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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 중등교육의 3가지 모순

유은혜 교육부 장관 겸 부총리는 2013년부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으로 활동한 경력과 잠시의 외래교수 경력을 갖고 있다. 이를 고려해도 교육학 전공과 수년 이상의 교육 및 교육개혁 경력을 갖춘 전문가를 물색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을 발탁했다는 판단이 맞다. 이렇게 교육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도 교육 밖의 외풍을 타지 않는 정치력만 발휘해 준다면 이 또한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전국의 교육감 17명 중 사실상 경북교육감 1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개혁성향이 체질화된 인물들이 활동 중이다. 말 그대로 진보교육감의 전성기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교육부 장관은 민주적 의견수렴에 충실하기만 해도 선진국에 비해 많이 낙후된 우리의 교육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다. 힘 안들이고 성과를 낼 호기다. 그래서 유 장관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역대 어느 장관보다 혁신학교의 ‘아이콘’이라고 불려지던 김상곤 전 장관의 등장은 국민들로 하여금 상당한 기대를 갖도록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혁신의 잠재력을 지닌 교육감들에다 또 혁신의 선두 주자였던 장관이 입각했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조합이었던가? 그러나 그는 조기에 퇴진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좀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우리 교육과 교육행정의 고착된 모순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과 김상곤 전 장관이 손을 잡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유은혜 교육부 장관과 김상곤 전 장관이 손을 잡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자료사진)ⓒ뉴시스

첫째, 경쟁일변도의 교육

한국 중등교육은 한마디로 ‘경쟁의 도가니’로 특징 지워진다. 대학도 취업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학생 그리고 학부모를 경쟁의 도가니에서 벗어나게 할 책임이 있는 정부마저도 여기에 말려드는 형국이다. ‘교육개혁은 곧 입시개혁’을 등식처럼 여기고 여기에만 집중하면서 근본적인 고민을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경쟁위주의 교육은 학생들 자아의 내적 성장, 자연과 사회를 아우르는 나눔과 배려의 덕성 그리고 세대간의 연대의식, 공존의 가치 등 교육의 본질적 목표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우선 학생들의 인성이 메말라가는 것이 문제다.

“10년 가까이 해온 외국어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가 시험문제를 맞히기 위한 것이라니 안타깝기만 하다. 독해력을 평가할 목적이라면 차라리 잘 쓰인 역사, 문학, 철학, 예술 등의 고전을 읽히고 가르치는 편이 훨씬 가치 있을 것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이 바로 ‘우리는 (상급)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라는 말에 부합하는 공부의 길이 될 것이다”[한동일(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Rota Romana 변호사), 라틴어 수업, 55~56쪽].

위의 지적은 고교에서 문학, 국어, 작문, 독해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국어과목이 개설되어 있고, 영어와 제2외국어 등 언어교육이 행해지고 있어도 이 언어로 학생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음을 탄식하는 내용이다. 나아가 모든 교과의 지식이 학습되고 있어도 이 지식들이 학생 본인과 사회에 대한 존재의미를 찾아내는 심미안은 먼 이야기로 남고 단지 객관식 선다형 시험점수로 귀결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글이다. 우리는 중대한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나르치스적 과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찌기 소크라테스가 “음미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경쟁위주의 교육은 관계된 모든 이들을 선발에 집착하게 한다. 그래서 효과적이고 잡음없이 당락을 결정하기 위해 객관식 시험을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 시험과 평가가 불가피하다면 이젠 어떤 방식이냐가 관건이다. “학생의 잠재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다양한 평가방법이 균형있게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학교에서의 학생평가와 대학의 학생선발에 신뢰가 약하여 객관식 점수나 수치(학교 내신등급과 수능점수 등) 위주로 평가하고 선발하고 있다. 이는 창의력 신장이나 문제해결 능력의 향상보다는 학생 간의 경쟁을 조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평가와 학생선발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고 교육의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교육의 혁신은 평가제도 개선을 수반해야 한다”[정일용(2013년 당시 주 OECD 한국 대표부 공사), 미국·프랑스·영국 교육제도,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63쪽)].

