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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지옥⑥]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프랑스 교육공무원이 학교와 맞설 수 있었던 이유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고 가면, 노동자대표 선거에 출마할 계획이에요. 제가 겪었던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레베카 먼에르(Rebecca Munier, 32·여)의 말이다.

‘정신적 괴롭힘’ 관련해 프랑스에서 취재를 시작한지 3일째, 취재진은 현지에서 괴롭힘 피해를 겪었던 교육공무원인 레베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교육공무원으로, 이 대학에서 재직 중 1년여 기간 동안 동료 남성 직원들로부터 정신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노조의 도움을 받아 괴롭힘의 문제를 대학 구성원에게 알린 레베카는, 현재 많은 사람들로부터 피해사실에 대한 인정과 지지·응원을 받으며 심적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레베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노조 간부 선거에도 나설 계획이다. 자신이 겪은 피해가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에서다. 그의 말을 통역한 통역사가 말했다.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이 레베카처럼 연대의식이 강해요. 나는 당했지만 싸워서 이겨본 경험이 있으니, 남들은 당하지 않도록 내가 도와주겠다는.”

지난 8월 30일 파리에서 가장 크다는 ‘소르본 대학 피에르 에 마리 퀴리 캠퍼스’(Université de Sorbonne Campus Pierre Marie Curie, 이하 소르본 대학)에서 그를 만났다.

소르본 대학으로 가는 길, 프랑스 풍경 자료사진.
소르본 대학으로 가는 길, 프랑스 풍경 자료사진.ⓒ민중의소리

이날 오전, 취재진은 꽃과 신비로운 식물들이 가득한 ‘파리 식물원’(Jardin des Plantes)을 가로질러 소르본 대학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 앞 벤치에 앉아 30분가량 기다렸을까, 통역을 맡을 황씨와 함께 레베카가 미소 띤 얼굴로 “Bonjour(봉쥬르)”라고 인사하며 취재진을 반겼다.

우리는 함께 학교 앞 식당에서 장난끼 가득한 이탈리아 주방장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수많은 꿀벌이 ‘윙윙’ 날아다니는 학내 카페 테라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레베카가 당한 ‘정신적 괴롭힘’

레베카는 2016년 10월 교육공무원으로 공립대학인 소르본 대학 전산실로 배정을 받아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첫 출근과 함께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가 일하는 공간 곳곳에 외설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레베카가 일하는 공간 곳곳에 외설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레베카가 일하는 공간 곳곳에 외설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레베카 제공

전산팀 직원들은 레베카를 제외하고 모두 남성이었다. 레베카가 들어왔으니, 최소한의 배려에서라도 그림을 지웠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껄끄러운 존재로 취급했다. 레베카는 전산팀에 배치된 첫 날을 떠올리며 “부서 사람들은 여성인 제가 이곳에 온 것에 대해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였다”며 “직접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제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말했다.

출퇴근길에 인사도 안 하며 무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에게 일을 부여하지 않았다. 휴가를 가면서 업무를 대신 봐야할 레베카에겐 어떤 인수인계도 하지 않았다. 함께 절대 밥을 먹지 않는다던가, 휴식시간에도 그를 무시했다. 투명인간 취급을 한 것이다.

몇 달이 지나서야 레베카는 전산팀 상사에게 문제점을 말했다. 상사는 별다른 조치 없이 “네가 더 노력해봐”라고 말할 뿐이었다. 레베카는 학교 인사과에도 문제점을 보고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공무원사회의 특징이었다. 레베카는 “사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오히려 인사과가 곧바로 움직인다”며 “하지만 프랑스 공공기관에서는 보고를 받아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공무원은 보통 1년가량 수습생활을 하는데, 이 기간을 마치면 정식발령을 받는다. 수습기간을 마친 지난해 6월, 레베카는 인사과 직원과 면담을 하면서 황당한 상황을 인지하게 됐다. 자신의 상사와 인사팀이 처음엔 레베카의 수습기간을 연장시키려 했고, 레베카가 노조를 만나는 걸 알자 ‘해고’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뒤로, 레베카는 싸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레베카가 싸울 수 있었던 배경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레베카는 프랑스 노동조합 CGT와 함께 피해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만들어 대학 구성원들에게 배포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레베카는 프랑스 노동조합 CGT와 함께 피해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만들어 대학 구성원들에게 배포했다.ⓒ레베카 제공

레베카는 혼자가 아니었다. 레베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랑스 최대 노동조합 단체인 ‘노동총동맹’(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 줄어서 CGT)이 있었다.

