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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두 번 고발한 법원 ‘내부자’
조석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본부장
조석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본부장ⓒ공무원U신문

농단. 언덕 농(壟)에 끊을 단(斷)을 써서 깎아 세운 듯이 높은 언덕을 말한다. 한 사람이 전체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농단’을 차지하면 이익과 권력을 독차지할 수 있다.

사법농단을 저지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차지한 언덕은 법원행정처였다. 사법행정을 담당해야 할 법원행정처는 양 전 대법원장의 친위대와 다름없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주력 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행정처 내 법관들은 동료 법관들을 사찰하고 재판을 거래했다.

사법 권력 독점을 위해서 법원행정처는 법원 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법원 공무원 역시 통제해야 했다. 이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90%가 넘는 법원공무원들이 법원노조인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이하 법원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조’는 쉬운 탄압의 대상이었다.

창조컨설팅 버금가는 법원의 노조 파괴 공작

법원노조는 지난 2일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가 노조를 사찰하고 파괴하려 했다며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들을 고발했다. 사법농단과 노조파괴. 법원노조가 대법원장을 두 번이나 고발하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관련 기사:법원노조, “노조 사찰·와해 공작” 양승태 부당노동행위로 고발)

법원노조는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법원본부 사찰! 노동조합 와해공작! 관련자 형사고발 및 부당노동행위 제소’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원노조는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법원본부 사찰! 노동조합 와해공작! 관련자 형사고발 및 부당노동행위 제소’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중의소리

법원행정처의 노조 파괴 공작은 ‘2014년 사법부 주변 환경의 현황과 전망’, ‘2016년 사법부 주변 환경의 현황과 전망’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이는 지난 7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추가 공개한 법원행정처의 내부문건이다.

조석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본부장은 특조단이 공개한 다른 문건들은 상고법원 설치라는 목적이 분명했지만 “해당 문건들만 유일하게 목적이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상고법원 설치가 아니더라도 (법원이) 항상 노동자를 사찰하고 있음이 밝혀진 겁니다. 법원행정처가 노조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 정도 수준이었던 거죠. 한국 사회가 노조를 관리하던 수준 그대로 우리도 당하고 있었어요”

조 본부장은 특히 법원행정처가 ‘법외노조를 합법화시킨다’는 명목 아래 노조 명의 활동 금지‧ 휴직 없는 노조 전임자 활동 금지 등 법원노조를 탄압한 행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가 전국공무원노조(이하 전공노)를 법외노조로 만들었어요. 당시 노동자 탄압이 너무 심해서 법원행정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문건 어떤 구절에도 ‘정부, 행정안전부 압력 때문에 (노조 탄압)해야 한다’는 문구는 없었어요. 오로지 법원행정처의 의지였던 거죠”

그는 “전공노가 법외노조라 하더라도 헌법은 노조의 권리를 보장하며, 사용자는 법외노조라 하더라도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을 수호해야 할 헌법기관이 이런 사실을 분명 알고 있음에도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다”며 “창조컨설팅에 버금가는 노조 탄압 시나리오를 법원행정처가 직접 작성하고 실행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고발을 통해 조 본부장은 “사법적폐와 노동적폐 두 가지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난날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노사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 행정권을 남용해 노조를 통제하려 했던 기존 관습을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법원노조는 2일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법원본부 사찰! 노동조합 와해공작! 관련자 형사고발 및 부당노동행위 제소’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원노조는 2일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법원본부 사찰! 노동조합 와해공작! 관련자 형사고발 및 부당노동행위 제소’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중의소리

노조도 사법 개혁에 참여한다

김명수 대법원에서도 법원노조는 탄압 대상일까. 조 본부장은 “법원행정처가 ‘노조에 대한 업무지침은 바뀐 것이 없다’고 하더라. 여전히 법원노조가 기자회견을 진행하면 법원행정처 직원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노조가 김명수 대법원의 사법 개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조 본부장은 김소영 대법관 후임 선정을 위한 대법관추천위원회(추천위) 위원 후보로 추천됐다. 노조 등 노동단체가 추천위 후보를 추천한 것도 처음이고, 노동자 출신이 후보로 천거된 것 역시 처음이다. (관련 기사:사상 첫 노동자 출신 대법관후보추천위원 천거…조석제 법원노조 위원장)

