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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지금 울고 있는 이들 곁에 놓아두고 싶은 먹먹한 노래
포크 듀오 단식광대
포크 듀오 단식광대ⓒ단식광대

세상에는 가끔 놀라운 데뷔 음반이 있다. 다른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뛰어넘지 못하는 데뷔 음반. 김민기의 1집, 들국화의 1집,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 같은 음반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광휘 뿐 아니라 앞으로 누릴 모든 영광까지 담아낸 음반은 운명적이다. 그러나 놀라운 데뷔 음반은 드물다. 오히려 데뷔 음반은 대개 서툴고 미숙하거나 풋풋하고 젊다. 하지만 많은 예술작품들이 그러하듯 데뷔 음반은 한 음악가의 원형을 담은 경우가 많다. 그/그녀가 살고 꿈꾸는 세계는 숨겨지지 않고, 이어지는 음반에서 반복된다. 그래서 데뷔 음반은 한 음악가에게 향하는 지도이다. 이 지도를 들고 음악으로 걸어 들어갈 때 우리는 음악가라는 존재, 그리고 그 존재가 만드는 창작물 사이의 숨겨진 시공간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다.

인디 씬에서 활동 중인 포크 듀오 단식광대의 데뷔 음반 [EP 1]도 흥미롭다. 2008년 결성한 팀의 정규 음반이 10년만에 나왔으니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아주 늦은 편이다. 다섯 곡이 담긴 음반의 제목은 앞으로 EP들이 더 나올 것임을 예고하는 듯 [EP 1]이라고만 적혀 있다. 다섯 곡의 수록곡은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 건반, 첼로 정도로 단출하게 채워진다. 포크와 모던 록 사이에 있는 노래들은 리듬 악기를 거의 쓰지 않고 느리게 흘러간다. 건반과 첼로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이고 쓸쓸한 무드 위에 보컬 구자랑의 목소리가 얹힌다.

단식광대의 첫 번째 음반 ‘EP 1’ 표지
단식광대의 첫 번째 음반 ‘EP 1’ 표지ⓒ단식광대

구자랑의 연약하게 떨리는 목소리 질감과 몽환적인 음색은 포크의 미니멀한 편성 위에서 미니멀함을 돋보이게 하고, 미니멀함으로 결국 그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밝고 당당하기보다는 고통스럽거나 은밀한 노래의 정서 속에서 구자랑은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신 때문에 눈물 흘리면서도 끝내 사랑하지 못하는 자아의 모습을 안타깝게 응시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감싸안아줄 사람 하나 없는” 나를 다그치지만, 끝내 울고 마는 외로움을 거울 앞에서 확인해보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팽이는 스스로를 채찍질해 계속 돌아가지만 팽이가 스스로를 내리칠 때 아프지 않을 리 없다. 팽이의 몸에 생채기가 나고, 그 생채기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밤이 숱하게 많지만 아침에도 충혈된 눈을 못 본 체 할 뿐이다. 단식광대의 곡 ‘팽이의 감정’은 누구나 마주하는 삶의 고단함과 고통을 섬세하게 포착해 모두의 경험으로 인도한다.

두 번째 곡 ‘황사’ 역시 기쁨과 쾌락보다 그늘과 고통 쪽에 서 있다. 구자랑은 부서지고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겨우 붙잡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모두 떠나버린 공간’에 남아, ‘너의 이야기들/나의 모든 것들/또 간직했던 비밀들’을 지우지 못하는 이의 황망함과 쓸쓸함을 노래한다. 슬로우 템포의 리듬과 어쿠스틱 기타 연주, 건반 연주에 더하는 노래만으로도 몽환적인 막막함은 강력하다. 노래를 듣는 일로도 아프고, 노래를 따라오는 기억들로 다시 아프게 하는 노래는 ‘팽이의 감정’처럼 멜랑콜리한 멜로디를 깊숙하게 찔러 버리는 홍철민의 송라이팅 앞에서 속절없다. 좋은 노래는 화려하고 정교한 사운드 메이킹으로만 구현되지 않고, 이렇게 단출하지만 순도 높은 멜로디와 보컬의 어울림만으로도 순식간에 완성된다.

포크 듀오 단식광대
포크 듀오 단식광대ⓒ단식광대

자신이 무인도 같은 섬이라는 고독한 자기 인식, 그럼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을 토로하는 ‘무인도’ 역시 아픈 곡이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그 외로움과 막막함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 견디고 사유할 수 있게 돕는다. 외로움과 막막함에 육박하는 보컬의 음색과 울컥거리게 하는 멜로디, 무인도를 덮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건반 여주는 그 감각을 밀도 높게 재현하면서 고통까지 아름다움으로 변환시킨다. 외로움을 겪는 이에게 외로움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는 어렵지만, 노래는 감정과 상태를 아름다움의 땅으로 옮겨 그 상태의 유일한 가치와 의미를 놓치지 않게 돕는다. 그래서 노래는 위로가 될 수 있고, 치유가 될 수 있다. ‘무인도’에서 끝내 작은 배를 띄우려하고, 너에게 닿으려하는 안간힘은 이성으로 절망하고, 의지로 낙관하는 모습으로 더 큰 감동에 도착한다.

전반부의 세 곡이 안간힘과 처연함으로 먹먹한 노래라면 ‘겨울잠’은 어쿠스틱 악기 연주와 왈츠 리듬으로 해사한 희망 쪽에 선다. 그리고 마지막 곡 ‘망중한’은 피아노와 스캣만으로 편안한 안식을 선사한다. 그래서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는 이들 곁에 이 음반을 놓아두고 싶어진다. 슬픔은 슬픔으로만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트렌디한 사운드라기보다 이제는 지나간 어떤 시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이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사라지는 현실에서는 무척 반가운 노래이다. 시대가 흐른다고 옛 어법이나 스타일이 서둘러 폐기되어야 할 리는 없다. 강박처럼 힙과 핫을 좇기보다 하나의 어법과 스타일이 만들 수 있는 소리의 세계 안에서 몰입하고 탐닉하는 편이 낫다. 감정과 생각을 핍진하게 담은 노래의 가치가 겨우 취향이라는 프레임만으로 폄하되지 않기를 바란다. 취향을 뛰어넘은 이들이 많은 사회가 튼실한 사회 아닌가. 그리고 이 음반의 노래들은 들을수록 아찔하다. 그 이상 무얼 바랄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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