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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풍계리 핵실험장 미국 사찰단 초청’에 담긴 특별한 의미
지난 6월 12일 정상회담장인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안을 단 둘이 걷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자료사진.
지난 6월 12일 정상회담장인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안을 단 둘이 걷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자료사진.ⓒ뉴시스/AP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꿈꿔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통상의 비핵화는 '신고(핵 리스트 제출)→검증→폐기' 세 단계를 통해 완성됩니다.

A나라가 "저희 핵탄두 10개 가지고 있어요"라며 '핵 리스트'를 제출(신고)하면, 이를 받아든 사찰단이 A나라에 직접 들어가서 리스트가 사실인지 검증을 하고, A나라는 그 리스트에 적힌 핵탄두를 사찰단 눈 앞에서 폐기하는 방식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신고'가 비핵화의 첫 단계인 이유는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 핵물질 등의 정확한 규모와 기술 수준을 파악해야 무엇을 '검증'하고 '폐기'할지 파악하는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지금 한반도에서는 비핵화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바로, 비핵화의 입구 격이었던 '신고'는 훗날로 미뤄두고, '폐기→검증' 단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핵 리스트를 제출하지 않았으니 A나라에 핵탄두가 10개 있는지 100개 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일단 A나라가 핵탄두 1개를 폐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 사찰단이 A나라에 직접 가서 실제 그 핵탄두를 폐기를 했는지 검증을 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지난 7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협의한 것 역시 이러한 내용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보수진영 일각에선 이러한 방식을 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믿느냐', '그게 완전한 비핵화가 맞느냐'고 따지는 것이지요.

그럼 역으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는 정말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했다.ⓒ마이크 폼페이오 트위터

'신고(핵 리스트 제출)→검증→폐기' 기존 방법이
폼페이오 방북을 계기로 새롭게 바뀌었다

그동안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서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을 생산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핵실험을 해오며 핵 능력을 키워왔습니다. 핵실험은 그간 6차례 진행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또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개발해왔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현재 북한의 핵 능력은 과거 비핵화 협상이 이뤄졌던 1993년이나 2008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북한은 미국 대륙도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은 자신들의 체제와 안전을 지켜주는 수단이었습니다. 이에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북한은 꾸준히 핵·미사일을 개발해왔고, 결국 작년 말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동시에 북한은 더 이상 추가적인 핵실험이 필요하지 않다며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5월,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폐기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한국·미국·중국·영국·러시아 5개국 취재진을 현장에 초청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시는 6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비핵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로도 평가됐죠. 그 후로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북미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담판 짓는 세기의 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지난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했다. 2번 갱도 폭파 후 옆 관측소 건물도 폭파되면서 연기와 함께 잔해물이 날리고 있다.
지난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했다. 2번 갱도 폭파 후 옆 관측소 건물도 폭파되면서 연기와 함께 잔해물이 날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지난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했다. 5개국 국제기자단이 3번갱도 입구에서 취재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폭파 작업을 했다. 5개국 국제기자단이 3번갱도 입구에서 취재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 협상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또다시 비핵화 방법을 두고 갈등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강경파를 중심으로 통상의 비핵화 방식인 '신고→검증→폐기' 세 단계를 거치기 위해 북한에 핵 리스트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반발했습니다. 북한 입장에선 체제 보장을 위한 미국의 상응조치 없이 일방적으로 비핵화 단계를 밟아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빈 손'으로 세 달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이 왔습니다. 9월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데 이어 10월에는 폼페이오 장관의 4번째 방북이 이뤄졌습니다. 남-북-미 대화가 선순환하는 기류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겁니다.

그 결과가 사뭇 재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풍계리 핵실험장이 '불가역적'으로 해체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 사찰단을 초청한 것입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핵 사찰단 문제가 합의되는대로 곧 사찰단이 풍계리 핵실험장과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냐고요? 바로 북미 간 갈등의 원인이었던 '신고→검증→폐기'라는 기존의 비핵화 시스템을 그대로 따르지 않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풍계리 핵실험장은 지난 5월 이미 북한이 폭파·폐기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미사일 엔진시험장도 지난 7월 해체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된 것이죠.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은 이곳이 실제 '불가역적'으로 폐기됐는지 미국 사찰단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공식화된 건 아니지만 단순히 말하면 새로운 '폐기→검증' 단계를 거치는 셈입니다.

