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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공간, 영혼의 상처자국이 내 글쓰기 터전"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던,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든 도전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민중의소리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개척한 ‘꾼’들을 찾아 그들의 밥벌이와 가치를 묻습니다. 동영상 강좌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전한다면, 페이퍼 특강에선 독자에게 정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전할 계획입니다. 직업의 세계에선 때론 구체적인 기술보다 좋은 관점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나에겐 ‘현장에서 싸우며 쓴 자신의 시만이 진실하다’고 강변하는 벗이 있는데, 한 번은 그의 작품을 보고 ‘술 먹고 썼냐’고 힐난했다. 그는 “술이 덜 깬 새벽 농성장에서 쓴 시이기에 문학적 성취와 상관없이 그저 아름답지 않냐”며 웃어댔다.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전 문인들은 샤르트르 이야기를 하곤 했다. 화염의 시대, 장 폴 샤르트르는 “작가의 글은 총이며, 침묵할 순 있지만 쏘려면 제대로 쏘아야 한다. 작가는 노동하는 인간의 편에 선 협조자이며 당대에 대한 폭로자여야 한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작가의 글쓰기는 ‘동시대인과의 공감과 사랑’이라고 하는 이나 ‘자기해방을 통한 영혼의 치유’라고 믿는 이들의 이야기도 옳다. 글을 쓸 때 비로소 심장이 뛰는 자유인으로 살아있다고 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울림이 있다.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작품을 결정짓는 것은 작가가 서있는 위치와 시선이라는 것 아닐까.

2011년 통계결과를 보면 평균수명이 가장 짧은 직업군 중 하나가 ‘작가와 체육인이었다. 정신과 몸을 혹사시키는 직업군이 더 빨리 죽는다. 새로운 것을 잉태하기 위한 창작의 고통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겠구나 싶었다.

소설가를 만났다. 김재순 작가는 92년 등단 이후 6개의 작품집을 냈고, 지금도 쓰고 있다. 올해에만 장편소설 「바람의 무늬」 창작집 「찔레꽃」, 단편소설 「화훼마을」을 냈으니 26년이란 세월, 그저 작가인 셈이다. 김재순 작가를 두 번 만났다.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중견작가로서의 권위의식은 보이지 않았다. 대화는 주제와 관련 없이 이리저리 유쾌하게 이어졌는데, 그의 생각과 표현이 투명하다고 느꼈다. 그의 시선은 늘 우리 사회의 피해자를 향하고 있었다. 이번 기사가 작가를 꿈꾸거나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었으면 한다. 가독성을 위해 질문의 표기는 최대한 생략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었다.

소설가 김재순
소설가 김재순ⓒ민중의소리

비밀 일기장에 풀어놓았던 자기해방의 습관이 글쓰기로

한국에선 『철도원』의 저자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아사다 지로의 고백은 나와 너무나 닮았어요. 그가 소설에 입문했던 계기가 “몰락한 집안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선배의 조언을 들은 것이라고 하죠. 난 아사다 지로의 말을 보고 전율을 느끼며 공감했어요. “몰락한 집안의 사람이 다시 권력을 향해 상승하려고 하는 욕망이 작가로 만들게 한다”는 말은 저에게 꼭 맞아요.

아버지는 당시 서울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기업의 총수였고, 우리 집은 넓은 정원 위에 지어진 궁전 같은 곳이었어요. 친척들이 아버지께 기대며 함께 살 정도였거든요. 아버지가 퇴근하면 높은 돌계단 아래로 아버지 동생네들이 도열해 허리 숙여 인사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연해요. 언니 오빠는 수재였고, 나도 반장을 놓치지 않고 공부했지만, 결국 동덕여중에 진학했거든요. 경기고에 비하면 당시엔 이류로 취급하곤 했지요. 명절에 문중이 모이면 어머니는 나를 방에 넣고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창피하다고요. 유일한 도피처는 가정부 언니와 서울 시내를 다니거나 영화를 보는 일이었어요. 학교에선 해맑은 말괄량이 소녀, 집에선 우울함에 짓눌린 창백한 아이로 그렇게 살았네요.

