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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지옥⑤] 프랑스는 어떻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용자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나
2018년 8월27일, 취재진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취재를 위해 프랑스를 찾았다.
2018년 8월27일, 취재진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취재를 위해 프랑스를 찾았다.ⓒ민중의소리

8월27일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12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프랑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Aéroport Paris-Charles de Gaulle)에 도착했다. 온통 거리에 1800년대 후반 건물들이 중후한 멋을 뽐내고, 거리를 걷기만 해도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에 빠져드는 낭만의 도시 파리. 아름다운 풍경 만큼이나 프랑스의 노동법은 앞서있다.

프랑스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노동법으로 방지하면서 체계적으로 대응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현지 언론보도만 보더라도, 직장 괴롭힘의 문제는 한국과는 다른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프랑스라고 처음부터 잘 했을까. 시행착오는 없었을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한국에서 이를 미리 살펴 볼 수 있다면, 좀 더 분명한 법제정과 제도 정비가 가능하지 않을까. ‘민중의소리’가 프랑스를 찾은 이유다.

프랑스 대표 노동조합인 노동총동맹(CGT)를 찾았다. 프랑스 시간으로 8월 29일 오전 9시30분, 파리 동부 몽트뢰유에 위치한 CGT 본부를 방문했다.

실뱅 골드스테인(Sylvain Goldstein) 국제부 정책관이 취재진을 맞았다.‘직장 건강’ 분야에서 활동 중인 토니 프라켈리(Tony FRAQUELLI)와 산업보건전문가 세르주 주르누(Serge JOURNOUD)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역은 현지 노동문제에 경험이 있고 10여 년째 파리서 거주 중인 한국인에게 부탁했다. 그들이 말하는 프랑스 노동환경은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노동총동맹(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은 프랑스 내 대표 노동조합 중 하나로 줄여서 CGT라고 불린다. 30여개 산별노조의 연맹인 CGT는 조합원 수가 70만 명에 이르며, 가장 많은 사업장 노조대표자를 보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본사는 파리 동부 몽트뢰유(Montreuil)에 위치해 있다. 본사 건물엔 수천 명이 상시 근무할 수 있는 공간과 각종 복지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CGT 관계자에 따르면, 30여개로 나뉘어져 있던 산별노조 본부를 한 곳으로 모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실뱅 골드스테인(Sylvain Goldstein) 국제부 정책관과 ‘직장 건강’ 분야에서 활동 중인 토니 프라켈리(Tony FRAQUELLI), 산업보건전문가 세르주 주르누(Serge JOURNOUD)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
실뱅 골드스테인(Sylvain Goldstein) 국제부 정책관과 ‘직장 건강’ 분야에서 활동 중인 토니 프라켈리(Tony FRAQUELLI), 산업보건전문가 세르주 주르누(Serge JOURNOUD)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민중의소리
프랑스 대표 노동조합 CGT 건물 자료사진
프랑스 대표 노동조합 CGT 건물 자료사진ⓒ민중의소리

■무엇이 ‘직장 내 정신적 괴롭힘’을 낳나?

“괴롭힘의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낳는 (기업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로 살펴야 해요.”

