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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망해, 눈부시게” 보통의 사람을 위한 만화작가 ‘김보통’이 전하는 말
김보통 작가 만민보
김보통 작가 만민보ⓒ기타

“망해, 눈부시게”

망하는 것도 억울한데 눈부시게 망하라니, 듣는 입장에선 분통터질 말이다. 그런데 이 주제로 망해가는 곳에 가서 강연까지 한 사람이 있다. 일종의 ‘폐관기념사’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 강연자를 초청한 사람들의 자세가 더 당황스럽다. 10월을 마지막으로 문화공간 ‘숨도’ 운영의 마침표를 찍는 공간대표는 “그렇군요. 모두 제 잘못만은 아니군요”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아 너무 괴롭다”던 대표의 놀라운 변화다.

대한불교진흥원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공간을 운영해 온 대표와 그 직원들에게 이 말이 정말 위로가 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강연을 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좋았다”는 평이 많다. ‘숨도’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한 직원도 강연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망하라”는 말에서 어떤 위로를 받았던 것일까?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이 주제로 강연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보통 작가다. 이름에서부터 ‘평범하고자 하는 작가의 지향’이 폴폴 풍기는 그는, 웹툰 ‘아만자’로 수많은 암환자와 그 가족·지인들을 울리고, 탈영병 잡는 헌병 만화를 통해 군의 부조리함을 알린 결코 평범하지 못한 만화작가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나는 보통”이라고.

지난 10월10일 문화공간 '숨도'에서 열렸던 김보통 작가의 강연.
지난 10월10일 문화공간 '숨도'에서 열렸던 김보통 작가의 강연.ⓒ문화공간 '숨도' 관계자
김보통 작가가 자신이 만든 캐릭터 탈을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보통 작가가 자신이 만든 캐릭터 탈을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보통 작가 제공

아버지의 곁

지난 2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약속 시간에 딱 맞춰 온 그는 ‘친한 동네 형’ 느낌으로 자리에 앉았다. 나오기 직전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을 법한 회색의 활동복 옷차림으로.

그의 활동명은 ‘김보통’. 진짜 이름은 김○○(30대) 씨다. 그가 실명과 나이를 감추고 활동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지금의 그가 있게 된 이유이자, ‘망해, 눈부시게’ 강연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본명을 숨긴 채 활동하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여러 가지가 있다”면서도 “전에 다니던 회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그는 전 직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동료들과 인연을 끊고 살아가고 있다. 회사를 다니며 느꼈던 커다란 실망감과 상실감 때문이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남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어느 정도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운이 좋게 대기업에 입사했다. 금융위기가 터져서 있던 채용도 취소되던 판국에 대기업에 입사한 그에게, 사람들은 “성공했다”며 치켜 올렸다. 기업 인사담당자도 “너희들은 지옥에서 탈출하는 마지막 열차를 탔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다니기 시작한 첫 직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몸담았던 당시 대기업은,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개인을 말살하는 조직”이었다.

회사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암이 재발했다. 암 재발 이후, 아버지는 4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그는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지 못했다.

“회사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운 게 많았어요. 그러던 중 아버지의 암이 재발했죠. 상식적으론 아버지가 돌아가실 날이 다가오면 ‘병원에 한 번이라도 더 가봐라, 일보다 중요한 게 가족이다’ 이런 말들을 해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직장 상사들에게 들었던 말은 정 반대의 말이었어요. ‘어차피 아버지는 네가 옆에 앉아 있어도 죽는다, 하지만 이번 달 마감은 네가 없으면 망한다, 어차피 직장은 계속 다녀야할 거 아니냐?’ 이런 말들…”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려면 회사를 나가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잊혀 지지 않는다는 듯 “어차피 아버지는 돌아가실 건데”라는 직장 상사의 말을 되풀이 했다. ‘정말로 상사가 그런 말을 했나?’라는 질문에, 그는 “인터뷰라서 많이 완화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회식자리에 끌려 다녀야만 했다고.