그때부터 글을 썼어요. 일기죠. 글을 쓰지 않고선 가슴 속 거대한 아우성이 가라앉질 않았어요. 2개의 일기장을 썼어요. 하나는 부모님이나 가족이 봐도 상관없는 내용의 것, 그리고 비밀일기장에는 내 심장의 울림을 그대로 휘갈겼던, 상처와 연민, 우울함 기록을 남겼죠. 마음이 크게 왜곡되어 사람의 온정과 공감과 같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고1 때 아버지가 사업에 곡절을 겪고 병원에서 40일간 말도 못 할 정도로 몸이 상해서 투병하다 가셨어요. 주변 사람들은 돌변했고 가난이 찾아왔죠. 그런데 사실 내 상처는 가난이 아니라 부모님께 받은 영혼의 상처 같은 것이어요.

송기원 작가는 장돌뱅이 시장통에서 자랐고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새아버지 집에 딸려가 온갖 방황을 했는데, 이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거든요. 나는 그러질 못했어요.

그 콤플렉스가 글쓰기로 이끌었죠. 현시욕이라고 하잖아요. 자기 생각과 존재를 인정받고 공감을 끌어내고 싶다는 욕망. 모든 작가는 기본적으로 이런 현시욕을 가지고 있죠. 그것이 인기든, 권력이든, 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일이든. 잃은 것, 결핍된 것을 되찾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지요. 만일 이런 욕망이 없다면 골방에 틀어박혀 일기만 쓰면 될 일이지요. 내가 글쓰기에 집중했던 이유는 이런 상처 때문이었어요. 결혼 이후의 삶도 원만하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니 ‘안 쓰곤 못 배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청소년기 내가 가졌던 외로움의 공간, 내 상처 자국이 바로 글쓰기의 터전이 되었지요. 외로움의 공간이 결국 보석으로 연마되기 전의 부활하기 전의 원석인 셈이죠.

글을 쓸 때, 나는 비로소 빛이 난다고 할까요. 심장이 쿵쾅거리는, 존재이유이기도 하죠. 나머진 모두 지루해요. 친구들과 쇼핑을 하거나, 볼링을 치거나 왁자하게 떠들며 시간 보내는 것도 해봤지만 여기엔 희열이 없어요.

등단, 캄캄한 동굴에 갑자기 해가 드는 것과 같은 사건

처음부터 등단을 목표로 하진 않았어요. 내가 소설가로서 재능이 있는지도 불확실했거든요. 동아문화센터 작법반에서 수업을 받으며 습작했는데, 3년 만에 3개의 작품이나 문예지 등에 후보작으로 올랐어요. 다른 이들에 비해 운도 좋아 빨리 등단했어요. 첫 작품이 경향신문 최종심에 올랐는데 떨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1등 한 게 다행이었어요. 이듬해부터 여럿의 작품을 더 썼거든요. 문화일보에서 상을 받고 등단했어요. 처음 응모한 작품이 되었다면 작가로서 생명이 더 짧아졌을지도 모르죠.

당시 경쟁률이 웬만한 건 200:1이고, 치열한 곳은 600:1이었거든요. 최종심에 들고도 작가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그리고 등단하자마자 작품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매우 많죠. 우린 이런 경우를 ‘개점폐업’이라고 불렀어요. 작가가 된다는 건 꽤 오랜 시간의 생활고를 버텨야 하는 것을 의미하죠. 웬만한 의지가 없으면 계속 자기 작품을 내는 건 쉽지 않아요.

지금까지 내가 낸 창작집이 6권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친구 문인들은 ‘독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표현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에요.