위 글은 평가방식의 변화가 제도변화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 나아가 창의성에 초점을 맞춰 절대평가 나아가 논·서술식 평가까지 나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객관식 시험은 선발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기능이 있지만 문학작품을 예로 들 경우, 학생들 스스로의 작품 감상력을 결정적으로 해친다. 이런 시험은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고 다양한 판단기준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시험출제자의 독선적인 판단력이 암묵적으로 강제되는 역효과가 있다. 그래서 객관식 시험을 수년 이상 거치면 종합적 사고력과 비판력이 취약해 토론 및 글쓰기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 한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거부한 이유가 이해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객관식 시험의 제물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의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관행도 용인하기 어려웠다(관련 기사 참조 ). 작가의 상상력이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올바르게 전달, 해석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충분히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치열한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양분시키고 승자들만의 리그를 만들게 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데까지 이른다.

입시경쟁교육에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추모촛불문화제 '죽음의 교육을 멈춰라'에서 자유발언 중인 학생 앞으로 폭력과 경쟁, 학벌주의의 영정이 보이고 있다.
입시경쟁교육에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추모촛불문화제 '죽음의 교육을 멈춰라'에서 자유발언 중인 학생 앞으로 폭력과 경쟁, 학벌주의의 영정이 보이고 있다.ⓒ양지웅 기자

둘째, 정부의 역량부족

먼저, 특정 교육정책의 성공을 위한 복합적이고도 선행하는 조건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여기서 선행조건은 교육분야 안팎을 모두 포함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 입시제도 개혁을 입시라는 범주 안에서만 풀려고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최근 정부는 입시문제에 대해 정시모집의 비율을 확대하는 것으로 종결했다. 어떻게 입시제도를 변경해도 연간 20조가 넘는 사교육 시장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입시제도의 외부를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교육제도에 미치는 외부 사회적 요인으로서 대표적인 사안 두 가지를 든다면 단연 분배문제와 학벌문제를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에 입사할 때 주변에서 인정해주고 실제 높은 연봉, 결혼 등 안정적인 사회생활, 노후복지가 보장된다. 반면 중소기업 운영자들은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이 중소업체 노동자, 자영업자, 이주 노동자 등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생존의 위기에서 삶을 힘겹게 이어간다. 대단히 양극화되어 있으며 이 갈림길을 결정하는 주된 장치가 대학진학이다.

권력, 명예, 부를 놓고 경쟁의 양지와 음지가 명확히 갈리는 환경에서 학생들의 공부는 비장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인문계 고교 교실에서는 수행평가 2점을 갖고도 미래의 불안을 염려하는 형국이 되었다. 척박한 사회환경이 내신을 부풀리게 하며, 학생에 대한 교사의 관찰기록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급기야 과열경쟁 상태에서 선발에 집착하기 때문에 수능시험을 출제할 때 이른바 ‘비틀고 꼬아서’ 기형적인 문제를 만드는 양상까지 간 것이다. 우리의 수능 영어문제 중에는 영미권의 사람도 풀지 못하고 이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는가?

분배문제는 학력차별 및 직업차별을 의미한다. 요컨대 훌륭한 ‘직업교육’과 노력에 따른 ‘공정한 분배’는 교육 및 입시문제를 보다 수월하게 풀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마이스터를 만들어내는 독일 직업교육을 잠시 살펴 본다.

독일 직업교육의 주된 특징은, 이론과 실천을 통한 현장중심에 역점을 두되 장차 산업역군을 키운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실습생들에게 산재보험과 정규 노동자의 30%에 준하는 급여를 주면서 안정적으로 배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허드렛 일, 위험한 일에 노출시켜 생명을 끊도록 방치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위험성을 더 줄이기 위해 기업 내 실습장을 설치한 곳이 많다. 이것은 독일 직업교육의 특징인 ‘현장에서 실제 직무기술을 익히게 한다’는 취지에 따라 연방이 예산을 지원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직업교육의 70%를 기업이 담당하여 학생들의 직무능력을 향상시키고 학교는 30%의 비중으로 이론을 가르친다. 한국의 대기업이 횡포에 가까운 족벌경영의 형태를 보이고, R&D에 투자를 아끼면서 심지어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행태와는 대조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학교에서 직업교육은 단기 성과를 내는 데 집착하며 그 성과는 다시 지도교사들의 승진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시급히 변화가 요청된다.

