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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철 칼럼]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되찾기 위한 빈곤철폐의 날

극심해지는 불평등 사회에 동정거리로 소비되는 가난

10월 17일은 UN에서 정한 ‘빈곤퇴치의 날’이다. 1992년 세계적인 빈곤문제를 없애겠다는 포부아래 선언되었고, 2000년 UN총회에서 새천년개발목표를 통해 2015년까지 절대빈곤 대폭감소라는 목표가 결의되었다.

‘화이트밴드 캠페인’은 빈곤퇴치의 날의 대표적인 행사다. ‘END POVERTY’ 라고 적힌 흰색 실리콘 팔찌를 착용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앉았다 일어서는 퍼포먼스인데, ‘가난의 굴레에서 스스로 일어나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가난에 처한 개인이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한다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소 지엽적이다. 스스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을 바꾸지 않는다면 스스로 일어난 개인은 또 다시 쓰러질 수밖에 없다. 가난의 굴레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구조 속 오만가지 선들이 얽히고 설켜있다.

국제 NGO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빈곤퇴치의 날에는 기부·후원·모금, 기존에 해오던 사업을 더 크게 홍보한다. 길을 거닐다 혹은 TV나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광고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아픈데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나 노인, 가난하지만 씩씩하게 웃고 있는 아이가 담겨있는 홍보물을. 이러한 홍보물들은 가난을 동정거리로 소비하고 전시하며 빈곤문제를 사람들 속에서 한 번 더 상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에게 후원금을 제공함으로서 가난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마주하는 세상이 계속해서 가난을 만들어내는 사회라면 그에게 가난은 도처에 실존하는 위협이다. 이는 가난에 처하는 것이 누구에게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재난사회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5년까지 절대빈곤 대폭감소를 목표로 했던 UN의 새천년개발목표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름을 지속가능개발목표로 바꾸고 2030년까지 세계 모든 형태의 빈곤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재설정했다. 새천년개발목표가 세워진 2000년, 한국은 1997년 IMF외환위기를 겪은 직후이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한 때이다. 당시 8%대였던 절대빈곤율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빈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절대빈곤에 처해있다. 정의당 심상정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상위 0.1% 연평균소득은 6억6000만원으로 하위 10%의 연평균소득인 69만5000원과 1000배 차이가 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서 극심해지는 불평등은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만의 이야기 아니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차이도 36배에 달한다. 빈곤은 불평등에 의해 더욱 확산되고 공고해지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게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를 계속해서 잠식하고 있다.

상위 0.1%와 하위 10%의 연평균소득
상위 0.1%와 하위 10%의 연평균소득ⓒ1017 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빈곤철폐의 날

빈곤사회연대는 빈곤퇴치의 날을 ‘빈곤철폐의 날’로 명명하여 투쟁하고 있다. 빈곤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구조로부터 발생되기 것이기 때문에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연대하여 빈곤을 철폐하자는 취지다. 올 해 빈곤철폐의 날의 기조는 ‘세상을 바꾸는 몫 없는 이들의 행진’이다. 건설사, 투기꾼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개발사업에 의해 대책 없이 쫓겨나는 철거민, 도시미화라는 그럴듯한 목적에 마지막 생계수단 노점에서 마저 밀려나는 노점상인, 건물주와 집주인의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쫓겨나는 임차상인과 세입자, 개발되는 도시 속 쪽방, 공공장소, 거리에서 마저 쫓겨나는 홈리스, 지역사회에서 쫓겨나 시설에 수용되어야 하는 장애인들 등 사회에 몫을 빼앗긴 가난한 사람들이 연대해 빈곤을 철폐하고 우리의 몫을 되찾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빈곤철폐의 날 투쟁은 10월3일 광화문에서 ‘세계 주거의 날, 쫓겨나는 사람들의 달팽이 행진’으로 시작했다. 상위 1%가 60만 6천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 쪽방‧여관‧여인숙 등 주택이 아닌 거처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50만 명,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사는 가구는 보다 많은 114만 가구에 이른다.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또 다른 주택을 구매하는 동안 재개발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책 없이 쫓아내고 있다. 평균 거주기간이 3년 밖에 안 되는 한국사회의 세입자들에게 집은 안정적인 삶의 공간이 아니라 버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달팽이 행진에 함께한 사람들은 주거가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고파는 상품이 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장기공공임대주택공급확대‧강제퇴거금지‧주거취약계층주거지원확대‧대학생공공기숙사확충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까지 오체투지와 행진을 진행했다. 10월13일 청계천에서 ‘빈곤철폐의 날 투쟁대회’를 진행했다. 청계천은 한국사회 빈곤과 불평등의 역사적인 장소이다. 현재의 종로를 채우고 있는 무수한 유리빌딩과 청계천을 만들기 위해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노점상, 시장상인 등의 도시빈민들은 계속 해서 대책 없이 쫓겨나왔다.

빈곤철폐의 날 투쟁과제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13개다. 이는 빈곤과 불평등의 양상이 더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10월17일 빈곤철폐의 날 당일에는 오전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용미리 추모의 집으로 이동해 ‘무연고 사망자 추모제’를 진행했다. 추모의 집에는 무연고로 사망한 3000여 명이 안치되어 있다. 추모의 집에 안치된 유골들은 10년 이후 일괄 매장된다. 무연고 사망자는 가족이 없는 사망자를 말 하지만 실제 무연고 사망자 모두에게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신인수를 위해 치러야할 비용이 없어서 인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족들이 있는 경우도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존엄하지 않은 삶이 한국사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다.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1017 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

빈곤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싸움은 매순간 계속되고 있다

빈곤철폐의 날 투쟁일정은 모두 마쳤지만 빈곤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빈곤과 불평등을 양산하는 잘못된 사회구조로부터의 폭력이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17일 빈곤철폐의 날 당일에도 자양동, 아현동 재개발 지역에 용역을 동원한 강제집행이 시도됐다. 집기를 끌어내기 까지 했던 집행을 철거민들이 막아냈다. 신촌에 있는 임차상인의 가게에도 집행위기가 있었다. 창동역에는 구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작년 겨울부터 현재까지 장사를 못한 채 싸우고 있는 노점상인들이 있다.

가족이 있어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빈곤층은 여전히 100만여 명에 달하며,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인구대비 3%로 절대빈곤율 8%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국 1,500여명이 홈리스들이 마땅한 거처마저 없이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고, 3만 여명의 장애인들은 지역사회가 아닌 장애인수용시설에서 권리와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내고 있다. 이러한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개인의 책임일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숫자로 환원해 효율성 측면에서 예산과 저울질하는 정부, 용역폭력을 구입해 가난한 사람들의 삶터를 아무렇지 않게 빼앗는 돈 많은 사람들과 그것을 비호하는 공권력, 불합리한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빈곤과 불평등은 없어질 수 없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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