남들은 모두 그에게 ‘성공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은 “죽어가는 아버지의 곁을 지키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저를 성공했다고 할 수 있나. 이곳에서 더 높은 곳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심정을 떠올렸다.

김보통 씨는 그렇게 곁을 지키지 못한 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도 그는 병상에서 헐떡이시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년, 회사를 그만뒀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뒀을 때, 사람들은 저보고 망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망했다는 기준은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기준에서 어긋난 것이지, 실질적으로 저와는 연관이 없는 말이거든요. 막상 저는 마음이 너무나 홀가분하고 즐거웠어요. 반대로 대기업을 다니게 됐을 때, 사람들은 저보고 성공했다고 했었죠. 저는 (아버지 곁을 지키지도 못하는) 패배한 인생 같았는데 말이죠. 그러니 사람들이 ‘너 망했어, 너 성공했어’라고 말하는 건 웃기는 소리에요.”

우린 종종 성공의 기준을 타인의 시각에 맞추며, 인정받지 못하는 삶에 괴로워한다. 김보통 씨는 아버지를 잃으면서 이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더 이상 김보통 씨에게 ‘망했다’와 ‘성공했다’는, 공허한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김보통 씨가 문화공간 ‘숨도’에서 ‘개관기념사’도 아닌 ‘폐관기념사’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보통 씨는 말했다. “실패를 우리사회에선 죄악시해요. 그런데 실패를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우리 중 대다수는 미디어에서 말하는 성공의 기준과는 먼 인생을 살아요. 그래서 더 망했다는 말 자체를 가볍게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망하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거고, 오히려 망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웹툰 '아만자' 프롤로그에서 나오는 장면.
웹툰 '아만자' 프롤로그에서 나오는 장면.ⓒ예담 출팜사 책 '아만자'에서

아버지께 보내는 길고 긴 전상서

‘아만자’, 26살 청년 암환자의 일상을 그린 웹툰. 병동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빡빡머리 박동명(주인공) 씨가 창가에 앉아 책을 보던 어머니에게 무심코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며 시작하는 이 웹툰은, 김보통 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그린 첫 작품이다.

사실, 플랫폼 측에서 김보통 씨에게 원했던 만화는 암환자에 대한 만화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미생’이 인기였다. 그에게 직장인에 대한 만화를 그려주길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보통 씨는 자신이 없었다. 회사만 생각하면 목젖까지 욕이 차올랐다. 덤덤하게 그려낼 자신이 없었던 그는, 암환자에 대한 만화를 그리겠다고 했다. 어차피 큰 기대가 없었던 플랫폼 측에선 그러라고 했다.

만화책 '아만자' 작가의 말에서
만화책 '아만자' 작가의 말에서ⓒ만화책 '아만자'에서

그렇게 그는 아버지에 대한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아만자’는 위암 4기 선고를 받은 26살 청년 암환자에 대한 만화지만, 암울하지만은 않다. 나이에 비해 사회 물을 덜 먹은 순수한 청년 박동명 씨는 영국에 가서 ‘피스 앤 칩스’를 먹어보는 것이 ‘버킷리스트’라고 병동을 찾아온 여자친구에게 말한다. 통증으로 정신을 잃을 때면, 사막의 왕을 만나러 떠나는 꿈속에 빠져든다.

아버지에 대한 만화면서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이유는 “(당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나마 비교적 가까운 26살 청년이라면, 좀 더 이입하기가 쉬울 거라는 생각으로 결정한 구상이었다. 또 “암환자를 떠올리면 고정관념처럼 40~50대를 주로 생각하는데, 젊은 암환자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8년 암 투병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김보통 씨는 대학생시절 암환자를 위한 시민단체에서 일을 했다. 그때 종종 20대 암환자들을 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렇게 아버지를 향한 편지를 써 내려갔다.

