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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 잘못됐다” 30년만에 나온 공식 인정
박종철 열사 추모 31주기를 하루 앞두고 이철성 경찰청장 등 경찰 주요 간부들이 13일  서울 용산구 갈월동 경찰청 인권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열사가 숨진 인권센터 509호를 방문해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 추모 31주기를 하루 앞두고 이철성 경찰청장 등 경찰 주요 간부들이 13일 서울 용산구 갈월동 경찰청 인권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열사가 숨진 인권센터 509호를 방문해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당시 검찰 수사가 외압에 굴복한 “졸속수사, 늦장수사, 부실수사”였음이 30년만에 공식 인정됐다.

11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 이하 위원회)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하 조사단)으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같이 심의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1987년 1월 14일 오전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 소속 경찰관 5명으로부터 수사를 받던 대학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인해 질식사한 것에 대해, 치안본부가 사망원인을 조작하는 등 사건 은폐를 시도하고 고문치사의 범인을 2명으로 축소‧조작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위원회는 “검찰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주었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위원회의 본조사 권고에 따라 크게 5가지 의혹을 조사했다. △검찰이 치안본부의 사건 은폐 시도를 인지했음에도 직접 수사하지 않은 의혹 △치안본부가 고문경찰관을 2명으로 축소·조작했음에도 검찰이 졸속으로 수사한 의혹 △검찰이 공범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3개월이 지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성명 발표 이후에야 수사에 착수한 의혹 △검찰이 치안본부장이 사건 은폐 및 축소·조작에 관여했음을 인지하고도 이에 대한 수사를 지연한 의혹 등이다.

검찰은 1987년 1월 16일 박종철의 부검을 통해 물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파악하고 직접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다음날 검찰 총장이 국가안전기획부장, 법무부장관, 치안본부장 등이 참석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다녀온 후 치안본부가 단독으로 수사를 맡게 됐다.

당시 이미 치안본부 소속 경찰관 2명이 서울지검 공안2부장을 찾아가 사체를 화장할 수 있게 지휘해 달라고 요구하고, 부검 직후 치안본부장이 부검 결과를 발표해 가혹행위나 고문으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고 발표하는 등 치안본부에 진상규명 의지가 없음이 명백한 상황이었다.

조사단은 “검찰은 직접 수사를 할 준비를 하던 상황에서 외압에 굴복해 치안본부에 수사를 일임함으로써 사실상 사건 축소 및 은폐조작 기회를 제공한 결과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0일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을 방문,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씨를 만나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0일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을 방문,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씨를 만나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뉴시스

또 조사단은 1987년 1월 19일 작성된 ‘고문치사 사건 수사중간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문건에는 검찰의 수사를 단기간에 ‘조용히’ 마무리하라고 수사 지휘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처음부터 피의자를 2명으로 확정했고, 치안본부에서 사건이 송치되자마자 불충분하고 미흡한 상태에서 수사를 신속히 종결하고 쫓기듯 기소했다. 특히 검찰은 대공분실에 있었던 CCTV조차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조사단은 “검찰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인권보장보다는 신속하고 ‘조용히’ 기소함으로써 치안본부의 진상 은폐를 사실상 묵인하고, 여론을 잠재우려는 정치적인 고려(정권 안정)를 우선해 사건을 처리했다”고 비판했다.

이후 검찰은 1987년 2월 이미 구속된 고문경찰관 2명으로부터 추가 공범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그때부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이를 폭로한 5월 18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수사에 착수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서울지검장은 지난 8월 9일 조사단과의 면담에서 수사 지연이 “청와대의 뜻이라고 생각했다”며 검찰총장은 자꾸 수사를 지연시키고 기자들은 매일 찾아왔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나는 당시 잠이 안 올 정도였다”며 “그러던 중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발표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고 진술했다.

검찰 수사가 지연되는 사이 치안본부 간부들의 추가 공범 은폐를 위한 노력은 물밑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조사단은 “‘검찰의 장시간 수사 착수 지연’은 검찰의 직무 유기로 평가된다”며 “나아가 치안본부가 은폐공작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적극 협조한 결과가 됐다. 이는 치안본부의 범인은닉을 적극 방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검찰은 치안본부 대공5차장이 당시 구속돼 있던 고문경찰관 2명이 추가 공범을 밝히려 하자 2억이 든 예금계좌로 이들을 회유하려 했던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이를 적극 수사하지 않았다.

더욱이 검찰은 치안본부장이 해당 사건 발생 초기부터 사실과 범인을 알고 있었음을 인지했음에도 그를 조사하기는커녕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치안본부장은 몰랐다’는 취지로 발표해 치안본부의 진상 은폐를 묵인했다.

박종철 사망 31주기 하루 전인13일 남영동 대공분실이 위치했던 서울 경찰청 인권센터에 시민들이 찾고 있다.
박종철 사망 31주기 하루 전인13일 남영동 대공분실이 위치했던 서울 경찰청 인권센터에 시민들이 찾고 있다.ⓒ김철수 기자

위원회는 이 같은 조사결과에 따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검찰의 과오에 대해 통렬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은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소상히 알리고, 동시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립하고 검사 개개인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확고히 정립할 수 있는 제도 및 대책을 수립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또한, 위원회는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 “검찰이 경찰의 고문수사를 용인, 방조한 사실 및 고문을 은폐하는데 검찰의 권한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정보기관이 검찰의 수사와 공소를 조정할 수 있는 근거인 ‘안보수사조정권’이 해당 사건의 원인임을 지적하고 이를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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