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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노래] 이건 사기가 아닌가요?

정육점에 소고기를 사러 갔을 때, 한우 2++를 보여주고 막상 포장해줄 때는 미국산 냉동소고기를 준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옷가게에 옷을 사러 갔을 때, 내가 입어보고 결제한 것과 다른 옷을 포장해 주거나 혹은 여기저기 해지고 목부분에 누런 때가 묻어있는 헌옷을 준다면?

아마 정육점이나 옷가게를 한달음에 쫓아가서 따지고 들며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게 주인의 도덕성을 문제삼으며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병원은 어떨까요?

의료기관의 인증을 받은 우수한 병원이랍시고 금빛으로 빛나는 현판을 달아놓고 광고를 하는데, 사실은 인증단이 찾아오는 단 며칠 동안만 인증기준에 부합하도록 꾸며낸 것이라면? 인증단이 떠나고 나면, 12시 종이 치고난 후의 신데렐라 호박마차처럼 찌그러진 호박으로 변해버리는 병원이라면?

이건 사기가 아닌가요?

서울대병원노동조합에서 형식적인 의료기관 인증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부착했다. 사측은 곧바로 철거했다.
서울대병원노동조합에서 형식적인 의료기관 인증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부착했다. 사측은 곧바로 철거했다.ⓒ필자 제공

의료기관 인증평가의 실체

의료기관 인증평가라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습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의료기관 인증제도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료기관 인증제도(이하 인증제)는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유도하여 의료소비자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인증제는 순위를 정하는 상대평가와는 달리, 의료기관의 인증기준 충족 여부를 조사하는 절대평가의 성격을 가진 제도로, 공표된 인증조사 기준의 일정수준을 달성한 의료기관에 대하여 4년간 유효한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바로 저 인증마크를 따기 위해 병원 전체가 들썩거리는 것입니다. 정말로 환자들에게 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인증마크를 딴 것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 합니다. 애초에 "인증준비"라는 말이 생겨난 것 자체가 인증단을 맞을 준비를 별도로 한다는 것이니, 평소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거겠죠.

인증단이 오기 한두달 전에 벼락치기로 준비해서 인증단이 오는 4일만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인증단이 오는 4일동안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 '4일'이 아닌 다른 날에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인증제 시즌이 다가오면 한달 전부터 병동에는 긴장감이 감돕니다. 수간호사는 수시로 회의에 불려다니며 새로운 지침들을 공지합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인증기간 동안에는 일시적으로 인력을 추가로 더 배치하거나 외래예약이나 수술스케쥴을 줄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평소에는 인증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평소에는 인력에 비해 너무 많은 외래예약과 너무 많은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증기간에 외래예약이나 수술이 줄어들면 오히려 편해서 좋지 않냐구요? 과연 그럴까요?

서울대병원은 의료기관 인증평가 대비하는 자료집을 제작, 간호사들에게 배포했다.
서울대병원은 의료기관 인증평가 대비하는 자료집을 제작, 간호사들에게 배포했다.ⓒ필자 제공

청소, 서류작업에 쓸데 없는 암기까지

인증제의 서막은 청소로 시작됩니다.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까지 쓸고 닦고 닦고 닦고...문제는 그 청소를 업체를 부르거나 청소인력을 늘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만만한 간호사들에게 시킨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도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쁜 간호사들이 인증준비랍시고 온갖 서류작업에, 청소에 더 정신이 없습니다.

모니터에 쌓인 먼지를 구석구석 털라고 하고, 드레싱 카트에 묻은 얼룩을 닦으라고 하고, 너저분한 게시판을 깔끔하게 꾸미라고 하고, 서류더미가 쌓여있는 스테이션을 정리하라고 하고,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진 온갖 안내표지판이나 이름표 등을 새로 출력해서 코팅하라고 합니다. 환자를 간호하고 있는 근무시간 중에 지시할 때도 있고 퇴근 후에 할 때도 있고, 심지어 공식적으로는 쉬는 날이지만 병원에 나와서 준비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인증단이 오면 물어볼지 모를 예상질문을 마치 시험을 앞둔 학생들처럼 암기하곤 합니다. 때로는 정말 쓸데없는 것까지 외워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대병원에는 수은노출의 위험때문에 수은혈압계를 아예 없앴지만 수은 노출사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인증준비 공부(?)를 할 때, "우리 병원에는 수은혈압계가 없긴 하지만" 만약 수은노출사고가 일어나면 어디어디에 있는 키트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저렇게 처리한다고 대답하면 된다고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배워서 나쁠 건 없겠죠. 누군가 병원에 앙심을 품고 수은을 가져와서 뿌릴지도 모르니까요. 인증기준에 우라늄 노출사고가 없는 게 천만 다행입니다.

물론 새롭게 배우는 것도 있고 도움이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어떤 것이 환자에게 더 이로운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환자의 치유를 돕는 것인지 핵심적인 것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일에 치이고 시간에 쫓겨 그렇게 못 할뿐이죠.

손을 자주 씻으면 감염예방에 좋을 것이고, 투약은 제 시간을 지키는 것이 치료효과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투약시 지켜야할 다섯가지 원칙은 눈을 감고도 외울 수 있습니다. 치료자로서 질병과 그 치료과정으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에게 공감해주고 충분한 설명과 정서적인 지지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그런 원칙을 다 지키지 못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니, 사실 아주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나라 간호사들이 유독 못 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요?

서울대병원노동조합에서 형식적인 의료기관 인증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부착하자 사측이 철거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 게시판에 부착된 게시물도 일방적으로 훼손했다.
서울대병원노동조합에서 형식적인 의료기관 인증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부착하자 사측이 철거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 게시판에 부착된 게시물도 일방적으로 훼손했다.ⓒ필자 제공

형식적인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이제 그만

일반인에 비해 간호사 집단이 특별히 사악한 사람 비율이 높을 것 같진 않습니다. 오히려 학창시절 장래희망을 조사할 때 '저는 나중에 커서 아픈 사람을 돕고 싶어요.'라고 쓴 사람들의 비율이 일반인 그룹보다 더 높겠죠. 다만 원칙과 원칙이 충돌할 때 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할 뿐입니다. 평소에는 길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지 않겠지만 사막에 조난된 채로 일주일쯤 굶은 상태라면 모래밭에 떨어진 주먹밥도 허겁지겁 먹게 되는 것처럼요.

병원은 인력문제에 있어서는 만성적인 기아상태입니다. 그러니 식사예절을 지켜가며 깔끔 떨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죠. 머릿속으로 '아...진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흙투성이의 상한 음식도 주워 먹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증제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제가 의료기관 인증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의료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안심하고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인증제도가 진짜 제 역할을 해주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증기관이 정말 제 역할을 했었더라면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들이 집단으로 사망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병원들이 인증단이 찾아오는 4일이 아니라, 1년 365일 내내 인증기관이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적정 인력을 배치하고 직원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했었더라면 지난 2월 아산병원의 신규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그런 비극도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사후세계를 진지하게 믿는 편은 아니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아마도 지옥에 가게 될 것 같아요. 저는 내일 출근하면 인증단에게 평소 하지 않았던 일들도 하고 있다고 거짓으로 고할 뿐 아니라, 한 적도 없는 일들을 했다고 얘기해야 하거든요. 10월 23일부터 26일은 서울대병원의 인증기간입니다. 이런 글이나마 쓰는 것이 그동안 병원의 사기행각에 동참했었던 저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까요?

최원영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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