만화를 보고 실제 암환자와 연애를 하던 젊은 독자가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암환자와 연애를 하고 있으면, 주변에선 헤어지란 말을 많이 해요. 속모를 소리를 하는 거죠. 너를 위해 하는 말이라면서 더 늦기 전에 헤어져라, 볼 장 다 보지 않았느냐, 더 봐서 네가 볼게 죽는 거 밖에 더 있느냐, 결혼도 안했는데 죽는 거 보면 너에게 큰 짐이 된다, 걔에게도 못할 일이다 등등. 그거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줘서 고맙다는 메일이 왔었습니다.”

그의 진정성 때문일까, 웹툰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2015년 부천만화대상 시민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연재가 됐으며, 여전히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기자:상을 받았을 때, 어머니는 머라고 하시던가요?

김보통 씨:“이제 상 받았으니, 다시 재취업을 알아보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죠. 이제 시작인데, 뭔 소리냐고. 진짜 엄마 같은 소리한다고.

기자:보통의 어머니와 아들이 싸우듯 싸웠네요?

김보통 씨:맞아요. 보통이죠. (웃음)

'D.P 개의 날' 홍보 영상의 한 장면.
'D.P 개의 날' 홍보 영상의 한 장면.ⓒ레진코믹스 홍보 장면

헌병 군무이탈체포전담조

웹툰 ‘아만자’가 끝나갈 무렵, 한겨레신문에서 연락이 왔다.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 연재가 끝나가니, 후속만화를 그려 달라”는 연락이었다. ‘아만자’ 연재 끝나고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점부터 연재를 시작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시나리오 구성은 돼 있었나?’라는 질문에, 김보통 씨는, “‘아만자도 그냥 그렸어요. 만화를 배운 사람이면, 콘티도 짜고, 분량도 조절해보고, 샘플 원고도 만들어 봤을 텐데, 그런 것에 대해 모르니까 그냥 그렸죠.”

별다른 준비 없이 시작했다는 연재만화가 헌병을 주제로 한 ‘D.P 개의 날’. 정확히는 ‘군무이탈체포전담조(Deserter Pursuit, 줄여서 D.P)’와 탈영병에 대한 이야기로, 군대 내 가혹행위와 병영부조리를 다룬다. 실제 D.P병이었던 작가 본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연재 당시 기사화됐던 가혹행위와 작가의 상상 등이 결합된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이슈가 됐던 가혹행위들을 다뤘건만, 독자들은 “요즘 그런 군대가 어디 있어”, “있다고 해도, 저런(탈영병) 애들이 문제다”, “요즘 애들이 빠진 거”라며 모두 작가의 상상 또는 지나친 과장이라고 치부했다. 그런 독자들에게 답이라도 하듯, 만화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보이지 않으니까, 없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게 편하거든요. 자기가 겪는 고통이 아니고, 주변의 고통도 아니니까.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약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 마음 편하니까. 맞을만한 녀석이 맞을 짓을 해서 맞았다. 나약한 녀석이 나약해서 견디지 못했다. 맞는 말일 수 있어요. 하지만, 군대라는 곳이 그런 이유로 사람이 죽어도 되는 곳은 아니잖아요?” (‘D.P 개의 날’-41화, 군탈자 이준협이 알바 했던 사장과 대화 장면에서)

김보통 작가는 'D.P 개의 날' 마지막 화에 이같은 통계 자료를 넣었다.
김보통 작가는 'D.P 개의 날' 마지막 화에 이같은 통계 자료를 넣었다.ⓒ웹툰 'D.P 개의 날' 마지막화 캡쳐

그럼에도 독자들은 “그런 일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완결판에는 자료를 하 나 공개했다. 연재가 진행되는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맞아죽은 사람들, 탈영한 사람들의 사례와 통계였다. 그리고 “이제 당신도 목격자야”라는 문구를 넣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문구는, 수정된 것이다. 본래 작가가 쓴 문구는 “당신도 공범이다”다.

김보통 씨는 이 만화의 연재를 끝마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헌병 D.P 자체가 기밀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 만화를 즐겨봤다는 후문) 군 장교들도 잘 몰랐다. 실제 탈영병을 잡으러 소속 부대에 가서 중대장이나 소대장을 만나면, 그에게 경례를 하곤 했단다. 사병인줄 몰랐던 것이다.