독일에서 기업은 학생과 계약을 맺고 졸업과 동시에 대부분 정식 노동자로 채용한다. 그래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상시 고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처럼 중소기업들이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인력난을, 학생들은 취업난을 겪지는 않는다. 또한 기업은 최고의 품질을 위하여 노동조합과 협동하여 노동자들에게 인성교육 및 다양한 평생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멘스 Siemens는 ‘순간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팔지 말자’라는 기업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도록 명품을 만들어내는 상도덕을 지키며 기업가 정신을 지켜가고 있다.[박성희(공주대학교 교수), 독일교육 왜 강한가?, 살림터, 142~144쪽 참조].

물론 최근 한국에서 보인 폭스바겐의 연비조작, BMW 차량의 화재사건 등을 보면 이들도 완전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노조를 외해시키고 '80명째 사망사고'라는 극히 심각한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삼성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장은주 교수(영산대, 철학)는 ‘입시만이 교육문제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정치시평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쉽게 말해 지방대를 나와도 대기업이나 공기업 같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게 하고,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육체노동을 하더라도 충분히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문제는 결국 사회문제이고 노동문제이며 복지문제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서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들의 체계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문제의 뿌리에 다가갈 수 있다. 역시 관건은 정치다”(2018/9/3일자 경향신문).

전교조가 29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즉각 취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교조가 29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즉각 취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두번째로, 교육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우선이라는 점이다.

김상곤 전 장관이 일찍 물러나게 된 것이 개인의 역량부족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청와대의 대통령 참모진에 대해 의심의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진보교육감들의 산실 역할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전교조에 대해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사안이다.

사법판단이 진행중인 사안일지라도 원고인 행정부의 기소 중지요청에 의해 사건해결이 가능했던 선례도 있거니와, 그자체로 부당한 처사였기 때문에 정부는 정권 출범과 함께 전교조에 대해 법적 지위를 회복시켜야 했다. 당시 주무장관었던 김영주 전 노동부 장관이 긍정적으로 이를 검토하여 진행할 것이라고 답함으로써 사실상 해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의 발언이 채 하루가 가기도 전에 청와대에서 부정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인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지방선거 등과 같은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정치논리가 개입했을 수 있다. 아니면 마지막으로 정부 핵심부서의 노조관 자체가 전근대성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위의 김성희 교수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 기업인들은 노조를 동반자적 시각에 본다. 노조관이 선진적이라는 것은 노조를 방해꾼이 아니라 기업과 공공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훌륭한 동지로 여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교육논리를 배제할 경우에 나타나는 양상들이 있다.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임기가 1년 안팎이라는 것, 국회 교육위원으로 10년 이상 의정활동을 하면서 전문성을 키운 국회의원이 희귀하다는 것, 실적에 쫓기어 단발적으로 정책을 발표하면서 탁상행정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교육문제를 가감없이 현실정치로 구현해 내는 길인 교사의 참정권을 외면한다는 것 등이다.

특이하게도 국정농단의 또 한 명의 주역인 이명박 정권때 이주호 전 장관의 임기가 길었다. 하지만 이 때는 교육을 시장으로 간주하는 편협한 정책기조가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대통령과 큰 차이없이 유지된 임기가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말 그대로 경쟁의 도가니가 극대화된 시기였다. 그래서 진정한 교육개혁은 멀고도 험하다. 문재인 정부는, 1960년 4.19 혁명이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킨 것에 비견될 만큼 촛불집회의 극적인 반전에 의해 탄생한 정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기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마지막, 교육운동 단체들의 분열

세계가 주목했던 한국의 2016년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정치행위가 국민에게 도달되기 전에 작동했어야 하는 행정의 내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민들이 직접 광장으로 나간 것이 아닌가? 지금 대선 교육공약이 후퇴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일부 교육운동 단체가 중심이 되어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대선공약을 공약대로 지키라고 다시 촛불을 들고 있다.

