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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유재하음악장학회 제공

최근 대중음악애호가, 대중음악연구자, 대중음악평론가, 음악PD, 음악잡지기자 등 관련 전문가 47명이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장을 뽑아 발표했다. 멜론, 태림스코어, 한겨레신문이 공동 기획한 이번 작업은 지난 해 9월 시작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이경준을 주축으로 참여할 전문가들을 섭외해서 각자의 명반 리스트를 받았다. 이들의 서로 다른 리스트를 집계해 순위를 매긴 후, 음반 리뷰를 분배하고, 원고를 모았다. 그리고 이 작업을 함께 진행할 업체를 찾았다. 그 결과 올해 8월말부터 멜론(https://www.melon.com/masterpiece/timeline.htm)과 한겨레신문을 통해 매주 두 번 10장씩의 순위를 연재하며 공개했다. 준비부터 전체 순위와 리뷰 공개까지 꼬박 1년이 걸린 셈이다. 이번 작업의 결과물은 곧 책으로도 볼 수 있다. 이번 작업에 참여한 입장에서 이야기 한다면 음반 100장을 뽑은 뒤, 부탁받은 원고를 쓰면서도 해당 음반의 순위를 알지 못했다. 1위를 차지한 음반이 어떤 음반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흥미로운 10년의 변화

이번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의 1위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이다. 대중음악관계자들을 대상으로 1998년과 2007년에 두 차례 같은 작업을 했을 때마다 1위는 들국화의 1집이었다. 그래서 이번 작업의 결과도 똑같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세 번째로 진행한 이번 작업에서는 2007년 2위를 차지했던 유재하의 음반이 1위로 올라왔다. 들국화의 음반은 2위로 한 계단 내려갔다. 유재하, 들국화, 신중현과 엽전들, 김민기, 산울림, 어떤날, 한대수, 넥스트, 이상은의 음반이 최상위 10장을 채웠다. 2007년 조사와 거의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그 뒤를 잇는 음반들 역시 장필순, 김현철, 이문세, 시인과촌장, 사랑과평화, 김현식, 한영애, 델리스파이스, 듀스, 어떤날로 대동소이하다. 1위부터 50위까지의 음반들은 이전 선정작업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음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혹은 음악산업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명반의 권위가 단단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순위가 똑같을 리 만무하다. 예전에는 100위안에 오르지 못했던 신해철(57위), 김정미(58위), 015B(64위), 이장희(74위), 윤상(81위), 이승환(83위), 김건모(88위), 전람회(92위), 할로우잰(93위), 버벌진트(97위), 송창식(100위)이 새롭게 등장했다. 두 번째 100대 음반 선정 작업 이후 발표한 음반 중에서는 언니네이발관(50위), 이센스(56위), 검정치마(73위), 서울전자음악단(75위), 3호선 버터플라이(77위), 장기하와얼굴들(94위), 에프엑스(96위), 윤영배(99위)가 새롭게 등장했다. 19장의 음반이 바뀌었다. 최근 음반들 중 새롭게 순위에 오른 음반들은 10년만에 하는 선정 작업의 당연한 결과다. 이 작업을 10년마다 다시 한다면 당연히 새로운 10년의 음반들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신해철 - Myself
신해철 - Myselfⓒ온라인 커뮤니티