TV조선 오보
TV조선 오보ⓒTV조선

이러한 검증 단계를 거친다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폐기를 두고 한국과 미국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일었던 '보여주기식 폭파쇼', '사기극'이라는 비난도 상당히 불식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평양공동선언에 따르면, 이러한 '폐기→검증' 단계는 앞으로 다른 시설에도 반복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다면, 풍계리 핵실험장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미국 사찰단이 초청 받아 들어가 검증을 하는 단계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는 앞으로 새로운 핵무기를 만들 능력을 폐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영구적으로 폐기할 것을 확약한 것은 결국 북핵의 검증가능한 불가역적 폐기"라며 "상당히 중요한 큰걸음을 내딛은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핵 리스트 제출(신고)' 없이 어떻게 북한을 믿느냐는 주장에 대한 답변

이처럼 향후 예상되는 조치들이 하나씩 모두 이뤄진다면 북한은 앞으로 핵물질 생산도, 핵실험도, 미사일 발사도 못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믿느냐고요? 핵 리스트도 아직 제출 안 했는데, 북한이 또 다른 핵시설을 몰래 숨겨두고 있으면 어떡하냐고요?

실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이후 일부 미국 언론매체는 '빈손 귀환'이라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안드레아 버거 미들베리 국제문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미국의 NBC방송에서 "북한이 같은 자동차를 두 번 팔았다"라며 "미국이 북한의 새로운 행동이나 새로운 시설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이미 버려진 장소에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의문은 '결국은 신고(핵 리스트 제출) 단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비핵화'라는 주장이죠.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하지만 미국이 결국 '핵 신고'를 후순위로 미루는 방식을 취한 데에는 나름의 현실을 감안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핵 리스트 제출'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먼저 다 내보여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협상 테이블에서 그게 가능하냐는 의문에서 나온 것입니다.

실제 과거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신고와 그에 대한 검증 단계에서 번번이 틀어지곤 했습니다. 1991년 북한이 핵환산금지조약(NPT)에 들어가 초기신고를 했을 때도 그랬고, 1994년 제네바합의 파기 과정에도 검증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였던 2008년 5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원자로 가동 및 플루토늄 관련 기록을 제출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북한은 1만8천여 쪽에 달하는 자료를 미국에 넘겨줬습니다. 하지만 이후 6자회담에서 핵시설 사찰 규모와 핵물질 샘플 채취를 포함한 검증의정서 합의에 실패하면서 6자회담은 이후 문을 닫게 됐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앞둔 시점 "처음부터 핵무기 목록을 요구하면 이후 검증을 놓고 이어질 논쟁에서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며 '북한의 선(先) 핵무기 리스트 신고 및 검증' 요구를 일단 미룰 것을 미국에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습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8일 기자들과 만나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은) 핵무기가 20~60개 있을지 모른다고 보는 상황에서 누구든지 비핵화의 첫 조치가 '신고'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실현성은 과거에도 이미 세 차례 실패했는데 지금은 북핵 능력이 현저히 증가한 상황에서 신고부터 시작한다면 실패할 확률은 아주 높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핵 신고와 검증 과정에서 시비가 하나라도 붙으면 그걸 해소하는 데에 물리적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는 점도 신고를 뒤로 미루게 된 주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핵 리스트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백두산 밑에 핵 의심 시설이 있는 것 같다. 가짜 리스트 아니냐'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백두산 밑 핵 의심 시설'을 두고 북미가 서로 옥신각신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요?

실제로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지난 2017년 초, 일부 외신에서 북한 평안북도 대관군 금창리 인근 산악지대에서 미사일 기지로 추정되는 시설이 발견됐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군사문제 전문가가 과거의 위성영상과 공개된 북한 미사일 시설, 시험발사 등을 토대로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이러한 비핵화 과정에서 '시비'를 걸고 '못 믿겠다'며 어깃장을 놓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한국의 보수진영과 함께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싫어하는 주류언론, 선제타격론도 운운하던 군부 강경파들이 이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강경하던 기류도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봉근 교수는 "선(先)신고-후(後)검증-폐기라는 전통적인 NPT 방법은 수차례 실패했고, 이게 잘 안 되니까 볼턴(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과 같은 사람들이 신고와 검증과 폐기, 핵의 해외이전을 전부 초기에 일괄적으로 다해야 한다고 강한 입장을 내놓은 것"이라며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잘 안 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미국도 더 이상 볼턴이 제기했던 리비아식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지난 6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서명하고 서명식장을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서명하고 서명식장을 나서고 있다.ⓒ뉴시스

물론 훗날에는 북한의 핵 리스트 제출이 다시 요구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강 장관도 "어느 시점에서는 북한의 핵 목록을 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는 "양측에 충분한 신뢰를 줄 수 있는 행동과 상응 조치가 있어야 그 시점에 더 신속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은 북미간 적대관계 해소와 신뢰구축이 기반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친한 친구 사이에 '너 혹시 품 속에 칼을 숨겨놓고 있는 것 아니야?'라고 의심하지 않는 듯 말이죠. 정치적인 해법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5일(현지시간) 폭스(FOX) 뉴스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영변 핵기지를 폐기하게 되면 미국 측에 장기간의 참관이 필요할 텐데, 그 참관을 위해서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이제는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미국의 의지도 보여주면서 참관단들이 머물면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근거가 될 수 있다"라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어떤가요.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 ‘정치톡’은 정치팀 기자들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슈의 전말을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기사입니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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