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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차세대 진보정당 ‘에이스’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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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친구하실래요?"

해도 다 뜨지 않은 시각. 매일 새벽 동틀 무렵 졸린 눈을 비비며 학원으로 향하는 젊은 수험생들, 밤새 고된 새벽노동을 끝내고 귀가하는 청춘들, 24시간 배달업 노동자들. 참 다양한 사연의 청춘들이 서울 신림역 일대를 지나다녔다. 그들 앞에 느닷없이 한 청년이 나타나 '친구'가 되기를 청한다.

지난 6.13 지방선거 운동이 한창일 때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의 풍경이다. 짧은 머리에 동그란 얼굴, 똘망똘망한 눈에 씌워진 동그란 안경. 당차고 쾌활한 목소리의 송명숙(31) 씨는 유권자들과 모바일메신저 '친구'를 맺기 시작했다. 그렇게 형성된 소통의 공간에서는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지역민원의 창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후보님을 기억해달라는 말이 아닌, '집에 조심히 들어가시라'는 말씀에 그냥 울컥해져서 계속 기억에 남아요."

"구의원이 되셔서 청년월세지원조례 만드는 것에 힘써주셨으면 좋겠어요."

"민중당 찍으면 사표되어 2번이 된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구의원은 3등까지 되는군요. 주변에 알려야겠네요."

1천509표. 민중당 후보로 관악구 기초의원 선거에 나선 송명숙 씨는 세 달간 굵은 땀방울을 흘렸지만 쓰디쓴 낙선을 맛봐야 했다. 3등까지 당선 가능했던 해당 선거구에서는 전국을 휩쓴 더불어민주당이 1·2등을 가져갔고, 뒤를 이어 바른미래당 후보가 3등을 차지했다.

"좋은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지난 6.13 지방선거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송명숙 민중당 민중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6.13 지방선거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송명숙 민중당 민중정책연구원 연구위원.ⓒ송명숙 씨 제공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좋은 정치인이 많아요. 선거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 같이 좋은 정치인들이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평생을 나고 자란 동네이기도 해서 제가 출마하겠다고 나섰죠.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거대양당이 촘촘하고 뿌리깊게 네트워크를 형성해놓고 있었고,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불안한 고용시장과 주거조건에 고통을 받는 청년들이 응원을 보내줬고, 덕분에 희망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송 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서울시내 한 가운데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대통령의 모습을 우연히 본 뒤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연한 동경과 꿈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사춘기를 맞은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학창시절부터 '좋은 정치인이란 뭘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래서 '재벌 잡는 법조계 출신 정치인이 되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법대를 진학했다.

많은 경우의 신입생이 그렇듯, 대학에 입학한 송 씨는 당초 기대와는 다른 대학 내 풍경에 이내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만 학과 공부보다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탐구와 토론 활동을 통한 관계맺기에 재미를 느꼈다. 그 모든 과정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체계화할 수 있도록 토대가 됐다. 그러던 중 송 씨는 자신에게 일종의 '각성'의 계기가 되는 사건을 목격한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생존의 위기로 내몰린 철거민들의 처참한 죽음. 용산참사.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도 죽음의 행렬은 계속됐죠. 노무현 전 대통령,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대학 등록금이 없어서 목숨을 끊은 학생들, 통합진보당 박영재 당원의 분신, 꽃다운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서 모른척 뒤로 숨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나이 때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으며 살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대학 생활을 10년이나 했죠."

대학생들 가슴에 불붙인 '반골 기질 모범생'

전국대학생학술운동네트워크 대표 시절의 송명숙 씨
전국대학생학술운동네트워크 대표 시절의 송명숙 씨ⓒ양지웅 기자

그는 2007년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대학에서 '자본주의연구회'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연구회는 여러 대학의 회원들과 세미나, 학회, 포럼 등 왕성한 활동을 통해 대학가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수천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고, 수백 명의 교수들이 강사로 도움을 줬다. 송 씨는 자본주의연구회의 성공을 바탕으로 2008년 '인간과 사회를 위한 교양공동체 쿰(CUM)'을 만들었으며, 이듬해 전국대학생학술운동네트워크를 구성해 대표를 지냈다.

송 씨의 발품과 땀방울로 만든 이러한 네트워크 운동은 파죽지세로 규모를 확장해갔으며, 2012년에는 학술네트워크의 지분을 바탕으로 한국대학생문화연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통해 여러 부문에서 성과를 이뤄냈다. 반값등록금 문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데 성공하고, 사학비리를 비롯한 학내민주주의 문제를 들춰냈다. 송 씨는 불온서적 보기 운동을 전개하는 등 당시 정권이 불편해하는 이슈에도 참신한 방법으로 맞섰다. 그는 졸업 후에는 '청년하다' 창립멤버로서 정책팀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청년문제에 천착하기도 했다.

"20대 때는 어떤 조직의 리더로서 방향만 잘 설정해놓으면 신뢰관계로 끈끈하게 묶인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끌고나갈 수 있다는 튼튼한 믿음이 그 시절의 원동력이었어요. 비록 경험도 없는 대학생들이 모여 좌충우돌, 천방지축이었지만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얼마나 큰 일들을 해낼 수 있는지를 경험한 시간들이었죠. 하지만 30대가 되니까, 제가 실력을 쌓은 뒤에야 실질적으로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에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송 씨는 학창시절부터 앞으로 나가 일을 추진하고 조직하는 일에 능숙했다. 전교 학생회장이던 여고시절, 학교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조직해 학교 축제를 성공시켰다. 돈이 없으면 학생회 예산을 아껴서 댔고, 설치기구가 미흡하면 인근 학교에서 빌려서라도 뜻을 관철했다. 그렇다고 학교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그 시절의 송 씨를 '반골 기질이 있는 모범생'으로 기억하곤 했다.

"직업정치인들만 하는 게 아닌 정치를 만들어야"

현재 송 씨는 민중당 민중정책연구원에서 연구위원을 맡아 청년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2016년 민중연합당 시절 부대변인을 하면서, 계급계층 조직인 '흙수저당'에서 정책설계를 배운 그는 지금껏 청소년노동보호법, 청년월세 10만원 상한제, 재벌 사내유보금 과세정책 등을 만드는 일에 관여했다. "나쁜 놈들이 계속 자기 배를 불리면서 살게 할 수는 없다"는 송 씨는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매일 고민하면서 살고 있다

"2년 전 정당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해왔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문제의식을 심화하고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훈련을 해온 일이 바탕이 된 것 같아요. 청년들이 숨 쉬고 살지 못하겠다고 절규하는 이유가 뭘까, '일자리'와 '주거권'이죠. 일자리 문제는 노동권을 바탕으로 한 질좋은 일자리로, 주거 문제는 월세 등 실질주거비 지원책을 통해 생존의 벽을 낮추는 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력을 배양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꽃'인 선거에서 언젠가 당선되는 그날을 위해 실력을 기르고 있는 송 씨에게 '그런데 왜 진보정당'이냐고 물어봤다.

"정치를 직업정치인들만 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이 직접정치의 당사자로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제 생각을 실천하고 구현할 수 있는 이상과 실력을 진보정치가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런 차세대 진보정당의 '에이스'를 꿈꾸는 청년 정치인으로 소개되고 싶어요."

송명숙 민중당 민중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송명숙 민중당 민중정책연구원 연구위원.ⓒ송명숙 씨 제공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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