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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삼성 앞에서 스스로의 권한을 포기한 행정심판위

국민권익위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 8월 삼성전자가 청구한 정보공개 취소심판에서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의 측정대상공정·화학물질명·측정위치도 등을 비공개 대상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가핵심기술이므로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삼성 측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그간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온 반올림이 중앙행심위 판단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글을 보내와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주-

①. 삼성은 왜 작업측정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나

행정심판에 이르기까지

작업환경측정보고서(이하 ‘작측보고서’)의 공개는 올해 산업보건 분야의 최대 화두였다. 2월에 대전고등법원이 작측보고서의 공개를 명하는 판결을 선고할 때, 드디어 삼성의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질병을 얻은 피해자들의 산재 인정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늘어난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판결문은 작측보고서의 기재 내용들이 기업의 경영·영업상의 비밀에 해당하지 않으며, 설령 해당한다고 보더라도 사업활동의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정보이므로 공개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위 판결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작측보고서의 내용은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모두 공개하는 방향으로 지침을 변경하였다. 작측보고서만으로는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그래도 피해자들이 왜 병을 얻었는지에 관한 최소한의 확인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피해자들은 자신이 근무하던 시기의 해당 공장 작측보고서의 공개를 청구했고, 고용노동부는 이를 공개하는 결정을 내렸다. 판결 선고가 올해 2월 1일, 추가 공개 청구가 2월 19일, 이후 고용노동부의 공개 결정은 3월 19일로, 절차의 진행은 수월하게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제동이 걸린다. 삼성에서 3월 26일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제42조에 따라 작측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정해 달라고 신청하였고, 이 신청서를 첨부하면서 4월 2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이하 ‘행심위’ 또는 ‘위원회’)에 집행정지 신청을 한 것이다. 행심위는 4월 17일 집행정지신청을 인용하여 정보공개를 청구한 피해자는 작측보고서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4월 23일 작측보고서에 포함된 내용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고 판정하였다.

삼성의 대응은 기민하고 치밀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법원 판결이 확정되고, 곧바로 그 판결에 의해 청구한 첫 번째 작측보고서 공개 청구부터 이를 막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발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위 판정 이후 ‘국가핵심기술’이 제목으로 뽑힌 기사가 포털을 뒤덮었고,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토론회, 학술모임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2월 판결, 3월 공개결정, 4월 집행정지 가처분 및 국가핵심기술 판정, 그리고 7월 행정심판에 이르렀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등의 주최로 열린 ‘국가 핵심기술과 알권리,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논란과 이해’ 토론회에서 우원식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인사말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등의 주최로 열린 ‘국가 핵심기술과 알권리,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논란과 이해’ 토론회에서 우원식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인사말하고 있다.ⓒ뉴시스

행심위는 무엇을 했을까

고용노동부와 산자부의 견해가 엇갈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에서 국가핵심기술의 지정이 어떤 의미인지, 이것이 정보공개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이 이번 행정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다. 정보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제도이고 국가핵심기술지정 기업체가 자기 기술을 수출하는 것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로서 논의의 평면이 다르지만, 일반 국민의 정서상 ‘국가핵심기술이니까 영업비밀이잖아’라고 일견 판단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여기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타당한 근거가 이번 행정심판에서 밝혀져야 했던 것이다.

지난 대전고등법원의 판결과 지금 행정심판의 사실관계에서 달라진 점은 ‘국가핵심기술’ 판정 단 하나뿐이다. 공개 대상인 작측보고서의 내용조차도 대동소이하다. 새롭게 대두된 국가핵심기술이라는 프레임, 이를 면밀히 검토하기 위하여 위원회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행정심판법은 위원회에게 심판을 위한 자료 및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위원회는 산자부에게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거나, 반도체 위원회 위원으로 하여금 심리에 출석하라고 요구할 수도, 제3자에게 감정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행정심판에서는 이상의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핵심기술이 무엇인지, 삼성이 제공한 어떤 자료에 의해 해당 판정을 했는지, 그 논의 과정은 어떠했는지에 관하여 산자부에 확인한 바도 없고,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고 하는 작측보고서의 특정 내용이 과연 영업비밀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것인지에 제3자에게 감정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

출석 요구 등 절차가 없더라도 제출된 서면에 근거해서라도, 무언가 판단한 내용이 있겠지. 어떤 이유로 작측보고서가 경영·영업상의 비밀이라고 보았는지를 아무리 찾아도 직접적인 설명은 단 하나, 국가핵심기술이기 때문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반도체전문위원회가 내린 청구인의 이 사건 각 공장에 대한 국가핵심기술 판정서를 보면 (중략) 등을 국가핵심기술로 판정하였던 바, (중략)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보호해야 할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 이상 이는 청구인의 경영·영업상의 비밀에 해당된다고 봄이 상당하다.”라는 언급뿐, 산업기술보호법의 국가핵심기술이 정보공개법의 경영·영업상의 비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하여는 전혀 설명되지 않았다.

결국 행심위는 심리과정에서 국가핵심기술 판정에 관하여 위에서 언급한 적극적인 절차를 취하지도 않았고, 재결서에 국가핵심기술과 영업비밀 사이의 관계에 대한 법리적인 분석도 밝히지 않았다.

법률에만 전문가인 위원회로서는 반도체 전문가의 전문성 있는 의견을 감히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일까. 아니 그런데, 산자부의 위원회가 수출 제한 기술의 범위를 정하는 데에는 전문가일지 몰라도 국민의 알 권리 보장에 관한 법리의 전문가는 아니지 않나. 그럼 알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적 판단이 가능한 전문가는 누구지? 이런, 바로 행심위잖아!

행심위의 직무 유기

중앙행심위는 행정심판의 총괄기관으로서 행정부 내에서 법령의 해석 및 적용에 관한 최고의 유권적 판단을 하는 기관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재판과 같이 법률이 정하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규범적 판단이지, 단순한 사실관계의 확인이 아니다. 우리 판례는 ‘감정결과라고 하여도 법관이 감정인의 특별한 지식 및 경험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지 궁극적으로는 법관이 제 조건과 경험칙에 비추어 규범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판시하는데, 이러한 법리는 합의제 심판기관인 행심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번 재결은 ‘국가핵심기술 판정’이라는 사실로부터 ‘이를 공개하여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기계적으로 도출한 것이어서 타당하지도 않거니와, 위원회 스스로에게 부여된 ‘법률의 해석, 적용을 통한 규범 판단’이라는 권한 및 의무를 방기한 것으로 불법적이기까지 하다.

부디 이후 법원은 기관의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 적극적인 규범적 판단으로 행심위가 포기한 노동자의 생명권·건강권을 보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재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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