소설가로서의 재능, 어쩌면 세상을 보는 시선

예전에 박완서 선생이 ‘저거다! 하며 쓸 수 있는 게 재능’이라고 했어요. 저 역시 공감해요. 소설가에게 최고의 재능은 세상을 보는 시선이라고 봐요. 주변 세계의 모습과 사람의 삶은 누구에게나 보일 수 있지만, 특정한 지점을 포착하고 그곳에 몸을 들이밀어 펜으로 쓰는 것은 소설가마다 다릅니다. 모든 소설은 사소설이라고 봐야 합니다. 많은 사건이 있어도 결국 작가의 시선이 꽂히는 지점은 자신과의 연관이거든요. 작가의 삶과 세계관과 작품이 절대적으로 연루될 수밖에 없죠. 그래서 난 소설가는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에서 퍼 올렸다는 이야기가 가짜면 금방 들통 나요. 그래서 예전 문인들은 소설을 가르칠 때 작법을 벗어나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 그 가치관까지 개입하려 한 적이 많아요. 원칙적으론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스승은 후학의 좁고 경직된 사고방식, 가치체계가 안타까웠던 거죠.

김재순 소설가의 작품에는 상처 입은 피해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한미약품의 고의적 늦장 공시로 평생 모은 돈을 날려버린 여성, 동양생명 고의부도사건으로 생계자금을 모조리 강탈당한 노인들, 산불 진화를 위해 가족과 격리되어 산속 오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헬기 조종사, 시골에서 올라와 밤마다 모텔로 몸을 팔러 가는 여성들과 같이 항변조차 못 하는 이들이 벼랑으로 내몰린다. 작품을 읽고 나면 멍하니 답답하다. 적나라한 현실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탐사전문 기자와 같은 집요함이 곳곳에 있다.

사제나 목사님, 어쩌면 소설가도 우리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을 추적하면 악인이 선인으로 되기도 하고, 선한 이가 악의 도구로 쓰이기도 하거든요. 나쁜 이들에 의해 낭떠러지까지 밀려난 이들은 늘 나의 시선을 끌어요. 데뷔작이『멀리 있는 땅』이었어요. 공무원이 공모해 주택 한 채의 입주권을 5명에게 팔았어요. 평생 모은 돈으로 제집 마련을 하려던 이들의 꿈을 물거품이 되었죠. 뉴스는 시끄러울 때 보도하고 말잖아요. 이후 시간이 흘렀을 때, 난 집을 강탈당한 이들의 삶이 궁금했어요. 프레스센터에서 자료를 확인하고 영등포구청을 찾아갔어요. 사건을 온전히 알아야 글을 쓸 수 있기에 취재를 통한 팩트확인은 내 창작의 첫걸음입니다. 사회적 사건일수록 취재원들의 경계심은 강력하죠. 허탕 치는 날이 부지기수입니다. 여름이었는데, 아무런 성과 없이 뙤약볕을 맞으며 먼 길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나에게 피해자, 이들은 무엇이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시사프로그램은 죄다 챙겨보고 있어요. 뉴스를 보면 화가 나고 눈물이 나요. 기륭전자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한순간 폐기되고 노예보다 못한 삶을 강요받을 때, 그들이 오른 철탑 농성장이든, 단식천막이든 들르지 않고선 못살거든요. 여러 날 잠을 못자고 생각하는 날이 많아요. 천성일 수도, 연민일수 도 있지만, 억울한 이들이 그저 힘이 없다고 사장되는 걸 못 참겠어요. 난 이들의 사연과 삶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의 작품집 『찔레꽃』에는 단순한 정보성 취재로는 쓸 수 없는 표현들이 많다. 부동산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을 다룬「삼성몰」이나 헬기조종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버티고(vertigo)」는 여간해선 얻을 수 없는 세밀한 묘사들이 많다. 탐사전문 기자의 시선도 엿보인다. 취재가 만만치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티고(vertigo)」의 경우 지인의 도움을 받아 안산시와 계약을 했던 헬기 조종사를 찾을 수 있었어요. 헬기 조종사라면 그럴듯한 직업이잖아요. 배낭에 책을 가득 넣고 도착한 곳이 수풀 우거진 수도사업소 기숙사에요. 아무도 찾지 않는 낡고 외딴 곳이죠. 세 남자가 살고 있었는데, 조종사, 급유담당, 그리고 정비담당 이렇게 산불을 대비해 매일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남자 셋이 사는 곳에서 기숙하는데, 당연히 겁이 나요. ‘며칠 묵으며 취재해도 되겠냐’고 하니 신기한 듯 보다 그러라고 해요. 갈 때마다 신김치를 싸가지고 가서 푸성귀 뜯어서 밥도 해 먹고 그러고 살았어요. 조종사가 그래요. 비행하다 보면 밭일하던 아낙 오줌 싸는 것도 보인다고. 농담인줄 알았는데, 헬기로 안산에서 제부도 갈 때 헬기로 태워준 적이 있었어요. 정말 그렇더군요. 소재는 세상에 널려있지만, 어떤 삶과 상황에 주목하느냐는 작가의 역량에 달린 거죠. 독자들이 금방 알아요. 바닥에서 뒹굴면서 얻은 것인지,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 얻은 남의 것을 짜깁기 한 것인지. 그래서 작가는 분명한 형상이 잡히기 전엔 펜을 들지 않죠.

