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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전히 이곳에는 숨죽여 우는 간호사들이 있습니다”
서울 잠실나루역 인근 성내천을 지나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는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하얀 리본이 매달려있다.
서울 잠실나루역 인근 성내천을 지나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는 육교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하얀 리본이 매달려있다.ⓒ제공 : 간호사연대

"올해 2월 저의 동료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하던 서울아산병원의 신규간호사 고 박선욱씨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게도 박씨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그 역시 '나도 박선욱 간호사였다'고 말했다.

그가 병원으로 출근하는 길인 성내천 다리에는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리본이 걸려있었다. 리본은 비바람에 헤지고 끊어지기도 했다. 그는 그 리본들을 볼 때마다 박 간호사가 잊혀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병원에 다가갈수록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졌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 '타닥 타닥'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가득했다.

"박선욱 간호사가 세상을 떠난 후 병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공문만 내려보낼 뿐이었죠. 쉬쉬하는 병원의 반응을 보면서 아주 답답했어요."

병원은 내부 감사팀 조사와 경찰 조사를 통해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태움이나 과로 등의 문제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병원은 고인이 예민하고 우울한 성격이었다며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리고 현재까지 사과하지 않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병원에서 괴로움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간호사. 이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 병원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는 '이곳이 과연 노동자들에게 건강한 병원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기존에 있던 간호사들은 그대로예요. 여전히 똑같은 병원이죠. 박선욱 간호사가 겪었던 태움이나 과도한 업무는 신규 간호사뿐만 아니라 경력을 가진 간호사들한테도 해당되는 문제에요."

박선욱 간호사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그 후 병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인 A씨를 병원에서 만났다.

그는 신규간호사들의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기존 간호사들의 업무량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의 사례를 설명하며 병원 어디엔가 제2~제3의 박선욱 간호사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밤에는 혼자 15명까지 봤어요. 한 시간에 환자 몇 백 명을 상대하기도 했고요."

입사 초기 A씨는 환자들에게 밝게 웃으며 다가갔고, 간호 업무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연차가 올라가면서 차츰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게 됐다. '혹시나 내 실수로 환자가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게 됐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정성껏 돌보고 싶었지만 맘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혼자 감당해야 할 환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약 하나를 실수로 잘못 넣으면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중증의 환자들이 주로 병원에 왔다. 환자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늘 마음 속에 새겼지만, 쉴틈없이 돌아가는 병원 속에서 환자를 대하는 일은 언젠가 일어날 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공포로 변해갔다.

쉴틈없이 뛰어다니며 환자를 돌봤지만, 환자들이 몰려와 욕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 명만 보내 달라고 수간호사에게 얘기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화장실이 너무 급했지만, 참기 일쑤였다. 다급한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못 본 척 할 수 없었다.

몇 백명의 환자에게 설명하다보면, 금세 목이 쉬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다리는 퉁퉁 부어있었다. 아픈 환자들을 걱정하는 보호자들을 웃는 얼굴로 대해야 한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언성이 높아지거나 욕설을 내뱉는 보호자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힘들어졌다. 갑질하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간호사들을 태웠다고 그는 말했다.

신규 때는 새벽 5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했다. 정오에 출근했다가 다음날 새벽에 출근한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퇴근하기도 했다. 그는 늘 칼퇴근 없이 연장 근무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쉬는 날에도 다시 병원에 와 교육을 들었다고 말했다.

"내게 인권이란 게 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점 이런 제 자신이 싫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만두려고 해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겁이 나더라더고요. 여기서도 그런데 다른 데 가면 얼마나 더 심할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는 4년간 악착같이 공부해 자신이 꿈꾸던 이 병원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임상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 힘들어도 버텼다. 그래도 '내일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입사 후 1년이 지나자 동기 중 절반이 병원을 떠났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병원이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쏟아지는 업무에 체력과 정신이 고갈되고 있었다.

달라지지 않는 병원 시스템을 보며 그는 자신이 마치 '충전기 없는 배터리'가 된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몇년 동안 차곡 차곡 쌓이면서 그는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결국 스스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A씨는 가방에 있던 우울증약을 꺼내보였다. 그는 자신처럼 병원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숨죽여 우는 간호사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로 늘 눈에 눈물이 고여있는 간호사가 있었어요. 업무에 치여서 자신을 돌보지 못하다가 우울증을 겪는 간호사들이 있어요. 하지만 병원에서는 쉬쉬하죠. 간호사들이 자신의 상태를 병원에 말하는 순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거든요."

병원에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신고해본 적은 있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원의 소리'라는 병원 내부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디로 접속하고 들어가 기록하는 것에서 오히려 감시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병원에는 비밀이 없어요. 태움이나 갑질에 대해 병원에 말해도 결국 가해자한테 이야기가 들어가거든요. 아마 병원 안에 있는 상담소를 찾아가는 간호사들도 별로 없을 거예요."

그는 병원들이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인력을 충원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사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간호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이곳은 선망하는 곳일 수 있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다니다 보니까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잊지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면 임상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거고, 또 병원 내부의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선배들과 동료들, 후배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병원에서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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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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