인터뷰 중 토니가 강조한 말이다. 그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가해자 한 사람이 처벌을 받고 교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기 마련”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토니는 특히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개인의 인성 문제로만 비춰지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개인의 문제로 비춰지면, 구조적인 문제가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건의 배경을 살펴보면, 어떤 누가 와도 정신적 괴롭힘을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역사 황씨는 쉬운 이해를 위해 토니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회사에서 목표달성을 실시하는데 그 목표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라면, 직장 상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밑에 직원들을 닦달하는 것 밖에 없죠.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괴롭힘의 구조를 형성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토니는 “CGT는 항상 구조적인 문제를 살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괴롭힘의 문제에 경험이 없을 땐, CGT도 가해자 개인을 처벌하는 법적대응에 급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보니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져도 사람만 바뀐 채 똑같은 일이 반복해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구조적문제를 살펴야하는 또 다른 이유로, 세르주는 ‘동료끼리의 괴롭힘’을 들었다. 내부 실적경쟁 등 다양한 문제로 동료끼리도 괴롭힘이 발생하는데, 이럴 경우 노조도 개입하기가 난감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같은 약자의 입장에 놓여있는 노동자끼리의 괴롭힘이기에 어느 누구의 편을 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토니는 “회사가 노동자들 서로를 반목시키는 경우”라며 “그렇기에 노조 입장에선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봐야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현지시간 기준 2018년 8월 29일 오전 9시30분, 파리 동부 몽트뢰유에 위치한 CGT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은 ‘직장 건강’ 분야에서 활동 중인 토니 프라켈리(Tony FRAQUELLI)가 답변하고 있는 모습.
현지시간 기준 2018년 8월 29일 오전 9시30분, 파리 동부 몽트뢰유에 위치한 CGT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은 ‘직장 건강’ 분야에서 활동 중인 토니 프라켈리(Tony FRAQUELLI)가 답변하고 있는 모습.ⓒ민중의소리

■강화된 ‘입증책임’

프랑스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는 법은 2002년경에 시행됐다. 처음 제정된 법이 그대로 유지되지 못했다. 여러 번 바뀌었다. 주로 바뀐 내용이 ‘괴롭힘에 대한 증거를 입증하는 부분’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세르주는 “기존에는 괴롭힘에 대한 피해자 증언만으로도 피해사실이 어느 정도 입증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사진과 이메일 등의 증거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입증책임은 피해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도 자신의 결정이 괴롭힘과 무관하다면 반드시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통역사는 “프랑스 대부분의 기업에선 모든 지시와 피드백이 메일을 통해 이루어지고, 경고할 경우엔 반드시 서면으로 배송하게 돼 있다. 이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노동자든, 사용자든 항상 입증할만한 근거가 이메일이나 서면 형태로 남기 때문에 서로 조심해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괴롭힘 입증에 있어서, 피해자 개인차원의 대응은 어렵다. 프랑스에선 노조에 노동자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CGT 또한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피해자가 노조 조합원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실뱅은 “CGT는 연대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가 찾아와도 함께 문제해결에 나선다. 언제나, 노동자라면 노조에 가입을 했든, 안 했든”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를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인사과와 직장 내 협의체에 신고해 문제해결을 요구할 수도 있다. 보통은 협의체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만, 해결되지 않을 땐 노조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세르주는 입증책임의 강화로 산업의(Médecine du travail. ‘노동의’라고도 해석한다)의 역할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프랑스 회사에는 일종의 직장 내 협의체인 ‘위생안전근로조건위원회’(CHSCT)를 두고 있는데, 이곳과 연계된 산업의가 노동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검진한다.

노동자에게 건강상 문제가 발견되면, 산업의는 회사에 적정한 배치전환 등 개별적인 조치를 제안할 수 있다. 또 관련 정보를 노조로 알리는 경우도 있다. 산업의의 진단을 통한 피해사실 입증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통로가 노동자에게 열려 있는 셈이다.

다만, 세르주는 ‘정신적 괴롭힘’과 자주 혼용되어 제보되는 ‘성적인 괴롭힘’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그는 “‘성적인 괴롭힘’도 반복성을 띄면, ‘정신적 괴롭힘’이 된다”면서도 “뚜렷하게 입증할만한 증거가 남지 않는 특성 때문에 ‘성적인 괴롭힘’의 경우 다루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토니와 세르주는 “‘성적인 괴롭힘’은 모든 경우가 개별적으로 다르고, 일반화가 어렵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과제”라고 한탄했다.

