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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노래] 메르스보다 무서운 것

2015년, 대한민국은 메르스에 대한 공포로 뒤덮여 있었다. 그 때 서울대병원에서는 공지가 하나 내려왔다. 삼성병원의 메르스 환자가 음압격리병실이 갖춰진 서울대병원의 감염전문병동으로 오고 있다고, 임시로 이 병동에서 일할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메르스 병동에 자원할 사람을 찾는다는 공지사항이 내려오자 병동엔 소란스러움이 일었다. 나는 당시에 혈액투석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공지사항을 듣자마자 나는 메르스라는 질병에 대한 정보를 검색을 해보았다.

메르스.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현재까지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으며, 증상에 대한 치료를 위주로 하게 된다. 중증의 경우 인공호흡기나 인공혈액투석 등을 받아야 되는 경우도 있다.”

‘투석’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15년 메르스 노출자진료병원으로 지정된 한 병원 의료진이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입원한 음압격리병실 업무를 보고 있다.
지난 2015년 메르스 노출자진료병원으로 지정된 한 병원 의료진이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입원한 음압격리병실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고민 끝에 메르스 병동에 가다

병원 안에서 혈액투석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매우 제한적이다. 24시간 투석기계인 CRRT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중환자실 출신 간호사밖에 없고, 간헐적 투석인 일반 HD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혈액투석실 출신 간호사밖에 없다. 그리고 그 두가지를 전부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중환자실 출신의 혈액투석실 간호사밖에 없다.

만약 환자가 악화되어 투석이 필요해진다면 투석기계를 다룰 수 있는 간호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혈액투석실에 중환자실 출신 간호사는 나를 포함해서 10여명 정도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간호사들의 연령대가 30대 초중반이어서 대부분은 집에 어린 아이가 있거나 임신을 계획중인 사람들이었다.

메르스 환자가 인공호흡기나 투석기계 등을 사용한다면 중환자실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반드시 필요할텐데…. 부모님 생각도 나고 온갖 잡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자원자가 적으면 강제로 차출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 끝에 그래도 누군가 가야 한다면 그나마 제일 나이도 어리고 평소에 건강한 편인 내가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수간호사님께 메르스 병동에 자원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수간호사님은 지금 우리 병동은 휴직자가 있어서 인원이 1명 부족한 상태니까, 여기서 차출하진 않을 것 같지만 일단 네 뜻은 알겠다고 하셨다. 그런 수간호사님의 바람과는 무색하게 말이 계속 바뀌었다. 몇 시간 간격으로 계속 전화가 왔다. ‘자원자가 부족해서 네가 가게 될 수도 있다…다음 주쯤에 가게 될 것 같다…며칠 뒤에 가게 될 것 같다…내일 아침에 투석실 말고 메르스 병동으로 출근해라…!’

그렇게 나는 다음날 바로 메르스 병동으로 출근하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메르스 병동에서 일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좋은 간호사와 의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나에겐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간호사로서 그런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메르스 병동에서 우주복같은 옷을 입고 땀을 비오듯 쏟으며 일하는 동안 나를 두렵게 했던 것은 메르스가 아니었다.

메르스 병동에서 근무할 당시 병원에서 마련해준 숙소. 낡은 건물, 시멘트 바닥에, 접이식 침대만 놓여 있다. 당시 간호사들은 이 숙소에서 3천원 가격의 도시락을 먹으며 환자들을 돌봤다.
메르스 병동에서 근무할 당시 병원에서 마련해준 숙소. 낡은 건물, 시멘트 바닥에, 접이식 침대만 놓여 있다. 당시 간호사들은 이 숙소에서 3천원 가격의 도시락을 먹으며 환자들을 돌봤다.ⓒ최원영 간호사 제공

메르스보다 더 두려웠던 것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말’이었다.

메르스 환자가 바로 옆에 있는지도 모르고 응급실에서 열심히 환자를 보다가 메르스에 감염된 의사가, 언론에 의해 인터넷 댓글을 통해 잔인하게 난도질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메르스 병동을 자원했다하더라도 만약 내가 메르스에 감염된다면 내가 죽고 사는 것은 둘째치고 나의 행적이 다 추적될 것이고 그 중 단 하나의 허술함이라도 발견된다면 나는 골빈 간호사, 무책임한 간호사, 미친년 등으로 매도 당할 것이 뻔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메르스 병동에서 일하는 기간동안, 그리고 그 후에도 메르스 잠복기가 끝날 때까지 병원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만 지냈다.

숙소라고 하기도 민망한…우리끼린 러시아 감옥이라고 불렀다. 병원 부지 안에 리모델링을 위해 비워둔 낡은 건물 하나가 었는데, 먼지 쌓인 사무실에 가운데가 푹 꺼진 접이식 침대와 시멘트바닥에 은박 돗자리 하나를 깔아놓고 지냈다.