기지촌 여성들을 알기 위해 한 여성작가는 미군기지 클럽에서 미군에게 팝콘을 팔았어요. 그렇게 살며 얻은 체험이 ‘베이비’라는 소설로 탄생해요. 열일곱 살에 기지촌에 흘러온 이 여자는 ‘베이비’라고 불렀지만, 나이 육십이 넘어도 여전히 호칭은 ‘베이비’에요.

25년간 쉬지 않고 창작을 해왔다. 그의 작품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아프다. 판타지는 없다. 적나라한 현실이 있다.
25년간 쉬지 않고 창작을 해왔다. 그의 작품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아프다. 판타지는 없다. 적나라한 현실이 있다.ⓒ민중의소리

전업 작가가 아닌 이에게 소설을 쓰는 삶은 무엇인가

꼭 직업적으로 쓰지 않더라도 꾸준한 창작은 인간에게 신념과 성찰을 줍니다. 끝없이 사색하고 독서하며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비워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죠.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니 내적으로도 강해집니다. 소설가의 삶의 태도는 사색과 독서, 마음 비우기를 통해 단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워야 담아낼 수 있고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니까요. 

언젠가 딸이 내게 이렇게 물었어요. “엄마는 완전히 자기 작품,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바꾸려고 한 적이 있어? 비슷비슷한 소설 말고 말야” 사실 좀 충격이었지요. 딸이 툭 던진 말인데 아프더군요. 딸은 인도 여행을 권했어요. 그런데 아직 못가고 있어요. 소설가에게 ‘반복’은 창작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지요. 소설가의 삶과 작품이 달리 가지 않는 건 진리지요.

윤대녕의 작품 중 어느 구절에 ‘그녀의 마른 발’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윤대녕의 언어를 보세요. 그 뉘앙스에 얽힌 내재된 것들. 말초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기 위해선 많은 현상을 접해야 하고 자신을 늘 새롭게 해야 하거든요.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는 일본의 작가 지망생 청년들에게 주는 권면이지만, 사실 모든 소설가의 필독서나 마찬가지입니다. 휴대폰도 없고 인터뷰도 하지 않으며 작가로서 초발심을 유지하기 위해 사는 절제된 삶의 태도를 곱씹어야 합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고, 모든 삶이 귀결이 작품을 향해야 한다는.

작가들은 창작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글이 나오든 안 나오든 특정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쓴다는 이가 있고, 하루에 원고지 15장은 의무적으로 채워 ‘엉덩이’를 단련시키듯 뇌를 훈련시키는 이도 있다. 생각이 풀리지 않고 마치 묵은 변비처럼 꽉 막힐 때, 노트북 앞에 앉기조차 두려울 때가 왜 없겠는가. 김재순 작가에서 창작습관을 물었다.

전 유별나지 않아요. 주로 밤 10부터 집중해서 쓰는 편인데요. 풀리지 않을 때가 있죠. 그럴 때는 전 그냥 덮어요.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함이죠. 조조티켓을 끊어 영화를 보기도 하고 책을 싸 들고 여행을 가기도 하죠. 일주일 후에 다시 작품을 출력해 들여다보면 실마리가 풀릴 때가 있죠. 대가들은 술을 3차까지 해도 집에 돌아와 그날 쓸 분량을 집필하곤 해요. 전 그렇게는 안 해요. 술자리도 1차로 끝내고 귀가합니다.

