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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슈요뮤직] 김사월이 만든 처연한 중편 연애 드라마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포크 싱어송라이터들 중에서도 돋보인다. 2014년 싱어송라이터 김해원과 함께 김사월x김해원으로 공식 데뷔했을 때부터 그녀는 눅진하고 육감적인 사운드와 풋풋하고 여린 사운드를 함께 뿜어냈다. 눅진하고 육감적인 사운드와 풋풋하고 여린 사운드는 서로를 대조시키며 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냄으로써 각각의 매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김사월이 기대고 있는 복고적인 질감은 김사월 음악을 더 농염하고 원숙하게 했을 뿐 아니라, 레트로가 힙이 되는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김사월x김해원 음반과 김사월 자신의 솔로 음반이 연달아 한국대중음악상을 받고, 공연 때마다 젊은 음악 팬들이 몰려든 이유이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9월 16일 두 번째 정규 음반을 발표했다. 제목은 [로맨스]. 사랑 이야기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드라마, 문학, 미술, 연극, 영화, 음악, 춤 등으로 대대손손 그리고 노래하고 쓰고 찍은 사랑 이야기. 사랑과 이별 이야기이다. 사랑은 두 사람 혹은 그보다 많은 사람이 만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살고 헤어지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사랑에는 당사자 안팎의 계급, 권력, 세계관, 세대, 시대, 욕망, 젠더를 비롯한 현실의 가치와 이데올로기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예술 작품들, 특히 사랑 노래들은 달뜨고 아프고 그리운 마음을 증폭시켜 구구절절 토로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랑 노래들은 사랑을 수행하는 주체의 내면을 보여주고, 그/그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어떤 계급과 권력과 세계관과 세대와 시대와 욕망과 젠더를 지니고 사랑을 수행하면서 갈등하고 화합하는지 보여준다. 사랑은 가장 내밀하고 적나라하며 강력한 발산이자 충돌이다. 그래서 오늘도 사랑 노래는 멈추지 않으며 여전히 문제적이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김사월 제공

김사월이 음반 한 장에 열 두 곡을 담아 노래한 사랑 노래는 어떤 내면과 충돌을 드러내고 있을까. 그런데 그녀가 싱어송라이터이기 때문에 이 음반이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기록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그녀가 여성이고 20대라고 이 음반을 20대 여성, 그러니까 2018년에 20대를 통과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자전적 연애담으로 해석할 필요도 없다. 예술가의 창작물은 예술가의 기록인 동시에 그/그녀가 만든 허구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음반을 김사월의 이야기이자 김사월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그녀의 다른 음반이나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음반에서는 대개 음악 언어만큼 노랫말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음반에서는 더더욱 노랫말의 비중이 높다. 이 음반의 수록곡들이 로맨스의 서사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노랫말의 서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지고, 때로는 곡이 노랫말의 무게에 눌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음반 수록곡들의 편곡은 대체로 단출한 편이다. 김사월이 포크 뮤지션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노랫말 자체를 잘 들을 수 있고, 노랫말의 서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절제해서 편곡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로맨스] 음반은 사랑의 달콤하거나 쓰디쓴 순간만을 기록하지 않고 그 모든 순간을 아우른다. “내 마음 받으러 올래?”라고 “난 운전은 못하니 네가 가지러 와”라고 이야기하는 조심스러운 사랑의 시작부터 이 음반은 마음 깊숙이 들어간다. 음반은 이 로맨스의 주인공들이 “사랑보다 먼저 넌 나를 사랑하라 했”지만 “너도 그거 못하”는 처지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를 돕고 싶어”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은 시작된다. 이 음반에는 먼저 자신부터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임에도 “어둠으로 우리 달려가봐요”라고 용기를 내게 하는 사랑이 있다. “나를 사랑해줘요”라고 요청하는 자신이 있다.

이렇게 불완전한 모습,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는 사랑이 달콤하기만 할 리는 없다.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어줄 자리가 있을까”를 묻는 이유는 자신부터 온전히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음반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자신과 충돌하며 불화하고 일관되지 않은 이의 내면과 정체성, 그리고 필연적인 실패의 기록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환상이나 고정관념으로 억압하거나 감추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 음반은 사랑을 수행하는 현재의 여성 혹은 젊음 혹은 인간의 면모를 냉정하고 풍부하게 담아낸다.

김사월 정규 2집 ‘로맨스’ 표지
김사월 정규 2집 ‘로맨스’ 표지ⓒ김사월 제공

“네가 서울에 있어 난 서울에 왔”고, “네가 그림을 그려 난 그림을 그렸”을 정도이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를 나는 못 본체 지나가”는 마음도 사랑이고 로맨스의 실제이다. “나와 함께 있어줄 순 없어?”라고 물으며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호소하는 솔직하고 연약한 모습, 그러나 결국 “엉엉엉” 울게 되는 현실은 노래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랑받고 싶어 사랑하고 행복하고 싶어 사랑하지만 번번히 깨닫는 사실은 서로의 차이와 거리이다. ‘그리워해봐’ 같은 곡은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 서로 다르게 아플 수밖에 없는 사랑의 모순을 감추지 않는다. 어떤 사랑도 각자의 열망이나 노력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상대를 바라보거나 부르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알게 된다. “우린 헤어질 사람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 쓸쓸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성장이나 성숙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 관습적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사랑의 본질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를 만든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정하는 일 또한 사랑의 과정이다. ‘죽어’의 노랫말로 기록한 처절한 자기 인식과 절망은 로맨스가 아니라면 좀처럼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이다. 사랑의 체험과 기록으로 로맨스는 이토록 비감하고 잔인하며 지질한 현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안겨준다. 그리고 “난 견뎌내거나 파멸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는 쓰라린 깨달음, “만질 수도 가질 수도 없는 너무 소중한 너를/나의 세상에서 없애”야만 한다는 숙제를 배달시켜준다. 인간은 이렇게 하루하루 피할 수 없는 숙제를 꾸역꾸역 해나가면서 살아간다. 이 음반은 사랑의 기록만으로서가 아니라 피치 못하고 불가피한 인간 삶의 핍진한 기록으로서 생생하다. 다행히 경험하고 알게 되면 견딜 수 있고 피할 수 있고 다르게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김사월은 이 이야기를 대체로 담백하고 단출한 음악으로 담아냈다. 12곡의 수록곡은 어쿠스틱 포크, 포크 록을 기본으로 하되 한 두 악기에 강세를 두고 공간감에 변화를 준다. ‘연인에게’에서는 건반과 일렉트릭 기타, ‘옆’에서는 건반, ‘프라하’에서는 스트링 연주, ‘오렌지’에서는 관악기 연주 등으로 포인트를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여기에 김사월은 곡마다 보컬의 명도와 채도를 조절하면서 달뜬 마음과 흔들리고 추락하는 마음을 적절하게 연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김사월은 이번 음반을 중편소설급의 처연한 연애 드라마로 완성하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내비쳤다. 고백과 기록의 생생함만으로가 아니라 곡과 소리의 창작자이자 연출자로서 김사월을 보여준 또 한 장의 음반. 듣는 이들의 무수한 사연들이 얹혀질 음반.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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