조 본부장은 “대법관 구성이 다양화되지 못해 사고방식이 획일화돼 있다. 사회적 약자, 특히 노동자 관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대법관으로 임명되면서 사법농단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최종적으로 김 대법원장은 조 본부장 대신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을 추천했다. 조 본부장은 “노조 추천 위원을 추천하기에는 부담스러웠나 보다. 하지만 노동계 목소리 (추천위에) 넣어야겠다는 취지는 (김 대법원장이) 공감한 듯하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과거 대법관 추천 과정에 대해 “너무 비밀스러웠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추천위 위원을 맘대로 선정했다. 추천위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되는지, 심지어 추천위 위원이 누군지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과 비교한다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또 법원노조는 사법제도 개혁을 실행할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하 추진단)에 참여할 외부 인사를 추천하기도 했다. 법원노조가 추천한 전영식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는 단원으로 선정됐다. (관련 기사:사법발전위 후속추진단 외부인사 4명 선정…단장에 김수정 변호사)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임화영 기자

‘법원행정처 폐지’ 긍정적… 노조 빠진 ‘사법행정회의’ 우려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법원행정처 폐지·사법행정회의 설치 등 법원조직 개혁안을 제시했다. (관련 기사:김명수, “관료화 요소 모두 제거” 법원행정처 폐지 등 포괄적 개혁안 제시)

조 본부장은 김 대법원장의 개혁안 중 ‘법원행정처 폐지’를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대법원장의 개혁안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사무처와 대법원행정을 담당하는 대법원 사무국으로 분리·재편된다.

“법원행정처 폐지는 사법농단을 해결하는 핵심 조치에요. 법원행정처에는 원래 법관에게 주어진 정원이 없어요. 행정처에 편법으로 파견된 법관들이 법원 공무원들의 업무를 하고 있었던 거죠. 행정처 근무 법관들이 예산·인사권·재판 관련 규칙 재정권 등 사법행정을 독점하고 사법농단을 일으킨 거예요”

다만 외부인사가 사법행정에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 신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에 국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사법행정 최고 의결기구에 적정 수의 외부 인사를 참여시킨다고 발표했어요. 국민 시각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노조 참여가 빠져있습니다. 아직 외부 인사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법원 공무원들의 참여가 배제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김명수 사법개혁 의지 확고하더라”

김 대법원장의 개혁안 발표에도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사법농단 해결을 위해서 무엇보다 진상규명이 중요하다. 하지만 법원이 검찰 수사에 협조는커녕 사법농단 관련 법관들에 대한 영장을 연달아 기각하는 등 오히려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제부터 잘할 테니 지난날은 잊자는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 본부장은 김 대법원장이 개혁안에 “대법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장이 영장전담판사들 인사권을 쥐고 있으니 멤버를 교체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영장전담판사를 확충한 것도 영장 기각률 낮추려는 조치가 아닐까 해요. 김 대법원장은 개혁안 발표를 통해 국민들에게는 속도감 있게 사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알린 것이고, 내부 구성원들에게 사법 개혁에 동참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듯해요”

그는 “양 전 대법원장은 이래라저래라 다 했는데 정작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김 대법원장은 이래라저래라 못하니 답답하죠”라며 웃었다.

법원노조는 김 대법원장 취임 후 3차례 대법원장 면담을 진행했다. 조 본부장은 “김 대법원장의 사법개혁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이) 추진단의 개혁안이 법률로 통과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내부 규칙 등을 통해 할 수 있는 것들은 바로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조 본부장은 사법신뢰를 위해 법원노조도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법원노조는 오는 20일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여할 것을 예고했다. 또 오는 11월 9일 전국법원공무원들은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구속과 사법 적폐 청산을 위한 법원공무원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그는 “사법농단 해결을 위해선 진상규명이 핵심인데 법원 스스로 이를 막고 있다”며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사법부에 내일은 없다. 일단은 양승태 구속 수사에 초점을 맞춰 집회들을 이어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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