구상단계가 가장 힘들어요. 구상이 완전히 익기 전에는 집필하지 않거든요. 이후에 에피소드을 보완하면서 씁니다. 그렇게 80%를 완성하면 출력해서 읽어보거든요. 이 대목도 만만치 않죠. 세밀한 묘사와 표현 등을 하나씩 손을 봐야 하는데 이것도 꽤 힘이 들어가는 편이죠.

소설가를 꿈꾼다면, 우선 남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것부터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우선은 쓰고 남에게 보여줘야 해요. 꼭 쥐고 혼자 다듬는 걸 반복하면 결국 시간만 허비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난 학생들에게 우선 개발새발 써서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우선 그 종자가 소설이 될 수 있는지부터 봐야 하거든요.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면, 글쓰기의 첩경은 자기 것을 평가받고 고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전엔 소설 지망생들에게 강의하고 작법 훈련도 많이 시켰거든요. 시간이 얼마큼 흐르니 수강생의 특성이 눈에 보이기 시작해요. 어떤 이는 자기 작품에 달라붙어 성취하곤 하지만, 또 어떤 이는 몇 년이고 강좌만 쫓아다니면서 ‘쇼핑’을 하듯 소설을 배우려는 이가 있어요. 소설은 많은 정보와 남의 것을 익혀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좋은 스승, 그리고 진짜와 가짜

용기와 창작의욕을 북돋아 주는 사람이 좋은 스승이겠지요. 더불어 본인 역시 창작을 놓지 않고 꾸준히 성찰하고 교감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에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이어야 합니다. 진짜 작가지요. 작품 활동보다 사교에 몸이 더 바쁘고 허명을 알리는 것으로 분주하면 그건 아니라고 봐요. 작가가 사교적일 필요는 예나 지금이나 없다고 봐요.

절필하고 싶을 때

다섯 번째 작품집을 내고 인제 그만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만하면 쓸 만큼 썼다는 생각도 있었죠. 쉬는 차에 남산도서관에서 고등학생에게 창작을 가르쳤거든요. 이 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다시 쓰고 싶어지더군요.

소설가는 작품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한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보고 성장한다

글쎄요. 딱 멘토가 누구라고 정의하진 않았는데요. 전 김원일 선생님을 존경해요. ‘가난에도 힘이 있다’고 하셨는데, 소설가의 영적 타락을 늘 경계하셨던 분이셨어요. 몸이 편해지고 소유하는 것이 늘면 소설가의 서 있는 곳이 달라지거든요.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지요. 해마다 등단하는 이들을 보면 여성 작가가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남성 작가들이 더 많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였는지 선생님은 등단한 젊은 여성 작가에게 늘 차갑게 묻곤 했어요. “넌 언제까지 쓰다 그만둘래?” 편견일 수도 있지만, 생활에 함몰되어 창작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일침이기도 했죠. 황순원 선생님 묘소 참배도 가시며 ‘작가로서의 삶’ 그 꼿꼿한 정신을 일러주신 분이지요. 소설가는 작품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사람의 삶을 투명하게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우게 돼요.


김재순 작가 이력

1992년 문화일보 제1회 단편소설로 등단 (멀리 있는 땅)
1994년 청구문화제 단편소설로 최우수상 수상
1995년 호주대사관 주최 연극평론에 당선
1997년 첫 번째 창작집 ‘숭숭이 반닫이’ 출간
2000년 ‘돈암동 가는 길’ 발간
2002년 문화진흥원에서 창작지원금 수혜
2003년 세 번째 창작집 ‘인사동 블루스’발간

2007년 문화예술위원 주최 단편 ‘삼성몰’이 우수작으로 선정
2009년 네 번째 창작집 ‘옥돔파는 여자’ 출간
장편소설 ‘오낭’을 문예지에 연재 중

2011년 장편소설 "오낭"출간
2013년 창작집 "버티고"출간
2018년 장편소설 '바람의 무늬“, 창작집 “찔레꽃” , 단편소설“화훼마을”

김재순 소설가의 '작법' 강좌 (11월 시작) 둘러보기
http://www.vop.co.kr/A00001344309.html

금영재 이산아카데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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