이렇게 교육운동 단체들이 합심해서 촛불을 드는 행위는 명백히 단결이지 분열이 아니다. 그러나 입시문제에 영향을 주는 분배문제, 학벌, 직업차별 문제를 복합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더해, 교육정책의 기술적 내용까지 동시에 살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의 소그룹 정책자문 팀에서도 이를 고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일례로 2018년 초에 더불어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만든 ‘더 미래연구소’에서 객관식 시험인 수능의 대체안으로써 ‘국제 바칼로레아’ 논술시험이 훌륭하다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이의 실현을 위한 기술적 접근까지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논술을 대비하기 위해 독서 및 논술지도 그리고 글 채점을 위한 학교현장의 변화는 교사들의 몫이며 교사들이 가장 현실적인 안을 낼 수 있다. 중간·기말고사를 논술로 변경하고 평소 수업을 독서, 발표, 글쓰기 등의 형태로 전면 바꿔가야 하며, 이를 위해 교사들이 독서, 글쓰기 채점과 논평하는데 시간을 쏟도록 교장의 간섭과 행정업무의 부담을 동시에 줄여야 한다.

이런 책무가 교사 및 교육운동가들에게 맡겨진 셈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정부의 무능에 대해 비판을 가함과 동시에 대안을 계속 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대안은 부분적이면서도 총괄적이어야 한다. 교육운동 단체 한 두 곳에서 총괄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은 내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교육운동단체들이 모일 필요가 있다. 구슬이 세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이것은 대의제 정부가 원천적으로 전문성을 갖추는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결과다. 교육운동 단체들이 어떤 사안을 놓고 적극적이고 분파적으로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단체들의 주된 주장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없다는 이유에서 느슨하나마 이를 규정할 때 일종의 분열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참교육 문양 뒤로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의 발언 모습이 보인다.
참교육 문양 뒤로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의 발언 모습이 보인다.ⓒ뉴시스

유은혜 장관이 취임사에서 밝힌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러한 태스크 포스 역할을 할 수 있다. 단, 위원회가 결성되는 과정에서 정치인들의 인맥이 아니라 진보성향의 교육운동가와 전문가들의 추천에 의해 구성원들이 채워져야 한다. 중등교육에 관해서 학교의 정서와 갈등, 당면한 과제 등을 꾸준히 논의해 온 전교조가 제외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교육정책 사안별로 그에 합당한 개혁성향의 학자들이 물색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학 전공 교수와 교사들이 드물었으며 타 전공 교수들이 인적구성의 대다수를 차지함으로써 중등교육 개혁을 더욱 어렵게 하지 않았던가?

교육단체별 중지를 모으지 않는다면, 비유컨대 이른바 장님 코끼리 만지듯 각자의 손으로 하늘을 보는 세계가 전부로 여겨질 수 있다. 교육정책들 중에는 우선 순위의 문제, 근본적인 과제와 지엽적인 문제를 구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포괄적인 안의 예로 ‘분배문제와 직업차별’을 ‘입시문제와 직업학교 활성화’에 연결시켜 함께 논의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를 교육부 장관이 주도하도록 하고 안되면 교육운동단체 스스로 할 수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역량을 꾸준히 갖추면 이들 중에서 훗날 장관이 되어 역할을 할 날도 있을 것이다. 수십년간 우리가 지금껏 정부에 대해 기대하고 실망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배운 학습의 결과라면 그것은 정부를 전적으로 믿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점수 1~2점 차이로 인해 원하는 내신 혹은 수능등급을 못받아 인생길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절박감은 정도를 달리해서 인문계 고교생 전반이 공유하고 있는 심리적 기제다. 기능인으로서 사회에서 제대로 대우받으며 살 수 있을지 혹은 일하다 크게 다치지는 않을지 하는 우려가 직업게 고교생들의 상념을 지배하고 있다.

결국 기성인들이 우리 학생들에게 남겨준 유산이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다. 이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면 국가의 미래전망, 정부의 존재이유 등은 심각하게 의문에 부쳐지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 편재된 일상의 불안을 누그러뜨리는데 정부와 민간의 구분은 어느 시점에서는 무의미하다.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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