그러려니 해요. 그럴 땐 내려가면서도 ‘지금 박수 치시지 말고 녹화 시작하면 박수 쳐 달라’라고 관객들에게 요청하고, 끝까지 마이크 잡고 말을 하죠. 녹화가 잘 돼야 저도 좋잖아요.”

KBS '열린음악회' 사전 진행중인 MC 배, 배영현
KBS '열린음악회' 사전 진행중인 MC 배, 배영현ⓒ제공 = 배영현

대기업 그만두고 뛰어든 전문 진행자의 길, 경쟁력이 되다

아버지 반대에 부닥쳐 예대 진학을 포기한 그는 4년제 공과 계열로 진학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MT, OT 등에서 진행자를 도맡아 보았다고. 남 앞에서 이야기하기 좋아하니 학원 강사를 해 볼까 하는 생각에 소위 1타 강사 강의를 들으며 교수법을 탐구한 끝에 결국 수학 강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다 보니 잘 하기도 하고, 남들도 잘 한다고는 하는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시간 보내다가 군대에서 여러 행사 진행을 보며 다시 알게 됐죠. 좋아하기도 하고, 잘하기도 하고, 남들도 잘 한다고 하고. 그래서 어떻게든 방송 연예 근처라도 가 보려고 했어요. 다 떨어졌는데 결국 케이블 방송사 PD로 붙었죠.”

사내 행사 진행자까지 도맡아 보던 그는 결국 새 프로그램 기자간담회 사회까지 보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방송국 이곳저곳을 사원 신분으로 돌아다니던 그는 tvN ’SNL 코리아’ 현장에서 만난 사전 진행자 딩동을 따라 전문 진행자의 길로 들어선다. 막 대리로 진급하던 때였다.

“연봉 3천만원 받다가 갑자기 300만원이나 벌까 싶게 됐죠. 말이야 ‘꿈에다 적금 들었다’라고 생각했지만 막막했었죠. 약 2년간 방송 현장을 따라다니다가 2016년 경, ‘열린음악회’ 사전진행을 단독으로 맡게 됐어요. 기회는 딱 한 번이었죠. 딩동에게 배운 걸 떠올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사를 마쳤죠. 그때부터 ‘열린음악회’ 사전 진행을 제가 맡게 됐어요.”

“돌아보면 일반 4년제 대학 나오고, 회사원 출신이었다는 게 유니크한 것 같아 좋아요. 보통 진행은 공채 개그맨 출신 또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하잖아요. 개그맨보다는 진행에 집중하고, 아나운서보다는 재미를 추구하는 전문 진행자. 두 직업 사이 어딘가에 저를 있게 해 준 경력이라고 생각해요.”

MC딩동(왼쪽)과 MC배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MC딩동(왼쪽)과 MC배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양지웅 객원기자

“공식 직업분류엔 없는 ‘MC’, 포털에 프로필 걸리고 싶어요”

영현 씨에 따르면 진행자라는 직업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식 직업 분류표에 올라 있지 않다고. 그래서 ‘MC’라는 직업만으로는 포털 사이트에 프로필로 등록되지 않는다.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개최한 MC 아카데미에 백여 명 가까이가 몰렸어요. 추려서 10명 정도에게 제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분류에 없는 게 문젠가요. 재밌게 하다 보면 많이들 불러 주니까요. 요즘 1인 방송 하시는 분들도 재미있으니 방송에서, 광고에서 부르잖아요. 그래도 포털 사이트에 프로필은 걸렸으면 해요. 저를 찾는 분들이 검색해도 프로필이 안 나와 당황하시거든요.”

본인이 좋아하며 잘 하는 것 같고, 남들도 잘 한다고 하는 일이어서 시작하게 됐다는 전문 진행자. 3년 해 보고 안 되면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2015년 시작한 그는 2018년, 쉴 새 없이 다음 일정으로 이동했다. 선배인 MC 딩동과 함께 진행자 군단을 만들고 싶다는 영현 씨. 다음 꿈은 몇 년 만에 이루게 될지 궁금해진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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