지난 2018년 8월29일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CGT본사를 방문했을 때, 본관 중앙 로비에선 CGT와 관련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2018년 8월29일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CGT본사를 방문했을 때, 본관 중앙 로비에선 CGT와 관련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민중의소리
설명 2018년 8월27일, 취재진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취재를 위해 프랑스를 찾았다.
설명 2018년 8월27일, 취재진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취재를 위해 프랑스를 찾았다.ⓒ민중의소리

■법 제정 이후, 달라진 점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와 존엄, 신체적·정신적 건강, 직업적 장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반복적인 정신적 괴롭힘을 겪어선 안 된다.’ (프랑스 노동법전 L.1152-1)

관련법령이 제정된 이후, 변한 점은 무엇일까?

세르주는 “노동시장이 변하기 때문에, 법이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조항을 통해 법이 (시장을) 따라갈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용자의 의무를 단순 노동자의 신체건강에 국한시키지 않고, 정신적 건강으로 확대하면서 모든 노동환경 변화를 소화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괴롭힘의 문제가 방지되는 건 아니다. 관련법이 강하게 괴롭힘의 문제를 규제하고 있어 대놓고 괴롭힘을 행하진 못하지만, 에둘러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일을 안 주고 권한을 뺏는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선 이를 “사람을 장롱에 넣는다”고 표현한다.

■“모든 기업은 노동의 하향평준화를 시도한다”

취재진은 국내의 프랑스계 기업에서 발생한 ‘직장 내 정신적 괴롭힘’ 사건에 대해서도 물을 기회가 있었다. 화장실을 몇 번 갔다 왔는지를 수시로 보고토록 하고, 면전이나 전화통화로 끊임없는 압박을 가하다가 결국 노동자가 정신건강 문제로 쓰러지는 사건이 프랑스계 회사에서 발생한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들의 대답은 냉정하면서도 현실적이었다. 일단 현지에서 계약을 했으면, 현지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르주와 토니, 실뱅은 다음과 같이 입을 모았다.

“프랑스기업들이 딱히 도덕적으로 우월한 게 아닙니다. 이곳 공기업들도 해외에 나가서는 현지 상황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합니다. 한국의 법에서 미흡한 부분을 이용하는 것이죠.”

2018년 8월27일, 취재진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취재를 위해 프랑스를 찾았다. 사진은 뤽상브루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모습.
2018년 8월27일, 취재진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취재를 위해 프랑스를 찾았다. 사진은 뤽상브루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모습.ⓒ민중의소리

■느긋함의 나라 프랑스, 연대정신으로 뭉친 프랑스 노동자들

인터뷰는 2시간을 훌쩍 넘기고 난 뒤에야 끝났다. 실뱅의 안내를 받으며 CGT를 둘러본 취재진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했다. 통역사 덕분에, 프랑스 도착 후 처음으로 먹는 밥다운 밥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 중 누구도 종업원에게 다그치지 않았다. 파리의 식당은 그랬다. 취재진은 2시간 동안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한국에서처럼 다급하게 종업원을 불렀다간 오히려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분위기였다. 정신적 건강을 중시하는 파리의 문화였다.

파리에서 10여년을 살아왔고, 수년 동안 컨설턴트 일을 하면서 프랑스를 방문한 한국 기업인들을 여러 번 만나봤다는 통역사는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기업인들의 마인드는 한국의 기업인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요. 보통 한국의 기업인들은 직원들을 생각할 때 ‘내가 쟤들을 먹여 살려’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여기선 ‘쟤들이 일을 해서 나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기업인들의 마인드가 더 우월하다는 말일까. 아니다. 통역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프랑스 기업인들은 강력한 노동법과 프랑스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의 마인드는 이런 두려움의 결과다.

프랑스 노조 조직률은 8%다. 한국보다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기업인들이 노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한번 파업에 나설 때 노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동료 직원들, 다른 직종의 시민들까지 나와서 함께 연대하기 때문이라고 통역사는 설명했다.

프랑스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과 제도는 그저 노동현장의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시민들이 함께 관심을 갖고 노력해 온 결과였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호소가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규정하고 관련 법제도를 만들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사례와 개념을 정리하고 법 제도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 민중의소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내외 사례들과 통계자료, 연구를 분석했습니다. 총 10편의 기사와 인터랙티브 콘텐츠, 동영상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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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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