“사병이 왜 사병을 쫓아요. 일반 장교들도 직업군인인 헌병대 수사관이 쫓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사병에게 일을 맡기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봐요. 쫓는 입장에서 트라우마도 강하게 남습니다. 정신적 압박도 심하고요. 게다가 직업군인도 아니기에, 사명감 없이 일 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탱자탱자 놀면서.”

만화에 담고 싶었는데, 자세히 담지 못했던 이야기도 있었다. 만화에서도 활동비가 없어서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탈영병의 뒤를 쫓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는 D.P 활동비 대부분을 직업군인들의 회식비 등으로 빼앗겼던 작가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반영한 장면이다.

“원래 D.P들은 돈이 있는 집 자식들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 이유는 (간부들이) 활동비를 고스란히 꿀꺽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집에서 용돈 받아서 생활하라는 거죠. 부잣집 자식도 아닌 제가 D.P가 된 이유는 그렇게 뽑았던 부잣집 D.P들이 탈영병을 잡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헌병대장이 열심히 할 만한 애를 뽑으라고 했고, 대표주자로 제가 꼽혔던 거죠. 저는 활동비를 마음대로 갖다 쓰는 간부들에게 항의를 많이 한 편이었어요. 저희들 덕분에 그들이 표창도 받고 그랬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죠.”

한겨레신문 토요판과 레진코믹스 등을 통해 인기를 끈 만화 ‘D.P 개의 날’은 2015~2016년 사이에 4권의 책으로도 출간돼, ‘아만자’만큼이나 사랑을 받고 있다.

김보통 작가가 자신의 캐릭터 인형 탈을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보통 작가가 자신의 캐릭터 인형 탈을 쓰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보통 작가 제공

“그냥 그날그날 벌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김보통씨는 웹툰 ‘아만자’와 ‘D.P 개의 날’ 연재 이후에도 만화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MBC 예능프로그램 ‘구내식당-남의 회사 유랑기’의 메인캐릭터 ‘고독이’를 그리는 작업, 문체부가 발행하는 ‘카툰공감’에서 국가 정책을 알리는 만화를 연재하기도 한다. 어린이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선 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도 연재 중이다. 그렇게 소소하게 만화 일을 이어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또 요즘엔 샘터와 한겨레에 칼럼을 쓰기도 하는데, 쓰다 보니 수필 책까지 내게 됐다고 한다.

바쁘게 생활하고 있지만, 그는 스스로에 대해 성공과 실패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특별한 목표 없이 “그냥 그날그날 충실하면서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덜 괴로운 것 같다”고.

“되고 싶은 게 없어서 별다른 걱정도 없어요. 되고 싶은 목표가 있었으면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을 것 같아요. 1등 만화가가 될 거야라고 한다면, 그 1등이 되는 날은 기쁘겠죠. 근데 1등이 되는 날까지 지옥일거에요.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지옥일거고요.”

그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어쩌다가 만화가가 됐습니다.”

애초 만화가가 되어 대단한 작품을 하고 싶은 욕망이 없었다는 의미다. 그저 그날그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면서, 진솔하게 다룰 수 있는 소재로 ‘대단한 작품’이 아닌 “빵집에서 빵을 만들 듯” 만화를 그려왔을 뿐이다. 이런 말을 그가 매번 강조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성공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성공에 대한 강박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였음 하는 바람이다.

“보통의 사람이 보통의 노력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으면 하는 거죠. 근데 우리사회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이들이 누구냐 하면, 인간이길 포기하거나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해 성공을 쟁취한 사람들이에요. 극소수 사람들이죠. 저처럼 경험이 없고, 자격이 없는 사람도 이렇게 직업을 바꿔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특별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무작정 ‘무한 경쟁사회’로 도망치지 말고, 차라리 함께 두려움에 맞서자고.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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