그보다 흥미로운 변화 중 하나는 1970년대 명반들 가운데 뒤늦게 정당한 평가를 받은 음반들이다. 잊혀졌거나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한 음반들이 일부 제자리를 찾았는데, 단절되었던 한국 대중음악사가 복원된다면 더 많은 옛 음반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새롭게 진입한 음반들 가운데 1990년대 활동한 뮤지션들의 음반은 이번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세대가 조금 더 젊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2000년대 이후 아이돌팝, 일렉트로닉, 힙합 등의 새로운 장르에서 만들어낸 음악적 성취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좋은 작품이나 의미 있는 작품을 뽑을 때 전문가들은 예술적 완성도, 시대적 의미, 작품 안팎의 가치와 영향력 등등의 가치를 기준으로 선정한다. 오래도록 다양한 음악을 듣고 음악의 가치를 평가해온 전문가들의 안목은 취향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선정주체의 세대와 젠더 같은 정체성을 완전히 뛰어넘는 안목과 취향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1950년대에 태어난 음악전문가와 1970년대에 태어난 음악전문가는 다른 시대에서 살 수밖에 없고, 다른 취향과 안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번 선정결과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객관적인 결과라는 이상적인 결과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번 결과는 50대 초반부터 20대 중후반까지의 남성 음악전문가(전문가 47명 중 여성은 3명뿐이다)들, 그 중에서도 40대 이상의 남성 음악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뽑은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세대 남성 전문가들의 취향과 안목이 두드러진다고 한정하고 읽는 편이 정확하다. 1위부터 50위까지의 음반 순위가 크게 바뀌지 않은 결과나 최근 새로운 음반들이 그다지 많이 뽑히지 않은 결과 역시 그 음반들의 완성도와 무게감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기 보기보다는, 이들의 세대나 젠더에서 원인을 찾거나, 그동안 명반으로 공인된 음반들의 학습효과에서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만약 전문가 중 다른 세대, 다른 젠더의 비중이 높아진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창작자나 엔지니어 등의 다른 직군에서 선정 작업을 진행한다고 해도 또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렇게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과거부터 현재까지 들어왔고, 여전히 듣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선정결과는 음악전문가들의 선정 결과라기보다는 업계 헤비 리스너들 중 일부 세대나 젠더의 선정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대중음악의 역사는 테크놀로지의 역사와 겹치며, 음반이라는 포맷의 역사를 포함한다. 음반이 없었다면 대중음악의 역사와 시장은 성립하기 어려웠다. 엘피라는 포맷으로 음반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생기면서부터 뮤지션은 한 장의 음반에 자신의 음악적 지향과 발언을 풍부하고 드라마틱하게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싱글만으로가 아니라 음반이라는 10곡 안팎의 연작으로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음반 아티스트가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엘피의 큰 케이스 크기 덕분에 음반 디자인도 가능해졌다.

E SENS - The Anecdote
E SENS - The AnecdoteⓒBANA 제공

10년 뒤 100대 명반 선정은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길

우리가 대중음악의 거장으로 인정하는 뮤지션들은 대개 이처럼 한 장의 음반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높이 쌓았다고 평론가와 대중들이 인정하는 뮤지션이다. 음반 판매량을 확인해 인기를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음악의 완성도와 음악 안팎의 가치라는 평론가들의 평가를 통과한 음반은 명반이라는 호칭을 얻는다. 한 장의 명반은 다른 명반들을 딛고 뛰어올라 새로운 음악의 대지에 도착한 음반들이기도 하다. 그 음반들은 새로운 대지로 우리를 초대하고, 그 대지에서는 항상 새로운 음반들이 뛰어오른다. 당대에 즉시 인기를 얻고 널리 가치를 인정받는 음반도 있지만, 뒤늦게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아차리는 음반들도 적지 않다.

음악평론가들은 음반에 부여하는 가치와 아름다움의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춰 평가하면서 권위와 영향력을 쌓아왔다. 그런데 대중의 평가와 전문가의 평가가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엇갈리고 어긋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요즘은 전문가의 판단에 무조건 자신을 맞추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전문가의 권위는 갈수록 희미해진다. 그래서인지 선정 작업에 대한 호응도 예전보다 덜한 편이다. 만약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100장의 명반을 뽑는다면 관심이 더 떨어질 수 있다.

어쩌면 이번 선정결과는 현재의 음악 팬들에는 다소 고루한 인상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100여년에 달하는 한국대중음악사를 폭넓게 아우르며 다양한 음악적 성취를 고르게 반영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번 결과가 당대적이거나 문제적이라고 하기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선정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비교적 폭넓게 음악을 들어온 이들이지만, 최근에는 음악전문가들도 제너럴리스트로 모든 영역을 다 커버하기보다는 특정 장르와 영역에 집중하는 스페셜리스트가 늘고 있기도 하다. 주요 관심사와 기준이 다르다보니 역으로 무난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또한 뮤지션들은 여전히 음반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지만 대개 싱글 단위로 음악을 듣는 음악 청취 패턴의 변화로 인해 이 같은 음반 단위의 평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100대 명반 선정 이후 10여년의 시간은 이렇게 음악 안팎의 변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 같은 방식의 선정이나 이 같은 선정 결과는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 앞으로는 싱글 단위로 뽑거나, 장르별/시대별로 선정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일반 청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런데 보다 당대적이고 성평등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2000년대 이후의 음악 환경에서 성장한 젊은 전문가나 여성 전문가들의 수를 의도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하나의 작업은 의미 있는 결과와 의미 있는 숙제를 동시에 남긴다. 세 번째 100대 명반 선정 작업이 한국대중음악사의 의미 있는 음반들을 되짚어보고, 몰랐던 음악을 찾아듣는 계기만으로서가 아니라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단단한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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