책걸상 하나 없는 폐허같은 그곳에서 나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철저히 격리복을 입고 주의를 기울였다 한들, 만에 하나라도 내가 감염된다면…서울대병원 담장을 넘어서 대학로 거리를 몇 걸음이라도 걸어다녔다면 설령 내가 메르스에 걸려 죽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욕할 것 같았다.

다행히 나뿐만 아니라 우리 병원 의료진들은 누구도 메르스에 감염되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메르스사태도 그렇게 끝이 났다.

페이스북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 올라온 관장실습 폭로
페이스북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 올라온 관장실습 폭로ⓒ출처 = 간호학과, 간호사 페이스북

관장실습은 인권침해다

얼마 전 나에게 2015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그 계기는 새로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것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일부 간호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장실습’을 하는 사건이었다. ‘관장’은 항문에 고무 튜브를 넣고 약을 주입해서 인위적으로 배변을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4년간 같이 밥을 먹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끼리 서로에게 항문과 생식기를 노출하게 해가며 이런 실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21세기에 이런 인권침해적인 일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에게 불필요한 고통이나 수치심을 야기하는 모든 행위들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자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라고? 내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의료인에게 받는 관장과 단순히 그 고통과 수치심을 느껴보기 위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받는 관장이 어떻게 동일한 감정을 유발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내 개인 SNS에도 올리고 여러 언론사에 제보를 하고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인권침해가 분명해 보이는 이 사건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 것 뿐인데 기사의 댓글은 처참했다. 나는 사명감도 없고, 간호사 자격도 없고, 관장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환자의 고통이나 수치심을 절대 모르는, 사람 몸에 실습도 안 해보고 환자에게 바로 관장을 하는, 환자를 실험대상으로 여기는 나쁜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매우 건강한 편이고 크게 다쳐본 적도 없다. 내가 다쳐서 응급실에 간 것은 간호사로 일하면서 환자 이송침대에 부딪혀 무릎이 찢어졌을 때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입원치료는 커녕 평생 약을 복용해본 적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래서 중환자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에게 관장뿐만 아니라 내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온갖 치료와 처치들을 수행한다. 중환자들이 받는 수많은 치료가 어떤 느낌인지 직접 받아본 적은 없지만, 내가 겪어보지 않았기에 함부로 가볍게 평가하지 않는다. 환자가 느끼는 고통에, 환자가 표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나는 환자에게, 그리고 환자로 인해 슬픔에 잠겨있는 보호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애썼다.

오늘도 내 담당환자의 보호자가 ‘어제 내가 퇴근하고 나서 환자가 계속 최원영 간호사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기를 살려주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했다. 나는 지난 8년간 나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는 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그래서 내가 그럭저럭 괜찮은 간호사라고 생각하며 일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태어나서 관장을 받아본 적도 없고 학교에서 모형이 아닌 친구들끼리 관장실습을 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고 있으니, 나는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 하는 나쁜 간호사인가? 심폐소생술 상황에서 환자에게 중요한 기도유지를 하는 관이 빠질까봐 환자의 토사물이 범벅이 되는데도 맨손으로 그 기관내관을 한참동안 잡고 있었던 적도 있다. 나는 간호사로서의 사명감이 없는 간호사인가?

국내 일부 대학 간호학과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장 실습을 하고 있다는 보도에 달린 댓글.
국내 일부 대학 간호학과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장 실습을 하고 있다는 보도에 달린 댓글.ⓒ다음 캡쳐

관장실습을 거부한다고 사명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환자가 되어서 관장이 필요한 순간을 제외하고, 실습 등의 목적으로 관장을 할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다. 관장은 아주 간단한 술기이다. 간호사로서의 사명감과 환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고작 동기들 앞에서 항문을 드러내게 하는 것인가? 그게 그 교수가 생각한 최선의 교육법인지 묻고 싶다.

일반인들에게 간호학은 생소한 학문이니, 컴퓨터를 배우는 것에 비유하자면 메모장을 사용하는 것? 정도이다. 관장은 간호학에서 배워야 할 수많은 것들 중 컴퓨터로 치면 메모장을 사용하는 그 수준의 난이도라고 생각한다.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 등을 배우면서 메모장도 어떻게 쓰는지 같이 실습을 해본다고 손해볼 것은 없겠지만 원치 않는 학생에게 강제해가며 배울 필요도 없는 수준의 것이고, 필요해지는 순간에 직접 하면서 배워도 그만인 정도다.

나는 관장실습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에 메르스환자나 다른 심각한 감염병 환자가 오게 되면 나는 또 그 질병에 대해 검색하고 내가 가는 것이 도움이 될지 고민할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라도 관장실습을 거부한다고 해서 간호사로서의 사명감이 없다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사람들이 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간호사의 사명감은 고작 관장실습 여부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나는 2015년, 그 메르스병동 자원자 중에서 내 단짝친구를 포함해서 우리 학교의 선후배를 10명이상 만났다. 내 모교는 관장실습을 하지 않는다.

최원영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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