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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빨리 판결났으면…” 홀로 남은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의 눈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김슬찬 기자

“저 혼자여서 많이 슬프고,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픕니다. 같이 했으면 했는데…”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 판결 직후, 유일한 생존 피해자 이춘식(94) 씨가 밝힌 소감이다. 원고 승소 판결에 기뻐해야 할 그는, 이날 판결을 들을 수 없었던 다른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춘식 씨와 함께 대법원 판결을 듣지 못한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씨 3명은 이미 생을 마감했다. 여운택씨는 2013년 12월, 신천수씨는 2014년 10월, 김규수씨는 올해 6월에 운명했다. 이춘식 씨는 다른 이들이 사망한 소식을 “이 날 처음 접했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규수 씨의 아내 최정호(84)씨도 대법원을 찾았다. 최 씨는 “조금만 일찍 이런 판결이 났으면 가시기 전에 좋은 소식을 접했을 텐데, 마음이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반겼을 이날 판결은 당사자와 유족에겐 너무 늦어버린 ‘슬픔의 판결’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슬찬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30일 오후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30일 오후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함께하지 못한 故 여운택·신천수·김규수

30일 오후, 1시30분 경 이춘식 씨와 피해자 유족 최정호 씨 등은 대법원 앞에 도착했다. 이날 오후 2시에 열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기 위해서다. 변호인들과 한·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세상을 뜬 피해자들의 영정을 손에 든 채 함께 입장했다.

2시 재판이 시작되자 이들은 그토록 기다렸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법원은 피해자인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피고가 원고 각각에게 1억 원씩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신일철주금이 침략전쟁을 위해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이 씨 등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에 신일본제철이 불복하고, 사건이 대법원에 다시 접수된 지 5년2개월 만에 결론이 난 것이다. 그 사이에 원고 이 씨를 제외한 다른 피해자 3명은 운명했다. 양승태 사법부가 재판 거래를 하며 선고를 미루는 사이에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운명한 것이다.

올해 6월 운명한 고 김규수 씨는 군산 광동중학교 졸업 후 일본인 인쇄소에서 일하다가 징용 영장을 받고 야하타 제철소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다. 그는 제철소 내 열차 선로를 조작, 관리하는 북 신호소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동료 조선인과 함께 도주하다 붙잡혀, 일주일 가량 고문과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해방 후 여비로 200엔을 받고 그해 9월 초순 경 시모노세키를 출발해 오던 중 태풍을 만나 배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아 9월 하순 부산으로 귀국했다.

2014년 10월 운명한 고 신천수 씨는 16세때 ‘대우가 좋고 집에도 송금할 수 있다는 일본제철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오사카 제철소에 강제징용됐다. 신 씨는 용광로에 석탄을 넣고 고로를 관리하는 고되고 위험한 중노동에 시달렸다. 신 씨도 달아날 계획을 세우다 발각돼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1945년 3월, 오사카 제철소가 공습당한 후 회사의 지시에 따라 함경북도 청진 공장으로 이동해 토목공사를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2013년 12월 운명한 고 여운택 씨는 1943년 9월 평양의 이발점에서 일하던 중, ‘기술 습득 후 귀국하여 기술지도원으로 일할 수 있다’는 일본제철 공원모집 신문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강제징용 피해자가 됐다. 1년9개월 가량 일본제철 오사카제철소에서 크레인을 조작해 용광로에 고철을 넣는 노동을 했다. 부족한 식사와 강압적인 노동, 열악한 생활환경에 시달리다가 1945년 6월 경 공장이 폭격된 후 함경북도 청진으로 이동했다가 해방을 맞았다.

원고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강제징용됐다. 대전 지역에서 선발된 80명의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일본제철 가마이시 제철소로 끌려갔다. 일본군 출신 사감이 관리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탄차에 석탄을 퍼 올리는 단순 노역에 시달렸다. 1945년 1월엔 일본군으로 징병돼, 고베의 8875부대에서 민군포로감시원 일을 해야 했다. 해방 후 가마이시 공장 노무과에 찾아가 월급을 요구했으나 받지 못하고 귀국했다.

30일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재상고심 판결 기자회견.
30일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재상고심 판결 기자회견.ⓒ민중의소리

“신일철주금·일본정부, 공식 사죄하라”
“한국정부,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 위한 외교적 조치 취하라”
“대법원, 사법농단 진상규명하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후, 오후 3시30분 경엔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사무실에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연 ‘강제동원 공동행동’은 일본 정부와 신의철주금에 공식 사죄 및 추모, 피해자 인권 회복을 위한 추가적 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또 대법원에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조치를, 정부엔 강제징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외교적 조치를 촉구했다.

이 자리에선 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와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등이 판결 내용과 그 의미를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크게 3가지였다”며 “1965년 맺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소멸됐느냐, 일본 법원의 원고 패소 판결이 한국 재판부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신일철주금이 옛 신일본제철의 책임을 그대로 승계했느냐 등”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법관 다수는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봤고, 일본에서 이루어진 재판은 ‘자국의 식민지배가 불법이 아니’라는 전제로 내려진 것이기에 한국의 헌법에 위반돼 인정 할 수 없다고 봤다”고 전했다. 또 “신일철주금의 책임 승계에 대해서도 2012년 판단이 타당하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조 연구위원은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강제동원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범위 바깥의 문제로 해석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정부와 의견이 다른 판결이 나왔기에, 한일 간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법원 판결에서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그동안 사법부 차원에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물은 적이 없다. 2012년 대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로 전범기업의 법적 책임을 확인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연구위원은 “이번 판결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 법원의 문턱조차 가지 못한 사건들이 많다”며, 일제강점기 당시 100만명이 넘는 이들이 국외에서, 200만명이 넘는 이들이 국내에서 강제징용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일본 시민단체 ‘일본제철 징용공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서도 함께 했다.

나카타 미츠노부 사무국장은 “5년 전 7월 기자회견장에서 이춘식 씨와 고 여운택 씨와 함께 했다. 기자회견장에는 2분의 피해자만 함께 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4분의 피해자 모두가 생존해 있었다”며 “한 분만 남은 점이 너무 아쉽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없다. 일본 정부와 신일철주금은 이 분들에게 피해 보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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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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