사건을 알리기도 전에 CGT가 먼저 연락을 해 왔다. 레베카는 그 길로 노조에 가입했다. 그는 “수습기간 보고서가 나오면, 그걸 노조 관계자들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안다”며 “CGT 관계자가 관련 내용을 보고, 먼저 연락을 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CGT는 레베카와 함께 ‘정신적 괴롭힘’ 문제를 대학 구성원들에게 알렸다. 2페이지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했다. 전단지에는 업무 공간 곳곳에 그려진 외설적인 그림을 실었고, 그에게 가해진 ‘정신적 괴롭힘’을 나열했다. 또한 관련 법령도 명시했다.

대학 구성원들이 레베카의 피해사실을 인지하고 함께 공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육당국도 뒤늦게 문제해결에 나섰다. 레베카가 근무하던 공간의 외설적 그림을 모두 지우도록 조치를 취했고, 대학 내 모든 업무 공간에 문제가 될 만한 그림은 없는지 조사를 진행했다.

레베카는 교육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콩쿠르를 통해 다른 대학에서 9월부터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노조의 지원을 받으며 행정소송도 전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보통 노동문제는 노동법원에서 소송이 전개되지만, 공무원의 경우엔 행정법원에서 잘잘못을 가린다.

소르본 대학 내 풍경 자료사진
소르본 대학 내 풍경 자료사진ⓒ민중의소리

■고통스러운 피해사실 입증 과정

노동자의 ‘정신적 건강’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있다고, 모든 게 쉽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법이 계속 수정된다. 관련법에서 가장 많이 수정된 부분이 ‘피해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정신적 피해를 입은 노동자라도,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다행히 레베카의 경우엔 대놓고 업무공간에 그려져 있던 ‘외설적인 그림’ 등이 증거자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레베카는 “증빙자료를 만들기 위해선 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꼼꼼히 되새겨 보아야하는 문제가 항상 남아있는 셈이다. 그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꿋꿋하게 해 나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사실에 대한 공론화 이후 후회한 적은 없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개인적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레베카는 “겪었던 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정받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며 “힘이 되어준 직장 동료들과 학내 구성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레베카 사례로 본 한국·프랑스의 공통점과 차이점

레베카 사례로 봤을 때, 프랑스와 한국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레베카의 사례로만 봤을 때, ‘차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사실상 프랑스 공무원 사회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조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해고’를 검토했다는 내용을 봤을 때, 노조에 대한 반감도 한국사회에서처럼 프랑스 사회에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레베카가 노조의 도움을 받아 떳떳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괴롭힘’을 방지하는 프랑스 법제도와 강력한 노조가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레베카가 CGT와 함께 자신이 받은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에선 공무원도 자유롭게 ‘노조 할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CGT가 합법적인 노조로서 레베카의 일에 관심을 갖고 교육당국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한국에서도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노조설립 신고증을 발부받긴 했으나, 사실상 ‘해고자를 조합원에서 배제하겠다’는 굴욕적인 합의를 전제로 해야 했다. 비슷한 문제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금까지 노조활동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노조법에서는 해고자를 노조 조합원으로 둘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사실상 ‘말 잘 듣는 노조를 할 게 아니라면, 노조를 하지 말라’는 법이다.

후진적인 법체계가 여전히 한국사회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호소가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규정하고 관련 법제도를 만들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사례와 개념을 정리하고 법 제도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 민중의소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내외 사례들과 통계자료, 연구를 분석했습니다. 총 10편의 기사와 인터랙티브 콘텐츠, 동영상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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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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