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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던 젊은 공무원이 13년차 해고자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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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29살의 한 청년은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결심으로 공무원 시험을 봤다. 그렇게 그해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업무를 담당하는 7급 공무원이 됐다. 그러나 공무원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관리하고 지원해야 하는 업무는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고된 순간의 연속이었다. 매일 ‘관둬야지 관둬야지’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돌봐야 하는 이웃들이 눈에 밟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아가게 될 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이웃들을 도우며 나름 삶의 행복과 보람을 찾은 듯 보이는 이 청년에게 어찌 보면 사회복지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천직(?)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다면 2018년 현재 이 청년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년을 앞 둔 공무원? 청년은 이런 예상을 깨고, ‘해고 노동자’가 돼 있었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옆에 있는 한 벤치에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은환(53)씨를 만났다. 29살 청년은 24년이 흐른 지금 전국공무원노조(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회복투) 위원장이 돼 있었다.

김은환 전국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
김은환 전국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민중의소리

공무원 노동기본권 요구하다 해고... “지극히 당연한 것을 요구 했는데”

“내 나이도 가물가물한데 해고될 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2004년 11월 15일 공무원노조 파업이 있었고, 불과 한 달 보름 정도 지난 2005년 1월 8일 해고 통보를 받았죠.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잘살아 보겠다’며 공무원이 됐던 그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상급자들의 부당한 지시나 경직된 조직문화 등은 강한 반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상명하복만 있을뿐 평공무원들은 의견을 내거나 기댈 곳도 없었다. 당연히 잘못된 행정이나 비리에도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런 부당함으로 인해 불만이 쌓여가고 있을 때, 마침 그가 있던 과천에도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설립됐다. 그리고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직장협의회에 가입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정말 (직장협의회)활동하기 힘들었어요.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많은 동료들이 끝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나 공무원 조직문화에 대한 반감이 워낙 컸기 때문이죠. 솔직히 사무실에 결재판이 날아다니는 건 우스웠고, 승진을 위해 뒷돈이 오가는 일도 공공연하게 일어났을 정도죠.”

우리나라에 공무원들로 구성된 노조 형태의 단체가 처음 생긴 건 1999년이었다. 1998년 2월 6일 노사정위원회 합의에 따라 같은 해 2월 24일 ‘공무원직장협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법률’이 제정됐다. 그리고 이 법률에 의해 1999년 1월부터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설립돼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공무원들은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법외노조로 전국공무원노조를 출범시켰다. 물론 이후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공무원들의 노동기본권을 강화한다며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노조가 허용됐다. 하지만 해당 법은 노동삼권 가운데 단체행동권이 빠지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범위와 방법 등을 엄격하게 제한함에 따라 사실상 노조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에 반발한 공무원노조는 결국 그해 11월 총파업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단체행동권 없는 노조? 가입하지도 못하는 노조라뇨, 제대로 된 교섭조차 못하고... 그걸 인정하는 게 더 웃긴 것 아닌가요? 저희는 ‘공무원들에게도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하며 나선 겁니다. 최악의 경우 ‘해고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내하고서라도 말이에요.”

당시 정부는 공무원노조의 파업 예고에 엄벌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공무원노조는 굴하지 않았다.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요구와 함께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파업 참여 공무원 136명은 연가신청을 냈지만 불허됐고, 결국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됐다.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는 전국공무원노조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는 전국공무원노조ⓒ민중의소리

15년간의 복직투쟁... 김은환 위원장 “이제 끝낼 때라고 생각했다”

“내년 1월이면 해고된 지 15년째죠. 긴 투쟁을 이어왔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사이 해고자 중 3명이 병으로 돌아가셨고, 또 29명은 이미 정년을 넘겨 어쩔 수 없이 퇴임 아닌 퇴임을 한 상황이죠. 게다가 44명이 4년 후면 정년이 끝나는 상황이에요. 그렇게 되면 60명 정도만 남게 되는 거죠.”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그는 올해 3월 공무원노조의 새로운 집행부가 꾸릴 당시 스스로 회복투 위원장을 자처했다. 15년 가까이 이어온 투쟁을 이제 정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강도 높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8월 21일 해고자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청와대 앞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22일에는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투쟁을 이어가면서도 마음은 너무 무거워요. 그동안의 투쟁을 끝내야 한다고 나섰는데, 결과가 나와야 하니까요. 결국엔 우리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싸우느냐가 결과를 좌우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청와대 앞 농성을 이어가고 있어요.”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 이행을 강조했다. 2012년 공무원노조 조합원 5만여명이 모인 총회에서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는 “전국공무원노조 설립신고가 수용되면 해직자를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고자들에 대한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우린 복직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어요. 주변에서도 ‘그동안 고생했다’, ‘다 끝났다’고 말해줬죠. 그래서 기쁜 마음에 술까지 샀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답이 없는 상황이죠. 너무 답답했어요. 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선 이유에 그런 실망감도 포함돼 있었죠.”

김은환 전국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
김은환 전국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민중의소리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해... 다만 아빠가 했던 활동의 사회적 역할 기억해 줬으면”

지난 15년의 세월을 돌아 본 김 위원장은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과천지부장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족들에게 소홀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노조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을 당시 태어난 막내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더욱 크다.

“아들 딸이 하나씩 있어요. 막내딸이 2003년 태어났는데 제가 노조활동을 하면서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시기였죠. 그래서 임신 중인 아내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예요. 태어난 아이가 산모의 스트레스로 발바닥이 눌려 꺾인 상태였죠.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어요. 다 제 탓인 것만 같아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몸이 약했던 막내딸은 이후에도 뇌수막염을 앓는 등 잔병치레가 많았다. 그는 그럴 때마다 모든 게 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속앓이를 해야 했다.

“지금 딸이 중학교 3학년인데 작년까지만 해도 아빠가 뭘 하는 사람인 줄 잘 몰랐어요. 투쟁을 위해 법원도 가고, 국회도 가고, 청와대도 가고 그러니까. 이상해 보였겠죠.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 알게 된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저를 아시는 주변 분들이 ‘너희 아빠 좋은 일 하시는 분이야’라고 말해 줘 아빠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가 생긴 것 같아요.”

그는 가족들에게 무심한 남편·아빠로 기억되는 것에 대해 자신이 감내해야 할 부분임을 인정한다. 다만 아이들이 자신이 한 일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좋은 남편·아빠로 기억되는 건 제 욕심이죠. 하지만 아이들이 아빠가 했던 활동들이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역할을 했다는 것 정도로만 기억하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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