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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움’ 고발 6개월..간호사들은 여전히 숨막히다
서울 잠실나루역 인근 성내천을 지나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는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하얀 리본이 매달려있다.
서울 잠실나루역 인근 성내천을 지나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는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하얀 리본이 매달려있다.ⓒ제공 : 간호사연대

"저는 병원에서 간호사들에게 내리는 공지사항을 들을 때마다 '숨 쉬지 마세요.'라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병원이나 간호협회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새로운 지침을 내리는 식으로 반응한다. 태움이 이슈가 되자 ‘태움방지 배지’를 만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소속 최원영 간호사)

직장 내 괴롭힘인 '태움'과 업무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선욱 간호사 사건 이후 6개월이 흘렀다. 과연 무엇이 바뀌었을까?

최근 정부는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직장 내 괴롭힘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12일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의료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 후에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의료현장에서 실효성있게 실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등은 1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병원업종의 직장 내 괴롭힘 근절방안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등은 1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병원업종의 직장 내 괴롭힘 근절방안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민중의소리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등은 1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병원업종의 직장 내 괴롭힘 근절방안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공대위는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에 대한 서울아산병원장의 사과, 산재인정, 재발지를 위한 신규간호사 교육 제도 도입(일명 박선욱법)을 촉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공대위에서 활동하는 최원영 간호사는 과중한 업무 속에서 무수한 원칙과 새로운 지침 속에서 '숨 못 쉬고 살아가는 간호사들의 현실'을 먼저 지적했다. 이어 병원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 대신 간호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행정 지침을 내리는 상황을 설명했다.

최 간호사는 "불이 난 건물에서 유독가스가 나오고 있을 때 방독면을 제공하거나 대피방송을 해서 빨리 대피시켜야 하는데, '숨 쉬지 마세요', '숨을 참고 불에 탈만한 것들이 모두 연소되서 불이 저절로 꺼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라는 공지사항을 내리는 것과 똑같다"고 의료 노동 현장의 상황을 비유했다.

그러면서 "불타는 건물에서 연기가 자욱한 상황에서 사람 수보다 모자라게 방독면을 던져주고 싸우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면 싸움이 안 일어나냐"며 "서로 괴롭히지 말라고 태움 뱃지를 달면 과연 태움이 없어지냐"고 꼬집었다.

8년째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 간호사는 과중한 업무 속에서 지침을 어길 수 밖에 없는 의료 현장의 현실을 토로했다. 그는 "신규간호사를 잘 가르치고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주지 않으면서, 신규간호사를 괴롭히지 말라는 지침만 내려오면 아무것도 안 가르치게 된다"며 "어찌보면 가장 무서운 태움"이라고 말했다.

최 간호사는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의료사고와 환자 안전 문제에 대해서 경고했다. 그는 "나중에 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신규 간호사가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키면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당신 혹은 당신의 가족"이라며 "예외는 없다. 정당 대표나 재벌 회장, 전직 대통령씩 되는 사람도 똑같은 환경에서 치료받는 걸 제 눈으로 봤다"고 강조했다.

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직장 내 괴롭힘 대책, 병원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재현 활동가는 "서울아산병원 법무팀은 지금까지 유족과 공대위를 만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때가 되면 만나겠다는 입장"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병원은 도의적인 책임으로라도 사과조차 하고 있지 않다"고 질타했다. 그는 "병원 스스로의 자정능력이 없다"며 "서울아산병원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현장 감독 후 책임자에 대한 징계 및 처벌 등을 강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현 활동가는 "일하는 사람이 상사, 고객 등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때 업무를 멈추거나, 그 자리를 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권'은 사람이 죽기 직전에 위급함이 있어야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는 등 협소하게 해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등은 1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병원업종의 직장 내 괴롭힘 근절방안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등은 1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병원업종의 직장 내 괴롭힘 근절방안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민중의소리

강경화 한림대학교 간호학부 교수는 '간호노동현장의 일터괴롭힘 실태와 해결과제'에 대해 발제했다. 그는 간호사 일터의 특징으로 ▲과도한 업무량 ▲와인잔 모양의 기형적 인력구조 ▲폐쇄적 조직문화 ▲비용절감 요구 속에서 환자 안전의 최전방에 선 점 등을 꼽았다.

강 교수는 "제2~3의 박선욱 간호사가 어디에선가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며 "간호사들도 일부는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 내 괴롭힘을 보고하는 과정에 가해자가 개입돼 있어, 피해자들이 신고기관을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피해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태움을 겪는 간호사들에게 '절대 불의와 타협해라. 네가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씁쓸해 했다.

특히 강 교수는 "상담과 신고 등은 이해관계 당사자인 협회보다는 독립된 기관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신뢰할 수 있는 위원회 구성과 간호사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그는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행해도 의료기관이 실행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병원 경영진의 인식변화와 실행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김재현 흉부외과 전문의는 '직장 내 괴롭힘'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이윤중심의 비정상적인 경영방식과 의료 수가를 지목했다. 김 전문의는 "환자 수와 검사 건 수 채우기에 급급한 의료 환경은 의료현장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착취하고 있다"며 "인력에 대한 적정 수가보다는 고가의 장비를 이용한 검사 수가를 더 높이 책정해 불필요한 검사를 자주하게 한다. 그렇게 적자를 벌충하려는 병원이 많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소속의 김동현 변호사는 최근 여야 합의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률안에 대한 내용과 한계를 살펴봤다.

김 변호사는 "법률에 직장 내 괴롭힘이 도입된 것은 최초의 일"이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재 인정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법률개정을 통한 직장 내 괴롭힘 규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 예컨대 근로자성이 다투어지는 프리랜서는 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4인 이하 사업장에까지 해당 규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하위 법령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고용노동부의 개입가능성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사용자의 의무조항들(사실조사의무, 징계의무)이 규정돼 있기는 하지만 위반 시의 처벌 과태료 부과 근거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용자가 조사를 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격리시키는 등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직접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셈이다.

또한 "법안은 직장 내 괴롭힘 교육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며 "예방·구제 양 측면에서 법 개정 시 의욕 했던 효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괴롭힘은 여전히 심각한 사회적 현상으로 남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들도 참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박선아 사무관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안들이) 이번 주 중으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 조항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산업안전보건법 내에 추후 법률을 명확하게 규정을 두는 방안, 현재 산업안전보건교육 의무화 돼 있는 내용 안에 직장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하위법령에 추가하는 방안으로도 반영할 수 있다"며 정책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변성미 사무관은 "간호협회, 병원협회, 보건의료노조가 같이 신규간호사 교육관리 구축 쳬계 가이드라인 재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 안에는 예를 들면 3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신규간호사 교육기간을 부여하고 현장에 투입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경력간호사들을 환자를 돌보지 않고 순수하게 신규간호사들의 교육과 관리만 전담하는 '교육전담 간호사'로 배치하는 데 필요한 예산 76억원을 신규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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